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꼬리가 봄 머리에 닿는다는 입춘 절기 속에 맞이한 올 설에도 어김없이 442년 전통을 이어오고 있는 위촌리 도배례가 열렸다. 이같이 아름다운 풍속은 1577년 율곡이 해주 석담에서 유교 덕목과 당시 사회 현실을 결합시켜 만든 지방자치 규약인 `해주향약'에 근거를 두고 있다. 이 규약 가운데 정월 초하루 날 또는 그 이튿날 고을 존자(尊者)를 찾아뵙고 여러 사람이 한 줄로 늘어서서 함께 절하는 `려배(旅拜)' 덕목이 있는데 이 전통이 오늘날까지 전해오는 것이다.
사실 `도배(都拜)'라는 단어는 사전에 나오지 않는다. 아마 `려배' 제도가 후일 `도배'로 정착된 것으로 보인다. 새해 존자를 찾아뵙고 세배를 올리는 풍속은 다른 고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강릉 고을처럼 뚜렷한 근거를 가지고 400여년 넘게 이어 오고 있는 고을은 없어 전국에서 가장 오래된 세배 풍속이다.
역사가 오래된 고을일수록 정체성이 있기 마련이다. 강릉을 문향(文鄕), 예향(禮鄕)이라 부르는 까닭도 글하는 고장 사람들이 효(孝)를 받들고 숭상했기 때문에 외부 사람들로부터 불려 온 강릉의 매김말이다. 1417년 중종 때 영해이씨 4형제가 함께 효자 정려를 받은 것도 역사상 최초이고, 정려각 앞에 붉게 정문을 세운 것도 최초로 `삼강행실'에 보인다. 439년 전 송강 정철은 `관동별곡'을 지으면서 어느 고을에서도 풍속에 관한 언급은 하지 않았는데 오직 경포대에 올라서는 “강릉대도호 풍속이 좋을시고 절효정문이 골골이 버티어 섰네”라 읊었다.
1,800여 년 전 편찬한 `후한서'에 이 지역 사람들의 인성을 평가하기를 “그 고을 사람들은 성품이 순박하고 겸양과 염치를 알았으며, 인륜을 중시했다”고 했다. 이 같은 심성을 바탕으로 글하는 고장 사람들이 효를 으뜸으로 여겼기 때문에 `예향'이라 부른 것이다. 전통이란 `관습 가운데 역사적 배경을 가지며 높은 규범적 의의를 지니고 전해 내려오는 것'이라 정의하고 있다. 위촌리도배례도, 청춘경로회도 역사적 배경을 가진 아름다운 전통이다. 맥이 끊어지지 않도록 후세에 전하는 일이야말로 더없이 소중한 일이다.
옛 것에 토대를 두되 그것을 변화시킬 줄 알고 새것을 만들어 가되 근본을 잃지 않아야 고을이 번창한다고 했다. 쾌쾌 묵었다 구박하는 곳에 오늘이 있을망정 내일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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