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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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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감자
타 지역 출신들이 강원도를 연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감자라 한다. 마치 우리가 제주도를 연상하면 하면 돌, 바람, 여자가 떠오르는 것 과 같이 강원도의 상징물이 된 것 같다. 어찌 보면 강원도를 비하하는 이야기로 들릴지는 모르지만 감자를 먹지 않고 행복한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용이치 않으리라 본다. 자기들은 감자를 맛있게 먹으면서 강원도를 비하하는 생각을 가지는 것 자체가 넌센스인지도 모른다. 감자의 가치를 더 키울 수 있는 역량을 가지는 것이 강원도를 더 강원도 답게 만드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왜 강원도 감자가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락내리락 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궁금증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감자는 성질 상 따뜻한 곳 보다는 서늘한 곳을 좋아하는 작물이다. 봄철에 싱싱하게 잘 자라던 감자도 하지를 지나고 나면 맥없이 주저 않는 모습을 종종 볼 것이다. 따뜻한 남쪽에서는 더위가 빨리 찾아오기에 미처 알이 굵기도 전에 망가지게 됨으로서 재배를 하고 싶어도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는 것이다. 반면 강원도는 여름철에 상대적으로 덜 더움으로 인하여 알이 굵고 충실하게 여물 수 있는 여건이 갖추어졌다는 것이다.
또 한 가지는 강원도의 특성이 산악지역으로 이루어졌음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벼농사를 짓기에는 부적합한 환경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밭농사로 치중할 수 밖에 없는 구조로 되어있다. 감자는 타 작물보다 재배기간이 짧고 수확량이 상대적으로 많은 작물로 알려지고 있다. 재배과정에서도 많은 비료나 노동이 가해지지 않아도 비교적 잘 되는 작물인 동시에 비탈같은 돌밭에서도 수확을 할 수 있는 몇몇 안 되는 작물 중에 하나라는 것이다. 또한 보릿고개가 있던 시절 그 고개를 넘겨줄 수 있는 유일한 작물이 감자였던 것이다. 어찌 보면 강원도 사람들의 명줄을 쥐고 있었던 작물이 감자가 아닐까 싶다.
감자는 실제적으로 동양의 작물은 아닌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남미의 페루 등 잉카문명을 일으키게 한 작물 중 하나였다고 한다. 이것이 중국을 통해서 우리나라에 전파가 된 것으로 기록된 것 같다. 원산지로만 보았을 때에는 그래도 물 건너 온 귀한 작물인데 강원도의 감자처럼 비하의 대상이 되지 말아야 하는데 그 가치가 전도된 것 같아서 아쉬운 점도 없지 않은 것 같다. 어찌하였던 저 멀리 남미에서 날아온 이 감자가 강원도에서 많은 사랑을 받고 있으면서 마치 감자의 원산지가 강원도인양 비쳐지는 모습도 눈여겨 볼 대목이라 본다.
감자는 영양학상으로 무기질과 탄수화물이 적절히 섞여 있으면서 인간의 건강생활을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한다. 서양에서도 감자를 통하여 만들어지는 음식도 엄청나게 많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우리가 서양음식을 먹으러 가면 감자를 원료로 한 요리가 한두 가지 정도는 나오는 것으로 알고 있다. 허구 많은 음식을 마다하고 감자가 요리에 중심에 떠오르는 것은 그 나름대로 이유가 있으리라 본다. 다른 음식재료에 비하여 담백하고 소화기에 부담도 덜함으로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음식으로 알려지고 있다.
감자만큼 변신의 폭이 넓은 것도 없으리라 본다. 세상에서 가장 간편한 요리가 라면 끓여 먹은 일이라 생각할는지 모르지만 그 보다 더 간단한 요리가 피감자 삶아먹기가 아닐까 생각된다. 지금은 인스턴트 식품이 워낙 많이 나옴으로 인해서 삶고 지지고 볶지 않아도 먹을 수 있는 것들이 너무 많은 세상에 와 있다. 하지만 과거에는 지금처럼 즉석식품 문화가 발달하지 않았던 관계로 몇 단계의 조리 과정을 거쳐야 먹을 수 있는 세상이었다. 그 와중에 가장 간단하게 요기를 때울 수 있었던 것 중에 하나가 피감자 삶아먹기가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물론 요즘 젊은 세대가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웃기지도 않은 일로 치부될 도 있으리라 보지만 몇 십 년 전에는 지금의 음식 일상사와 같은 일이 있었다는 것이다.
요리를 통하여 감자를 변신시키기 위해서 처음 해야 할 일은 감자 껍질 벗기는 일일 것이다. 하지 무렵 감자를 첸센(처음 수확하여 맛보는 의례 행사의 사투리)할 때에는 감자 껍질이 엄청나게 야들야들 하기에 손으로 조금만 문질러도 껍질이 벗겨 질 정도이다. 이것이 좀 더 시간이 지나면 놋숟가락이나 칼을 가지고 깎아야 하는 단계로 가게 된다. 감자를 깎는 품도 만만찮다는 것이다. 필자도 어렸을 때 감자를 무진장 깎았던 기억이 난다. 우리 집에는 어머니 외에 여자라고 없었다. 게다가 장남이 되다보니 자연스럽게 감자 깎는 일이 내게로 떨어진 것이다. 지금처럼 농사가 잘 되어서 감자의 굵기가 굵다면 몇 개 안 깎아도 집안사람들이 먹을 수 있었겠지만 예전에는 콩알보다 조금 더 큰 감자를 깎아야 하는 관계로 노동이 보통 많이 들어가는 게 아니었다. 그리고 작은 감자의 가식부를 좀 더 많이 남기기 위해서는 최대한 껍질을 얇게 깎아야 하는데 이 또한 쉬운 일은 아니었다고 본다. 그래서 나온 것이 숟가락으로 껍질을 긁는 방법이었다. 이 방법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껍질 자체가 얇아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쉽지 않은 방법 중에 하나였다. 그리고 감자 눈이 쑥 들어간 경우에는 긁기가 더더욱 어려웠다는 것이다.
필자가 어렸을 때 먹었던 감자의 품종은 주로 남작이었다. 당시에는 품종의 개념이고 뭐고 없었기에 감자하면 남작으로 인식되던 시절이었고 지금처럼 다양한 품종이 나오지도 않았던 시절이었다. 이 품종의 특징은 분질성이 강하여 쪄 놓으면 껍질이 쪼개지면서 분이 나올 정도로 팍삭한 느낌을 주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한국 사람들이 좋아하는 맛 중에 밀컹밀컹 한 것 보다 팍삭한 것을 좋아하는 경향이 있었는지라 이 품종이 오랫동안 사랑을 받았는지도 모른다. 아니 새로운 품종을 개발할 능력이나 쥐변머리가 없었다고 하면 더 정확한 표현일는지도 모른다. 지금을 육종기술이 발달하면서 적재적소의 요리에 필요한 감자의 품종이 즐비하게 나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심지어 컬러 감자까지 작출되어 인간의 오감을 자극하는 세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감자하면 필자의 머릿속에 오랫동안 남는 추억이 있다. 감자는 더위에 약함으로 하지가 지나고 땡볕이 며칠만 쐬다가 장마철만 거치면 영락없이 썩기 시작한다. 만약 여름철에 감자가 썩지 않는다면 이 보다 더 좋은 식품은 없을 터인데 이런 맹점이 인간의 가슴을 아프게 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농사를 잘 지어도 장마가 끝나고 불볕더위가 시작되면 시름시름 시들기 시작하다가 어느 날 죄다 문들어져 버린다. 지상부만 망가지면 덜 가슴이 아플터이나 지하부인 괴경도 동시에 망가진다는 것이다. 어떻게 지은 농사인데 밭에서 감자 알이 썩어 문들어 진다는 것은 용납을 하기 어려운 일이었다고 본다. 하지만 자연이 하는 일이라 어디 가서 하소연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라 본다.
이런 감자의 고약한 속성을 역으로 이용한 것이 썩은 감자를 이용하여 녹말을 추출하는 방법이었다. 한 여름 땡볕에 감자를 수확하여 헛간에 쌓아 두기가 바쁘게 썩은 감자가 나오게 된다. 게으른 농부집에 가면 썩은 감자냄새가 슬슬 풍기기 시작하는 것은 다반사였다. 그렇다고 그 감자를 버리기에는 너무 아까운지라 새로운 방법을 터득한 것이 그런 감자만 모아서 일부러 썩히는 것이다. 당시에 비료푸대는 감자를 썩히는데 최고의 도구로 활용되었었다. 물론 그런 비닐쪼가리가 나오기 전에는 옹기로 된 항아리에 담가서 썩였던 적도 있었다. 손끝이 야무진 부인네들은 썩은 감자를 잘 골라서 씻은 다음 조제를 하는 터에 만든 감자가루도 한 층 더 깔끔하게 보이는데 대충대충의 부인들은 흙을 제대로 털지도 않고 조제를 하는 바람에 만들어진 감자가루의 녹말이 한층 더 거무티티하게 보였던 기억도 난다.
어찌하였던 하지가 지나고 장마를 맞이하면서 시골에는 누구나 다 감자를 썩히는 일에 매진했다고 보면 될 것이다. 동네 입구를 들어가자마자 풍기는 냄새는 생각보다 훨씬 진했을 것이다. 당시에는 시골에 모든 사람들의 여름날 일상사였음으로 그 자체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요즘에 감자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그런 방식으로 썩감자 가루를 조제한다면 비위생적이라고 핀잔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지만 당시의 풍경은 지극히 일상적이고 자연스러운 현상이었을 것이다. 지금 그런 방식으로 감자가루를 내서 음식을 만들어 먹는다고 했을 때 젊은 사람들이 수긍을 할 수 있을 는 지도 모른다.
실제로 감자를 정성껏 씻어서 잘 썩혀서 만든 감자녹말로 만들어 놓은 감자떡은 진짜로 맛이 각별하였다. 그렇지 않게 조제한 감자떡은 모래 같은 것이 어그적거리는 느낌이 나는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감자떡의 쫀득쫀득한 맛도 정성을 기우려 만든 녹말가루가 훨씬 더 강했던 느낌도 들어갔다. 예나 지금이나 음식에는 정성이라는 맛을 무시하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준 실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썩감자 떡의 가장 큰 특징은 만들어서 빨리 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식은 감자떡은 딱딱할뿐더러 맛도 한 참 떨어진다는 것이다. 요즘에 공장에서 나오는 감자떡은 아무리 식어도 말랑말랑한게 제 맛이 나는데 예전에 감자 떡에서는 왜 지금과 같은 맛이 안 나오는지 이해를 하기가 조금은 곤란하다.
경험보다 더 아름다운 추억은 없는 것 같다. 요즘에 커 나가는 아이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면 어떤 반응이 나올 것인가 궁금하다. 아니 반응조차 나오지 않으리라 본다. 전혀 실감이 나지 않을 터이니까. 역으로 지금에 태어난 아이들이 나중에 어떤 추억을 간직할 것인가에 대해서 상상을 해 보자. 같은 감자지만 거기서 나올 수 있는 추억이 얼마나 있을 것인가. 설마 어렸을 때 포테이토칩을 먹었던 것이 기억에 남을 리는 없을 것이고 보면 풍요로움 속에 추억의 기근이 일어날 수 도 있을 것이다. 해서 세상사는 풍요롭고 안락하다고 해서 다 좋은 것은 아니라 본다. 아무 일도 하지 않고 편하게 살은 사람은 추억이라는 것이 그만큼 빈약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오늘에 힘듦 자체가 나중에 훌륭한 추억으로 남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골병이 들 정도로 힘든 일은 노후에 추억보다 후유증으로 고생을 할 수 도 있을 터이니 각별히 유념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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