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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천농고 농장 역사가 불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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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조규전 작성일 2018-11-21 09:53 댓글 0건 조회 91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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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천농고 농장 역사가 불타버렸다.

농고의 역사는 농기구가 말해주는가 보다.

홍천농고에는 아직까지 농기구실이 존재한다.

이유는 아직까지 농고이기 때문일 것이다.

예전처럼 삽, 괭이, , 호미가 주종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분무기, 파종기, 관수기, 상토혼합기 등 새로운 농기구들과 함께 예전에 없던 각종 기구나 자재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렇다고 재래식의 농기구가 다 없어졌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여전히 삽도 건재하고 개량괭이나 낫도 비치되어 있다.

 

눈살을 찌푸릴 정도로 혼재 된 농기구실을 아침 식사를 마치자 마자부터 소매를 걷어붙이고 정리에 들어갔다.

딴엔 한 시간 정도 하면 정리가 될 것 같았었는데 막상 손을 대고 나니 정리해야 할 부분이 너무나 많았다.

몇 십 년 전부터 사용하던 각종 농기계, 기구들이 구석구석 들어 박혀 있어서 이것을 빼내고 분류하는데도 적지 않은 시간이 들어갔다.

 

몇 십 년 전에 묻은 먼지와 때국물을 마시면서 정리하고 자리를 옮기고 쓰지 못할 물건들은 밖으로 빼 내는 작업을 하였다.

어느 정도 하고 있는데 학생들이 실험실습을 하러 오기 시작하였다.

시간상으로 출근시간을 넘기고 있었던 것이다.

하다가 중간에 그만 둔다는 것도 마땅찮아서 하던 일을 계속하게 되었다.

실제로 당번 아이들을 시켜도 되는데 워낙 복잡하게 뒤얽혀 있어서 개념 없이 그 일을 한다는 것은 어렵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농구실 정리를 하면서 예전 강릉농공고에 다니던 시절이 불현 듯 떠올랐다.

당시에는 실습을 하기 전에 농구실에서 농구를 배부 받아서 현장으로 가게끔 되어 있었다.

그런데 농구실에는 농구실 당번이 있었다.

1, 2학년 때에는 농장실습을 나갈 때 마다 농구실에 들러서 군기를 잡힌 후 실습에 임했던 기억이 난다.

 

당시에 농구실은 목조로 건축되어 있었는데 학년별로 농구를 넣어 두는 칸이 다 다르게 분리되어 있었다.

거기에다가 농구실 구조가 복도가 있고 양쪽에 농기구를 보관해 놓는 방들이 죽 연결되어 있었다.

지금처럼 시멘트로 바른 바닥이 아니라 그냥 흙바닥이었던 기억이 난다.

당시에 한 반에 사오십 명의 인원이었던 관계로 중간에 땡땡이를 친 학생을 제외한다 하여도 삼사십 명은 농기구를 받으러 갔어야 했다.

가자마자 고참 선배들이 줄을 세워놓고 군기를 잡기 시작한다.

농기구실 중간 복도에 일렬로 세우고 난 다음 갖은 핑계를 대고 기합을 주기 시작한다.

주로 원산폭격이 많았다고 본다.

일렬로 세워놓고 원산폭격을 하는 자세를 취하면 이내 저 끝에서 고참 선배가 발길질을 툭 하면 도미도식으로 주르르 넘어지는 형태의 얼 차례였다.

 

실습 시작 전에 군기를 잡았으면 말미에도 어김없이 군기를 잡는 시간을 갖는다.

당시 선생님들이 농기구 반납 시간을 고려해서 수업시간을 좀 당겨 주었던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실습이 끝나고 농기구실로 반납하러 들어갈라치면 문 입구에서 농기구 당번 선배가 떡 버티고 서 있다.

한 사람 한 사람 반납할 때 마다 삽이나 괭이에 흙이 묻어 있는지 일일이 검사를 하는 방식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깔끔한 학생은 흙 하나 없이 잘 닦아서 반납하지만 그렇지 않은 친구들이 간혹 나오게 돼 있는 법이다.

그럴라치면 영락없이 농기구당번 선배들은 약간 덜 닦힌 농기구를 반납하는 학생을 빙자하여 단체기합에 들어간다.

트집을 잡으려면 무엇이던 걸리지 않겠는가?

실습시간이 끝나면 시작할 때와 똑 같이 원산폭격을 몇 차례 한 다음 교실로 향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실습시간 마다 그런 고초를 겪었던 차이라 응당 가서 원산폭격을 서너 차례 하고 실습장으로 향하고 끝난 다음에도 똑 같은 형태가 반복되는 것이 다반사였다.

지금 생각하니 하나의 추억으로 남았지만 당시에는 별로 아름답지 못한 체벌 중에 하나였다고 인식된다.

얼마나 당시에 엿 같은 기억이었으면 4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생생하게 기억을 하겠는가?

 추억을 남기기 위해서는 행복한 순간보다 엿 같은 순간이 더 효과적이라는 것을 생생하게 입증시켜 줬던 시절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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