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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쥐와 시골 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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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조규전 작성일 2018-01-31 09:21 댓글 0건 조회 76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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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쥐와 시골 쥐


   쥐만큼 인간의 생활과 같이 한 짐승도 흔치 않으리라본다. 물론 인간과 친화적인 동물은 아니지만 인간과 떨어질 수 없는 관계의 동물이라 본다. 그러다 보니 쥐와 관련된 이야기나 설화는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것 같다. 물론 쥐가 인간에게 이익을 준 경우는 흔치 않으리라 본다. 우리 인간의 곳간을 축냈던 대표적인 동물이 바로 이놈이 었던 것이다. 과거 중세 시대 유럽에 흑사병을 일으켰던 주범이 쥐라는 사실도 인간에게는 충격적으로 다가올 수 있을 것이다.

 

   쥐를 아무리 예쁘게 봐 준다하여도 징그럽거나 지저분하거나 인간의 식량을 축내는 고약한 동물 이외에는 달리 봐 줄 방도가 없다고 본다. 하지만 우리가 즐겨 보는 미키마우스의 주 스토리는 다름 아닌 생쥐에서 출발한다. 미국에 어느 찢어지게 가난했던 만화가가 먹거리 가없어서 쫄쫄 굶고 있는데 그 집에 살고 있던 생쥐도 주인 따라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었다. 인간이나 짐승이나 먹거리가 없고 땟거리가 없어도 자식은 낳는 다고 본다. 이 허름한 만화가의 집에서도 굶주려 가면서 연명을 하던 생쥐가 새끼를 낳고 그 새끼가 쥐구멍에서 입을 삐죽이 내 미는 모습이 너무나 새롭고 신기하게 보여 그것을 만화로 만든 것이 미키마우스의 시초라는 이야기가 있다. 인간에게는 하찮고 쓸데없는 동물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전 세계 사람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캐릭터로 변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대목인 것이다.

 

   쥐의 먹이는 인간의 섭생과 겹치는 경우가 많다고 본다. 인간이 먹을 수 있는 것은 쥐도 같이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인간이 살아가는 공간에 쥐도 같이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부잣집에 서식하는 쥐는 새롭고 맛있는 음식을 먹을 기회가 있을 것이고 가난한 집에 서식하는 쥐는 가난한 사람이 먹는 음식을 벗 삼아 살아갈 수 밖에 없으리라 본다. 서양에서는 church mouse라 하여 가난함을 대변해 주는 숙어로 사용을 할 정도이다. 이는 교회에 서식하는 쥐로서 그 근처에는 먹을 것이 늘 부족하여 배를 곪는 사람을 칭한다고 한다. 물론 우리의 삶에서도 church mouse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을는지는 모르지만 가난함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라 보면 될 것이다.

 

   인간이나 쥐나 어디에서 태어나느냐가 그의 일생을 좌우하는 것 같다. 대도시에서 태어난 쥐는 그 환경에 맞게 살아가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사는 관계로 거기서 나오는 각종 먹거리는 쥐의 서식에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위생 관념이 점점 커짐에 따라 쥐가 설 땅이 부족해진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쥐의 밀도가 줄어들지 않는 이유는 번식력이 엄청 강하다는 것이다. 먹거리만 좋으면 1년에도 몇 차례씩 한두 마리도 아닌 몇 마리씩 번식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쥐에 입장에서 보았을 때 먹거리는 풍부하나 그들이 평상시에 서식해야 할 공간인 쥐구멍을 만들기 어렵다는데서 발생된다. 모든 공간이 시멘트, 콘크리트, 보도블록으로 덮여 있는 공간에서 쥐가 서식할 공간이 너무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하수구 구멍 같은 곳이 주로 서식지가 되면서 인간의 위생까지 위협하는 존재로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반면, 시골 쥐는 섭생에서는 자연식을 즐기고 서식환경도 도시보다는 훨씬 좋다고 본다. 하지만 이런 조건에 맞물려 쥐의 생사여탈권을 가진 동물들을 만날 기회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우선 고양이가 쥐에 있어서는 결정적으로 위협요소가 되면 공중에 떠다니는 매나 솔개도 만만찮은 위협요소인 것이다. 게다가 인간이 뿌려 놓은 쥐약은 그야말로 쥐약 그 이상의 역할을 함으로서 쥐가 살아가는데 녹녹치 않은 환경으로 변해가고 있다고 본다.

 

   그렇지만 쥐의 일생에서도 낭만이 없으리라는 보장은 없는 것이다. 어느 날 시골 쥐가 서울 쥐의 초청을 받게 된다. 들뜬 마음에 시골 쥐는 서울 쥐 집을 방문하여 서울 생활을 경험하게 된다. 먹는 것이 남는 것이라고 쥐에서도 먹거리만큼 중요한 것은 없었는지라 서울 쥐의 꽁무니를 졸졸 따라다니면서 시골에서 맛볼 수 없는 새로운 음식을 먹게 된다. 무엇이든 난생처음 한다는 것은 그 이상의 설렘도 수반이 될 것이다. 문제는 맛있는 음식을 음미하면서 먹어야 하는데 한참 먹다보면 많은 사람들로부터 발각이 되는 터에 잠시라도 신경을 쓰지 않으면 죽거나 걷어차이게 된다는 것이다. 마음을 졸여가면서 먹여야 하는 음식문화가 시골 쥐에게는 엄청난 부담이 되는 것이다. 그럭저럭 생각했던 체류시간이 지나고 시골 쥐는 새로운 맛도 보았지만 그 이면에 가슴 졸이면 생활했던 기억을 뒤로 하고 서울 쥐에서 시골 방문 초청 건을 건네고 다시 옛날 시골로 내려왔다.

 

   서울 쥐 또한 시골의 맛을 못 보았는지라 공기 좋고 물 좋다는 시골에 친구를 찾아서 내려오게 된다. 하늘에 날아다니는 매와 땅에 기어 다니는 고양이를 요리조리 피해서 시골 쥐 집으로 오게 된다. 서울에서 잠시도 눈알을 돌리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구조에서 느긋한 시골에 온 서울 쥐는 그야말로 이렇게 좋은 세상도 있구나 하면서 감탄을 하고 있었다. 서울서 오는 바람에 배도 출출한 터에 시골 쥐에게 밥상을 요구했다. 시골의 쥐 밥상은 자연에 널려있는 각종 나락을 주어먹거나 주인이 거두어들인 나락을 먹어야 하는데 이 또한 가공이 안 된 지라 일일이 이빨로 까서 먹거나 썰어 먹어야 하는 불편함을 호소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시골 쥐야 이런 일이 일상사임으로 일사천리로 거친 음식을 입 안에서 처리할 수 있는데 서울 쥐는 다 완성된 음식만 먹다가 이렇게 거친 음식을 재가공하여 먹는다고 생각하니 캄캄하기만 한 것이다. 그렇다고 먹지 않고 살아갈 수 없는 노릇이고 보면 이 또한 고역스럽기 그지없었다. 자연적인 여건은 그럴싸했지만 먹거리 자체는 서울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조악하고 입 안에서 다시 가공해서 먹는 번거로움이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다. 며칠 묵은 서울 쥐는 시골 쥐에게 좋은 경험을 했다고 말하고 그간 잘 먹지 못해서 축난 홀쭉한 몸을 이끌고 자신이 정들었던 서울로 되돌아갔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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