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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기 월남전쟁 참전이야기(1).....부산항아 잘있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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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소요거사 작성일 2006-07-21 12:50 댓글 0건 조회 527회

본문

mark400.jpg
-월남참전 부대마크-
좌로부터...청룡부대(제2해병여단). 맹호부대(수도사단). 백마부대(제9사단).
십자성부대(100군수지원단). 주월사(주월한국군사령부).
비들기부대(건설지원단). 백구부대(해군수송전단)> 공지단(공군지원단)


ppic04_8.jpg

-파월장병을 수송하던 부산항 제3 특수 부두....
멀리 보이는 굴뚝 두개가 미군 수송함이며
파월장병이 떠날때 마다 군.관.민을 합쳐 수많은 환송인파가
부두를 가득 메웠었다.
지금도 아련히 메아리치는 그 소리...
< 자유평화 위하여 조국을 지키시다
조국의 이름으로 님들은 뽑혔으니
그 이름 맹호부대 맹호부대 용사들아
가시는곳 월남땅 하늘은 멀더라도
한결같은 계례마음 님의 뒤를 따르리라
한결같은 계례마음 님의 뒤를 따르리라.>




******차가운 이별*****


뚜우~~
춘천역을 막 떠난 기차는 숨차듯 목쉰 기적을 토한다.
조금전 가족 친지들을 만났던 장병들은 아직도 그 여운이 가시지 않는듯
어둠만이 엇갈리는 창밖을 내다보며 침울한 표정으로 멍 하니 앉아있었고 ,
그렇치 못했던 장병들은 아쉬움이라도 달래려는듯 위문품으로 전달한 음식을
먹으며 애써 명랑하려는 모습들이였다.

여기는 내일 아침 부산항을 떠나 이역만리 월남(Vietnam)으로 파병되는
제10제대(諸隊) '맹호부대원'과 '십자성부대원'을 태우고 지금막 춘천역을
출발한 특별수송열차 안-

오늘 아침 11시에 오음리(강원도 화천에 있는 군사지역)에 있는
<파월군사특별교육훈련소>에서 그동안 30일 간의 고된 특수훈련을 마친
000 명의 장병들이 수료식을 끝낸후 군용트럭으로 몇시간을 달려서
춘천역에 대기하고 있던 이 열차에 탑승한것은 환송식과 또 1시간 가량의
가족면회가 끝나고 난 밤 9시가 다 되어서였다.

열차는 밤새도록 달려서 내일 아침 9시경이면 부산항에 도착할것이다.
그리고 그뒤 몇시간 후이면 내 조국을 떠나 머나먼
이역만리 전쟁터로 가게 될것이다.
자유와 평화를 수호하기위하여 국가를 대신해서 전쟁터로 떠나는 군인들---
좀 전에 일장훈시를 통하여 우리 장병들의 애국심과 충성심을 높히 치하 하면서
武運長久(무운장구)를 빌어주던 훈련소 사령관과 직속 대대장,
그리고 여러 지휘관들의 송별사가 아직도 귀에 쟁쟁하다.

대한민국....
조국... 그리고
월남 전쟁터....
생각만 해도 가슴이 뭉쿨한, 무어라고 표현할수 없는 벅찬 감개가
내 심장속에 소용돌이 친다.
아직도 전쟁터로 간다는 실감이 전혀 나지 않는다.
마치 어딘가 먼 여행이라도 떠나는 기분같은 막연한 설레임 뿐-

문득, 고향에 계시는 어머니의 얼굴이 희뿌옇게 차창에 어른거린다.
그리고 그 뒤로 누님과 어린 조카들의 얼굴....
한달전 오음리 훈련소에 도착했을때 대부분의 병사들은 고향에 편지를 보내
자신의 파월소식을 전하였으나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어머니에게 전쟁터로 간다고 도저히 말씀 드릴수 없었기 때문이다.
연로하신 어머니께 또 큰 근심을 어찌 끼쳐 드린단 날인가?
내가 만약 전쟁터로 간다는 것을 아신다면 어머니는
어쩌면 혼절까지 하실지 모른다.
그 지긋지긋한 전쟁의 기억...
나에게는 제일 큰 형님이신 당신의 첫째 아들과 둘째딸인 누니의 행방불명,
그리고 내 사촌형님들의 사망, 첫째 사위의 전사와 그로 인한 큰 딸의 불행,
남편이신 아버지의 빨갱이라는 의심때문에 당한 모진 구타,
결국 그때문에 목병을 얻으시고 남은 여생을 중병으로 고생 하시다가
돌아가신 아버지....
이 모든 아품이 전쟁이라는 魔物(마물)에 의한 것임을 아시는 어머니로서는
이제 그 악몽이 다 가시기 전에 또다시 당신의 막내 아들이 전쟁이라는 지옥의
소용돌이속으로 빨려 들어간다는 것을 아신다면 어찌 온전 하시겠는가.
더구나, 그 전쟁이 내 나라도 아니고 듣도 볻 못했던 "월남'이라는
남의 나라 전쟁이라는 데야...

어제 저녁,
훈련소의 마지막 밤이며 대한민국에서의 마지막 밤을 정리하면서
나는 어머니께 長文의 서신을 드렸다.
남은 군 복무기간동안 무언가 뜻있는 보람을 얻기 위하여 월남으로
떠나게 되었다는 것과
그곳이 비록 전쟁터이긴 하지만 나는 兵科(병과)가 보급행정이기 때문에
후방에서 군수물자의 지원 업무만 보지 직접 전투에 나가는 것이 아니므로
절대로 위험하지 않으니 조금도 걱정하지 마시라는 간곡한 안심의 말씀을 올렸다.
이제 그 편지는 내가 월남에 도착할 즈음이면 어머니께 전달 될 것이다.
물론 어니니는 그 편지를 보시고 눈물을 흘리시며 이 불효자식을 나무라실 것이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이미 결정된 일인 것을-
비록 자식으로 해서는 안될 불효지만 이미 저즐러 놓은 일인 것을-

뚜우~하고 기차는 다시 기인 한숨을 토해낸다.
여기는 어디쯤일까?
지금 시간이 어느덧 자정을 넘었으니 출발한지도 서너시간 지났을 테고,
그러면 원주는 이미 지나 제천이나 충주 쯤 되었으려나.

칠흙같은 창밖의 어둠속을 물끄럼이 바라보노라니 내 가슴속에는
다시한번 만감이 교차된다.

불과 얼마전...정확히 삼개월 전...그 아프고 쓰라렸던 통한의 날...
내 일생에서 지금까지 맛본것 중에 가장 크나큰 슬픔과 좌절의 그날...
아아...지금도 생각만 해도 몸서리 쳐 지는,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그날 ...그 밤...
神은 왜 내게 그토록 엄청남 시련을 주셨던가.
내가 얼마나 잘못을 지었기에 나에게 이토록 감당할수 없는
고통의 나락으로 밀어 넣으셨는가.
.
.
.
中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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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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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남 파병을 자원했다.
더 이상 이곳에서 이 고통스러운 나날을 이겨낼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한시바삐 이 지옥을 벗어나고 싶었다.
.
.
.
그즈음,
월남전쟁은 종국으로 치닫고 있었다.
미국이 십여년에 걸쳐 엄청남 물자와 병력을 쏟아붓고도 전세는 회복되기는 커녕
오히려 베트남 전쟁은 점점 더 정글의 수렁에 빠지고 있었고,
우리나라도 이 전쟁에 참여한지 5년이나 넘었지만 전사자 숫자만 늘어갈뿐,
전황은 점점 희망없는 長期戰(장기전)으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
.
.
.
中略
.
.
.
드디어 파월 명령이 나오고 오음리 훈련장으로 떠나기 하루전...
나는 그녀에게 전화를 했다.
꼭 할 얘기가 있으니 잠깜만 보자는 내 권유에 못이겼는가
그녀는 점심시간을 택하여근무처 조금 떨어진 제8지구 보급품 야적장으로 나왔다.
바닷바람은 조금 세차게 불어왔으나 근무복위에 커다란 남자용 잠바를 걸쳐입은
그녀는 그리 추워 보이지 않았다.
다만,두달만에 만나는 그녀는 조금 야위워 있는것처럼 보였다
전과는 달리 끈으로 뒤를 묶은 머리카락이 바닷바람에 흩날려서 얼굴을 가릴때마다
그녀는 한손으로 가만히 머리를 쓸어 올렸다.
.
.
.
"그동안 고마웠어. 내 평생 잊지 못할꺼야.."
.
.
.
그녀는 이번에도 아무말없이 고개를 숙이고는 발끝만 꼼짝않고 응시하고 있었다.
바람이 휙- 불어와서 그녀의 긴 머리칼을 쓸어갔다.
.
.
.
- 나 내일 여길...떠나...
- 월남 가기로 했어...아침 10시에 갈꺼야...

단숨에 이말을 밷듯이 한후,나는 고개를 돌려 담장위에 쳐진
철조망 넘어로 보이는 바다로 시선을 돌렸다.
담장에 가리어 끝자락만 보이는 바다위에는 몇몇 화물선의 돛끝만 보일뿐
그위로 갈매기 몇쌍이 무리를 지어 날아가는 광경만 눈에 들어왔다.
한참뒤 내가 고개를 돌렸을때,그녀는 내게서 등을 돌리고 두손으로
얼굴을 가린채 미동도 않고 그린듯이 서있었다.
그때, 그녀의 갸날픈 양 어깨가 조금씩 떨리는것 같다고 느껴지는 것은.
아까부터 불어온 세찬 바닷바람 때문이였을까.

- 아마, 다시는...우리...만날수 없을꺼야....잘 있기를 바래...그리고...부디..
행복하고...

바다를 등지고,그녀를 등지고.그렇게 한참을 서 있다가,
나는 조용히 발걸음을 떼어 놓았다.
이 순간 그녀의 조금 떨리는듯한 목소리가 내 등을 향하여 말했다.
- 왜 가는건가 예? 저 때문인가 예?
나는 그 자리에 발걸음을 멈춘채 돌아서지도 않고 이렇게 대답했다.
- 어쩔수 없었어. 나로서는 이길밖에. 仙이 때문이기 보다는 나 자신 때문이라는게
더 맞는 말일꺼야.
그리고는 나는 뚜벅뚜벅 걸어서 그곳을 나왔다.
뒤돌아 보고 싶었지만 차마 얼굴을 돌릴수 없었다.
아니, 정확히 말한다면 뒤돌아 뛰어가서 그녀를 와락 안고 싶었다는 것이 더
솔직한 표현이였을 것이다.

야적장 한 가운데를 지나 위병소 모퉁이를 돌때, 나는 고개를 돌려 뒤를 보았다.
仙이는 그때까지 처음 그자리에 꼼짝도 않고
두손으로 얼글을 가린 그 모양으로 서 있었다.
바람에 휘날리는 긴 머리칼을 잡으려는 생각도 않고 그냥 그대로 서 있었다.
아마, 계속 울고 있었을지 모른다고 생각든건
그녀의 어깨가 비록 먼 거리였으나 아까보다
더 흔들리고 있는것이 확연이 보였기 때문이였을 것이다.

이것이 그녀와의 <마지막 만남>이 였다.
.
.
.
뚜우~
상념에 젖어있는 동안 얼마를 달려왔는가,
기차는 다시 목쉰 기적을 토해낸다.
시계를 보니 새벽 5시-
이제 두세시간만 있으면 목적지인 부산항에 도착 할것이다.
여기저기서 선잠을 깬 병사들이 하나 둘씩 기지개를 켜며 몸을 뒤척인다.
그들인들 어찌 잠을 제대로 청할수 있었겠는가.

뚜우~뚜우~
기차는 거듭 기적을 토한다.
갑짜기 앞칸에서 호르라기가 울리며 수송담당 헌병들이 우루루 안으로 들어온다.
전원 기상.앞 열부터 번호시작.복장정리.관물점검.일조점호준비...
고함소리,복창소리,군화 부딪는 소리,열차안은 순식간에 벌집 쑤신듯 분주해진다.
이때의 시간이 아침 6시30분 경.
열차는 드디어 부산항 제3부두에 도착한 것이다.

아침 식사로는 도시락이 지급됐다.
먹는둥 마는둥 식사 끝. 전원 행열 준비.따불빽 메고 앞줄부터 정열.하차 시작.
맹호부대는 왼쪽열로 십자성 부대는 오른쪽 열로 각각 분리 집합할것.
대오를 지어 하나하나 인적사항을 확인하면서 우리를 태워갈 25,000 t 크기의
엄청난 수송함 <업셔( USNS UPSHUR)>호를 향하여 승선 준비를 하는동안,
나는 고개를 들어 우람한 위용을 자랑하는 수송함을 바라보았다.
그동안 부산에 근무하면서 여러차레 파월장병 환송식에 참가해서
군용 수송함을 많이 보아왔지만 지금 직접 나 자신이 타고 갈 배를 앞에 두고 보니
그 감회는 무어라고 형용할수 없었다

수송함과 육지를 연결하는 가교를 오르면서 이것이 조국땅을 밝아보는
마지막이 될찌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나 뿐이 아니라 모든 장병들의 마음속은 다 한결 같으리라.
어쩌면 살아서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르는 전쟁터로의 길-
어쩌면 영영 다시는 밟아 보지 못할 조국의 땅 조국의 내음-

각각의 침대가 있는 배밑의 선실을 배정받고 다시 갑판에 오르니
그때가 오전 10시경.
이때 부두에는 온통 사람들의 인파로 뒤덮혀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군악대의 연주소리가 쉴틈없이 울려 퍼지고 환송나온 군인들의 '맹호부대가' 가
소리높히 항구를 뒤엎었다.
-그 이름 맹호부대~맹호부대 용사들아~
환송인파 맨 앞에 길다란 프랑카드가 펄럭인다.
***환송! 필승! 반드시 이기고 돌아오라! 병기기지사령부 병기기지보급창 행정과
병장 심대흥! ***
같은 과 전우들의 모습이 그 깃발밑에 보인다.
우리 인사행정과원들과 저장과와 경비대에 복무하는 고교동기생들,
수송과,검열과,군수과, 작전과 친구들, 그리고 각 부서에서 나온
여러명의 군속들의 면면이 뚜렷하게 보인다.
사병계 박병장이 들고 있는 현수막을 바라보다가 나는 폭소를 터트렸다.
***심병장! 시계 값 물어놓고 가라***
몇개월전부터 우리 과원들끼리 계를 모아서 한사람씩 시계를 태워 주기로 했는데
내가 바로 앞달에 타고는 그냥 오음리로 떠나왔기 때문에
이를 작란으로 프랭카드에 적어와서 흔들었기 때문이다
마침 오음리에서 받은 한달치 봉급이 그냥 주머니에 있었으므로
나는 전우들에게 큰 소리로 줄을 올려 달라고 소리쳤다.
어디서 구했는지 그들이 올려주는 밧줄에 나는 주머니에 남이있는
동전까지 몽땅 털어서 묶어 던져 주었다.
어차피 월남가면 이돈은 귀국시까지 쓸모가 없기때문이다
전우들은 그 돈으로 박카스와 음료수를 몇박스 사서는
다시 즐에 매어 올려 보냈다.

환송식은 하나하나 예정대로 진행됐다.
펄럭이는 태극기가 그때처럼 눈시울이 찡 하도록 감격스러울때가 없었다.
맹호부대가,월남의 달밤, 그리고 진짜사나히. 잘있거라 부산항...
군가와 유행가 가 어울려 환송식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나는 시선을 돌려 넓디 넓은 부두 곳곳을 둘러 보았다.
어디엔가 그녀는 나와 있을 것이다.
사람들 앞에 나서지 않고 먼 발치 뒤켠에 숨어서서 그녀는
그렇게 나를 전송 할 것이다.
저끝 화물박스 옆에 힌점 하나...
그녀가 맞을 것이다.
그러나
곧 움직이는 인파속에 휘쓸려 그 점은 살아진다.

부~웅~
엄청나게 길고 우렁찬 고동이 한차례 바다위로 울려 퍼진다.
와~하는 함성 또 함성-
휘날리는 태극기의 물결-
이리저리 밀리는 인파들의 움직임-
하늘높이 날아오르는 비들기 떼들의 힘찬 날개짓-
마침내,
업셔호는 그 육중한 몸을 예인선에 이끌려 천천히
부산항을 빠져 나가기 시작했다.
이때가 1969년 6월17일 오전 12시 정각.
스믈세해동안 살아온 이 조국 대한민국을 뒤로하고
우리는 떠나고 잇는 것이다.
어쩌면 영영 돌아오지못할 내 조국을 등지고 우리는 떠나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강원도,명주군.구정면,언별리의 내고향,
부산시 감만동 병기기지보급창의 내부대,
부산항 제3부두,그리고 저 푸른바다,저 맑은 하늘과 저 하얀 갈매기들,
어머니,누이,형님,
그리고 내 친구들,사랑하는 이들이여,모두모두 안녕히.
언제 다시 우리 만날수 있을건가?
언제 다시 우리 만날수 있을건가?

'차거운 이별' 이란 종말을 가져오고 말았지만
너로 인해 사랑을 알았고
너로 인해 이별을 알았던 그 사랑도
영원히 안녕-----!!!





1969년6월17일

월남전쟁터를 향하여 조국을 떠나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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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쓸떄가
내 나이 스물 넷이엿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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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이럴때가 있었다는게 신기하지 않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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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유치하겠지만
그때는
그것이 내가 사는 이유 전부 였으니까.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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