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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기 "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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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崔 益 碩 작성일 2008-03-25 01:46 댓글 0건 조회 71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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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누가 죽으면 그의 행적을 정리한 행장을 쓰고 그중에서 핵심적인 사항만 정리해 묘비에 담은
묘갈명 쓰기가 한창이었다 . 숙종때 그당시 우암 송시열에게서 묘갈명을 받으면 가문의 영광이
 아닐 수 없었다
송시열의  제자인 윤 증은 자신의 아버지인 윤선거의 묘비명을 지어달라고 부탁했다 , 그런데 평소 윤선거 부자를 탐탁지 않게 보던 송시열은 성실하지 못한 묘비명을 지어 보냈다
물론 당시 복잡한 정치적인 이유도 있었겠지만 결국은 스승과 제자가 노론과 소론으로 등을 돌리고 말았다

사람은 누구나 죽을때 유언을 남기고 싶어한다
보통사람들은 자식이나 마누라 재산등이 주요한 내용이지만 우리와 , 일반적인 사람들과 다른삶을 살아온 종교인들은일반인들과 유언과는 다르다

교황 요한 바오르 2세는 " 나는 행복합니다 그대들도 행복하시오 울지 말고 함께 기쁘게 기도 합시다 " 라는 마지막 메세지를 남겼다
마더 테레사 수녀는 " 인생이란 낯선 여인숙에서의 하룻밤과 같다 " 라는 말을 남기고 갔다

서산 대사는 자신의 영정을 보며 "80년 전에는 저것이 나이더니 80년 뒤에는 내가 저것이구나"
일제시대때 판사를 하다 한 죄인에게 사형을 선고하고 금강산으로 출가한 효봉 스님은
" 내가 말한 모든 법 그거 다 군더더기 오늘 일을 묻는가 달이 일천가 에 비치리" 라는 임종게를 남겼다
이발사를 하다 출가했던 구산 스님은 " 온산의 단풍이 봄의 꽃보다 붉으니 삼라만상이 큰 기틀을 온통 들어냈도다 삶도 공하고 죽음도 또한 공하니 부처의 해인 삼매중에 미소 지으며 가노라 "
통도사 경봉스님은 임종 무렵에 제자가 " 스님 가시면 다시 뵙고 싶습니다 어떻게 하면 뵐 수 있을까요 ?" 하고 물으니 "야반 삼경에 대문 빗장을 만져보아라 " 라는 대답을 남기고 떠났다 

 아일랜드의 극작가 버나드 쇼의 자찬 묘비명은

"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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