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별마당

기별게시판

56기 올해의 어휘-호질기의

페이지 정보

작성자 겨울백수 작성일 2008-12-25 22:25 댓글 0건 조회 689회

본문

성탄절 아침에 
 
 이 무렵에 서면 지나온 한 해를 정리하고 싶어지는가보다. 이맘때면 이른바 ‘올해의 어휘’가 등장해 세상의 주목을 끈다. 그 해의 사회상을 절묘하게 함축하고 꼬집고 비틀어 놓음으로써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한자문화권의 중심에 속한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에서 모두 비슷하다.

올해의 어휘는 지난 해를 정리하는 것은 물론 다가올 일년을 준비하는 키워드가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해마다 ‘교수신문’에서 전문가들의 추천과 설문조사를 거쳐 사자성어의 형태로 내놓는다. 올해는 ‘호질기의(護疾忌醫)’가 선정됐다. 질병이 있어도 의사를 찾기를 꺼려 몸을 망치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는 것이다. 잘못이 있어도 주변의 충고를 듣지 않는 세태를 꼬집은 말이다.

정파의 이익에 집착해 세밑을 소란스럽게 만들고 있는 정치권을 향해 대놓고 한 소리 같다. 후보에 오른 나머지 어휘도 올 한 해가 얼마나 험하고 숨가빴는가를 보여준다. 토붕와해(土崩瓦解;사물이 수습할 수 없을 정도로 손상됨), 욕속부달(欲速不達;일을 서두르면 오히려 이루지 못함), 자기기인(自欺欺人;자신을 속이고 남도 속임) 등이 그렇다.

일본은 지난 95년 이후 한자검정능력협회에서 매년 공모를 통해 올해의 한자를 선정하는데, 올해는 변할 ‘변(變)’자다. 총리의 잦은 교체, 주가폭락, 세계경제 급변 등이 반영된 결과라고 한다. 2007년 식품원산지 위조사건 등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거짓 ‘위(僞)’가 선정된 데 이어 두 해 연속 부정적인 어휘다.

올림픽 개최를 통해 국가적 도약을 기대했던 중국도 자연재난과 내부갈등, 세계경제 한파의 그늘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올해의 가장 뜨거운 단어(熱詞)로 ‘베이징올림픽’을 꼽았다. 그러나 티벳사태로 빛이 바랬고 기록적인 ‘폭설재해’와 엄청난 사상자를 낸 쓰촨(四川) 대지진의 진앙지였던 ‘원촨(汶川)’이 2008년의 아픈 기억으로 꼽혔다.

돌아보건대 세상은 무겁고 어둡고 소란스러웠다는 고해성사나 다름없다. 오늘은 아기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는 성탄절이다. 예수의 사랑이 온누리에 가득하길 소망한다. 이 성탄절 아침, 다가 올 2009년에는 우리가 선택할 어휘가 좀더 부드럽고 밝아지기를 기원해보자.

12.25 강원도민일보 지면에서 옮김.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