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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종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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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불량감자 작성일 2006-02-08 22:48 댓글 0건 조회 1,94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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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
산은 물을 넘지못하고 물은 산을 건너지 못한다
직접 두발로 능선을 밟으며 확인하고싶었다.

대원 들에게 핸드폰 문자를 보냈다.
당초 산행 임시모임에서 23시에 출발 하기로 하였으나 민기적 거리다 늦어질까 우려되어 22시 30분에 출발 할 수 있게 완벽하게 무장하여 강릉대 정문으로 나올것을.......
출발전 장거리 운전에 눈좀붙이고 준비하려 한것이 몇간 대원들에게 노파심에 전화를 넣고 15인승 승합차를 렌트하며 이것저것 챙기다보니 금새 출발할 시간이 당도하였다.
병준대원이 집앞으로와 집사람과 셋이 강릉대에 도착하니 벌써 웅성웅성 대원들이 모여있었다.
잠시후 승권대원을 동승한 영준대원이 도착하면서 백두대간 종주 대원 9명이 집결완료하였다.
인원보다 여유있는 15인승 승합차라 뒷좌석에 배낭을 싣고도 여유있게 강릉대를 빠져나와 꿈에그리던 지리산을 향하였다.(2일 22시 45분)
다른 때 같으면 모두 잠자리에 골아 떨어져있을시간 지리산을 향하는 차내에서는 웃음과 산행에 걱정과 흥분이 섞인 목소리들로 떠들석 하였다.
대관령의 거센바람에 차가 요동치며 구간구간 눈발이 날리는 영동고속도로를 달려 중부고속도로와 만나는 호법에도착(3일 00시 45분) 할 즈음 뒷좌석에 한두명씩 선잠에 빠져들었다.
새벽이라 한적한 도로는 막힘없이 지리산으로 인도하였다.
잠시 눈꺼플이 무거워짐을 느끼며 핸들을 병준대원에게 맡기고 옆좌석에 올랐다.
초행 길이지만 네비게이션이란 넘을 처남에게 빌려온터라 잠시 졸다보니 어느새 중삼리 주차장에 도착하였다.(04시 30분)
매표소앞 전광판에는 05시30분부터 입산을 시킨다고 번쩍였다.
상가의 음식점들은 모두 오밤중이며 매표소 직원도 잠시 눈을 붙인것같아 깨우려니 미안한 생각이 들어 차내에서 담소를 나누던중 한 식당에 사람이 어른거렸다.
재빨리 찾아가 아침을 먹을수 있겠냐니 부시시한 얼굴로 문을 열어주었다.
메뉴를 찾으려 눈알을 돌리자 주인아주머니 왈 시레기 해장국 뿐이란다.
아주머니야 한푼 돈이라도 더 벌려고 문을 열어 주었지만 아들레미야 잠을 깨워놨으니 기분이 좋을리가 있겠냐만은 무뚝뚝하고 불친절스러워 보였다.
아침을 먹는중 서너명씩 세팀정도가 더 들어와 식당이 거의 만석이 되었다.
그도그럴것이 문을 연 식당이 이곳뿐이니 선택의 여지가 없었겠지.
성삼재로 하산후 차량 이동관게로 불친절한 식당총각에게 물어보니 대리운전도 한다는 콜벤명함을 건네주었다.
우리가 오던 대리운전을 시키던 열쇠는 차와 있어야겠기에 열쇠를 식당에 맡기고 장비를 챙기어 매표소앞에서 기념촬영을 한컷 찍었다.
어둠에 잠든 고요한 지리산 자락 넓다란 포장길을따라 헤드라이트를 밝히며 힘차게 발을 딛었다.
어둠속에서 보지못한 것인지 법계사라고 쓰여진 삼거리에서 잠시 대원들은 갈팡질팡했으나 좌측등산로를 따라 올랐다.
잠시후 본격적인 등산로가 시작되면서 일부는 아이젠을 착용하고 일부는 스틱에 의존하여 산죽이 펼쳐진 등산로를 올랐다.
쉬지않고 오르다 여명이 밝아올쯤 잠시 배낭을 네리고 휴식을 취하였다.
다들 아직 쌩쌩하고 기분도 좋아보였다.
잠시 휴식을 취한후 능선에 올라서서 일출을 배경으로 성인대원이 셔터를 눌러댔다.
일출을 뒤로한채 얼마쯤 오르자 로타리 대피소가 우릴 반겼다.
바람을 피해 취사장으로 들어가 간식꺼리를 꺼내어 간단하게 요기를 한후 천왕봉을 향해 다시금 길을 나섰다.
설악산같이 수려하지는 못해도 높은산 깊은골로 이루어진 능선들을 바라보며 암석으로 만들어진 등산로를 얼마나 올랐을까 일출을보고 하산하는 등산객들과 마주칠 수 있었고 저만치 천왕봉이 시선에 들어온다.
가파른 암석 중간중간 대원들의 오르는 모습을 보면서 후미에서 조금처진 영준대원과 같이 마지막 고지를 향해  힘을냈다.
드디어 천왕봉 표지석이 눈에 들어왔다.(10시 30분)
모든산이 우리 대원들의 발아래 있다고 느끼는순간 매서운 칼바람이 두툼한 방한복을 헤집고 몰아친다.
기념촬영을하는둥 마는둥 바람을 피해 본격적인 종주의 길로 들어 서야만했다.
그래도 천왕봉에 올랐는데 하는생각에 혼자 카메라를 꺼내어 몇컷 셔터를 눌렀다.
추위에 손이 떨어져나감을 느끼며 겨우 카메라를 챙기어 배낭을 메는순간 거센바람이 배낭을 때린다.
휘청거리며 직선길로 가려 몇번 시도하였으나 바람은 통채로 날려 버릴기세다.
헐수없이 바람을 피해 우회하여 저만치 앞서가는 대원들을 따랐다.
중삼리 쪽과는 판이하게 능선에는 매서운 눈보라까지 몰아쳤다.
잠시 바위옆에서 눈보라를 피하며 다시금 아이젠을 착용했다.
사진 촬영때 장갑을 벗은 이유로 양손을 아직 떨어져 나갈것 같이 시려웠다.
안면마스크를 착용하고 겨우 눈만 남겨 놓은채 장터목대피소를 향하여 가파른 네리막 눈길을 걸었다.
"제석봉" 
지리산 사진에서 자주 볼수있었던 제석봉 고사목숲을 가로질러 네려가며 잠시 고사목 안내글을 보았다.
고사목은 늙어죽은 고사목이 아니라 비명횡사한 횡사목의 잔해란다.
6.25후까지만 하더라도 아름드리 전나무, 잣나무, 구상나무들이 울창하였던 제석봉은 자유당 말기 당시 농림부 장관의 삼촌되는 자가 권력을 등에 업고서 제석단에 제재소를 차려놓고 거목들을 베어내면서부터 수난을 당했다. 
그러다가 이 도벌사건이 여론화되고 말썽이 나자 증거를 없앨려고 제석봉에 불을 질러 나머지 나무들마저 지금과 같이 횡사시켜 버렸다고한다.
불법적 도발과 이를 은폐하기 위한 인위적인 방화로 지금의 제석봉이 되었다는 얘기다.
인간의 오만함을 생각하며 고사목숲길을 지나자 장터목대피소가 반겼다.
잠시 언 몸을 추스리고 점심취사에 들어갔다.(12시 20분)
식수가 100여미터 아래 있는 관계로  승권대원과 성인대원이 준비한 물통 대여섯개를 들고 물을 길어오는 혹독한 역을 맡았다.
꿀라면 과 산소주를 반주로 점심식사를 마치고 다시금 숙박을 예약한 벽소령대피소를 향했다.(14시 00분)
무거운 배낭탓인지 무릅의 통증이 전해왔다.
갈길이 아직먼데 내심 걱정을하며 연하봉,삼신봉,촛대봉을지나 세석대피소가 눈에들어왔다.
벽소령에 식수가 없다는 등산객들의 조언에 우리는 통이란 통엔 물을 가득채웠다.
저녁,아침 점심까지 취사해야함에 많은물이 필요했다.
벽소령까지는 6.3키로미터 ..........
18시까지 예약대피소에 도착못하면 미리 연락하는는 관리공단홈피의 글을 접한지라 벽소령대피소 관리자에게 전화를 걸어 예약이 이상없음을 확인 시켰다.
식수로인해 한층 무거워진 배낭을 메고 연신봉,칠선봉,덕평봉을 지나면서 대원들은 너나할것없이 다리의 통증을 느끼는것 같았다.
뉘엇뉘엇 해가지면서 어두움이 깔릴 무렵 왼쪽다리를 질질 끌다시피 하여 벽소령대피소에 도착하였다.(18시 00분)
무릅상태가 생각보다 많이 안좋았다.
저녁이고 뭐고 그냥주저앉고 싶었다.
생각보다 지은지 얼마되지 않은 대피소라 깨끗하고 난방도 잘되었다.
취사장과 화장실이 칼바람부는 밖으로 나가야 된다는 사실외엔......
계산을 끝내고 모포를 받아서 배정받은 침상에 올라 다들 잠시 멍하니 천정을 바라보고 누었다.
"에고 이넘에 고생 왜 사서할까?"
아마 다들 이런 생각을 했을께다.
취사를 시작했다
찌개도 끓이고 밥도하고 밑반찬도 꺼내고 산소주도 꺼내고...........
제법 푸짐한 식단이 되었다.
입석이라 빙 둘러서서 추위도 녹일겸 한순배씩 잔을 돌렸다.
설익은 밥이다.
그래도 꿀맛이다.
20시부터 소등이라하여 허둥지둥 짐을 챙기던중 전기가 나갔다.
대충 챙겨들고 침상에 올라 잠을 청하였다.
여기 저기서 피곤에 지친 등산객을의 코걸이와 두런두런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자는둥 마는둥 새벽산행을 위하여 짐꾸리는 어수선한 분위기에 일어나 화장실을 가기위해 침상계단을 네려왔다.
다리가 좀 나아졌을까 하는기대감은 한순간에 무너졌다.
다리며 어깨며 허리며 온몸이 망신창이 되어있었다.
한참을 걱정했다.
아직 자고있는 대원들의 짐이될까 두려워 4시간코스로 바로 하산 해야되나 아니면 9시간걸리는 당초코스를 무리해서라도 가야하나?
하나둘 취사장으로 혹은 배낭을 메고 산행길에 올라 몇 남지않은 침상에서 일단 아침 취사를 준비했다.
영준대원의 취사솜씨가 날로 좋아지는듯 설익음의 도가 조금 낮아졌다. ^^*
점심밥도 지었다.
개인 식수만 챙기고 최대한 배낭을 가볍게 하였다.
다행히 성인대원이 무릅보호대를 쓰란다.
착용하고보니 한결 나은것 같아 완주를 결심하고 신발끈을 조여매고 아이젠을 착용, 완전무장을 하면서 각오를 다졌다.
간단하게 기념촬영을하고 승권대원의 파이팅목소리에 힘을 실어 힘차게 발걸음을 내딛었다.(4일 09시 00분)
포근하던 날씨가 산행에 맞추어 추워져 을씨년 스럽지만 하룻밤에 재충전되어 상쾌하게 아침을 가르며 길을 걸었다.
찔뚝거리며 형제봉을지나 한시간정도 걷자 연하천 대피소가 눈에 들어왔다.(10시 00분)
휴식을 취한터인지 어제와 달리 조금 빠른 속도다.
그곳에서 아침을 먹는 등산객들과 반대방향으로 네려오는 등산객들이 모여 잠시 휴식을 취하였다.
연하천대피소는 식수가 풍족하여 대원들은 양치도하고 병준대원은 머리까지 감았다.
김이 모락모락나던 머리는 일순간 바싹 얼어 붙었지만 추위마져 잊어버린건지.....
아마도 다들 제정신이 아닌듯........ㅋㅋㅋ
잠시 재정비를 한 일행은 토끼봉을 지나 화개재에 도착했다.(12시 30분)
우측으로 새카맣게 계단이 200미터 이어져 있고 그아래 점심장소로 예정된 뱀사골 대피소가 있었다.
목적지로 가자면 더합 400미터를 더 걸어야 했지만 마땅히 취사할곳이 없는지라 눈물을 머금고 뱀사골 대피소로 향했다.
허허~~400미터 평상시는 아무것도 아닌데 갈등을 하다니....
마지막 식사라 있는것 없는것 다 먹어치우고 다들 한결가벼워진 배낭들이다.
허나 내배낭은 취사도구로 여전히 15키로는 족히 되었다.
중삼리 콜벤에 전화를하여 5시경 성삼재로 차량을 이동시켜줄것을 통화했다.
이 치신에 그 시간에 네려가  중삼리까지 이동 한다는것은 분명 무리였다.
화장실에 다녀오니 승권대원이 내 가방을 둘러멘다.(14시 00분)
무릅의 통증 때문에 사양할 용기가 나지않았다.
한결가벼워진 배낭탓에 몸이 하늘로 붕뜨는 느낌마져들었다.
다시 200미터를 올라 화개재에 도착하니 새카맣게 나무계단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전남,전북,경남의 삼도가 연결된 봉우리라는 삼도봉에 올라 이정표를 보니 계단이 거의 1키로미터나 됨을 알았다.
배낭을 바꿔 메지 않았으면 아마도 초죽음이 되었을듯...........
여기서부터는 무릅때문에 대원들과 처질까 두려워 혼자 앞장서서 걸었다.
너무 앞장섰는지 까마득히 대원들이 보인다.
나중에 알고보니 그곳에서부터 노고단까지는 여태 등산로중 오르막 네리막이 없는 가장 무난한 코스였다.
멀리 노고단의 돌탑이 눈에 들어왔다.
드디어 해냈구나.
다들 악조건속에 힘든 산행이였겠지만 무릅의 통증을 이겨내고 목적지에 도착한 기분은 남달랐다.(16시 40분)
노고단 정상은 훼손으로 통제되었고 그아래 대신하여 돌탑을 쌓아 기념촬영을 할수 있게끔 해놓았다.
잠시후 일행들이 환한 웃음으로 일순간에 피로를 씻어내는 정상에 올랐다.
몸은 녹초가 되었어도 그 기분만큼은 견줄데가 없으리라~~~
기념촬영후 약 한시간 거리인 성삼재에 병준대원 승권대원이랑 속보로 네려왔다.
콜벤이 반갑게 우리를 맞이했다.
도로결빙으로 우리 승합차는 올라오지 못해 저만치 네려다보이는 시암재에 있단다.
뒤에 따라오는 일행 여섯을 태우고 오라 일르고 배낭을 콜벤에 맡긴채 시암재를 향해 이십여분 하산하니 렌트한 승합차에 기사가 히터를 틀어 따뜻하게 데피고 우릴를 기다리고있었다.
잠시후 대원을 태운 콜벤이 도착하면서 긴 산행의 종지부를 찍었다.
다시 고속도로를 달려 강릉대에 도착(23시 30분) 렌트한 승합차를 인도한후 해단식을 겸한 저녁식사자리를 춘하추동에서 여러병의 산소주를 비워가며 서로를 격려하고 위로하였다.
보금자리에 도착하자 아이들의 반가움을 뒤로한채 스르륵 눈을 감았다.(5일 01시030분)
아침이면 다시 key-k산악회 산행이 있지않은가?

이 산행기를 쓰면서 벌써 그때 고통은 봄눈 녹듯 사라지고 마음은 또다시 배낭을 꾸린다.
다음 코스를 향해서~~~ 

"한국인의 기상 여기서 발원되다" -천왕봉 표지석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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