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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기 흥정계곡의 밤은 깊어 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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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바람소리 작성일 2006-09-12 12:03 댓글 0건 조회 459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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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사진은 47기 이종호 후배가 촬영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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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곡의 밤은 일찍 찾아든다.
폐교가 돼 버린 흥정분교 운동장에도 어둠을 끌고 오는 땅거미가 서산에 해를 남겨둔채 기어들고
음식준비며 행사장 준비가 마무리되어 가고 참석자들이 앉을 자리를 펴야할때 쯤 가득 흐린 하늘에선
빗방을 뿌리고 지나간다.
재경에서 버스가 도착할 시간인데 이처럼 야속한 일도 없을것이다.
제발 비만 내리지 말아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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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후 비는 더 이상 내리지 않았지만 믿을 수 없는게 산중 날씨라 마음만 조리고 있는데
18시경 흥정계곡은 어둠이 짙어지고 재경 동문들을 태운 버스가 도착했다.
이 버스는 재경 히말라야산악회에서 최길순 회장의 주선으로 대절한 버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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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여명의 동문가족들이 주차장에 발을 내딛을 쯤 하늘을 처다 보니 군데군데 언뜻 검은구름이 걷히고
비 걱정은 접어될것 같은 상쾌한 예감에 안도하며 재경 동문가족을 반갑게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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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려했던 비는 오지 않았고 1부 행사를 마치고 운동장에 넓게 펼쳐진 자리 위에서 신문지를 깔고
준비한 닭도리탕과 오삼불고기, 삶은 감자. 삶은 옥수수 등 으로 요기를 하고 술잔이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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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길순 내외. 심봉섭 내외. 심대흥. 조영현. 소생을 합치니 37기는 6명이 참석한 셈이다.
뭔가는 아쉽고 허전한 느낌이 들었지만 어찌하랴.
3년전인가?
농일정기전 응원차 재경 히말라야산악회 최길순 회장이 버스 2대로 100여명의 재경
동문가족과 동기들을 이끌고 대관령에 휴양림에서 1박했을때 그때 느꼈던 그 느낌 그대로다.
세월을 먹어도 우린 달라진게 없는건가
칼로 자른듯 --- 이렇게 냉정하게 선을 그으며 살아가야만 하는 현실이 적잖은 아쉬움을 남긴다.
때론 계산없이 살아 주는것이 동기간의 작은 의리며 정이라 믿고 사는데
구름에 달가듯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흘러가면 않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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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어렵게 만난 친구지간이니 오고가는 술잔에 어우러지고 취중수다에 엉켜 버린다.
후배들이 찾아와 한잔 권하고 두잔 권하는 술잔 하나 하나에 취흥이 돌고 취흥에 겨워
안고 돌아가고, 흔들어 대며 노래하고, 흥정계곡의 까만 밤은 달빛같은 낭만에 젖어 깊어만 가는데
우리네 우정도 깊어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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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친몸을 이끌고 펜션에 돌아와 간단히 몸을 씻고 쉴까 싶었는데 후배들이 안주와 술병을 들고
기어든다. 또 술판이다.
그날 하루는 27시간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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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9일 토요일 아침 9시에 동문회 사무국에서 행사에 필요한 짐을 트럭 2대에 싣고 있는 후배들과 만나
그들과 일정을 함께한 것이 무리였는가?
눕자 골아 떨어져 뜨이지 않는 눈을 뜨고 일어난 시간이 아침 6시경,
펜션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서보니 그토록 애를 말리던 검은 구름은 간데없고 맑고 푸른 하늘이
밝은 햇살을 안고 나를 맞는다.
불어오는 산들바람이 늦가을 아침 마냥 차갑다.
몸서리치도록 상쾌한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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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곡 사이로 흐르는 물줄기를 따라 행사장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웬지 무겁다.
징조가 만만치 않다. 누적된 피로가 짧은 한잠으로 제대로 풀리지 않은게지.
늙었군. 우린 늙은게야. 작년만 해도 이렇인 않았는데 --- 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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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 미즈님들이 정성껏 차례주는 따끈한 닭계장 한그릇을 비우고 잠에서 일어나지 못한 동문들을
기다리는 동안 운동장에선 족구시합이 열리고 꾼들은 술판에 어울리고 우리같은 쑥맥들과 부인들은
따끈한 커피의 진한 향과 맛을 음미하며 삼삼오오 모여 앉아 정담을 나누며 시간을 보낸다.
포도맛이 시큼달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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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경 동문들은 버스에 오르고 제2의 집합장소인 봉평들로 나갈 채비를 한다.
나는 재경 36회 선배님의 승용차에 편승하여 계곡의 좁은 길을 타고 축제장으로 들어갔다.
메밀꽃이 흐드려지게 핀 봉평의 가을은 봉평천의 맑은 물속에 파랗게 흐르고
길섶에 피어난 코스모스는 해맑은 웃음으로 하늘거린다.

10만평이라 했던가 하얀 메밀꽃이 봉평의 넓은 들을 뒤덮고 있다.
군중과 난장의 소음소리에 묻쳐 허생원의 당나귀 방울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소설속의 물레방아는 충주댁의 애틋한 하룻밤 풋사랑을 잊어 버린채 무심하게 돌고 있다.
오래전에 죽은 이효석 처럼 그의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정취 또한 죽어 없다.

수많은 사람들이 축제장을 메우고 장터엔 메밀국수, 메밀전, 메밀전병, 메밀주, 메밀찜빵,등등
온통 메밀로 만든 먹거리들이 우릴 유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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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기 김상기 동문의 메밀꽃랜드에서 메밀로 빚은 막걸리 한잔에 취기를 이기지 못하고
일시에 녹아드는 피로를 온몸으로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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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길순 내외를 남겨 두고 상경하는 버스에서 친구들과 작별인사를 나누고 후배의 승용차에 의지하여
돌아온 시간이 몽롱한 갯잠속에 흘려갔다.
일박이일의 만남은 추억속에 고이 접어두고 웬지 허전한 마음만 안고 돌아선다.
이넘들아 건강하자. 그게 제일이다. 이말 어금니로 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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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잠도 못자고 그렇게 힘든 날을 보내고도 지치지 않는 후배들을 보며
오! 세월이여!
탄식하며 봉섭이 영현이 대흥이에게 그리고 수고한 재경 임원들에게 안부 폰을 때리고
귀가하자 이내 깊은 잠속으로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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