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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가슴 앓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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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가슴 앓이
우리가 태어나서 죽을 때 까지 앓아야 할 병 중에 고약한 것이 가슴앓이가 아닐까 싶다. 가슴은 우리 인체에서 뇌 다음으로 중요한 부분인 것이다. 상징적으로 가슴이 아프면 몸 전체가 아픈 것 보다 더 큰 고통이 따른다는 것이다. 가슴앓이도 힘든데 냉가슴 앓이를 한다면 얼마나 힘들 것인가에 대해서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아프면 신음소리를 내게 된다. 그냥 꾹 참는 것보다 앓는 소리를 하면 그래도 증상이 좀 완화되는 듯 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신음을 낼 정도로 아픈 경험이 없다면 이와 유사한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 앉았다 일어날 때 “아이쿠”라는 말이 저절로 튀어나오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냥 일어나는 것 보다 무의식적으로 그런 이야기를 뱉으면 증상이 훨씬 완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보다 더 큰 이유는 심인적인 면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일종의 동정심 유발과 함께 나의 고통을 타인과 나누고 싶은 충동이 동시에 들어간 결과라 본다. 혼자 끙끙거리는 것 보다는 다 같이 공감하는 환경을 만들어 보고픈 욕망의 발로라 보면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가슴이 아픈 것은 곧 마음이 아프다는 것과도 상통하리라 본다. 심장이 망가져서 아픈 경우는 진정 가슴앓이가 되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서도 가슴이 아픈 경우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내 자신은 물론 나를 둘러싼 나의 지인 중에서 힘든 일을 당하면 왠지 모르게 가슴이 묵직해 오면서 아파지기 시작한다. 병이 있어서 아픈 것이 아니라 마음에 아픔이 곧 가슴으로 전해온다는 것이다. 이런 것이 쌓이면서 나오는 증상이 한숨인 것이다. 한숨이 많다는 것은 심인성의 가슴 아픈 일들이 많이 축적이 되었다는 증표인 것이다. 혹 주변에서 무의식중에 꺼지듯 한숨을 쉬는 사람이 있다면 조용히 물어 보라. 가슴에 무슨 한을 품고 있는지?
자신만이 앓아야 하는 가슴앓이가 있는 반면 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가슴앓이를 하는 경우도 있다. 개개인의 가슴앓이는 그 사람과 그 주변에 사람들에 의해서 독립적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대부분의 가슴앓이는 치료가 어렵다는 것이다. 가슴을 아프게 하는 요소가 없어지면 간단히 끝날 문제이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간단하게 해결될 문제 같으면 가슴앓이의 대상이 되지도 않는 것이 정설일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많은 부분에서 가슴앓이를 하지만 그 중에서 엄청난 사람들이 앓고 있는 가슴앓이가 하나 있다. 그냥 가슴앓이가 아니라 냉가슴 앓이인 것이다. 베이비붐 시대에 태어난 사람들이 거의 공통적으로 앓는 가슴병인 것이다. 당시에 왜 그렇게 많은 아이들이 태어났는지는 모르지만 그 시대에 태어난 사람들은 남들보다 많은 경험을 했을는지 모르지만 거기에 따른 고통도 만만찮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태어날 당시에는 먹을 것이 모자라는 바람에 인간이 겪어야할 가장 원초적인 고통부터 감내를 해야 했다. 산업에 역군으로 뼈 빠지게 일도 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덧 정년을 지나고 은퇴를 할 나이가 된 것이다.
이제는 인생에 큰 일을 하고 쉴 정도의 나이가 된 베이비붐 시대 출신들이 새로운 가슴앓이를 해야 하는 고약한 상황에 처해있다는 것이다. 신조어로 ‘더블 케어’와 ‘트리플 케어’의 터널로 들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케어를 받아도 신통치 않을 나이에 케어를 해 주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는 것이다. 그것도 하나가 아니라 둘 셋이 대기를 하거나 진행 중에 있다는 것이다.
인간의 수명이 길다보니 베이비붐 시대를 열어 주었던 부모들을 봉양해야하는 상황에 처해있다는 것이다. 과거처럼 인간의 수명이 환갑 근처에 걸려있던 시절에는 이런 고민에 빠질 이유가 없었다. 베이비붐 시대에 태어났던 사람들이 옛날 같으면 한창 저승으로 갈 나이인데 의료체계가 발달하면서 아직까지 팔팔하게 산업전선에서 뛰는 사람도 많다는 것이다. 열심히 일 하는 것은 좋은데 이들의 어깨를 짓누르며서 가슴앓이를 해야 할 영역 중에 하나가 부모의 공양이 아닐까 싶다.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에 가보면 어떤 상황으로 전개가 되고 있는지 생생하게 볼 수 있다.
다음으로 베이비 붐 시대에 태어난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것이 자식들이라 본다. 예전 같으면 자식이 고등학교나 대학을 나오면 알아서 밥자리를 찾아가서 독립도 하고 결혼도 했으나 지금의 젊은 사람들은 그것이 용이치 않다보니 그들까지도 케어를 해 주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는 것이다. 취업을 하기에도 쉽지 않고 한다 한들 쥐꼬리만 한 봉급으로 이 험악한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만큼 부모의 입장에서 도움을 안 줄 수 없는 것이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의 투자가 아닐까 하는 의구심도 들어가지만 그렇다고 나 몰라라 할 수 있는 처지도 아닌 것이다.
몇 푼 모아 놓은 재산을 지키기가 너무 어려운 것이다. 노후를 위해서 억지로 모아 놓았지만 긴박한 현실 앞에서는 무너지지 않을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내가 낳은 자식인관계로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는 관념이 현실의 벽을 뛰어넘기 어렵다는 것이다. 모아 놓은 재산이 결국 자식에게로 빠질 수 밖에 없는 구조로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식이 잘 되면 모르겠으나 그렇지 않은 경우 자칫 동반부실로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젊은 사람은 만회할 물리적 시간이라도 있지만 나이 먹은 후 부실은 만회할 틈이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설상가상이라 했던가? 자식을 시집 장가라도 보내놓았다고 책임을 다 한 것은 아니라 본다. 손주라도 나오면 그를 케어하는 것은 바로 베이비붐 시대에 태어난 사람들의 몫이라는 것이다. 내 팔자에 손자 보아주는 것은 없다고 단언을 하겠기만 막상 손주가 나왔는데 봐 줄 사람이 없으면 어찌하겠는가? 심장에 털 나지 않고 내 칠 부모가 있을는지도 의문시 된다는 것이다. 바로 트리플 케어로 들어가야 할 처지에 있는 사람들인 것이다.
트리플케어가 남의 일이 아닌 것이다. 당장은 내 일이 아닐는지 모르지만 인생에 어느 한 타임에는 이 세 가지가 동시에 우리의 삶을 어렵게 하리라 본다. 이미 예견된 가슴앓이 인 것이다. 어디 가서 하소연 할 상황도 아니다. 그렇다고 달리 할 방도가 있는 것도 더더욱 아닌 것이다. 그냥 냉 가슴앓이를 하는 수 밖에 뾰족한 길이 없다는 게 더 가슴을 답답하게 만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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