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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기 밀서리와 대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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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소요거사 작성일 2006-05-26 17:22 댓글 0건 조회 48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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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쓰윽 고개를 돌린다
그래. 망덕봉과 칠성암에 해가 걸린걸 보면 시간이 된거야
아침에 봐둔 유엔통성냥을 주머니에 넣고 헛간에서 낫을 찾다가 그냥 포기한다
그걸  들고 나섰다간 어머이 에게 당장 들켜 죽도 밥도 않될테니까
살금살금 마당을 가로질러 토담옆으로 고양이 걸음을 한다
뒷집 단경아재가 지게를 벗어놓고 대안으로 가는 걸보면 일을 마치고 들어온 모양이다
이젠 되었다
저 아재만 안나오면 오늘 일은 거의 성공이나 마찬가지므로

신작로가 경계선인 밀밭에 당도할때까지 아이는 쉴새없이 집쪽으로 고개를 돌려 살핀다
다행히 어머이도 단경아재도 아무 기척이 없다

바람에 물결처럼 하늘거리는 밀밭은 향기로운 풀냄새를 흘린다

참밀은 너무 딱딱해서 맛이 덜하다
두밭건너 청밀밭으로 몸을 숨긴 아이는 자기 키보다도 배나큰 밀대궁이를 손으로 움켜잡고
조금 설익어 까우치가 보스스한 밀이삭을 골라 찾는다
너무 익으면 구어놨을때 톡톡 터지는 맛이 없기 때문이다

우와끼를 벗어놓고 그 안에다 수북히 밀싹을 뽑아넣는다
어떤것들은 이삭만 쏘옥 뽑히는데 어떤것들은 대궁이까지 꺽이고 심한놈들은
밀뿌리채 뽑혀서 아이를 당황하게 만든다

우와끼 하나가득 밀이삭을 뽑아들고 아이는 밀밭을 나와 다시 살금살금
산작로를 가로 질러 솔밭 사이로 스며든다

조금 소낭그가  뜸한 공터에 밀이삭을 내려놓고 아무리 주위를 두리번 해 보았지만
마른 소깽이를  찾을수 없어 아이는 다시 그위 산중턱으로 내닫는다
보득솔밭에서 솔가치를 우드득 꺾어서 한아름 안고서 우와끼 있는데로 온 아이는 주머니에서
예의 통성냥을 꺼내서 탁탁 불을 붙인다
생생한 솔가지가 쉽게 불이 붙을리 없다
그래도 아이는 포기하지않고 계속 성냥을 그어 댄다
거의 반통이나 소모한후에 겨우 한가치에 불붙이는데 성공한 아이는
다른 솔가지를 불붙은 가지위에 놓고 엎드려 훌훌 입으로 바람을 분다

드디어 성공이다
불은 몇개의 솔가치에 붙었고 아이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따 가지고 온 밀이삭을
여러개씩 모아들고 활활 타오르는 불길위로 들이댄다
돌돌 이삭을 돌리며 타지않도록 까우치가 없어질때까지  잘 구워야 알이 탱탱하니 연하고
집파리에서 잘 빠져나온다

잘된놈 하나를 골라 손바닥위에 놓고 살살 비빈다
끄름과 남은 까우치는 떨어지고 집파리에서 나온 밀 알갱이는 오독하니 손바닥위에 가득 모인다
마지막으로 입김을  후루룩 불어서 탄 재만 날리면 작업 끝.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아이는 밀알을 탁 하고 입안으로 털어 넣는다
토독토독 밀알갱이는 압안 가득히 즐거운 소리를 내며 터진다
향긋한 여린맛이 코끝을 쨍 하니 울린다.
햐~~~

두번째 밀이삭을 비비던 아이는 순간 손에 쥐고 있던 밀아삭이 휙!하고 살아지는 것과 동시에
자신의 몸이 허공에 번쩍 들리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네 이놈 대흔아! 야가  뭐하는 짖이나? 불 내믄 우떠 할라고"
단경집 아재와 어머이가 눈을 부라리며 옆에 서있다

오들오들 떨고 서있는 아이를 보고 발로 불을 탁탁끄던 단경집아재가 소치친다
"뭐하나 일른 오줌 안깔기나"

입 가상자리와 코끝에 새까맣게 묻은 끄름을 손으로 닦아주며
어머이는 아이의 궁뎅이를 툭툭  치면서 말헸다
"대흔아~얼픈 낯씻고 저냑 먹으래이"

두사람의 뒤를 줄레 줄레 따라가며 아이는 혼잣말로 투덜거린다
(내가 왜 대흔이야... 대흥이지...)
.
.
.
우린 누구나 소시적 밀서리를 해먹던 기억이 있지요
지금에야 농작물 절도죄로 잽혀갈지 모르지만 그 시절은 그냥 재미로 여겼으니까요
아련한 옛 추억이 생각 나설랑은...

서울시 한강시민공원사업소와 우리밀살리기운동본부는 오는 6월4일 한강시민공원
에서< 밀서리 행사>를 연답니다.
시간이 되면 아이들 손잡고 아련한 추억여행을 떠나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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