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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이라는 것 만큼 사람을 옥죄게 하는 영역은 없으리라 본다. 행동 하나하나 말 한마디 한마디에도 책임이라는 멍에가 뒤집어 씌워지는 순간 자신에게 주어진 운신의 폭은 위축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 책임의 한계가 끝이 없다는 것을 우리는 현재의 삶을 통하여 적나라하게 보고 있는 것이다. 젊은 날 책임을 살짝 뒤로 하고 혈기왕성하게 의욕을 불태웠던 시절을 지나고 나면 일거수일투족마다 자신이 어떻게 책임을 질 것인가가 고민되는 세상으로 들어가게 된다. 남들이 보면 철들었다 할 것이고 자신이 보았을 경우 세상 만만치 않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는 순간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래도 책임의 한계가 약한 어린 시절이나 청소년기가 좋았다는 것이다. 많은 책임을 부모나 사회에 맡기면 되던 시절이었다. 다소 일탈을 자행하였다 하여도 부모님을 담보로 빠져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 현상을 바탕으로 기고만장한 청소년들도 있었겠지만 그런 경험을 바탕으로 함부로 행동하면 안 된다는 것을 몸으로 느끼면서 철드는 계기가 된 사람도 많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네 교육은 너무나 획일적인 방향으로 흘러왔고 또 흘러가고 있다고 본다. 예전 서당이나 서원, 향교 시절에 교육법도 그렇거니와 일제의 잔재 교육법도 그런 방향에서 흘러 왔다고 본다. 선생님이 가르치면 무조건 수용하고 따르는 그야말로 일방식의 교육으로 점철되어 졌다고 본다. 물론 이런 교육법도 시대와 사회적 환경에 따라 필요할 때도 있다고 본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갑자기 어떤 인력이 대량으로 필요했을 경우 신속하게 필요인력을 양성하여 산업현장에 내 보내는 경우인 것이다. 우리 모교 같은 경우 이런 패턴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본다. 좋게 표현해서 산업의 역군을 만드는데 동참한 것이고 그렇지 않은 표현으로는 기계적인 인간을 만드는데 일조했다고 보면 될 것이다.
획일적인 교육의 가장 큰 맹점은 좌우를 돌아볼 기회를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더 극단적으로 표현한다면 외통수를 만드는 교육인 것이다. 단순반복노동을 하는 경우는 외통수가 그럴싸할 수 도 있을 것이다. 게다가 외통수를 만들어 놓으면 불평불만이라던가. 비판의 기능이 떨어진다고 생각한 나머지 교육 기득권층들이 더 선호했는지도 모른다. 국민이 똑똑하면 자신들을 비판하는 세력으로 떠오르는 것이 마뜩찮게 보였을는지도 모른다. 거기에다 교련교육 등을 통한 세뇌교육까지 자행했던 시절도 있었다. 이런 교육체계에서 미래지향적이고 창의적이면서 합리적 판단을 하는 사람들이 양성된다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했을는지 모른다.
지금도 교육 기득권층들은 획일적 교육, 주입식 교육에 혈안이 돼 있다고 본다. 대표적인 케인스가 대입수능이 아닐까 생각된다. 이 제도는 많은 학생들이 소수의 대학을 들어가기 위한 전초 테스트의 형태로 도입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것이 변질되어 국가 공권력에 의한 교육의 독점으로 가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국가에서 교육을 통제하고 싶은 마음은 충분히 헤아릴 수 있으나 우리의 교육계도 이제는 앞 뒤를 판단할 정도로 성숙되었다고 본다. 굳이 국가에서 이래라 저래라 하지 않아도 알아서 판다하고 행동할 수 있는 처지에 와 있다고 본다. 물론 국가에서 보았을 때 교육현장에 미덥지 못한 부분도 많이 보이리라 생각된다. 그런 것은 지도 감독을 통하여 바른 길로 갈 수 있도록 하면 될 것이다.
일전에 모 방송국에서 베트남 여성의 한국 시집살이를 방영했던 적이 있었다. 거기서 인상 깊게 보았던 장면 중에 하나가 그 아주머니가 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을 한 후 학교생활을 하는 장면을 보여주었다. 처음에는 학부모로 학교에 온 줄 알았는데 에듀버스(강원도교육청에서는 스쿨버스를 이렇게 부름)를 타고 학교에 내린 후 학급으로 들어가서 공부를 하는 장면이었다. 1학년 학생과 똑 같이 받아쓰기도 하고 산수 문제도 푸는 식으로 공부를 하였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일은 어떤 교육이 교육수요자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인가를 제시해 주는 장면이었다. 다문화 가정에 교육은 일상생활이나 교양과 관련된 프로그램을 지자체나 사회단체에서 제공해 주는데 이런 교육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있었다. 다름 아닌 그 베트남 여성의 시아버지 되는 사람이었다. 그는 방송에서 “많은 다문화 교육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가치 있다고 판단하는 것은 우리나라 정규교육 과정을 밟아서 체계적으로 공부하는 것이다.”라고 이야기 하였다. 그래도 우리나라 정규 교육과정에 대해서 신뢰성을 보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우리가 생각하는 학교라 무엇인가에 대해서 단적으로 표현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본다. 어떤 사람은 바람직한 인간을 만들기 위한 터전이라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또 어떤 사람은 자신들의 부족한 지적 정서적 영역을 보완해 주는 곳으로 인식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또 어떤 사람은 학벌이라는 간판을 따러 가는 곳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을 통합적으로 엮어보면 수요자의 인생에 뭔가 긍정적인 보탬을 주는 곳이라 보면 될 것이다. 이것을 뒤집어 말하면 학교는 학생들의 미래를 일정부분 책임져 주는 곳이라 생각할 수 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학교란 곳이 지식을 전달해 주는 공간으로 인식되어져 왔다. 학교에 가서 뭔가 배우면 그것으로 만족을 하였다. 과거에는 배울 수 있는 도구가 학교 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학교란 곳은 배움에 있어서는 성지나 마찬가지였다고 본다. 세상이 바뀌면서 배울 수 있는 영역은 너무나 많이 열려 있다고 본다. 선생보다 더 잘 아는 부모로부터 A급 선생의 명 강의가 펼쳐지는 텔레비전, 인터넷에서 떠돌아다니는 명강의, 무엇이던 물어 보면 척척 대답을 해 주는 인터넷 등이 우리 주변을 맴돌고 있는 것이다. 굳이 학교에 가지 않아도 배울 수 있는 기회는 넘치고 넘치는 세상인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청소년들은 학교로 학교로 가고 있다.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배움만 목적으로 한다면 굳이 그곳으로 가지 않아도 목적달성을 할 수 있는 데도 불구하고 학교로 간다는 것은 뭔가 숨은 매력이 있다는 것이다. 학교 선생님의 강의가 텔레비전에 명강사만 못해도 학교로 가서 선생님의 말씀을 듣는다는 것이다. 물론 학교의 역할이 사회에서 이루어지는 간헐적인 교육이 아닌 체계적이고 제도적인 교육인 만큼 신뢰성과 공신력 그리고 자타가 인정해 주는 공인 교육기관이기 때문일 것이라 본다.
과거에는 어느 학교던 학교에만 나오면 대접을 받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학교에 안 나온 사람이 없을 정도이고 보면 졸업했다는 그 자체만으로는 이 사회에서 능력을 펼치기가 쉽지 않은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능력이 하루아침에 나오지 않는 다는 것이다. 물론 스스로 자신의 능력을 인지하고 그 방향으로 수련을 하여 많은 사람들의 찬사를 받으면서 살아가는 사람도 있겠지만 보통의 사람들은 자신의 천부적인 능력이 무엇인지 잘 모르고 살아간다는 것이다. 인간은 누구에게나 한두 가지 이상의 남다른 재능이나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 학교라는 곳은 다양한 학문을 통하여 학생들이 이해하고 적용할 수 있도록 지도해 주는 곳이라 본다. 인간은 능력이나 시간의 한계가 있는 관계로 모든 것을 다 잘 할 수 는 없으리라 본다. 내가 가지고 있는 능력을 십분 발휘하고 또 다른 사람은 다른 세계의 능력을 발휘하여 그것이 조직화 되어 조그마한 사회가 되고 그 사회가 발전하여 국가가 된다고 본다. 그렇다면 국민의 구성원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천부적인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바탕을 국가가 만들어 주어야 하고 그것을 대행해 주는 기관이 학교라 본다.
학교는 학생들의 미래를 일정부분 책임져줘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띤 기관이라 본다. 오는 학생들에게 적당히 시간이나 때우고 졸업장이나 주는 그런 곳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과거에 학교가 희귀했던 시절에는 학교에만 나오면 대접을 받던 시절도 있었다. 이제는 학교에 나왔다고 모든 것이 해결되는 시대는 아닌 것 같다. 학교에 나와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을 때 학교도 빛나고 자신도 빛나는 것이다. 학교는 학교 나름대로 교육수요자들의 능력을 키워줄 수 있는 방향으로 교육의 틀을 바꿔야 할 것이고 교육수요자는 자기주도적 인생을 살기 위해서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과거처럼 일방적으로 가르치고 배우는 방식으로는 미래의 세계를 열어갈 인재 양성에는 한계가 있으리라 본다. 교육자와 교육수요자가 서로 상대방의 미래가치를 상승시켜 주기 위해서 머리를 짜내야 할 것이다. 학교가 좀 더 능동적으로 변하지 않고서는 미래지향적인 인재를 양성하기가 곤란하리라 본다. 이렇게 변하는 동인으로 책임이라는 것을 좀 더 부각시키는 것도 나쁘지는 않으리라 본다. 멀고도 가까운 미래의 우리 인재를 양성한다는 측면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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