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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교 교훈, 그대로 두어도 괜찮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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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조규전 작성일 2018-07-27 08:08 댓글 3건 조회 953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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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교 교훈, 그대로 두어도 괜찮은가?


우리 모교는 192871일 현재 강릉여고 자리에서 개교한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개교 당시에는 일본의 침략이 극에 달한 시절이라 우리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그들의 입맛에 맞추어 개교 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우리 모교가 개교 될 쯤 우리 학교뿐만 아니라 전국에 많은 곳에서 농업고등학교란 이름으로 고등학교가 개교가 된 것으로 알고 있다.

강원도의 경우 춘천농고가 우리보다 앞서 개교 되고 이어 강릉농고가 개교 된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당시에 개교된 학교들이 하나같이 농고로 된 것은 일본 사람들의 숨은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인문이나 공업, 상업 등과 같이 개교가 되어야 학문의 밸런스가 맞았을 터인데 주구장창 농업학교만 만들어 놓은 것은 그들의 야욕을 암암리에 보여준 대목이라 본다.

농업학교를 만든 가장 큰 이유는 한국을 식민지화 시키며 식량조달의 전초기지로 사용하겠다는 저의가 깔려있다고도 한다.

그보다 더 무서운 노림수는 한국을 우매한 민족으로 만들기 위하여 인문계통을 아예 도입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농업학교를 세운 이유는 한국민을 인간답게 교육시킨다는 것 보다 자신들의 야욕을 충족시키면서 한국에게는 교육을 시켜주는 것처럼 생색을 내는 차원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우리가 아무런 힘이 없다보니 그들이 시키면 시키는 대로 따라 하는 하수인의 입장에서 접근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지금에 사회현상을 빗대어 말한다면 우리는 철저한 을에 입장에 있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한국에 교육을 통하여 식민사관을 주입시키는 한편 일본인들에게 충성하는 도구로서 학교를 이용했다는 것이다.

교육이 곧 황국시민화는 물론 우민화를 시키는 도구로서 전락되었다고 보면 될 것이다.

이런 잔재는 우리 모교의 역사를 보면 그대로 들어난다고 본다.

 

당시에 교육을 맡았던 사람들은 대부분 일본인들이었다.

실제로 우리 모교의 역대 교장들을 보면 초대부터 일제강점기가 끝날 때 까지 죄다 일본인으로 발령나 있음을 볼 수 있다.

잘은 모르지만 선생의 대부분도  일본인들이었으리라 본다.

개중에 몇몇은 한국인도 끼어 있었으리라 보지만 이들도 속내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겉으로는 일본에 철저하게 동조하는 사람만 뽑아서 채용했으리라 짐작이 간다.

지금도 공무원을 뽑는데 국가관을 찾는 판에 당시 일본사람들은 교육공무원을 뽑는데 그들의 입맛에 맞는 사람을 찾기 위하여 처절하게 사상검정을 했으리라 본다.

어찌 보면 일본인 보다 더 일본스러운 한국인 교사를 뽑았을는지도 모른다.

더 실날하게 표현한다면 뼈까지 사무친 친일분자를 뽑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일제 치하에 일본사람들이 우리에게 자행한 악랄한 행동도 괘씸스럽고 야비하지만 완장을 찼던 한국민들의 만행만 보아도 충분히 짐작이 가리라 본다.

당시에 나라를 팔아먹었던 대표적인 인물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더더욱 실감나리라 본다.

독립운동의 후예들은 아직까지 밥을 굶고 있지만 당시에 친일 행적을 했던 사람들은 호위호식하면서 기득권 자리를 꿰 차고 있는 현실을 보면 금세 알 수 있을 것이다.

1945815일 해방이 되면서 친일분자들이 그대로 우리사회를 이끌어가게 된다.
교육계뿐만 아니라 사회 곳곳에서 친일행위를 하던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기득권을 꿰 차게 되는 구조였던 것이다.

해방은 되었지만 친일주의자들이 청산되지 않음으로서 대놓고 친일행적은 하지 않았겠지만 그들이 배우고 익혔던 영역은 친일 쪽에 가까웠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 교육의 끄나풀이 아직까지 교육계의 요소요소 마다 암암리에 남아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우리 모교의 교훈이라 본다.

강릉농고와 농공고, 강릉중앙고를 졸업한 사람에게 교훈이 무엇이었냐고 물어보면 다음과 같이 대답할 것이다.

勤勉, 誠實, 謙遜이라고.

보기에는 그럴싸한 표현이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근면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고 성실해야 하는 것은 더 당연한 일이라 본다.

거기에다 겸손함까지 갖춘다면 성인의 반열에 올라 갈 것이다.

과연 당시에 일본 선생과 몇몇 안 되는 한국인 선생들이 모여서 그런 좋은 뜻으로 교훈을 만들었을까 생각해 보자.

필자가 너무 비판적으로 생각해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위 세 단어는 한국 학생을 일본의 하수인으로 만들기 위한 교묘한 언어의 유희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단순히 언어만 보았을 때에는 그야말로 그 보다 더 좋은 단어가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그 속에 들어있는 일본인들의 속내를 우리는 알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 모교의 역사가 지난 201871일 개교기념일을 기점으로 90년을 넘기고 있다.

신식 고등학교 교육의 기치를 내 걸고 영동지방에 교육의 효시로 개교한 강릉농업고등학교가 세월에 부침과 풍파에 견디지 못하고 힘들어 하고 있다.

시대에 따라 교명 바꾸기를 밥 먹듯이 하면서도 발전을 커녕 퇴보의 방향으로 걷고 있는 모습이 안타까울 뿐이다.

교명을 바꾸는 것과 같은 미봉책으로 우리 모교를 쇄신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라 본다.

해서 아예 특성화고등학교를 인문계고등학교로 바꾸어 버리자는 충정어린 동문도 많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물론 현실의 벽이 너무 높아서 실현은 안 되고 있지만 염원만큼을 더 크게 남아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모교가 인문계화 될 때는 되더라도 현재 다니고 있는 학생들이 자존감을 가지고 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기반은 조성해 주어야 한다고 본다.

거창한 것을 바꾸는 것도 중요하지만 소소한 부분에서 변화를 추구하는 것도 고려해 보아야 할 것이다.

한꺼번에 큰 물줄기를 바꾸어 버리면 충격이 오지만 서서히 바뀌면 자연스럽게 세상을 새로운 방향으로 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중 하나가 교훈을 시대에 맞게 바꾸어 보자는 것이다.

현재 성실, 근면, 겸손은 좋은 단어이지만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서는 너무 진부한 구호로 전락되었다고 본다.

 

일제 시대에 만들어 졌던 우리 모교 교훈에 숨은 의도는 일본사람들의 속내를 그대로 표현한 것으로 인식된다.

먼저 성실을 보자.

성실은 인간이 살아가는데 매사 성심성의껏 인간의 도리를 다 하자는 의도가 내포된 것으로 알고 있다.

그 속내를 들여야 보면 일본 놈들이 의도하는 세상에 잔소리나 비판을 하지 말고 고분고분 따르라는 의도가 숨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요즘 사람들에게 성실하게 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은 다양한 기득권에 반발하지 말고 조용히 협조를 잘 해 달라는 의도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

막말로 성실하면 어디가도 좋은 사람 정도로 인식은 되리라 본다.

하지만 성실을 가지고 이 세상을 리드할 수 있는지 우리 주변을 살펴보자.

 

다음으로 근면을 살펴보자.

우리의 교훈이 만들어지던 1928년 시절은 일본인들이 한국에 와서 귀중한 문화재의 약탈은 물론 우리나라에서 군대를 비롯한 인력이나 노동력, 식량이나 임산물, 광산물 등을 있는 대로 수탈해 가던 시절이었다.

지금처럼 기계화나 자동화가 안 되었던 시절에 일본인에게 필요한 것은 한국인들의 노동력이었을 것이다.

이 노동력을 받쳐 주는 것이 바로 근면이었던 것이다.

소나 말처럼 주인이 시키면 죽는 줄 모르고 일로서 충성을 하라는 뜻이 내포 되었다고 본다.

실제 근면이란 말은 좋다.

뼈가 빠지게 새벽 별 보고 저녁 달 볼 때까지 일을 하라는 뜻으로 인식될 수 있을 뿐 더러 실제 그렇다고 본다.

칼퇴근을 하는 사람을 근면한 사람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야근을 밥 먹듯 하는 사람을 근면한 사람으로 볼 것인가에 대한 판단의 척도를 보면 금세 알 수 있을 것이다.

개처럼 주인을 위해서 열심히 일하는 사람을 근면한 사람으로 인식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는 것이다.

물론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하는 것도 중요하리라 보지만 그런 것을 가지고 주변에서 근면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자신에 일에 대해서 열성을 다 받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할 터이니까.

 

다음으로 겸손이다.

겸손은 뭔가 있는 사람에게 필요한 덕목이지 쥐뿔도 없는 자에게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것이다.

없는 놈이 겸손하고 싶어도 겸손할 거리가 없는데 거기다가 겸손을 더 하라는 이야기는 비굴하게 살라는 메시지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

 

일제 시대에 겸손은 일본사람들 앞에서는 잔말 말고 무조건 고분고분 해야 한다는 무언의 메시지로 도입되었으리라 본다.

자신의 의사를 다 표현하는 것 보다 자신의 속내를 덜 드러내고 타인에게 우호적이면서 고개를 숙이는 행동을 일본인들은 원했을 것이다.

결국 일본인 입맛에 맞는 인간을 만들어 보고자 했던 의도가 역력히 보이는 대목이다.

이 시대에 우리 모교를 다니거나 졸업한 사람에게 겸손을 외친다는 것은 결국 주변 사람들에게 늘 상 숨 죽여 사라는 이야기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

겸손의 덕목은 기득권층들의 거들먹거리는 행동만 줄어들어도 자연스럽게 우리사회에 정착될 일이라 본다.

 

우리 모교의 교훈인 성실, 근면, 겸손은 언어적인 표현에서는 그럴싸하나 그 속내는 별로 아름답지 못한 추억들이 서려 있다고 본다.

다른 것은 모르겠으나 우리 모교의 교훈만큼은 일제 잔재가 그대로 숨 쉬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사회와 시대가 변했다.

변해도 너무 많이 변하고 빨라도 너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만들 당시에 교훈이 아무리 금과옥조처럼 귀했다 하더라도 이제는 교훈을 손 볼 때가 되었다고 본다.

우리 모교를 다니는 학생들이 뭔가 새로운 세계를 열 수 있는 멋있는 모토와 캐치프레이즈를 만들어 줄 때도 되었으리라 본다.

일본 잔재의 땟국물이 흐르는 우리 모교의 교훈을 바꿀 때도 된 것 같다.

이참에 새롭고 참신하며 누구에게나 감동도 주면서 미래를 열어갈 수 있는 가치 있는 교훈이 탄생되길 기원한다.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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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양님의 댓글

세양 작성일

나의 생각으로는 교훈을 굳이 바꾸어야 할 이유가 없다고 봅니다.
시류에 편슬하여 교훈을 바꾸다 보면 다음에 또 사회가 변하면
교훈을 도 바구어야 할 겁니다. 시류에 따라 교훈을 바꾸는 것은 깊이 검토해 보아야 할
사안으로 사료됩니다.  근면하고 성실하고 겸선하자는 것은 일본잔재도 아닐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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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단파파님의 댓글의 댓글

어단파파 작성일

한마디 거들겠습니다.

역사는 지운다고 없어지는 것이 아니지요.
있는 그대로 두고
후세가 나름 평가해야 한다고 봅니다.
노골적으로 "일본에 충성하자"가
아니라면 말입니다.

그시대 배웠던 분들이 우리를 가르쳤고
그리고 지금은
선생님 같은 분들이 또 가르치고..
온고지신(溫故知新)
그래서 세상은 발전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성형수술도 하다 보면
자꾸 하고 싶은 유혹에 빠진답니다.
우리도 우리 선배들도 기억하는 교훈, 교가,
응원가, 키-케이가 아닙니까.
긍지를 느낍니다.

만약 설문조사를 한다면
저는 분명 반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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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규전님의 댓글

조규전 작성일

날씨도 더운데 너무 무거운 주제를 던져서 많은 동문님들께 심려를 끼쳐 드린 것 같습니다.
시대와 사회는 늘 바뀌고 변동을 한다고 봅니다.
개교 당시에는 금과옥조처럼 보였을는지 모르지만 90여년이 지난 이 시점에서 그 가치가 유효한 것인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때가 됐다고 봅니다.
어찌보면 교명을 바꿀때 교훈도 같이 바꾸어 주는 것이 더 좋지 않았을까 생각했습니다.
간판은 바뀌었는데 바뀐 간판 이전의 취지로 학교를 운영한다는 것에서 조화스럽지 않다는 생각도 들어갑니다.
해병대 정신에 입각해서 한번 해병대면 영원한 해병대라 하면 모르겠으나
우리의 경우 교명변경도 밥먹듯 했는데 교훈만 그대로 둔다는 것은 앞뒤가 별로 맞지 않은 처사가 아닐까 사료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