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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년 개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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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조규전 작성일 2018-01-01 17:57 댓글 0건 조회 1,21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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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8년 개띠



   천간지지에도 오묘한 진리와 이치가 숨어 있는가
? 우리는 띠를 통하여 인생의 수레바퀴를 한 속으로 묶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몇 년생이 아니라 갑자생이니 을축생이니 병인생이니 하면서 동년배의 척도로 사용을 하고 있다. 요즘은 서양월력을 주로 사용함으로서 과거보다는 덜 하지만 그래도 우리의 정감을 주는 띠 묶음은 아직까지 살아있는지도 모른다. 지난날 우리 선인들이 띠에 대한 애착과 사랑을 보여 주는 곳은 띠 동갑의 계모임 등을 통하여 동 시대에 태어난 사람들끼리의 결속을 다졌던 시대가 있었다. 동해시에 무릉계곡에 가보면 큼지막한 바위에 00생 동갑계 등을 새겨 놓은 모습을 지금도 볼 수 있다.

 

   나이를 기준으로 묶은 인간의 일상사 중에 가장 대표적인 것이 학교가 아닐까 생각된다. 이곳이야 말로 매년 해당되는 해에 태어난 사람을 입학허가해 주는 그런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같은 해에 태어난 사람들이 모이는 공간이 되는 것이다. 더 쉽게 말하면 동년배의 사람들이 동창생이 될 확률이 엄청나게 높다는 것이다. 같은 해에 태어 난 것 자체만 하여도 서로 가슴을 열 수 있는 좋은 모멘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살면서 같은 해에 태어난 사람과는 말을 틀 수 있는 좋은 경우라 본다. 동갑인데 굳이 말을 높일 필요성이 있냐는 것으로 서로 간에 더 친근한 사이로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같은 지역에서 태어난 사람도 친근감을 느끼겠지만 그보다 같은 시대에 태어난 사람과 더 친근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서로 간에 언어관계에서 더 큰 영향을 받는 것 같다. 같은 지역에서 태어났다고 서로가 말을 트기에는 한계가 있는 것이다. 오히려 더 말을 높이거나 함부로 할 수 없는 사이로 발전하겠지만 동년배의 관계에서는 허물없이 말을 트기가 용이하다는 것이다. 왜 그런 현상이 발생되었을까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그렇게 되었으리라 생각된다. 그 중 하나가 동년배는 싫던 좋던 같은 시대를 살다가 같이 죽을 수 밖에 없는 운명공동체기 때문에 그렇지 않을까 싶다.

 

   물리적 나이의 척도를 보통은 한 살, 두 살, 오십 살, 육십 살, 팔십 살 등으로 표기를 한다. 이것을 무술생이냐 기해생이냐 경자생라고 표현을 한다면 요즘 사람들은 이해하기가 좀 어려울 것이라 본다. 자주 사용하지 않을 관계로 어색할는지 모르지만 인간적인 표현으로는 직설적으로 몇 살인가 보다는 훨씬 더 색다른 맛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보다 더 용이한 표현으로 띠를 쓰는 경우도 많이 있었고 지금도 흔히 쓰고 있다고 본다. 몇 년생인가 보다는 무슨띠냐가 대답하기도 좋고 서로 간에 교감을 하는데도 색다른 맛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올해가 무술년이다. 육십갑자 중 서른다섯 번째라고 한다. 띠로 말하면 개띠인 것이다. 띠에다 왜 동물을 덧씌우기를 했는지는 모르지만 무의미 하게 무술년하는 것 보다는 개띠가 훨씬 더 정감이 가는 표현처럼 보인다. 요즘처럼 바쁜 세상에 몇 년생 하면 간단한 걸 왜 그리 복잡하게 돌리고 돌려서 동물에까지 빗대어 말해야 하는가에 대하여 불만을 가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옛날 사람들은 아마 지금처럼 오락도 많지 않았을 것이고 바쁘고 복잡한 일도 흔치 않았으리라 본다. 그렇다 보니 우리의 일상사에도 어떻게 하면 좀 더 의미 있고 색다를 세계를 볼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하여 고민하다가 이런 비유의 문화를 만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개띠는 어떤 뉘앙스를 우리에게 주는가? 12년마다 돌아오는 띠지만 58년 개띠는 우리 현대사에 많은 곡절을 그대로 안고 살아왔고 살아가야 할 대표적인 연배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사연이 많을수록 인생이 풍성해 지는 경우도 있겠지만 그 사연을 다 녹이고 해결하는 과정은 그만큼 힘들었다고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58년생은 베이비붐 시대의 중심 정도에 있는 나이로서 태어날 시점도 모두가 힘들었던 시대이고 성장하는 과정에서도 굴곡과 부침이 다른 나이또래 보다 훨씬 더 컸었던 시대인 것이다. 그들이 억척스럽게 살아온 과정이 우리의 현대사라 보는 시각도 있는 것이다.

 

   인간은 언제 어디서 태어났는가에 따라서 인생이 판이하게 갈리게 된다. 태어나는 것은 자신의 의지와는 전혀 관계없이 이루어지는 것인 만큼 어디 가서 하소연 할 수 있는 계제도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 싫던 좋던 즐겁던 괴롭던 자신이 안고 가야할 운명이자 숙명인 것이다. 58년 개띠는 좋은 표현으로는 다사다난한 인생역정을 엮어가고 있다고 본다. 그것은 그들만의 생각이 아니라 다른 연도에 태어났던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묵시적으로 인정을 해 주고 있는 것이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역정의 긴 터널을 비껴갈 수 없는 구조에서 출발을 한 것이다. 60년 전 무술년에 태어난 개띠 출신들이 올해에 회갑을 맞는다. 좋게 말하면 벅찬 60년이고 그렇지 않다면 회한의 60이 될 수 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회갑에 대하여 많은 의미를 두고 살아왔다고 본다. 회갑에 대표적인 문화가 회갑연이 아닐까 생각된다. 지금은 의술과 과학의 발달로 인간의 수명이 많이 길어졌지만 과거에는 환갑까지 산다는 것 자체가 축복이었다고 한다. 환갑을 살았으면 인간이 가지는 기본적인 수명은 채웠다는 생각을 가지고 살았다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을 위하여 많은 사람들이 회갑연을 마련해 준 것이다. 그간 삶에 대한 축복의 연회를 회갑연에 담아 우려낸 것이다. 올해 오늘부터 58년 개띠에 태어난 사람들은 환갑연을 생각할 시점인 것이다. 보통은 자신이 태어난 날에 환갑을 차려 먹는 사람은 오늘부터 환갑잔치의 시발점이 되는 것이다. 과거에는 엄청나게 뜻깊고 의미 있고 축복받는 날이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58년 개띠에 처한 사람에게 환갑잔치를 하자고 하면 많은 대상자들이 약간의 이맛살을 찌푸리리라 생각된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회갑잔치는 뒷켠으로 물러가는 듯 한 것이 요즘 세상 풍속도인 것 같다.

 

   회갑은 또 하나의 인생의 변곡점을 만들게 한다. 보통의 직장에서 회갑이 되면 정년이라는 이름을 붙여서 사회로 환원을 시켜 버리는 것이다. 당사자들은 젊은 사람 못지않게 펄펄 일을 할 수 있다고 하지만 사회는 그들에게 공식적으로 나가라는 메지지를 보내는 것이다. 올해 환갑을 맞이하는 나이에 든 사람들은 싫던 좋던 정년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남자의 세계에서 군대, 예비군, 민방위에서 마지막으로 제대를 하는 것이 직장이 아닐까 생각된다. 당사자들은 허무하기 이를 데 없는 한해를 보내야 하는 것이다.

 

   58년 개띠에 처한 분들은 남다르게 새해를 맞이했다고 본다. 지금까지 살아온 여정도 눈물 날 일이고 이제 환갑이 되었다는 그 자체에 대해서도 허무함과 공허함이 가슴까지 차올라 왔다고 본다. 누가 나이를 먹는데 대해서 긍정적으로 생각하겠는가만 현실은 냉정하기 그지없는 것이다. 나이를 먹는 것도 달갑지 않은 일인데 이제 심리적으로 사회의 뒤켠으로 물러갈 생각을 하면 지나간 세월이 더 야속하게 느껴질 수 도 있을 것이다. 아니 야속하다고 느끼는 것이 맞다고 본다. 하지만 58년 개띠가 우리 사회에서 이루어 놓은 업적에 대해서는 과소평가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물론 그들의 격려에 위안을 받을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라 생각은 든다.

 

   누구나 다 회갑을 맞을 기회는 있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회갑의 맛도 못 보고 저승으로 간 사람도 부지기수인 것이다. 회갑을 맞이하였다는 것 자체를 축복으로 볼 수도 있는 것이다. 내 생의 과정을 어떻게 평가하는가는 오롯이 본인들의 몫이겠지만 주변에서 바라보는 평가도 무시할 수는 없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58년 개띠의 회갑에 대해서는 남다르게 바라보고 있다고 본다. 그들이 회갑을 맞음으로서 내년에는 59년 돼지띠에서 고스란히 그것을 이어받게 되는 것이다. 내 자신 만이 굳은 일에 당사자가 된다면 더 서럽겠지만 누구에게나 다 다가오는 일이라면 그 자체도 조금은 위안이 되리라 본다.

 

   지난 세월을 아쉬워하지 않은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을 것이다. 오늘에 회갑을 맞이하는 사람이 있다면 회갑의 축복보다는 지난날의 아쉬움에 대해서 더 많은 소회를 하리라 본다. 하지만 흘러간 물로 물레방아를 돌릴 수 없고, 지나간 시간으로 새로운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을 빨리 인식하고 다가올 시간을 어떻게 유용하게 활용할 것인가에 대해서 고민을 해야 하리라 본다. 많은 사람들은 중대한 변곡점에 도달해야지만 그때서 깨닫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오축하면 철들자 노망이라 했겠는가? 누구나 다 아는 어귀이지만 이를 실천하는 사람들은 극소수라는 것이다. 이 글을 쓰는 필자나 이 글을 읽는 독자 여러분도 마찬가지라 본다. “입에 풀칠을 할 만 하니 저승이 보이더라.”라는 표현이 많은 인간들의 인생사 종말에서 나오는 이야기라 한다. 먼저 깨닫는 자가 더 깊은 인생을 살아가는 것은 만고불변의 진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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