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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기 난고 김삿갓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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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윤기 작성일 2013-08-08 20:29 댓글 0건 조회 753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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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령포의 8월

바람소리/김윤기


십장생 여섯 화폭 관음송 후원에 펼쳐놓고

강물 굽이로 깊고 나직한 울을 둘러 사계절 바람 건너갈 길

활활 열어놓았다


일만 굽이 휘돌아 청령포에 이른 동강이여!

오백년 사직은 끝났어도 뼈와 살의 혈맥은 여전하여

그 뼈와 살, 영월 땅 장릉에 누이고

망향(望鄕)의 핏줄만 동강 물줄기를 타고 한양으로 흘러간다.


세도(勢道)는 한 줌 흙이 되고 금표(禁標)에 새긴 어명(御命)도

날개 가진 짐승의 자유를 막지 못했다.

보라

가두면 가둘수록 자유로웠던 노산군의 날개 단 애수(哀愁)를


철지난 어명을 비웃듯 금표 곁에 절로 뿌리 내리고

무성해진 청령포 노송 숲

삼복 무더위 걷어내며 솔바람 스쳐간다.


단종의 비애보다

한 여름 무더위에 내 몸이 더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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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8. 3(토) 맑고 습한 날 - 난고 김삿갓문학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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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설(一舌) : 난고 그대야 말로 경래의 난(亂)보다 더 무서운 반란(叛亂)의 생애를 산 것이야.

난고(蘭皐) : 허허 이 사람 보게나. 은근히 사람 잡네

낮 말 새가 듣고 밤 말 쥐가 듣는다 하질 않던가.

하긴 그대 말 뜻 알아챈들 한줌 흙뿐인 내 무덤 누가 파헤치리.

일설(一舌) : 객사(客死)했더만

난고(蘭皐) : 객사가 뭔가 아비집에서 태어나 제집에서 죽은 놈이나

셋방에서 태어나 제집에서 죽은 놈이나

떠돌다 길바닥 쓰러져 죽은 놈이나 뭐가 다른가.

인생사 구름처럼 떠돌다 객사로 끝나는 것 아닌감.

나 역시 그것 중 하나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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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삿갓의 생애

김삿갓으로 불리는 난고 김병연은 1807년(순조 7년)부터 1863년(철종 14년)까지 방랑시인의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인물입니다. 조부는 선천부사 익순이며 아버지인 안근과 어머니 함평 이씨 사이의 2남으로 경기도 양주군에서 출생하였고
이름은 병연, 호는 난고, 별호는 김삿갓 또는 김립으로 불리웁니다.

권문세족인 안동 김씨 가문이었던 집안이 몰락하게 된 것은 조부인 선천부사 김익순이 홍경래의 난을 평정하지 못하고
항복해 역적으로 몰렸기 때문입니다. 후일 조부의 죄가 멸족에서 폐족(조상이 큰 죄를 짓고 죽어 그 자손이 벼슬을 할 수
없게 됨)으로 감형되었으나 세인의 천대로 모친은 가족을 이끌고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으로 이주하여 살았습니다.

김병연은 가문의 내력에 대한 진상을 알지 못한 채 학업에 정진하다 영월도호부 과거(백일장)에 응시하여 장원급제를
하게 되는데, 시제가 바로 ‘논정가산충절사탄김익순죄통우천(論鄭嘉山忠節死嘆金益淳罪通于天)’으로 가산의 정공이
죽음으로 충정된 절개를 지켰음을 찬양하고 적에게 항복한 김익순의 비겁한 죄를 하늘이 알고 있음을 공박하라는
내용이었습니다.

후일 모친으로부터 집안 내력을 듣고 조상을 욕되게 한
죄인이라는 자책감에 영월군 하동면 와석리 어둔으로 옮겨
은둔생활을 시작하였으며 이후 죄인으로 푸른 하늘을 바로 볼 수
없다하여 삿갓에 죽장을 짚은 채 방랑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금강산을 시작으로 서울, 함경도, 강원도, 황해도,충청도, 경상도,
전라도, 평안도, 제주도 등 전국 각지를 떠돌다가 전남 화순군
동북면구암리 정시룡 댁에서 1863년 3월 57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합니다.

이후 3년 뒤 아들 익균이 화순의 초분지를 찾아 지금의 강원도
영월군 하동면(현 김삿갓면) 와석리 노루목 기슭으로
이장하였습니다. 그 후 김병연의 묘는 세상에 알려지지 않고
있다가 116년만에 발견되어 보존되어 오다가 현재의 모습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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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삿갓의 문학세계

김삿갓의 시들은 유유자적한 귀족적인 시작(詩作)의 태도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인간 본연의 서정과 빈궁한 평민들의
생활상에 시야를 돌립니다. 이로써 한시의 평민화 경향을 더욱 발전시켜 민중적인 차원으로까지 확대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한시 표기에 있어서의 파격은 권위주의로서의 한시 영역을 붕괴시키고 골계미와 해학미라는 새로운
미학으로 한시의 지평을 넓혔습니다.

사회비판

김삿갓의 방랑을 개인적 좌절의 표현으로 볼 수도 있지만 그것은 김삿갓 혼자만의 좌절은 아니었을 겁니다. 시대적
배경에서도 알 수 있듯 봉건신분사회를 살았던 대다수의 피지배층과 몰락 양반들의 삶이 그러한 좌절의 삶이였습니다.
김삿갓은 민중의 생활과 일상을 기반으로 한 소재로 구체적인 민중의 삶을 노래하였고 그의 시는 양반은 물론 여염집
아낙이나 동네 아이들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향유되었습니다. 김삿갓의 이름이 문헌에서보다 입을 통해 전해질 수
있었던 것도 방랑생활 속에서 민중들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가 지은 소제시(訴題詩 : 힘없고 못 배운 백성의 권리를 찾아주기 위해 그들의 대신하여 관가에 제출한 일종의
소송장)를 통해 그의 일면을 확인할 수 있는데 예를 들어 묘쟁(墓爭 : 묘터를 빼앗은 양반사대부가를 비판), 독가소제(犢
價訴題 : 빈한한 농가의 송아지를 죽인 소송), 산소소장(山所訴狀 : 다른 사람의 선산에 조상의 묘를 무단으로 쓴 데 대한
소송) 등의 시가 이에 해당합니다.

김삿갓은 조상에 대한 부끄러움, 막힌 출세길 때문에 평생 한을 품고 살았으며 그 한은 시로써 표출되었습니다. 이러한
그의 이상과 현실의 대립은 자아인식의 대상이 되었고 나아가 사회에 대한 비판의식으로 발현되었습니다. 즉 끝없는
방랑을 통한 자기 인식이 현실인식으로 발전되었으며 이것이 그의 시로써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그가 방랑을 멈추지
않았던 것도 스스로의 존재인식을 이를 통하여 찾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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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顧偶吟 (자고우음)

笑仰蒼穹坐可超 (소앙창궁좌가초)

回思世路更迢怊 (회사세로경초초)

居貧每受家人讁 (거빈매수가인적)

亂飮多逢市女嘲 (난음다봉시녀조)

萬事付看花散日 (만사부간화산일)

一生占得明月宵 (일생점득명월소)

也應身業斯而已 (야응신업사이이)

漸覺靑雲分外遙 (점각청운분외요)

푸른 하늘 웃으며 쳐다보니 마음이 편안하건만

세상길 돌이켜 생각하면 다시금 아득해지네.

가난하게 산다고 집사람에게 핀잔듣고

제멋대로 술마신다고 시중여인들에게 놀림받네.

세상만사를 흩어지는 꽃같이 여기고

일생을 밝은 달과 벗하여 살자고 했지.

내게 주어진 팔자가 이것뿐이니

청운이 분수밖에 있음을 차츰 깨닫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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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난고 김병연 지묘라

상석도 비석도 촛대석도 자연석이라.

자연과 벗하며 살다간 난고의 생애와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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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향길에 잠시 들린 정선 아우리지

강 건너 여량과 이어놓은 아취형 다리가 조명을 받아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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