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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기 사명대사와 덕천가강(泗溟大師와 德川家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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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용혀니 작성일 2012-05-31 06:15 댓글 0건 조회 509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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泗溟大師와 德川家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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泗冥大師 像

몇 년 전에 용인에 있는

'세중옛돌박물관'에 석인상(石人像)을 보러 갔던 적이 있다.

일본에 반출되어 있던 문인석, 무인석, 동자석, 벅수등 70여 쌍을

이 박물관에서 다시 찾아다 놓았던 것이다.

그런데 박물관 한쪽 벽면에 두 사람의 한시가 걸려 있는게 눈에 띄었다.

사명대사(四溟大師·1544~1610)가 임진왜란이 끝난 후인 1604년에

전후 처리문제로 일본에 건너가서 일본 통일을 성취한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1542~1616)를 처음 만났을 때

주고받은 문답이었다.

임진왜란이 끝나고 일본에서는 죽은 히데요시 추종 세력인 서군(西軍)과

이에야스 세력인 동군(東軍)이 격돌하여 큰 전쟁을 치렀다.

1600년 9월 15일에 천하 패권을 놓고 맞붙은

'세키가하라 전투'가 이것이다.

여기에서

이에야스의 동군이 승리하면서 일본 열도는 완전한 통일이 이루어졌고,

그 여세를 몰아 이에야스의 기세가 최고조로 달해 있던 시기에

泗冥이 방문한 것이었다.

먼저 이에야스가

사명대사에게 선제공격을 날렸다.

'돌에는 풀이 나기 어렵고(石上難生草),

방안에는 구름이 일어나기 어렵거늘(房中難起雲),

너는 도대체 어느 산에 사는 새이기에(汝爾何山鳥),

여기 봉황의 무리 속에 끼어들었는가(來參鳳凰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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德川 家康 초상

당시 조선과 일본은

사용하는 언어는 달랐지만 한문은 같이 썼기 때문에

붓으로 쓰는 필담은 가능한 상황이었다.

곧바로 사명이 맞받아쳤다.

'나는 본래 청산에 노니는 학인데(我本靑山鶴),

항상 오색구름을 타고 놀다가(常遊五色雲),

하루아침에 오색구름이 사라지는 바람에(一朝雲霧盡),

잘못하여 닭 무리 속에 떨어졌노라(誤落野鷄群)'.

사명은 과연 고승이다.

그 담대한 배짱과 칼날 같은 선기(禪機)가 이 시 한 수에 담겨 있다.

사명이 일본에 잡혀간 조선포로 3000여명을 데리고

귀환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러한 家康와의

통쾌한 문답도 작용했던 것 같다.

올해가 임진왜란420주년이 되는 흑룡의 해이다.

일본은 于山島(독도의 옛이름)를 저의땅이라고 우기는데

당쟁(黨爭)이라는 국론 분열로 무너졌던 조상들의 전철을

또 밟아서는 안 된다.

조용헌 조선일보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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