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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성용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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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santa100 작성일 2017-03-27 11:31 댓글 0건 조회 2,226회

본문

우성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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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유나이티드 U-15 감독

우성용 (禹成用 / Woo Sung-Yong)

생년월일

1973년 8월 18일

국적

대한민국

출신지

강원도 고성군

포지션

스트라이커

신체 조건

193cm, 78kg

등번호

18번, 22번

프로입단

1996년 부산 대우 로얄즈

소속팀

부산 대우 로얄즈/부산 아이콘스(1996~2002)
포항 스틸러스(2003~2004)
성남 일화 천마(2005~2006)
울산 현대(2007~2008)
인천 유나이티드(2009)

국가대표

14경기 / 4골

코치

인천 유나이티드 2군 코치 (2010~2011)
인천 유나이티드 U-15 감독 (2012~현재)







2001 K리그 베스트 일레븐

FW
우성용

FW
산드로

MF
신태용

MF
서정원

MF
송종국

MF
남기일

DF
우르모브

DF
김현수

DF
김용희

DF
이영표

GK
신의손

2006 K리그 베스트 일레븐

FW
우성용

FW
김은중

MF
김두현

MF
백지훈

MF
이관우

MF
뽀뽀

DF
장학영

DF
마토

DF
최진철

DF
김영철

GK
박호진


 

1. 클럽[편집]

대한민국의 전 축구 선수이자 현 축구 지도자.
2000년대 초중반 K리그를 대표하는 장신 스트라이커로 활약했다. 장신을 이용한 공중볼 다툼에 능해서 얻은 별명이 우공룡.

아주대학교를 거쳐 부산 아이콘스에서 데뷔하였다. 7시즌 동안 꾸준히 부산을 대표하는 공격수로 활약하면서 1997년 전무후무한 팀의 전관왕에도 일조하였다.
다만 이 부분은 부산의 팀 역사를 알지 못하면 오해를 살 수가 있는데, 대우그룹이 건재하던 시절 부산 대우 로얄즈는 리그를 대표하는 명문 팀이었다. 당연히 선수 면면도 화려하기 짝이 없었는데, K리그 최초 영구결번 선수인 아시아의 삼손 김주성(1994~1999), 9경기 연속 공격 포인트 대기록을 세운[1] 마니치(1996~2002), 반지의 제왕 안정환(1998~2000) 등 K리그 역사에 길이 남을 공격수들이 활약하고 있었다. 우성용이 부산 아이콘스를 대표하게 된 것은 대우그룹이 망하고 팀이 현대산업개발로 넘어가면서 재정지원이 줄어 많은 선수들이 뿔뿔이 흩어진 뒤의 일이다. 후술하겠지만 우성용이 리그에 남긴 족적에 비하자면 엄청난 늦깎이였는데, 팬들이 좋은 공격수의 기준처럼 받아들이는 두 자리수 득점을 처음 기록한 해가 2001년이었다.

2003년에는 최순호 감독이 있던 포항 스틸러스로 이적했고, 이듬해 팀이 준우승을 차지할 때도 주전으로 활약했다. 또한 2001년부터 이해까지 4년 연속 두 자리수 득점을 기록하며 비로서 리그를 대표하는 골잡이 가운데 한명으로 자리매김했다.

이때 활약을 눈여겨본 움베르투 코엘류 감독이 이끌던 국가대표팀에도 발탁이 된다.[2] 그런데 하필 일이 꼬이려는지 오만 쇼크가 터진다(...)

2005년 우성용은 문수르 버프를 받은성남 일화 천마로 현금 트레이드되었다. 이적 첫 해에는 주전경쟁에서 김도훈이라는 걸출한 스트라이커에 밀려 교체 멤버로나 근근히 경기에 출전하며 고작 3골에 그쳤다.
하지만 김도훈이 은퇴한 2006년 팀의 주전 스트라이커로 활약하였다. 수원과의 챔피언 결정전 1차전에서 박진섭의 크로스를 헤딩 결승골로 연결하며 소속팀의 우승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 선수 개인으로서도 41경기에 출전하여 19골을 기록, 득점왕을 수상했다. 게다가 시즌 베스트11까지 뽑혔다. 나이가 나이인지라 전성기가 지난 선수 취급을 받던 처지에서 리그 최고의 활약을 보인 공격수로 화려하게 부활한 것이다.

그러나 아무래도 적지 않은 나이가 소속팀에게 있어서는 부담이었는지 성남은 우성용과의 계약을 연장하지 않았고, 우성용은 울산 현대로 이적하여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게 된다. 울산에서의 두 번째 시즌인 2008년 9월 24일, 우성용은 대전 시티즌과의 경기에 출전하여 개인통산 115호 골을 기록함으로써 K리그 역대 개인통산 최다골 기록을 경신하였다. 이는 공교롭게도 성남에서 우성용의 포지션 경쟁상대였고, 은퇴 후에는 멘토이기도 했던 김도훈의 기록을 경신한 것이라서 더 의미가 깊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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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과의 계약이 만료되자 2009년인천 유나이티드 유니폼을 입고 한 시즌을 더 뛴 후 은퇴했다. 인천에서 기록한 골은 단 1골 뿐이었으나, 2009년 5월 5일 그가 넣은 마지막 골은 개인통산 116골로 3년 뒤 2012년 3월 3일 이동국이 깨뜨리기까지 K리그 개인통산 최다골 기록이었다. 은퇴할 때의 나이가 대한민국 나이 기준으로 37살이었으니 필드 플레이어 치고는 상당히 많은 나이까지 뛴 셈이다.

선수 개인으로는 아쉬울 수 있는 부분이 프로데뷔 팀인 부산을 제외하고는 3년 이상을 꾸준히 한 팀에 몸담은 적이 없을 정도로 저니맨 생활을 했기 때문에 어느 한 팀의 레전드 대접을 받기는 어렵다는 것. 서장훈과 비슷한 처지라고 보면 되겠다.[3] 그래도 포항, 성남, 울산 등 K리그 전통의 강호들이 항상 러브콜을 보냈다는 것은 그만큼 실력이 정상급이라는 의미이고 세 팀에서 각각 리그와 컵대회 우승컵을 들어올리기도 했고, 이동국 이전 K리그 통산 최다골 기록을 보유했다는 것만으로도 한국 축구계에서 공격수 중 레전드급에 이름을 올리기에 손색이 없다.

2. 은퇴 이후[편집]

은퇴 후 인천의 2군 코치직을 맡으며 지도자의 길을 밟기 시작했다. 2012년부터 인천 U-15팀인 광성중학교 감독직을 맡고 있다. 광성중학교는 2013년 소년체전 중등부 준우승, 금강대기 우승을 차지했다.

3. 플레이스타일[편집]

쌍팔년도 아재 축구팬들이 장신 스트라이커 하면 김재한을 떠올리고 2002년 이후의 젊은 축구팬들은 김신욱을 떠올린다면, 7080 축구팬들은 우성용과 손정탁을 맨처음 떠올린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큰 키를 주무기로 삼는 선수였다.
그러나 일반적인 팬들이 장신 공격수에 대해 갖고 있는 이미지과 달리 우성용의 몸싸움 능력은 뛰어난 편이 아니었다. 포항 시절까지만 해도 우성용은 몸싸움을 회피하는 편이었고, 그렇다고 딱히 발기술이 좋지도 않았다. 때문에 부산 시절엔 우성용이 드리블을 치면 한눈에 확 들어오는 꺽다리가 어색하게 볼을 굴리는 모습에 관중석에서 폭소가 터질 정도(...). 이처럼 상대 수비수와 적극적인 경합을 벌이며 골을 넣기보다는 탁월한 위치선정과 순간적인 유연성이 부각되는 선수였다. 성남으로 이적한 이후 김도훈의 가르침을 받으면서 몸싸움이 어느 정도 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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