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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고 출신은 역시 농주가 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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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조규전 작성일 2018-07-25 17:37 댓글 0건 조회 76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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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고 출신은  역시  농주가 최고

 

우리 민족이 반만년의 역사를 가질 수 있는 근간 중에 하나가 막걸리에서 나오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런 역사를 이어준 사례도 최근까지 있었습니다.

지금은 맥주니 소주니, 양주니 하여 많은 술들이 우리의 미각을 자극하고 있지만 얼마전까지만 하여도 한국인의 술은 막걸리었을 겁니다.

 

예전 막걸리를 탁주 공장에서 주전자로 사다가 쓰던 시절에는 재미있는 일화도 많았으리라 봅니다.

주로 나이 드신 분들이 손주 뻘 되는 아이들에게 막걸리를 받아 오라는 심부름을 많이 시켰으리라 연상됩니다.

지금도 막걸리를 오라는 이야기보다는 받아오라는 이야기가 더 친근하게 들리는 것도 이해할 만하죠.

원래 막걸리는 조제를 제대로 하고 나면 알콜 도수가 상당히 높다고 합니다.

그것을 보통 찐뗑이라고 말하는데 그대로 한 사발만 드리키면 금새 맛이 갈 정도로 독하답니다.

그런 막걸리가 유통되는 과정에서 희석되고 또 희석되어 맨 마지막에 먹는 사람은 지금의 맥주처럼 부담 없이 즐겨 먹을 수 있는 도수까지 떨어진답니다.

우선 막걸리 공장에서 만들어진 막걸리 원액을 그대로 판매하지는 않지요.

사람들이 먹기 알맞을 정도로 물을 부어 프라스틱 통에 소포장을 한 뒤 판매를 하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지금의 막걸리 품질을 상당히 균일화 되었다고 봅니디.

 

예전에는 막걸리 공장에서 받아다 썼습니다.

그 용기로 가장 많이 썼던 것이 퉁재였습니다.

물론 그 이전에는 단지 같은 것을 썼을 가능성도 있겠죠.

퉁재에서 다음 단계로 넘어갈 때는 주전자를 썼겠지요.

주전자에 들어가는 막걸리 량을 줄이기 위해서 일부러 우그려 놓은 경우도 있었답니다.

유통업자의 입장에서 조금이라도 적은량을 주면 이문이 그 많큼 많이 남을 것이라는 충정에서 일부로 우그려 트려 놓았다는 설도 있습니다.

 

막걸리 원액을 그대로 먹을 수 없으니까

거기에다 물을 부어서 희석합니다.

그것을 중간 유통업자에게 넘기겠죠.

그러면 그 업자도 좀 띵겨(?) 먹어야 하니까 거기에다 물을 또 부을 것입니다.

점점 알콜 농도가 낮아지겠죠.

지금처럼 정확하게 농도를 측정해 주는 기구가 없었으니 거기에 물을 얼마 탔는지 알 방법이 없었을 겁니다.

그 중간 업자에게 막걸리를 받아 오는 사람도 출출한데 그냥 올 수 없겠지요?

술 좋아하는 사람의 경우 술을 들고 다니지는 못하지만 뱃속에 넣고 다닐 자신은 있다는 이야기가 이때 나왔는지도 모릅니다.

오다가 친구라도 만난다면 심부름이고 뭐고 한 사발씩 들이킬 수 밖에 없었겠죠.

심부름을 시킨 아버지나 할아버지는 아들이나 손주가 막걸리를 받아올 때만 학수고대하고 있는 장면이 눈에 선 합니다.

한 주전자에서 두어 사발 정도 비어있으면 어떻게 할까요?

짱구가 아닌 이상 술 심부름을 간 친구는 야단을 맞지 않기 위해서 중간에 오다가 마신량 만큼 맹물을 채워서 오리라 봅니다.

물론 막걸리 심부름을 시킨 사람도 그 정도는 눈치채겠죠. 짱구가 아닌 이상.

원래 술 좋아 하는 사람들은 술에 대한 감각도 뛰어나기 때문이죠.

결국 최종 소비자는 술의 진 맛 보다는 물 맛에 가까운 막걸리를 들이킬 수 밖에 없는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알콜 도수가 낮다보니 부어라 마셔라 하여도 크게 취하지 않는 것은 뻔 한 일일 것입니다.

그래서 나온 이야기가 말 술을 마셔도 끄떡없다는 것이죠.

지금처럼 균질화 된 막걸리를 말로 마신다면 배겨낼 장사 없을 것입니다.

 

이런 특이한 유통과정 때문에 막걸리 공장의 유명도도 달라질 수 밖에 없는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유통과정이 복잡하고 멀수록 막걸리 맛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하겠지요.

중간에 그만큼 야로가 많이 들어간 만큼 최종적으로 마시는 사람은 맹물같은 막걸리를 마셔야 했을 터이니까요.

예전에 대중주가 막걸리였던 시절에 막걸리 공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부르조아지 계급이었을 겁니다.

지역 최고의 갑부라 보아도 손색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 집에 젊은 총각이나 처녀가 있었으면 금상첨화였겠죠.

 

그리고 그 지역마나 대표성을 띄는 막걸리 공장이 있었습니다.

이름 하여 00막걸리 하면 누구나 수긍하는 품질의 막걸리 공장으로 인식되었다고 봅니다.

우리 지역에도 유명한 막걸리 공장들이 많이 있었지요.

사람이 많이 모여 살던 곳에는 어디고 간에 막걸리 공장 하나쯤은 있었다고 봅니다.

그 막걸리 공장에서 생산되었던 막걸리 만큼 많은 추억도 만들어졌으리라 봅니다.

 

강릉이 커피의 명소가 되었듯

막걸리 분야에서도 전국에서 손꼽히는 도시로 커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그 주역을 "사임당 생 막걸리"가 해 나가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저도 막걸리 마실 기회가 생기면 사임당부터 찾도록 하겠습니다.

요는 사임당도 막걸리를 스스로 담가 먹었는지 궁금합니다.

그런 기록이 있었으면 더 좋은 홍보요소가 될 수 도 있을 것 같습니다.

 

어디에서 본 명칭 중 사임당 지게차이름을 본 것 같습니다.

사임당과 지게차는 아무리 매치를 시켜보아도 답이 안 나오는 것 같은데 그런 이름을 쓰는 것을 보고 상당히 의아했던 기억이 납니다.

기왕이면 격이 높은 사임당이 빚은 느낌이 들 수 있는 막걸리가 탄생되었으면 더 좋겠습니다.

뭐니 뭐니 해도 소비자가 매력을 느낄 수 있는 고 품질의 막걸리를 만드는 것이 기업가의 정신이 아닐까 싶군요.

강릉에 오면 당연히 먹고 가야할 술의 대명사가 사임당 생 막걸리가 되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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