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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쭐한 운전에 혼줄 난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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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조규전 작성일 2018-04-06 10:19 댓글 0건 조회 73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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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쭐한 운전에 혼줄 난 사건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한다는 이야기가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최근에 한 사건에서 절실히 느꼈다. 개구리가 올챙이 적 생각을 하면서 살아간다는 것은 인간계에서 초심을 잃지 말고 살아 가라는 준엄한 충고임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남의 이야기 정도로 듣는다는 것이다.

 

   인간의 일생은 요람에서부터 출발하여 무덤에 들어가는 순간에 끝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무수히 많은 일을 겪으면서 인생의 직조를 짜게 된다. 천하의 항우 장사도 어린 시절에는 요람 안에서부터 출발한 것이다. 그 시절을 망각하고 힘만으로 살아간다면 그 또한 올챙이 시절을 망각하고 살아가는 대표적인 처사라 볼 것이다. 현재가 아무리 출중하다 하더라도 과거에 자신을 늘 돌아볼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인간이 자신의 과거를 망각하고 기고만장하게 되는 결정적인 이유 중 하나는 승승장구하는 자신의 세계에서 출발하리라 본다. 과거에 꾀죄죄하던 시절도 있었으나 그것은 남의 일처럼 치부하고 현재에 잘난 모습만으로 타인에게 다가가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것이다. 과거를 아는 사람에게 그렇게 거들먹거리면 누가 인정을 제대로 해 줄 것인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 글을 쓰는 이 시점에서 문득 떠 오르는 단어가 우리 모교의 교훈 중 하나인 겸손이다. 물론 이 겸손이 사전적 의미에서의 뜻도 있겠지만 개구리 올챙이적 시절을 생각하면서 살아가야 한다는 준엄한 진리도 내포되어 있지 않나 싶다. 자신이 현재에 아무리 잘 났다 하여도 과거를 생각하면서 타인과의 관계를 만들어 가라는 메시지도 담겨 있다고 본다.

 

   필자가 자동차 핸들을 잡은 지도 어언 30여년이 다 다가온다. 그 전에 오토바이도 몇 년 동안 탔으니까 전동차에 올라앉았던 시절은 상당히 긴 시간을 가졌다는 것이다. 젊은 날에 오토바이는 그야말로 젊음의 상징이었던 시절도 있었다. 시시한 자동차를 타는 것 보다 더 액션과 스릴이 넘쳤던 시절로 기억된다. 자동차를 타면서 사회 통념의 법규를 넘어서 내 스스로 만든 잣대를 들이대고 운전을 하던 시절도 있었다. 당시 수동식 스피드 건에 찍혀서 준조세로 국고에 보태준 금액도 만만치 않았다. 좋게 말하면 혈기왕성하였고 나쁘게 말하면 멋대로 살았던 시절이었다.

 

   자동차 운전을 마치 묘기의 대행진처럼 생각하고 운전했던 시절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젊은 날에 감각이 최고조로 오르던 때였는지라 아무리 험한 운전도 모험심을 보태서 미꾸라지 빠져 나가듯 운전을 하던 시절이 있었다는 것이다. 운전 학원에서 배운 대로 운전한다는 것은 너무 싱거워서 운전의 맛이 안 났던 시절이었다.

 

   나이를 먹으면서 비례하여 낮아지는 것이 인간의 감각이라 했던가? 전에는 잘도 빠져 나갈 수 있는 공간도 이제는 요리재고 저리재야지만 빠져나갈 수 있을 처지가 된 것이다. 좋게 말하면 이 들었다고나 할까? 아니 내 자신의 합리화로 멋 대로에서 법대로로 궤도 수정을 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젊은 날에 혈기왕성했던 습관이 하루아침에 변한다는 것은 용이치 않다는 것을 최근에서야 서서히 느끼고 있다.

 

   지난 주말에 옥계를 갈 일이 있었다. 갈 때에는 좀 바빠서 고속도로를 탔었는데 올 때에는 시간적 여유가 있어서 금진해변을 지나 심곡을 거쳐 정동진을 빠져 나오는 코스로 접어들었다. 마침 주말이라 차량도 많았고 관광객도 창 너머로 많이 보였다. 남들이 들뜨면 내 자신도 덩달아 들뜨는 듯 한 기분도 들어갔다. 안인까지 왔는데 마침 점심시간이 다 되었다. 옆에 탔던 마누라가 점심을 여기서 먹고 가는 것이 어떻겠냐고 주문이 들어 왔기에 그냥 수락을 하고 식당으로 가는 좁은 골목길로 들어섰다.

 

  사고가 날려고 그런지는 모르지만 T자로 난 도로에서 이동식 화물칸이 도로의 일부를 잡아먹고 있었는데 조금 기다렸다 화물칸 차가 다 치워진 다음 빠져 나가도 밥 먹는데 전혀 지장이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차를 디밀게 된다. 필자의 차가 빠지기가 용치치는 않을 정도로 좁았는데 그 화물칸 차 주인이 수신호를 해 주기에 조심스럽게 슬슬 빠져 나가고 있었다. 어느 정도 빠졌다 싶었는데 찍~ 하며 긁히는 소리가 들렸다. 아니나 다를까 필자의 차량 바퀴부분의 보디에 4cm정도 스크래치가 간 것이 선명하게 들어나 있는 게 아닌가? 이런 낭패가 어디 있는가? 그 화물칸 차량 주인과 연락처를 주고 받은 후 점심을 먹으러 가긴 갔지만 여간 김 샌 것이 아니었다. 참고로 필자의 차량은 출고 된지 반년 정도 밖에 안 되는 거의 새 차 수준이다.

 

   우리는 살아있는 과정에서 무수히 많은 일과 봉착하게 된다. 좋은 일이라면 모르겠지만 좋지 않은 일이라면 그 원인을 찾아내서 다시는 그런 일이 발생 안 되게 하는 것이 현명한 인간이라 본다. 필자의 차가 긁히는 사고를 보면서 남 탓을 하는 것 보다 내 자신의 우쭐한 운전습관에 대해서 반성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고가 날 당시 수신호를 해 주었던 화물칸 차주의 콜에 차를 들이 민 내 자신의 판단에도 문제가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필자는 그 정도의 공간에서는 그냥 빠질 줄 알았다. 좁은 공간에도 빠질 수 있다는 돈키호테식의 신념이 발동한 것이다. 막상 긁히고 나니 결국 나와 수신호를 해 주었던 화물칸 차량 주인만 힘들어진 결과를 얻은 것이다.

 

   나이를 먹었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되돌아 보게 하는 하나의 사건이 었다. 젊은 날처럼 감각이 왕성하게 살아있을 것이라는 망상에 사로잡혀 있는 것도 문제일 것이고, 과거 운전면허를 따기 위하여 노심초사했던 그런 운전초년병 시절에 초심을 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이 먹고 젊은 날에 기고만장한 생각을 그대로 현실에 옮기다 보면 이런 고약한 일을 당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나이를 먹을수록 인생의 초년병 시절에 초심을 잃지 말고 살아야 한다는 것을 이번 사건으로 절실히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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