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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기 월남전 참전이야기(9).....그리운 꽁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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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소요거사
작성일 2006-09-15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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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야자수 두그루가 나란히 서있는 회색집 문앞에 당도하자
얼굴에 찐한 화장을 하고, 람색 아오자이를 입은 여자가 반가히 맞았다.
"씬 자오? (Xin Chao):안녕 하세요?"
"쨔 씬 짜오(Da Xin Chao):네,어서 오세요?"
69년 10월초 금요일 100군수 사령부에 제출할 공문을 가지고 투이호아 비행장을
출발한지 40분쯤 걸려 나트랑에 도착했다.
한달에 두서너번씩은 다녀가는 나트랑이지만 사령부 건물 옆에 군데군데 심어져있는
바나나나무에 열린 탐스러운 열매는 볼때마다 눈에 띄이게 노랗게 익어가고 있었다.
마침 보고하는 서류는 공적(功積)심사서류도 아니고 매월 정기적으로 으례하는
월말보고서라 공무는 한시간도 않되어 끝이 났다.
투이호아에는 내일 자정까지만 귀대하면 되므로 만 하루라는 황금같은 시간이
내게 주어진 셈이다.
월남동기 하수영병장이 근무하는 5통신대는 사령부에서 불과 300m도 안떨어진 같은
영내에 있었다.
동기가 왔다고 그는 당번병을 어떻게 구어 삶았는지 출입이 금지된 장교식당으로
나를 인도하여 푸짐한 저녁을 먹였다.
그리고 둘이는 통신대 px에 마주앉아 맥주캔을 앞에 놓고 그동안의 근황을 나누며
시간가는줄 모르게 회포를 풀었다.
"야~심병장! 내 동생과 요즘도 편지 주고 받냐?
지난 7월 내가 12군수로 특명을 받았을때 하병장은 출국선 업셔호에서 약속한대로
자기동생인 수란이와의 펜팔을 주선해 줘서 그동안 3개월간 서로 편지 내왕이
있었던것이다.
"그럼~자네 동생 편지 잘 쓰던데...글씨도 예쁘고 문장도 좋고...근데 사진 보내달라면
보내즐까?"
"내가 어찌 알아. 다 자네 할탓이지"
"하긴...근데, 하병장 낼 외출할수 있어?
"왜? 시내구경 갈려구?"
"야 내가 월남와서 벌써 석달아니냐.이제 꽁가이와 '붕붕' 할때도 됐지"
"그래? 난 지난달에 한번 나갔다왔는데.가만있자. 낼이 ...토요일이지?
가능할찌도 몰라.아침일찍 일보(日報) 정리해놓고 중대장 심부름이라고
외출증 끊어 달래볼께"
(남지나해 수평선을 붉게 물들이며 치솟는 아침해가 나트랑 비치를 곱게 물들인다.
비록 전쟁중인 그때에도 이곳만은 철석이는 파도소리는 평화로웠는데....)
다음날 토요일 10시경
우리는 시내로 나가는 보급차량을 타고 나트랑 시내 아리랑식당에 도착했다.
아리랑식당은 나트랑시내에서 한국인이 운영하는 유일한 한국 식당이였다.
오래만에 불고기에다 김치까지 포식하고 낮술이어서 그런지 거나하게 취기까지 돌았다.
"근데,자네 '꽁까이하우스' 어데있는지 알어?"
내가 묻자 하병장은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다.
"전번에 한번 왔다갔지.요기서 그리 멀지 않아"
"위험한 곳은 아니지"
"하하 걱정은. 이미 우리 따이한들이 오래전부터 이용하던 단골집이라네."
그리곤 무언가 불쑥 내게 내밀었다.
"뭔데?
"마이신이야. 매독 조심해야지.자네 일 끝나고도 투이호아가서 꼭 의무대 들려야 해.
최소한 사흘은 계속 복용해야 하니까"
그래도 무장(武裝)없이 둘이 걷는건 위험하다고 아리랑식당 정사장이 '시클로'를 불러주었다.
시클로는 자전거나 오토바이앞 또는 뒷쪽에 좌석을 붙혀 손님을 실어나르는
인력거 비슷한건데
한번 이용하는데 멀던 가깝던 무조건 월남돈으로 5,000 피아스트(동)였다.
택시를 타면 최소한 7,000동이나 13,000동은 줘야하니 시클로는 많이 저렴한 편이여서
다수의 월남인들이 이용하는 대중 교통수단이였다.
꽁까이하우스는 제법 큼직한 회색벽돌 건물이였다.
주인인듯한 여자가 만면에 웃음띤 얼굴로 나오면서 '웰컴 따이한'했다.
응접실처럼 넙직한 방에 쇼파와 티테이블이 놓여있고 천정에는 선풍기가
시원한 바람소리를 내며 돌아가고 있었다.
보라빛 커틴이 쳐진 그곳은 밝지는 않았으나 청결한 느낌이 들었다.
"브이 멍 (Vui Mung):만나서 반갑습니다.
주인여자가 콜라 두캔을 탁자위에 놓으며 편히 앉으라는 손짓을 했다
"또이 꿍 머이 테(나도 역시 반갑습니다)"
옆에있던 하병장이 제법 유창한 월남말로 인사를 건넸다.
아마 매일 하루 한가지씩 사병식당앞에 걸어놓고 오가며 익히라는 월남어를
열심히 배워둔 모양이였다.
"바우 니우? (Bao Nhieu):얼마입니까?
콜라캔을 따면서 하병장이 다시 물었다.
"투엔티 달러"
여자가 손가락 둘을 세우며 말햇다.
조금뒤 화려한 아오자이를 입은 꽁가이 다섯이 나란히 앞탁자에 늘어 앉았다.
아오자이 밑에 입는 바지는 생략했는지 우유빛 같은 뽀이얀 다리가 드러나 보였다.
하나같이 긴 머리를 어깨까지 내려뜨리고 수즙은 색씨마냥 고개를 숙이고
있는 모습이 영락없는 여염집 요조숙녀 같았다.
하병장은 맨 왼쪽에 있는 약간 풍만한 가슴을 가진 꽁까이의 무릎위에 손을 얹었다.
마음에 드는 아가씨의 무릎에 손을 얹는것이 선택의 신호라 했다.
오른쪽 쇼파끝에 그림처럼 다소곳이 앉아있는 하얀 아오자이와 검은 머리칼이
잘 어울리는 조금 마른 아가씨에게 내 시선이 머물렀다.
남은 세 소녀는 소리없이 일어나서 커틴뒤로 사라지고
주인여자는 거실 녹음기의 볼륨을 높혀 은은한 음악(서양음악인지 월남음악인지는
기억이 않남)으로 분위를 고조시켰다.
맥주 한캔씩을 받아 들고 하병장과 나는 각자 선택한 꽁까이를 데리고
하나씩 배정받은 방으로 들어갔다.
방이라야 벽이 있는게 아니고 남색천으로 침대와 침대사이를 엉성하게
그냥 칸막이를 해 놓은 거였다.
서로 옆 상대방의 말소리는 물론 천을 들추면 행위하는 모습이 바로 앞에 훤히보이는
볼썽사나운 꼴이지만 이것이 오히려 안심이 되였다.
만약 사방이 막한 페쇄된 공간에 베트콩인줄도 모르는 여자와 단 둘이 있다고
생각하면 얼마나 불안하겠는가.
실제로 어느 병사가 꽁까이하우스를 들렸다가 접대부로 위장한 베트콩꽁까이에게
목이잘려 피살된 얘기를 월남고참들에게서 여러번 들은적이 있었다.
파월 초기에는 소총이나 수류탄으로 무장한채 꽁까이하우스를 출입했다고 한다.
행위내내 M식스틴의 안전장치를 잠그지않고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고 있었다고 했다.
그것도 안심이 안되어 단체로 입장한 전우의 안전을 염려해서 하우스 앞문에
역시 무장한 헌병이 보초까지 서 줬다니 그 실상을 짐작할수 있지 않은가?
.
(아오자이(Ao dai)-'긴옷'이라는 뜻이다. 아오자이는 중국의 전통옷을 베트남의 풍토와
민족성으로 동화시킨것으로 이미 천년전 Ngoc Lu(응억루)와 Hoa Bihn(호아 빈)지역에서
그 모습이 발견되었을 정도로 역사가 깊다.
상의는 중국복(胡服)의 영향을 받아 옆이 길게 트이고(슬릿) 깃은 차니니스 칼라고,
바지는 끼지않고 풍성하다.
보통 흰색이 가장 많고 젊은이들중에는 화려한 칼라도 많이 입으며
베트남인의 인생관과 독립정신이 함유된 고유전통의상으로 내려온다.
조용한 미풍속에 길게 늘어트린 칠흙같은 머리칼과 하얀 아오자이 자락을 바람에
흩날리며 열대의 조숙한 몸매를 그대로 드러낸채 해변을 걷는 꽁까이를 보고서
누군들 가슴이 설레이지 않으랴...)
자그마한 체구에 피부는 유난히 하얀 꽁까이였다.
다정히 손을 잡으며 새로 딴 맥주를 건넷더니 쌩큐~하면서 맛있게 비웠다.
월남어교육때 배운 지식을 총동원하여 한마디 했다.
"안 뗀 라지? (이름이 뭐지요?)
꽁까이가 살포시 웃으며 말했다.
"실로이 아인 (Xin loi anh:죄송해요)"
나중에 안 일이지만 월남사람들은 이름은 물론 사진도 같이 찍기를 거부한다고 했다.
만에 하나라도 베트콩에게 사진이 넘어가면 목슴을 부지하지 못하니까.
내킨김에 또 말을 걸었다.
"바오니에우 뚜이? (baonhieu tuoi?:나이는 몇살이죠?)
이번에는 별로 망설이지않고 대답했다.
"므이 샤우(muoi sau:열여섯이예요)
뽀얀 애띈 얼굴이 너무 애초러운것같아 가만히 손을 잡으며 속삭였다.
"꼬 또이 콩?(Co doi khong?)
갑짜기 꽁까이가 한손으로 입을 가린채 키득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콩! (khong:아니예요)
어리둥절해서 옆 커틴을 얼른 들추고 하병장에게 물었다.
그는 지금 막 열반(悅磐)작전에 돌입하려는듯 엉거주춤한 찰라였다.
"저 아가씨 왜 웃지?"
"이 친구야...지금 이시점에서 '배고프냐?'는 말이 왜 나와?"
"뭐? 이게 '기분이 좋아요?' 라는 말이 아니야? 이~런~"
떨리는 손으로 아오자이의 옆단추를 하나하나 벗기는 동안
꽁까이는 미동도 않은채 맑고 커다란 눈으로 나를 그윽히 주시하며 알듯 모를듯
엷은 미소를 지었다.
가슴이 철렁하도록 아름다운 눈빛이였다.
만약 이 몹쓸 전쟁이 아니였더라면 겨우 열대여섯살밖에 안되는 이 아가씨가
이런곳에서 낯선 이국인과 이런자리를 갖을리 있으랴.
앵두같이 붉고 작은 입술에 살포시 입마추며 이렇게 말해줬다.
"뎁 꽈(Dep qua) : 예뻐요.
긴 속눈섭이 파르르 떨리더니 매끈한 알몸을 슬몃 안겨왔다.
"깜 옹 (Cam On) : 고마워요.
두시간 반동안 그녀는 다섯가지 맆 기교와 열두가지 체위 변화술로 나를 공략해 왔다.
取脣狡舌(취순교설), 三沈五浮(삼침오부),猛虎弄兎(맹호농토),少蜂開花(소봉개화),
君子呼雨(군자호우). 玉女甘唱(옥녀감창),......
어떤것인가는 너무 야하므로 파월수첩에는 있는 원본내용을 여기 다 옮기지는 않는다.
다만 이제 스물셋의 한창 왕성한 내 나이인데도 마지막 열두번째 兩氣和同(양기화동)이
끝나고 담배 한가치를 피워무는 손이 불현듯 떨리고 눈앞이 몽롱해 지는것을 보니...
대단한 침방기술임은 틀림없었다.
만일 이 대목에 정히 궁금한 전우들이 있다면 팩스번호를 알려주시면
원본을 삭제하지 않은채로 온전히 전송해 드릴 생각이 있다. ㅎㅎㅎㅎ
꽁까이 하우스를 나서며
문앞까지 따라나온 그녀를 향해 진심으로 손을 흔들었다.
"씬 땀 비앳 (Xin Tam biot); 잘있어요.
그녀도 마주 손을 흔들어 주었다.
"땀 비엣 (Tam biot): 안녕히 가세요.
그리고는 돌아서는 내빰에 돌연 입을 마추더니 말했다.
"또이 뗀 라 리렌:(저 '리렌'이예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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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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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일담)
귀국할때까지 '리렌'에게 여섯번 정도 들렸다.
그때마다 그녀는 아주 오래 알고있는 사람처럼 스스럼없이 나를 반겨줬다.
물론 고객으로서지만.
세번째 만났을때. 땀에 젖은 몸을 내게 안겨오며 리렌은 이렇게 말했다.
"엠 이우 안(em yeu anh: 사랑해요)
거짓인지 알면서도 기분이 묘했다.
귀국 한달전
마지막으로 찾았을때 침대에 들어온 그녀의 몸이 불끓듯 열이 나 있었다.
아마 몸살이 심하게 났던 모양이다.
도저히 함께할수 없다며 다른 꽁까이를 대신 불러주겠다고 헸지만 거절했다.
그리고 밤이 새도록 불덩이같은 그녀의 이마에 물수건을 갈아줬다.
새벽녁에야 겨우 그녀의 열은 많이 내려갔다.
하루밤새 몰라보게 핼쓱해진 얼굴을 바라보며
이제 다시는 못온다고 손짓발짓으로 말했을때 리렌은 깊히 고개를 떨구었다.
주머니에 있던 군표달러 와 월남돈 피아스타를 몽땅 침대위에 내놓고
가만히 손을 잡으면서 속으로 말했다.
리렌...부디 안녕!
.
.
.
두번인가 나트랑비치에 놀러갔을때도
리렌은 사진촬영을 완곡히 거부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아름다운 그녀의 모습들이 점점 희미해지는 지금
사진이라도 있었으면 더욱 좋은 추억을 오래 지니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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