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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상한 공부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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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상한 공부는 없다.
그놈에 공부가 뭐길래. 한국처럼 공부에 목을 매는 나라도 흔치 않을 것이다. 역으로 표현하면 공부를 하지 않고는 살아가기가 그만큼 힘들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실제로 뉴질랜드나 호주처럼 땅은 넓고 사람은 상대적으로 적은 나라에서는 힘들게 공부를 하지 않아도 어느 정도의 삶은 살아갈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더 나은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그 나라에서도 골을 싸매고 공부를 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도 사실일 것이다.
우리의 경우는 예전부터 공부에 대해서 만큼은 열의가 넘치는 민족이었음은 배워서 알고 있다. 근대교육 바로 전 교육은 향교나 서원, 서당에서 주로 이루어졌다. 금수저 출신들은 성균관이라는 고상한 교육기관에서 공부를 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밑의 교육기관에서 공부를 했을 것이다. 그 밑에 교육을 담당하던 곳을 교육기관이라 칭하기에는 좀 촌스러운 맛도 있을 것 같다. 어찌하였던 그런 공간에서 공부라는 것을 통하여 입신양명의 꿈을 키워온 것은 사실일 것이다. 그런데 그런 교육공간에서 무엇을 배웠는가를 보면 그야말로 단순하기 이를데 없는 분야에 공부했음을 알 수 있다.
구한말 이전에 교육의 시발점은 ‘가나다라’가 아니라 ‘하늘천 따지’ 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당시에는 사대주의에 젖어 한글보다는 한자를 쓰는 사람들이 고상하게 대접을 받던지라 교육공간에서 천자문부터 배우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것을 떼면 소학, 동몽선습, 맹자, 대학, 논어 등으로 격을 높였다고 배웠다고 한다. 실제 그런 것인지는 당시를 살아보지 않아 잘은 모르겠지만. 어찌 하였던 한문을 중점적으로 공부해 온 것만은 사실인 것 같다. 당시에 한문 공부의 쓰임새는 문맹퇴치나 교양이나 일상생활의 발전보다는 오로지 과거를 보기 위한 수단이었을는지도 모른다. 이런 교육풍토에서 다양한 교육이 펼쳐졌을 이유도 없었을 것이고 그런 사고방식을 가진 경우도 없었을 것이다. 그래도 조선 중기를 지나면서 실학이 도입되면서 그나마 인간의 삶과 관련된 학문을 선 보였으나 그것도 과거시험이라는 커다란 물줄기에 밀려 빛을 발하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러다보니 조선 500년 동안 우리가 쌓은 학문이라곤 유교를 바탕으로 한 윤리와 도덕, 백성들의 관혼상제에 관한 내용이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런 사고방식이 아직까지 한국사람들의 머릿속에 각인이 돼 있지 않나 생각된다. 오로지 대학에 가야한다던가 공무원이 되어야 한다든가 높은 지위에 올라야 한다거나 하는 사고방식이 그 대표적인 사례가 아닐까 생각된다. 표면적으로는 교육이고 일상생활이고 엄청 다양화 되었다고 하지만 그 내면에는 조선시대의 사고가 아직까지 젖어 있는 부분이 있다고 본다. 이러다 보니 공부 방법에도 과거 스타일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학교에는 서당에 훈장같은 선생님이 있고 앵무새처럼 배우는 학생이 있는 모습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고전적인 공부방법이 나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더 나은 방법이 있다고 했을 시 그것을 도입하고 적용시키는 것이 선구자들이 해야 할 몫이라 본다. 세상에 고상한 공부법은 없다고 본다. 옛날 고사성어에 ‘형설지공’이라는 말을 들어 보았을 것이다. 등잔불을 켜지 못할 정도로 곤궁한 생활을 하면서도 눈빛이나 달빛을 보면서 공부를 했다는 것이다. 요즘 새로 짓는 학교는 거의 호텔급의 환경으로 만들어지는 것으로 알고 있다. 공부하는 환경의 격은 엄청나게 높아진 것이다. 그만큼 환경이 좋아지면 교육의 효과도 그와 비례하여 향상이 되어야 하는데 과연 그럴 것인가에 대해서는 의구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옛날 왕의 자손이 아닌 이상, 현대판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사람이 아닌 이상 보통 사람들이 배우는 방식으로 공부라는 것을 하게 된다. 설사 왕의 자손던이던 금수저 출신이건 간에 공부의 왕도는 없으리라 본다. 공부의 본성이 수많은 지식이나 식견, 타인의 경험, 지혜, 기술 등을 머릿속에 집어 넣는 작업인 것이다. 컴퓨터처럼 메모리칩에 한 순간에 집어넣을 수 없는 구조로 되어 있는 관계로 싫던 좋던 학습과정을 거처서 머릿속에 집어넣게 된다. 문제는 인간의 뇌 구조상 공부가 잘 되는 구조로 되어 있는 경우가 있는 반면 아무리 가르쳐도 잘 안 들어가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잘 들어가는 사람은 그 사람 나름대로 잘 안 들어가는 사람들에게는 그들에게 맞는 공부법이 따로 있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배우고자 하는 학생의 머릿속에 지식이나 식견을 잘 넣을 수 있도록 할 것인가가 우리가 풀어야 할 숙제라 본다.
공부를 하는 방법에서 왕도는 없다고 본다. 세련된 공부법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추구하고자 하는 목표와 그것을 달성하고자 하는 열망이 크면 클수록 공부가 더 잘 되지 않을까 싶다. 그 목적을 달성하는 과정은 본인의 환경에 맞는 것을 찾는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구질구질한 공부법은 없겠지만 어떤 사람들은 악전고투로 열악한 환경을 극복하고 성공하는 사례를 볼 수 도 있다는 것이다. 오로지 공부는 학교에서 선생 밑에서 배워야 한다는 것도 하나의 편견인지도 모른다. 눈을 조금만 크게 뜨고 귀를 조금만 더 연다면 세상에 모든 것들이 나의 스승이 될 수 도 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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