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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기 8.15를 맞아 안중근의사 독립투쟁 항일 유적지 탐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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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sbs 작성일 2006-08-15 10:13 댓글 0건 조회 23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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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저격현장

1909년 10월 26일 독립운동가 안중근 의사가 일본인으로 가장, 하얼빈역(하르빈역)에 잠입하여 역전에서 러시아군의 군례를 받는 일본의 초대 조선 총감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하고 하얼빈 총영사 가와카미 도시히코[川上俊彦], 궁내대신 비서관 모리 타이지로[森泰二郞], 만철이사(滿鐵理事) 다나카 세이타로[田中淸太郞] 등에게 중상을 입히고 현장에서 러시아 경찰에게 체포되었다.

안중근 의사는 저격후 그 자리에서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고 체포되었다. 러시아 검찰관의 예비심문과 재판(당시 하얼빈은 러시아 영토였음) 과정에서 안 의사는 자신을 한국 의병 참모중장이라고 당당하게 밝히고, 이토가 대한의 독립주권을 침탈한 원흉이며 동양 평화의 교란자이므로 대한의용군사령의 자격으로 총살한 것이라고 말했다.

곧 일본 관헌에게 넘겨져 뤼순[旅順]의 일본 감옥에 수감되었고 이듬해인 1910년 2월14일 재판에서 사형이 선고되었으며, 3월 26일 형이 집행되었다.

하얼빈에 3일간 머무는 동안 그 역사현장을 꼭 보고가야 겠기에 1월 29일 아침 영하 20도를 넘는 찬 아침공기를 가르며 역사의 현장을 답사키 위하여 하얼빈 역으로 향했다.

체류중인 화륭반점(華融飯店:Sinoway Hotel)에서 네 블록 거리이다. 추워서 쭈구리고 걷고 있는데 축포 터트리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요란하다. 중국은 설날(음력 1월1일)부터 보름까지의 기간에 귀신을 쫓기위하여 가정집이나 큰 건물 앞에서 우리가 흔히 말하는 불꽃놀이용 축포 같은것을 수백개씩 줄줄이 묶여 있는 것을 터트리며 그 소리가 몹시 크다.

지하도를 지나 큰길을 건너 한참만에 역에 도착해 역 내부의 기차가 드나드는 곳을 촬영할까 하였으나 대합실이 2층이고 모든 역 플랫홈이 지붕이 있어 기차도, 철길도 볼 수가 없었다.

승객들이 들어가는 입구쪽을 기웃거리는데 입구 문 옆에 우리나라 토큰판매대 같은 판매대 안에 한 아주머니가 1원(元)씩하는 표를 팔고 있었는데 중국어로만 표기되어 있어 무슨표 인지 알 수가 없고, 영어도 통하지 않고 의사전달도 되지 않아 난감해 하고 있는데, 마침 역무원같은 젊은이가 정복(군복?) 차림으로 지나가기에 영어할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역시 영어는 통하지 않기에, 디카를 들고 저 안에 들어가 사진을 찍고 싶다는 수하(국제표준어인 손짓)를 하니 눈치를 챗는지 표2장(동료와 동행)을 사도록하고 따라 오란다.

한참을 가서 어느 출구앞에 지키는 사람한테 뭐라고 하고 우리를 안으로 들어가라고 했다. 하여, 그 추위를 무릅쓰고 혹시나 어디에 그 역사적인 현장의 팻말이라도 볼 수 있을까 이리저리 돌아 다녀 보았지만 어디에도 흔적을 찾을 수 없어 역에 들어오는 기차와 플랫홈 사진만 몇장 담아 와야 했다.

현지에 사는 조선족에게 문의한바, 여러가지 정치적인 이유로(중국과 북한과 남한의 관계 등) 우리한테는 중요한 역사의 현장이지만 그 현장에 팻말 하나 없단다.

단지, 하얼빈역의 역사적인 사건이 있었던 현장 부근에 갔다 왔다는 것으로 만족해야만 했고 추위를 무릅쓰고 촬영한 하얼빈 역의 꽁꽁 얼어붙은 사진을 올립니다.

1. DSCN3135.JPG

멀리 큰길 건너편에서 본 하얼빈역사. 96년전 건물은 아니고 최근에 신축한 건물.


2. DSCN3137.JPG

역사앞 광장에 접근하여 담은 사진, 한문으로 하얼빈참 간판이 붙어 있다.


3. DSCN3141.JPG

하얼빈 역으로 들어가 2층에서 플랫홈 쪽을 찍었으나 모두 지붕만 보이고 기차나 철길은 보이지 않았다. 멀리 서있는 콩크리트 물탱크가 그 때 그자리에 있었다면, 그 역사적인 사건을 목격 했겠지만 어디에서도 확인할 갈은 없고...


4. DSCN3142.JPG

멀리 플랫홈으로 들어오는 기차


5.DSCN3144.JPG

기차는 도착했으나 사람도 별로 없고 썰렁한 역 풍경


6.DSCN3145.JPG

건너편 플랫홈에 정차 중인 기차, 역시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7.DSCN3146.JPG

도착승객 출구


8.DSCN3147.JPG

뾰죽한 쇠붙이로 얼음을 깨고 있는 역무원


10.DSCN3151.JPG

손님도, 기차도 보이지 않는 한가한 역 구내


11.DSCN3152.JPG

손님도, 기차도 보이지 않는 한가한 역 구내


12.DSCN3156.JPG

꽁꽁얼어 얼굴이 새빨갛게 변해버린 어떤 나그네


안중근 의사의 자서전 (自敍傳)'안응칠 역사'는 1909년 12월 13일에 쓰기 시작해서 1910년 3월 15일에 끝마 친 것으로, 출생에서부터 의병 활동과 하얼빈 의거 그리고 여순에서 사형 선고를 받기 까지의 옥중 생활을 기록하고있다.

안중근 의사는 자서전을 끝마친 뒤, 3월 15일부터 '동양평화론(東洋平和論)'을 쓰기 시작했다. 이 때, 안중근 의사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염려하여, 히라이시 고등 법원장에게 '동양평화론'이 완성될 때까지 사형 집행을 연기해 줄 것을 요청해 허락을 받았다. 그러나 이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그 뒤, 3월 26일 에 사형이 집행되어 안중근 의사는 불과 10여 일 동안에 '동양평화론'의 머리 말과 제1장인 전감(前鑒)의 일부분밖에 쓸 수가 없었다.

배경음악 : 목련화 - 엄정행

촬영 : 2004.1월
장소 : 중국 하얼빈시 하얼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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