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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에 학습판을 없애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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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조규전 작성일 2018-02-25 08:01 댓글 0건 조회 746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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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실에 학습판을 없애버렸습니다.


   만드는 것이  어려울까요, 만든 것을 없애는 것이 더 어려울까요. 우리의 역사는 만듦과 없앰의 연속에서 이루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다른 나라의 역사를 볼 필요도 없다. 우리는 유사이래. 좁은 한반도를 중심으로 많은 나라들이 만들어졌다가 없어졌다가를 반복한 끝에 지금에 남한과 북한으로 양분된 가운데 존재하는 것이다. 이런 국면이 언제까지 갈는지는 모르지만 이 또한 언젠가는 새롭게 재 정립되리라 본다. 없어지던 사라지던 아니면 더 커지던 간에 변화가 올 것이라는 것은 과거의 역사를 유추해 보면 금세 답이 나오리라 본다.

 

   세상에 존재하는 유 무형의 존재가치는 만듦과 없앰의 연속이었다고 본다. 조물주가 이 세상을 만들었다고 가정을 했을 시 이로 인하여 우리가 있다고 본다. 인간도 어떻게 만들어 졌는지는 모르지만 만듦이 있었다는 것은 없음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일상사도 마찬가지라 본다. 끊임없이 만들어지는 것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이면에는 알음알음 없어지는 것도 무수히 많다고 본다. 자연현상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은 그냥 자연이라 하면 될 것이다. 거기에 반해 인간이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진 부분이라면 언젠가는 없어질 수 도 있다는 것이다.

 

범위를 좁혀서 우리의 학교환경을 보자. 학교에 가장 기본이 되는 영역은 교실이라 본다. 그 교실을 중심으로 운동장도 있고 실험실습실도 있고 체육관도 있고 주차장도 있고 정원도 있다. 이렇게 큼직큼직 한 시설이나 공간 안에 또 세세한 영역이 자리를 잡고 있는 구조로 되어 있다. 교실을 예로 든다면 그 안에 학생들의 교육을 위하여 있어야할 다양한 도구나 환경이 있을 것이다. 이런 것은 학생들의 교육을 중심으로 필요성이 큰 것부터 구비가 될 것이다.

 

   우리의 교실 환경 문화는 일본식 교실환경과 많이 닮았다고 한다. 과거 우리나라 교육기관이었던 서당 스타일로 한다면 우리 것으로 정착이 되었겠지만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교육환경은 거의 일본 스타일로 변모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일본식의 교육은 우리나라의 교육을 발전시켜 한국 사람들이 자주적으로 미래를 열어갈 수 있는 인재를 키우기 위한 것에 초점을 맞추지는 않았을 것이다. 오로지 자기들의 입맛에 맞는 교육을 시켜 철저하게 황국신민으로 만드는데 혈안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교실환경도 자연스럽게 학생들의 정서와 창의성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억압과 통제 그리고 자신들의 교육이념을 한국학생들에게 세뇌시키는 방향으로 환경을 만들었을 것이다.

 

   그런 교실 문화가 지금까지 우리나라 교실 안에는 깊숙이 배어 있다. 학교를 떠난 지 오래된 사람도 학교라 하면 떠오르는 장면이 있을 것이다. 학교란 건물 자체는 군부대 건물처럼 거의 획일화 되어 있다. 실제로 철원이나 파주, 연천, 김화 같은 곳을 다니다 보면

산 중턱에 학교와 비슷한 건물들을 많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곳에 있는 획일화 된 건물의 상당수는 군부대 건물이라 보면 될 것이다. 최근에 지어지는 학교 건물은 그래도 디자인도 좀 가미된 것 같고 컬로도 좀 집어넣어서 군부대 같은 이미지는 엷어지는 것 같은데 과거의 건물들은 하나 같이 학교 스타일로 지어진 모습을 볼 수 있다. 그 안에 교실 환경을 살펴보자.

 

   칠판 위에 태극기 액자가 걸려 있고 그 좌우에 급훈과 교훈이 걸려있다. 십 년 전이나 이십년 전이나 현재나 똑 같은 상황이다. 칠판은 그래도 현대식의 화이트보드로 바뀌어 지고 있는 것 같다. 예전과 달라진 것이 있다면 프레젠테이션을 하기 위한 빔프로젝트와 스크린이 매 달려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교단과 교탁이 덩그런히 존재하면서 그 앞쪽으로 학생들의 책상이 열과 오를 맞추어 정렬되어 있다. 늘 상 보아 오는 사람은 모르지만 창의성과 감성교육을 통하여 다양한 미래의 세계를 열어주어야 할 학생들에게 이렇게 경직된 환경에서 제대로 교육이 될 수 있을는지 의문시 된다는 것이다. 교실 뒷벽은 커다란 학습판이 걸려 있다.

 

이 학습판을 채우는 기법도 예전에는 엄격하게 정해 주었다. 시사란, 학습란, 전달란 등 정확한 목적하에 꾸며 지게끔 지시가 내려왔다. 실제로 담임을 해 보면 그 학습판을 채우는 것도 큰 일감 중에 하나였다. 어떤 시기에는 환경정리 비용을 학급당 얼마씩 배정한 후 문구사에서 환경정리 물품을 가져다 학습판을 꾸몄던 시절도 있었다. 이렇게 획일적인 교육도 시대에 따라서는 필요했으리라 본다. 모든 학생들이 한 방향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최선인 시대도 있었다. 소위말해서 권위주의와 억압과 통제가 최선이었던 시절에 문화인 것이다. 일제 강점기와 군사문화, 유신시절을 거치면서 교육환경은 그야말로 통제와 억압의 본산으로 역할을 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학습판도 그런 시절에는 철저하게 통제를 하면서 그들의 입맛에 맞는 교육의 도구로 활용되었다는 것이다.

 

   세월이 가고 시대가 바뀌어도 학급환경은 아직까지 전 근대적인 모습에서 헤어 나오지 못함을 볼 수 있다. 하도 강압적으로 많이 당해서 그런지 모르지만 공문으로 시행이 안 되는 일은 학교에서 스스로 변화할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젊은 교직원들도 이런 모습을 보고 답답해 할 것 같은데도 불구하고 아무런 불편함도 호소하지 않는 것을 보았을 때 내가 잘못 생각하고 판단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교실환경이야 말로 집으로 말하면 안방이나 마찬가지 인 것이다. 그 안방은 가족 구성원에게 가장 적절한 환경을 꾸며 가면서 살아갈 것이다. 교실도 미래를 이끌어갈 학생들에게 최적화가 되어 있는 환경으로 맞추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칠판 맞은편 벽에 붙어 있는 학습판의 용도가 무엇인가에 대해서 재조명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과거처럼 경직된 시절에서야 위에서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할 수 밖에 없었지만 지금은 그런 시대에서 조금은 벗어났다고 본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엘리트 집단이 교사라 말하고 있는데 그렇게 높은 식견을 가진 집단에서 과거의 관습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은 결국 가르치는 아이들에게도 그런 영향을 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아니 선생님들이 그런 환경에서 배웠기 때문에 그 이상에서 생각해 볼 겨를이 없다는 것도 인정은 한다. 우리나라 교육이 얼마나 억압적이고 강압적인지는 선생님들의 생각이나 행동을 보면 알 정도이다. 변하고 싶어도 변할 수 없는 환경이 교육현장에서 자행된다는 것이다. 벼룩도 점프를 하는 공간에 유리창을 뒤집어 씌어 놓으면 밖에 내 놓아도 그 한계 이상 뛰지 않는 다는 학설도 있다. 우리는 그래도 벼룩보다야 낫지 않은가. 교실 뒤에 붙은 학습판이 미래를 열어가는 학생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방향으로 재탄생되는 길도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우리는 교실 뒤 학습판이 없으면 교실이 아닌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고 본다. 선생님들 사회에서도 학습판을 없앤다고 하면 교실 자체에 큰 구멍이나 난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으리라 본다. 그리고는 먹고 할 일이 없으니 이런 생각을 하면서 엉뚱하게 학습판이나 없앨 궁리를 한다고 핀잔을 줄 수 도 있으리라 본다. 필자가 지금까지 보아 온 학습판은 교육과 거리가 가까운 것이 아니라 하나의 애물단지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물론 학습판을 아기자기하게 잘 운용하여 진정으로 교육에 보탬이 되게 활용하는 경우도 무진장 많이 보았다. 하지만 대다수의 학습판은 봄철에 한 번 붙여 놓으면 겨울철이 끝날 때 까지 그대로 붙여 있는 경우가 비일비재 했다.

 

   그리고 학습 판을 꾸밀 때 입체적으로 구성하고자 스티로포품 비슷한 재질을 활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학습판은 1년에 한 번씩 반드시 교체되게끔 되어 있다. 과거에는 초록색의 융단 비슷한 재질로 바탕을 깔아 주었다. 여기에다 강력본드를 붙여서 스티로품 재질을 붙여 놓은 경우 다음해 걷어 내고 새롭게 단장을 하고 싶어도 본드 자국 때문에 작업을 할 수 없는 처지에 이르게 된다. 그렇다고 그 넓은 공간에 초록색 융단은 다시 붙인다는 것도 용이한 문제가 아니다 보니 담임을 맡은 사람이 학습판 때문에 겪는 고충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이다. 그리고 학습판을 한 번 교체할 때마다 나오는 악성쓰레기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이다. 온갖 스티로품이 죄다 빠져 나오면서 학교 쓰레기장은 그야말로 쓰레기 더미에 올라가게 된다.

 

   새로 담임을 맡고 나서 가장 골치 아프고 시간을 많이 빼앗기는 부분이 환경정리라 본다. 그렇다고 내 팽개친다는 것도 담임의 도리가 아니고 보면 알게 모르게 학습판으로 인한 담임의 정신적 고통은 만만찮으리라 본다. 그리고 그 학습판을 학생들에게 시켜서 채운다는 것도 용이치 않다고 본다. 학생들에 의해서 만들어진 학습판이 자칫 교사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교육적으로 바람직하지 않게 만들어졌을 경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경우가 생기리라 본다. 또한 교실이 담임과 그 반 학생들만 사용하면 모를 일이나 많은 선생님과 학부모까지도 공개를 해야 할 영역이 되다 보니 더더욱 신경 쓰이는 곳이 학습판이라 본다.

 

   절영지회라고 모두 같으면 문제가 없어질 수 도 있다는 것이다. 학습판도 어느 반은 잘 꾸며 놓고 어느 반은 대충 꾸며 놓았을 때 그 자체가 묵시적인 평가의 대상도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떤 반 담임이 심혈을 기우려 학습판을 잘 꾸며 놓으면 나머지 반 담임들은 잘된 반에 비교의 대상이 되면서 보이지 않는 핀잔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것 자체가 교육적으로 얼마만큼의 가치를 발휘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학습판을 제거할 경우 교실의 뒷벽은 깔끔하게 정리될 것이다. 제대로 관리가 안 되면 있는 것 보다 없는 것이 여러모로 낫다는 판단에 의한 것이다. 요즘 교실은 예전보다 훨씬 많은 교구들이 들어와 있다. 교실에는 오만잡탕의 물건들이 다 들어와 있다. 심지어 어떤 교실에는 머리를 손질하는 드라이기구가 콘센트에 고정적으로 꽃혀있는 경우도 보았다. 사물함을 비롯하여 빔프로젝트, 스크린 등으로 인해 교실환경은 생각보다 훨씬 더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다. 학습판을 제거하고 그 자리를 여백으로 두어 학생이나 교사들이 잠시라도 머리를 식힐 수 있는 공간으로 거듭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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