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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기 중국은 왜 안중근 의거 현장 ‘쉬쉬’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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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sbs 작성일 2006-08-15 10:19 댓글 0건 조회 25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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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왜 안중근 의거 현장 ‘쉬쉬’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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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안중근은 하얼빈에 열하루 동안 머물렀다.

가슴에 일곱 개의 점이 있어 “북두칠성과 느낌이 통했다”는 뜻의 ‘응칠(應七)’이란 아명(兒名)을 지녔던 그는 조선 초대 통감을 지낸 침략의 수괴 이토 히로부미가 코코브체프 러시아 재무대신과 회담하기 위해 하얼빈에 온다는 소식을 접한 뒤 1909년 10월22일 동지 우덕순, 류동하와 함께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우편열차를 타고 하얼빈으로 숨어들었다. 사흘 동안 치밀한 거사 계획을 세운 뒤 26일 오전 9시 그는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했다. 오른쪽 가슴과 배에 세 방의 총알을 맞은 이토는 20분만에 숨졌다. 현장에서 러시아 헌병에게 체포당한 그는 그날 밤 11시께 하얼빈 주재 일본 총영사관에 넘겨졌다. 지하 감옥 취조실에 닷새 동안 갇혀 있으면서 조사를 받은 그는 11월1일 일본 헌병의 포승에 묶여 뤼순 감옥행 열차에 오름으로써 하얼빈을 떠났다.

그가 하얼빈에 머무른 날은 겨우 열하루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는 이곳에 지울 수 없는 거대한 역사의 발자취를 남겼다. 한국인에게 ‘하얼빈’하면 다른 무엇보다 먼저 그의 이름이 떠오른다. 그러나 안중근의 자취를 기대하며 하얼빈을 방문한 한국인들은 지금까지 시내 어디서도 안중근과 관련한 흔적을 찾아볼 수 없어 아쉬웠다. 하얼빈 기차역의 플랫폼은 이미 현대적으로 새 단장을 한 지 오래여서 안중근이 이토를 사살한 그 현장의 느낌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한국 투자 유치 위해 기념비 등 건립

최근 하얼빈시 당국은 하얼빈에 안중근의 자취를 되살리는 몇 가지 조처를 취했다. 하얼빈 시내에 있는 자오린 공원에는 “청초당(靑草塘)”과 “연지(硯池)” 등 안중근이 쓴 붓글씨와 특유의 ‘단지(斷指) 손도장’을 새긴 기념비를 세웠다. 4일 문을 연 조선민족예술관에는 1층을 ‘안중근 특별전시실’로 만들어 안중근의 흉상을 마련했고, 그의 행적과 관련한 사진·신문·문서 등 자료를 200평 남짓한 전시실 가득 진열해 놓았다. 또 하얼빈시 철도국은 하얼빈 역사 2층에 ‘하얼빈 철도 역사 전시실’을 마련해 이곳에도 ‘정의의 총소리’란 제목 아래 안중근 관련 사진 자료와 기록을 전시했다.

하얼빈시의 ‘안중근 기념사업’은 한국 쪽의 투자 유치를 위해 당국이 한국인들의 염원을 적극 수용함으로써 성사된 것이다. 하얼빈시정부와 선양주재 한국 총영사관이 3~8일 엿새 동안 공동으로 주최하는 제2회 ‘하얼빈시 한국주간’ 행사에 맞춰 하얼빈시가 이 기념사업의 성과를 공개한 걸 보더라도 이런 사정을 짐작할 수 있다. 동기야 어찌 됐든 하얼빈시의 이런 성의 있는 조처 덕분에 앞으로 하얼빈을 방문하는 한국인들은 안중근의 자취를 좀더 실감 나게 느낄 수 있게 됐다.

의거 현장의 말없는 ‘세모와 네모’

그러나 아쉬운 점도 없지 않다. 한국주간 행사에 참가한 한국 대표단들 가운데는 무엇보다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바로 그 자리에 대한 하얼빈시 당국의 ‘조처’에 아쉬움을 표하는 이들이 많았다. 하얼빈시 당국은 지난 1일 기차역 플랫폼의 대리석 보도블록 위에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장소를 표시하는 작업을 했다. 안중근이 섰던 곳엔 삼각형을, 이토 히로부미가 쓰러졌던 곳엔 네모 모양을 새겼다. 아쉬운 건 이 표시에 대한 설명문이 전혀 없어, 세모와 네모가 새겨진 대리석이 벌떡 일어나 외쳐주지 않는 이상, 일반 승객으로서는 이 표시가 무얼 뜻하는지 알 길이 없다는 점이다. 이수성 전 총리, 원혜영, 유선호, 김재홍, 김선미, 이정일, 이낙연, 안병엽 국회의원 등 이날 하얼빈역을 찾은 한국 국회 대표단은 하얼빈역 플랫폼의 말없는 ‘세모와 네모’를 보며, 하얼빈시의 ‘성의’는 인정하면서도, 한결같이 적지 않은 아쉬움을 나타냈다.

안중근의 이토 히로부미 사살은 한국의 남북한은 물론 중국의 국민당과 공산당 등 동아시아에서 정파와 이념을 뛰어넘어 누구나 보편적으로 극찬한 세기적인 의거였다. 쑨중산은 안중근을 위해 발문을 썼고, 장타이옌은 안중근 의사를 “아시아 최고의 의로운 협객(亞洲第一義俠)”이라고 불렀다. 중국공산당의 저우언라이 총리는 “중·일 갑오전쟁(청·일전쟁) 이후 20세기 초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하얼빈 역에서 죽임으로써 일본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두 나라 인민의 공동 투쟁이 시작되었다”고 했으며, 국민당 장제스 총통 또한 안중근 의사를 기려 “장렬한 뜻이 천년 길이 빛나리(壯烈千秋)”라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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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왕에 그 역사의 현장을 복원해 표지를 남길 것이라면 이 표지를 보는 모든 사람들에게 분명하게 설명하는 게 떳떳했다. 아무런 설명도 없는 세모와 네모에선 벙어리 냉가슴의 자신감 없는 태도가 읽힐 수밖에 없다. 도대체 중국이 왜 이 문제에 관해 벙어리 냉가슴을 앓아야 하는가.

지난 3일 현장을 방문했던 한국 국회의원 대표단은 장구이화 하얼빈시 부시장에게 “현장에 설명문을 세울 의사는 없느냐”고 물었다. 이에 대해 장 부시장은 “현재 연구중”이라는 중국 관료들의 상투어로 답했다. 사실 이 문제는 하얼빈시 당국 차원에서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하얼빈시 당국자 또한 중국 중앙정부의 비준과 동의 아래 ‘안중근 관련 기념사업’을 진행했다고 털어놓는다.

결국 ‘벙어리 세모와 네모’의 진원지는 중국 중앙정부인 셈이다. 이번에 방중한 한국 대표단의 한 ‘중국통’은 “중국 정부가 일본과의 관계를 고려해 모호한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중국이 안중근의 이토 히로부미 사살을 대대적으로 기념할 경우 일본을 자극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벙어리 세모와 네모’에서 그쳤다는 것이다. 그는 본디 안중근 기념사업을 추진할 때 △공원 등 옥외에 안중근 동상을 세우는 문제 △안중근 기념관을 단독으로 세우는 문제 △이토 사살 현장인 플랫폼에 안내문을 세우는 문제 등을 모두 검토했으나, ‘수위 조절’을 거쳐 지금과 같은 방식에 그치기로 결론이 났다고 한다.

중국이 의거 현장 쉬쉬하는 속사정 뭔가

중국이 일본의 눈치를 살피느라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역사의 현장에 안내문을 세우지 못한 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중국에 쓴 소리 한마디를 건네지 않을 수 없다. 중국은 일본이 역사 문제를 두고 억지를 부리거나 생떼를 쓸 때마다 일본에 대해 “역사를 거울로 삼으라(以史爲鑒)”는 훈계를 잊지 않는다. ‘쇠귀에 경 읽기’란 속담도 함께 떠오른다는 게 불행한 일이긴 하지만, 이 말이 일본에 대해 정말 적절한 훈계인 건 틀림없다. 그러나 안중근 기념사업에 한정해서 볼 때 중국의 이런 어중간한 조처 또한 충분히 ‘역사를 거울로 삼으려는’ 태도로 보아줄 수 없다. 가령 폴란드의 아우슈비츠가 독일의 눈치를 살피느라 설명문을 떼어낸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지 않은가? 중국이 국부로 섬기는 쑨중산과 중국 인민의 가장 광범위한 존경을 받고 있는 저우언라이가 극찬한 안중근의 의거를 중국이 이렇게 쉬쉬하면서 기념한다는 건 대국답지 않은 태도다. 중국은 적어도 하얼빈역 플랫폼에 “1909년 10월26일 오전 9시 안중근이 이토를 사살한 자리”라는 객관적인 설명은 박아놓았어야 했다. 사실조차 입 밖에 내지 못하는 건 지나친 보신주의 아닌가. 중국 스스로 역사를 거울로 삼지 않으면서 어떻게 일본에 대해 역사를 거울로 삼으라는 훈계가 먹혀들기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스스로를 존중하지 않는 이는 남에게 존중받을 수 없는 법이다. 중국이 그런 어중간한 눈치작전을 펴기 때문에 일본의 몇몇 극우 정상배들이 중국의 강력한 경고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여전히 철없이 A급 전쟁범죄자의 위패가 있는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는 등 위험한 군국주의 병정놀이의 헛된 꿈을 접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내년 행사 땐 당당한 안내문 볼 수 있기를

중국은 대만 독립 문제와 관련해 대만 정객들에게 유화적인 태도를 취하는 일본에 대해 기회 있을 때마다 “대만의 독립을 추진하는 분자들에게 ‘잘못된 신호’를 주지 말라”고 경고해왔다. 이 표현 또한 중국에 돌려질 수 있다. 중국이 안중근의 이토 히로부미 사살 현장에 설명문 하나 제대로 붙이지 못하는 모호한 태도를 취하는 것은 일본 군국주의자들에게 ‘잘못된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일본 군국주의자들의 오해와 착각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 중국은 역사 문제와 반군국주의, 반침략 문제에 관한 한 단호한 태도를 보여주어야 한다.

우리는 하얼빈역 플랫폼에 설명문을 붙이는 문제에 대해 “연구중”이라는 당국의 답변이 진실이라고 믿고 싶다. 지금까지 중국 정부의 신중하고 지혜로운 결정을 많이 보아온 우리로서는 중국 당국이 내년 제3회 하얼빈시 한국주간 행사를 맞이할 즈음엔 반드시 하얼빈역 플랫폼 역사의 현장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 곳인지 대문자로 명명백백하게 쓴 안내문을 세울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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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하얼빈/이상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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