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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의 모 빵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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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의 모 빵집
바닷바람은 어디가도 마찬가지로 세찬 것 같다. 제주도의 바닷바람이나 군산 쪽의 바닷바람이나 강하다는 것에는 재론의 여지가 없는 것 같다. 지난 1월 초 군산으로 갈 기회가 있었다. 군산은 새만금 방조제와 연결되면서 새로운 관광지로 더 부상이 되는 도시로 알려지고 있다. 거기에다가 과거 일제 수탈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으로 우리의 아팠던 근대역사를 몸소 체험해 볼 수 있는 도시라는 것이다.
필자는 이번에 군산행이 머리에 털 나고 처음이었다. 처음은 모든 것을 설레게 하는 마법이 있는 것 같다. 군산 쪽으로 갈 계획을 잡는 순간부터 새로운 세계에 대한 동경이 더 크게 다가왔다. 역설적으로 표현하면 얼마나 주변머리가 없고 활동성이 한계였었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라 본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라고 이제라고 가 볼 수 있는 기회를 맞이 했다는 것 자체가 필자의 인생에서 하나의 큰 추억이 될 수 있었다.
새만금 방조제는 우리의 간척역사의 거의 종착역이나 마찬가지였다고 본다. 그 계획을 입안하고 결과가 우리나라 경제에 얼마나 보탬을 줄 것인가 까지는 알 필요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어간다. 당시에 그 플랜이 나왔을 때에는 거의 장밋빛 결과만 우수수 나왔던 것으로 알고 있다. 좁은 한반도에 엄청난 육지가 늘어난다는 것만으로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거기에다가 농업과 공업 그리고 관광 서비스업이 동시에 들어서면서 하나의 융복합적인 세계가 태어나리라 예상을 했다. 물론 결과론적으로 그런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도 틀리지는 않는 말이다.
요는 세상이 바뀌면서 그 간척지의 원초적인 가치에 포커스를 맞추는 순간 그 방조제가 처음 입안되었을 때의 가치를 한 순간에 무너뜨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방조제를 보면서 우리 강릉의 경포 습지가 불현 듯 오버렙되었다. 오죽헌에서 경포호까지 과거에는 논으로 이용되던 곳이다. 그 전에는 습지의 형태로 있다가 식량증산 등 경제적인 논리로 인하여 매립되면서 농경지가 되었다가 최근에 다시 습지로 환원시킨 사례가 떠올랐다는 것이다. 오죽헌과 경포호 사이에 농경지가 습지로 원대복귀 되면서 그 가치는 논으로 있을 때 보다 훨씬 더 큰 것으로 인지될 것이다.
새만금도 처음 시작할 때에는 그야말로 꿩 먹고 알 먹을 수 있는 단군이래 가장 큰 토목사업으로 첫 삽을 떴다. 그 공사를 하는 과정에서 마지막 물막이 공사를 고 정주영 회장이 폐 유조선으로 틀어막고 마무리를 했다는 공법은 토목공학에 어디에도 없었다는 독특한 방법으로 화자가 되었던 시절도 있었다. 모든 국민들이 기대에 찬 눈으로 그 사업을 바라봤던 것이다. 하기사 새만금 방조제를 따라 차로 달려보니 실감이 나긴 났다. 바다 한 가운데를 몇 십분 달려도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이니 얼마나 큰 토목공사였는지 짐작을 할 정도였다.
세월이 바뀌면서 개펄의 가치가 급상승하게 된다. 우리나라 서해안의 개펄은 세계 3대 개펄에 들어갈 정도로 유명하다고 한다. 예전에는 거기서 꼬막이나 줍고 굴이나 따던 곳이었는데 개펄의 자연정화능력이 부각되면서 간척보다 훨씬 더 큰 이익이 있다는 것을 이제야 알은 것이다. 물론 당시에도 개펄의 가치를 몰랐던 바는 아니었으나 지금 와 보았을 때 당시에 간과했던 부분도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다시 둑을 허물어 자연으로 돌아갈 수는 없는 상황이고 보면 간척과 개펄이 동시에 유용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운용을 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군산이야기를 하다 보니 그와 관련된 개펄의 이야기가 주류를 이룬 것 같다. 이 개펄이 군산과 관련되었기에 좀 상세하게 언급이 되었다고 보면 될 것이다. 군산은 지평선이 보이는 호남평야의 중심도시이다. 실제 차를 타고 달려보니 산이라곤 나지막한 것을 빼고는 거의 없을 정도로 평야지대가 펼쳐져 있었다. 우리나라의 곡창지대로 알려진 군산은 그야말로 먹거리 하나만큼은 걱정을 하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을 정도의 천혜적인 자원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서해안을 끼고 있으면서 많은 강줄기를 같이 함으로서 거기서 나오는 풍부한 수산물이 먹거리 세계를 한 차원 더 끌어 올려주고 있었다.
풍부한 먹거리는 일제 시대에 일본사람들의 눈독에 맨 먼저 들어왔었다고 한다. 당시 일본이 2차 대전을 일으키면서 많은 군량미가 필요한 것을 호남평야에서 나온 쌀이나 곡류를 통해서 조달을 했다는 것이다. 사실 한반도 전체를 보았을 때 당시에 백성들도 굶주림에 시달렸는데 그 쪽에 생산되는 농산물을 죄다 공출 식으로 빼앗아감으로서 구한말의 한국 경제는 그야말로 쪼그라들 대로 쪼그라든 신세로 전락이 되고 만다. 당시 일본은 군산을 자기네 군량미를 실어 나르는 반출항구로 만들고 그 군량미를 공출받기 위한 각종 기관을 설립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을 관리할 일본 사람들이 살 수 있는 거처를 마련하게 되는데 그 근간은 일본식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지금 와 보면 어떤 향수를 느낄지 모르지만 당시에 우리 백성들이 바라보는 그 장면에서 힘없는 백성들의 피눈물 나는 현상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일본은 물러갔다. 그들의 흔적은 여기저기 남아서 지난날의 악랄했던 역사를 대변해 주고 있지만 현재의 주인은 우리인 것이다. 군주가 어리버리하고 백성이 똘똘치 못하면 이 모양 이 꼴이 난다는 것을 여기서 제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지금의 군산은 농업과 항만을 한 공업이 균형적으로 발전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군산만이 가질 수 있는 고유한 문화를 더 승화시키기 위해서 노력을 하리라 본다.
전국 어디에 가나 맛장수라고 있다.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을 중심으로 한 매체의 발달로 인하여 유명하다고 소문이 나는 것은 잠깐인 시대에 들어와 있다고 본다. 군산의 맛장수는 많겠지만 그 보다 더 유명한 집은 빵집이 아닐까 싶다. 필자는 빵을 먹기는 먹나 별로 안 좋아하기에 큰 관심은 없었으나 남들이 가니까 그냥 따라가 보았는데 생각보다 훨씬 더 새로운 빵집의 세계를 볼 수 있었다. 빵집의 규모는 생각보다는 크지 않았으나 고객들은 생각보다 많은 것 같았다. 우리가 도착한 시간이 9시 반 정도 되었는데 그 시간대에 벌써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붐빈다는 것은 아침부터 작정을 하고 들어온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특히 여기서 많은 사람들로부터 찬사를 받는 빵이 단팥빵이라 하는데 그 빵이 나오는 시간은 정해졌다고 한다. 그 빵을 사기 위해서 줄이 따로 서 진다고 했다. 어떤 사람들은 한 시간 이상 줄을 섰다가 그 빵을 사 가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인기 만점이라고 하는데 우리는 너무 바빠서 그 대열에 끼어 보지도 못하고 일반 빵만 구입해 왔다.
그 빵집은 역사부터 오래 되었다고 한다. 그만큼 장시간 영업을 하다 보니 소비자들의 트렌드에 맞게끔 끊임없이 변천을 해 왔다고 본다. 그리고 오래 하다 보니 그간 쌓인 노하우가 점점 더 쌓이면서 다른 빵집이나 체인점에서 흉내내지 못할 빵 장인의 솜씨를 발휘하게 되는 것이다. 아무나 맛있는 빵을 만들 수 없다는 것을 여기서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그리고 빵의 종류도 우리가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많았다. 많은 소비자들이 다양하게 요구하는 것을 모두 갖추어 놓고 소비자들이 맘껏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이다. 많은 빵집을 다녀봤지만 이 집만큼 다양한 빵을 많이 만들어 놓은 것은 첨봤다. 산처럼 쌓아 놓은 빵을 보느라니 풍성한 맛도 났을 뿐더러 저렇게 많은 빵이 언제 팔릴 것인가에 대해서 의아심을 가졌으나 그 빵을 사기 위해서 줄을 서 있는 모습을 보니 그런 것은 한낱 기우에 불과함을 느낄 수 있었다.
군산에서 제일 유명한 이 빵집은 전국에서도 몇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유명하다고 한다. 그렇다고 매장이 바다처럼 넓은 것도 아니고 으리으리한 건물도 아닌 곳에서 많은 소비자들로부터 격찬을 받는 빵을 만들어 낸다는 것 도 대단한 일이라 본다. 많은 독자들이 궁금해 하는 것은 빵을 만들어 팔아도 떼돈을 벌 수 있을까에 대해서 궁금해 할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무엇을 해도 대박이 나야 직성이 풀리는 사고방식을 가졌음으로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닐까 싶다. 매출이 어느 정도 되냐고 사장님께 물어볼 처지는 아니고, 인터넷에 떠도는 이야기로는 백억 중반대 정도는 가는 것으로 올라와 있다. 정설인지 아닌지는 군산 세무서에 알아보면 간단히 나오겠지만 그 정도까지 디테일하게 알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 집 근처로 가면서 그 빵집을 그냥 스쳐 지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로 들릴 것이다. 사 먹던 안사 먹던 그 빵집에 들어가 보는 것 자체가 삶에 활력을 얻을 수 있을뿐더러 무한한 빵의 세계를 접할 수 있다는 부수적인 수입까지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빵집에 빵 향기만 맡고 와도 대 성공인 셈이다. 빵을 사지 않고 들어갔다만 와도 본전 이상의 가치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강릉에서 군산까지 거리가 가깝다면 모를 일일까 모처럼 군산의 유명한 빵집에 간지라 그냥 온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고 내 맘에 드는 빵을 한 두 개씩 주서 담다보니 빵 바구니가 그득하였다. 내만 그런 줄 알고 곁눈질을 해 봤더니 다른 사람들은 내보다 더 많은 빵을 담아 가는 모습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계산을 하는 것도 한 참 걸렸을 뿐더러 마지막 빵을 포장하는 작업도 1빵 1봉지 식으로 포장해 주었다. 한꺼번에 그냥 봉다리에 넣어 주면 간단한 걸 왜 이리 복잡하게 개개의 빵 마다 따로 포장을 해 주냐고 물었더니 그 점원 왈 “같이 포장하면 개개의 빵 향기가 분산되어 제 맛과 향을 낼 수 없습니다.”라는 답이 왔다. 빵을 맛있고 특이하게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소비자들이 먹는 순간까지를 생각하고 비즈니스를 하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그렇다면 그 집 빵 맛은 어떨 것인가에 대해서 궁금해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집에 와서 빵을 풀어 놓고 가족들에게 이 빵의 내력과 사연에 대해서 구구절절이 다 풀어 놓은 다음 시식으로 들어갔다. 같은 음식이라도 그 음식에 속성을 알고 먹으면 훨씬 더 맛있다는 논리를 근거로 썰을 한 참 푼 뒤 먹어 본 빵 맛은 한마디로 부드럽고 달콤하면서도 담백하다는 것이다. 그 빵이 그 빵이라는 논리보다는 그 집 빵은 뭔가 달라도 한참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유명세라는 맛도 가미가 되었겠지만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는 다는 것은 그 안에 진국 같은 맛이 가미가 되었기에 가능하리라 본다. 화닥떼기 식으로 한 번 왕창 번 다음 걷어치울 것 같다면 모르지만 비즈니스 세계에서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로부터 격찬을 받을 상품을 만든다면 정과 성을 다 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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