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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한 놈(?)에게 댓가를 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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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조규전 작성일 2018-02-17 08:57 댓글 0건 조회 77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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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력한 놈(?)에게 댓가를 줘라.


   “세상에 공짜는 없다.” 라는 말이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을 것이다. 인간의 삶의 세계에서 공짜의 영역에 속해 있는 부분도 있다. 아침에 태양을 본다던가, 겨울철에 찬바람을 맞을 수 있다던가, 숨을 쉴 수 있는 공기를 제공받는 경우에 굳이 비용을 지불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만인이 경쟁을 하지 않고 공히 쓸 수 있는 자원을 이용하는 경우는 공짜의 개념이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는 인류가 공통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자원도 공짜의 개념으로 쓸 수 없는 시대로 들어가리라 본다. 옛말에 아무 개념도 없이 흥청망청 써 대는 것을 가지고 물 쓰듯 한다.”라고 빗댔던 적이 있었다. 그렇게 흔하고 맘대로 사용할 수 있었던 물이란 자원은 이제 귀한 몸값을 받으면서 아무나 함부로 쓸 수 없는 자원으로 변해버린 것이다.

 

   공짜가 사라진 영역을 들어가기 위해서는 그것을 구가할 수 있는 댓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이다. 물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돈이라는 대상을 지불해야 하고 명승지를 구경하기 위해서는 구경 값을 내야한다는 것이다. 부모가 손주를 봐 줘도 댓가가 따라야 하는 세상이다. 인간사에서 모든 것에서 댓가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는 세상으로 들어갔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좀 나쁘게 말한다면 야박한 세상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제 후덕하고 인심 좋은 세상은 옛날이야기로 전락되었다고 본다.

   세상이 변하는데 과거에 향수에만 매 달려 살 수 없는 노릇인 것이다. 기성세대의 사람들은 흔히 말한다. “옛날에는 이러지 않았는데 요즘은 왜 그런지 몰라.”라고. 요즘처럼 시대가 너무 빠르고 급격하게 변하다 보니 세대 간에 생각의 차이가 나도 너무 난다고 본다. 아니 우리 스스로도 과거와 현재를 살펴보면 어떤 것이 가장 바람직한 삶인지 헤깔릴 때가 한두 번이 아님을 인식하게 된다. 내가 내 자신을 잘 모르는데 남의 삶까지 데다보고 헤아려 준다는 것은 성인군자나 할 일 정도로 변해버린 것이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 보자. 우리의 교육사회에서 보면 어떤 역할을 잘 한 경우 보상이라는 선물이 주어지게 된다. 그 보상의 대상은 소소한 칭찬에서부터 원하는 대학이나 시험에 합격까지 다양하리라 본다. 학생들이 학교 현장에서 골을 싸매고 학업에 매진하는 이유의 정점에는 자기가 생각하는 보상을 받기 위함인지도 모른다. 그 어떤 일에 종사하는 것 보다 잠재적인 보상의 가치기 높다고 판단되는 곳이 교육인 만큼 이 세계가 많은 사람들로부터 이목이 집중된다고 본다. 보상의 본질은 그 세계에서 어떤 역할을 어느 수준까지 수행했는가에 척도가 맞추어진다고 본다. 목표점에 도달하기까지 많은 비용이나 시간, 열정 등이 수반되는 것은 당연하리라 본다. 그 과정에서 좀 더 분발할 수 있도록 조성해 주는 촉매제가 있으니 그 중 하나가 장학금이 아닐까 생각된다.

 

   특성화고등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은 국가에서 일정액의 장학금을 지급해 주고 있다. 실제 현찰로 빼 주지 않았을 뿐이지 알게 모르게 투입되는 장학금은 인문계 학생들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높다고 본다. 특성화고등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에게 주어지는 장학 장려 사례 중 하나가 수업료를 면제일 것이다. 학교를 다니면서 가장 부담이 되는 비용 중 하나가 수업료일 것이다. 이것을 면제해 준다는 것은 국가에서 장학금을 주는 것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특성화고등학교에 다니는 모든 학생들이 다 혜택을 받으니까 장학금이라는 명목에 대해서 실감이 나지 않을 수 있으나 알고 보면 이들에게는 국가 장학금의 혜택이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장학금을 주는 이유는 다양하리라 보지만 그 내면에 요구사항은 있을 것이다. 그냥 예뻐서 주는 장학금은 이 세상에 하나도 없을 것이다. 장학금을 주는 사람은 주는 이유가 있을 것이고 받는 사람은 왜 그 장학금을 받는지 이유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장학이란 자체의 어원이 학문을 잘 할 수 있도록 권장하는 일련의 과정이라 본다면 그 과정에서 금전적인 면을 지원해 주는 제도인 것이다. 국가에서 해 주던 공공기관에서 해 주던 개인이 해 주던 간에 친권자가 아닌 곳에서 지원해 주는 학비를 장학금이라 보면 될 것이다. 장학금을 주는 측에서는 뚜렷한 목적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받는 사람은 주는 사람의 목적에 부합한 행동이나 결과를 도출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일종의 거래인 셈이다. 그 거래에서 서로 이익이 났을 때 가치가 빛나는 것이다.

 

   우리 모교 총동문회 장학금은 그 가치를 얼마나 실현하고 있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우리의 경우는 재학생들이 이루어놓은 결과를 보고 장학금을 지급하는 형태를 취한다고 본다. 물론 그 이면에는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서 노력한 댓가도 포함될지 모르지만 주어지는 동문회장학금을 받기 위하여 특별하게 노력한 부분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막말로 총동문회장학금을 받기 위하여 고군분투 노력했다는 사례를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장학금을 지급할 경우 받는 학생은 내가 상대방보다 좀 더 잘 했으니 나를 어여삐 여겨서 총동문회에서 쌈짓돈 정도 주는 것으로 인식할 것이다. 실제 그렇지 않다하여도 객관적으로 바라봤을 시 그렇게 합리적인 추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려운 가운데서 동문들이 십시일반 후배들의 학업을 위해서 조성된 자금으로 지급된 귀한 돈이 쌈짓돈 정도의 가치밖에 발휘하지 못한다는 것은 뭔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처사라 본다.

 

   필자는 장학금 지급방법에 대하여 이 공간을 통하여 몇 번이고 제안을 올렸다. 내 자신이 별 볼일 없는 존재라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그 제안에 대하여 콧방귀를 퀸 사람이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 좀 더 거친 표현을 쓴다면 장학금을 주무르는 주체는 장학기금을 거둬서 재학생들에게 배부만 하면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기왕 시간과 에너지를 들여서 추진하고 있는 장학사업이 주는 사람도 가치를 느끼고 받는 사람은 그보다 더 귀한 가치를 느낄 수 있도록 일 처리를 하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생각된다.

 

   같은 돈을 투자해도 나오는 결과는 판이하게 다를 수 있다. 어떤 학교에서는 장학금을 주지도 않았는데 훌륭한 인물이 많이 나오는 반면 어떤 학교는 주구장창 지원하는데도 불구하고 목적으로 하는 인물이 나오지 않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물론 장학금이 만병을 고치는 백약은 아니라 본다. 하지만 늘어져 있는 학생들에게 자극제가 될 수 있는 처방 중 하나가 장학금이라 보았을 시 이런 제도를 소홀히 운영할 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 모교에 다니는 재학생들이 총동문회에서 주는 장학금에 자극을 받아 한 두 명이라도 분발을 하여 이 사회나 동문들이 요구하는 인재가 나온다면 그 또한 성공적인 장학사업이 아니겠는가.

 

   10원을 투자해서 억만금이 나오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 억만금을 투자해도 10원 이하의 값어치가 나오는 결과가 있을 수 있다고 본다. 이렇게 밝은 세상에 우리 모교 재학생들에게도 신선한 동문회장학금이 될 수 있도록 장학금 운영 방식을 전향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본다. 현재와 같이 총동문회체육대회 때 선발된 재학생들에게 쌈짓돈 식으로 지급하는 방식은 주는 측의 입장에서는 뿌듯할는지 모르지만 받는 재학생의 입장에서는 그 순간은 가치를 느낄지 모르지만 지나고 나면 그냥 쌈짓돈으로 남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 모교 총동문회장학금은 필자가 보건대 완전히 공여자 우선으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본다. 그러다 보니 작년이나 10년 전이나 그 이전이나 똑 같은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는 것이다. 몇 십 년 동안 장학사업을 했으면 그 장학사업에 혜택을 받은 사람들이 나와야 하는데 그런 경우는 거의 보지 못했다고 본다. 시행착오도 1, 2년이면 족하다고 본다. 우리 총 동문회장학사업은 몇 십 년의 시행착오를 지금도 계속 겪고 있는 것이다. 필자의 눈으로 보았을 때 진짜 이것이야 말로 농고 출신들의 바람직하지 않은 우직함이 그대로 배어 있는 방식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 다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는 필자도 과거 총동문회장학회 운영에 발을 디뎌놓았던 적이 있었다. 당시에는 워낙 기라성 같은 선배님들의 층층시하에 있어서 할 말 도 다 못하던 시절이었다. 그래도 그 당시에 그런 제안을 했으리라 보는데 위에 선배님들은 과거의 방식을 수호하는 바람에 전통적인 방식으로 운영되었다고 본다. 난공불락이었던 시절이었다. 그 후 세월이 많이 변했다. 필자도 교직에 있다 보니 다른 것은 모르지만 교육과 관련된 부분은 다른 사람보다 관심있게 볼 수 있는 눈은 띄었다고 본다. 총동문회장학금의 운영주체가 전향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접근할 때가 벌써 지났는데 아직까지 구습을 벗어 던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장학금은 주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받는 사람이 분발하여 더 나은 세계로 나갈 수 있는 촉매제가 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장학금의 효과가 가시적으로 나타날 것인가에 대해서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어떤 제도 던 100점짜리는 없다고 본다. 한 분야가 좋으면 그 이면에 있는 쪽은 나쁠 수도 있다고 본다. 하지만 장학금 지급 후 수여자가 분발할 수 있는 계기는 마련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공짜 돈이나 쌈짓돈 정도로 인식되지 않도록 지급방법의 개선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 방법 중 하나가 총동문회장학금의 존재가치를 인식시켜 줄 수 있도록 지급방법을 개선하는 일일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지금처럼 결과를 중시한 추천 방식은 과감하게 폐기하여야 할 것이다. 대신 과정을 충실하게 이행하여 소기에 결과를 얻은 재학생에게 장학금을 지급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할 것이다.

 

   과정에 대한 평가를 제시한 후 그것을 제대로 수행한 학생에게 지급한다면 많은 재학생들에게 희망과 자극을 줄 수 있으리라 본다. 요는 어떤 과정을 제시할 것인가가 관건이 될 것이다. 필자의 입장으로 보았을 때 성취할 수 있으면서 미래에 가치를 발휘할 수 있는 것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자기주도적으로 수행할 수 있으면서 객관적인 가치를 이끌어 낼 수 있는 과제를 주는 것이다. 과제의 선정도 중요하지만 그 과제를 어떻게 이수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학생 스스로가 계획하고 실행할 수 있도록 제시해야 할 것이다. 교육적인 요소가 가미되지 않은 과정은 가급적 배제를 해야 할 것이다.

 

   수행하기 쉬운 방법론을 일예로 제시 하고자 한다. 3월초에 총동문회장학금 지급 방법에 대하여 학교 게시판이나 가정통신문을 통하여 공시를 한다. 그 내용에는 어떤 과정을 어떻게 수행할 것인가에 대한 계획서 제출에서부터 장학금 지급까지의 스케줄을 명시하면 될 것이다. 장학금 지급 과정평가의 내용에서 언급해 볼 수 있는 영역은 영어회화 유창성, 일기쓰기, 나의 전공분야 발표 대회 등의 주제를 던져준 다음 평가는 총동문회체육대회날에 강당 같은데서 그 분야에 식견이 있는 사람을 위촉하여 평가를 한 다음 지급대상이 되는 학생의 통장으로 입금을 시켜 주면 되리라 본다. 장학금 지급액은 학생들이 관심을 가질 정도에서 플러스 알파가 되면 되지 않을까 싶다.

 

   이렇게 했을 시 총동문회 장학금을 받기 위하여 노력한 과정도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을 뿐 더러 준비한 학생은 자신의 학업과 미래에 대한 비전을 키울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리라 본다. 아니 우리 모교의 재학생들이 미래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길라잡이 역할을 할 수 있는 계기도 될 것이다. 미래의 삶이 시간이 지나가면 그냥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준비하는 자에게 더 큰 수확을 가져다 준다는 것을 인식시켜 줄 수 있을 것이다. 기왕이면 많은 학생들에게 자극도 주고 미래도 원만하게 열어줄 수 있는 방향으로 운영하는 것이 식견과 경험이 풍부한 선배들이 해 주어야 할 귀중한 선물이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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