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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택의 '그 여자네 집'이 떠올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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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연 선배님의 글 '고향 언덕' 등을 즐감하였습니다.
회고적 감성, 유머 감각이 정겹게 느껴집니다.
선배님의 글에서
섬진강 김용택 시인과 박완서의 소설 '그 여자네집'이 떠오릅니다.
김용택의 '그 여자네 집'
가을이면 은행나무 은행잎이 노랗게 물드는 집
해가 저무는 날 먼데서도 내 눈에 가장 먼저 뜨이는 집
생각하면 그리웁고
바라보면 정다웠던 집
어디 갔다가 늦게 집에 가는 밤이면
불빛이, 따뜻한 불빛이 검은 산속에 깜박깜박 살아 있는 집
그 불빛 아래 앉아 수를 놓으며 앉아 있을
그 여자의 까만 머릿결과 어깨를 생각만 해도
손길이 따뜻해져 오는 집
살구꽃이 피는 집
봄이면 살구꽃이 하얗게 피었다가
꽃잎이 하얗게 담 너머까지 날리는 집
살구꽃 떨어지는 살구나무 아래로
물을 길어오는 그 여자 물동이 속에
꽃잎이 떨어지면 꽃잎이 일으킨 물결처럼 가닿고 싶은 집
샛노란 은행잎이 지고 나면
그 여자
아버지와 그 여자
큰오빠가
지붕에 올라가
하루 종일 노랗게 지붕을 이는 집
노란 초가집
어쩌다가 열린 대문 사이로 그 여자네 집 마당이 보이고
그 여자가 마당을 왔다갔다하며
무슨 일이 있는지 무슨 말인가 잘 알아들을 수 없는 말소리와
옷자락이 대문 틈으로 언뜻언뜻 보이면
그 마당에 들어가서 나도 그 일에 참견하고 싶었던 집
마당에 햇살이 노란 집
저녁 연기가 곧게 올라가는 집
뒤안에 감이 붉게 익는 집
참새떼가 지저귀는 집
보리타작, 콩타작 도리깨가 지붕 위로 보이는 집
눈 오는 집
아침 눈이 하얗게 처마끝을 지나
마당에 내리고
그 여자가 몸을 옹숭그리고
아직 쓸지 않은 마당을 지나
뒤안으로 김치를 내러 가다가 "하따, 눈이 참말로 이쁘게도 온다이이" 하며
눈이 가득 내리는 하늘을 바라보다가
싱그러운 이마와 검은 속눈썹에 걸린 눈을 털며
김칫독을 열 때
하얀 눈송이들이 어두운 김칫독 안으로
하얗게 내리는 집
김칫독에 엎드린 그 여자의 등에
하얀 눈송이들이 하얗게 하얗게 내리는 집
내가 함박눈이 되어 내리고 싶은 집
밤을 새워, 몇밤을 새워 눈이 내리고
아무도 오가는 이 없는 늦은 밤
그 여자의 방에서만 따뜻한 불빛이 새어나오면
발자국을 숨기며 그 여자네 집 마당을 지나 그 여자의 방 앞
뜰방에 서서 그 여자의 눈 맞은 신을 보며
머리에, 어깨에 쌓인 눈을 털고
가만가만 내리는 눈송이들도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가만 가만히 그 여자를 부르고 싶은 집
그
여
자
네 집
어느 날인가
그 어느 날인가 못밥을 머리에 이고 가다가 나와 딱 마주쳤을 때
"어머나" 깜짝 놀라며 뚝 멈추어 서서 두 눈을 똥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보며 반가움을 하나도 감추지 않고
환하게, 들판에 고봉으로 담아놓은 쌀밥같이,
화아안하게 하얀 이를 다 드러내며 웃던 그
여자 함박꽃 같던 그
여자
그 여자가 꽃 같은 열아홉살까지 살던 집
우리 동네 바로 윗동네 가운데 고샅 첫집
내가 밖에서 집으로 갈 때
차에서 내리면 제일 먼저 눈길이 가는 집
그 집 앞을 다 지나도록 그 여자 모습이 보이지 않으면
저절로 발걸음이 느려지는 그 여자네 집
지금은 아, 지금은 이 세상에 없는 집
내 마음속에 지어진 집
눈 감으면 살구꽃이 바람에 하얗게 날리는 집
눈 내리고, 아, 눈이, 살구나무 실가지 사이로
목화송이 같은 눈이 사흘이나
내리던 집
그 여자네 집
언제나 그 어느 때나 내 마음이 먼저
가
있던 집
그
여자네
집
생각하면, 생각하면 생.각.을.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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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김석연2님의 댓글
김석연2 작성일
옛날을 회상하면서 그냥 한번 써 봤는데 좋게 평해 주시니 감사할 뿐입니다.
"동문문화예술" 은 어떤 글을 올려야 되는지 또 "자유게시판"은 어떤 글을 올려야 되는지 모호해서
제 나름으로 그냥 올려 봤습니다.추후에 어떤 기준이 있다고 알려주시면 따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김남철님의 댓글
김남철 작성일
너무 상심하지 마옵소서.
고교 국어상 교과서에 여성 소설가 박완서의 소설 '그 여자네집' 속에
이 시의 전편이 실려 있었습니다. 저도 처음 보았을 때 구구절절한 표현에 매료되어
뽕 갔던 기억이 있습니다. 가슴이 먹먹해졌다 할까요?
"그 서늘하고 절절한 그리움을 어쩜 이렇듯 잘 표현했을까?"
선배님의 글 저변에 흐르는 거시기 정서와 유사한 면이 많다 느꼈습니다.
자유게시판과 그것과의 경계 기준이 있는지 저도 모르겠습니다.
문화 예술적 요소나 향기가 1%라도 있다 판단하면 그 쪽 코너 탑재가 가능하지 않을까요?
눈치 보시지 말고 마음 가는 대로 편하신 대로 하소서.
김석연 선배님의 gnngja 게시판 동참 행보를 환영하고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