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별마당

기별게시판

56기 킬링 필드 (The Killing Fields)(펌)

페이지 정보

작성자 라상식 작성일 2008-04-16 23:19 댓글 0건 조회 850회

본문

The Killing Fields -1984-


(킬링 필드)







다음글은 지금은 고인이 되신 평론가 정영일님의 그가 쓴 영화, 음악, 세상이야기를 미세기 출판사에서 1994년 8월 30일 발행한 "마지막 로맨티스트 정영일"(정중헌 역음) 중에서 옮겨온글(241쪽~244쪽) 입니다




<킬링 필즈>,


그 살륙의 현장에 울리는 투란도트



화제의 영화 <킬링 필즈>(Killing Fields)를 보면서 음악 모르는 관객이 우는 곳은 두 군데다. 하나는 굵은 빗줄기 내리는 프놈펜 주재 프랑스대사관의 이별 대목인데, 『뉴욕타임즈』시드니 샌버그 특파원과 그의 조수 디스 프란이 크메르 루즈 공산군에 의해 헤어지게 되는 장면이다. 아메리카 국적의 패스포트를 써보려고 디스 프란의 사진을 현상해서 붙이지만 안타깝게도 사진은 쓸모가 없다. 끝내 디스 프란은 공산군에게 끌려가는데,프놈펜에 내리는 비는 쉴 줄을 모른다. 또 한 곳은마지막 장면인 샌버그와 프란이 파란곡절과 온갖 고생 끝에 지옥을 거쳐 다시 만나는 기막힌 끝대목이다.


1979년 가을. 샌버그는 적십자사로부터 연락을 받고 타일랜드로 달려간다. 프란은 공산지옥 캄보디아를 탈출하여 건강을 회복한 후 적십자병원에서 후속 탈출난민들을 간호하고 있던 것이다.


설마했던 꿈같 재회 - - 여기서 기막힌 명곡(클래식은 아니지만 명곡은 명곡이다)이 흐르면서 몸이 떨려올 만큼 감동적인 명장면이 펼쳐지는 것인데, 그 곡은 존 레논의 걸작 「이매진」(Imagine)이다. 서로 손을 내밀면서 다가서는 프란과 샌버그. 피난민 아이들이 말없이 둘을 바로보고 있다.


"용서해주게나. 할말이 없네."


"시드니, 당신 책임이 아냐. 용서고 뭐고 없어!"


「이매진」은 심포니처럼 계속된다. 객석(뉴욕 시사회가 있었던 시네마 1 극장)은 흐느낌으로 휩싸이고 이어서 떠나갈 듯한 박수갈채 속에 파묻힌다. 페이드아웃된 화면에 "서해안에서 기다리던 처자와 재회한 디스 프란씨는 지금 『뉴욕타임즈』의 사진작가로 활약중이다"라는 자막이 나오자 관객은 다시 환호한다. 나 개인 이야기라 죄송하지만 아침 7 시, 그 넓은 극장에 혼자 앉아 이 영화를 보고 그리고 혼자 '울었기 때문'에 뉴욕이나 서울의 만원객석 반응은 잘 모르지만 그것은 짐작만으로도 충분하다.


눈물 나오는 두 군데에 한 대목 더하는 것은 음악팬을 위한 곳이다. 음악을 아는, 음악 좋아하는 관객이면 틀림없이 눈시울이 붉어질 곳이 하나더 있기 때문이다.


푸치니 3 막 오페라 「투란도트」. 1926년 4월 26일 밀라노 라 스칼라서 초연된 이 명작 가극의 제3막 아리아 「아무도 잠들지 못하리」가 기막히게 울려퍼지는 장면은 눈물을 참을 수 없는 가슴 메이는 신이다.


늘 깊은 이해와 우정을 지니고 일해온 샌버그와 프란이 프놈펜 프랑스대사관에서 헤어진 것은 1975년 4월 17일이다. 그날 프란은 캄보디아인이라 시리크 마티크와 같은 정치범 인사들과 함께 붉은 크메르에게 끌려간다. 그날부터 샌버그의 프란 구출활동이 시작되는 것이지만 전란 속 프란의 행방은 묘연하다. 뉴욕으로 돌아와 퓰리처상까지 받은 샌버그는 친구를 죽음의 구렁텅이로 내주었다는 자책감 때문에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다. 평화로운 일상에 젖어들 수가 없는 것이다.


뉴욕. 닉슨이 TV 연설을 하고 있다. 그의 목소리에 겹쳐 「투란도트」가 흐른다. 「오늘밤은 아무도 잠들지 못하리」(Nussen Dorma). 카라프 왕자의 아리아가 영화관을 압도한다. 샌버그의 카세트라디오는 풀 볼륨으로 보는 사람의 가슴을 친다....


북경의 투란도트 공주는 세 가지의 수수께끼를 약혼자에게 내놓고 이를 풀지 못하면 결혼은커녕 상대 남자의 목을 쳐서 죽인다. 희생자는 늘어난다. 투란도트는 「이 궁전 안에서」를 노래하면서 조상인 로우 린 여왕이 이국인에게 더럽힘을 당한 끝에 죽었다는 사실을 말하고 그 할머니의 복수를 위해 수수께끼를 내는 것이라고 밝히는데, 이때 나타난 카라프 왕자는 세 가지 수수께끼를 모두 푼다. 왕궁 정원에서 카라프는 자기의 사랑이 승리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투란도트에게 자기 이름을 알아맞추라는 수수께끼를 낸 그는 공주에게 사랑의 힘을 깨닫게 하려는 것이다.... 얼음덩어리같은 공주의 마음일지라도 자기의 사랑으로 이를 녹여보이겠다는 카라프.


푸치니의 아름다운 멜로디가 샌버그 가슴 속의 사랑의 집념과 결의를 오페라와 함께 그려나가는 멋진 연출은 나의 가슴을 쥐어 뜯으면서 울린다. 프란체스코 모리날리 프라델리 지휘.


브리기트 닐슨을 상대역으로 한 전성기 프랑코 코넬리의 깊고 벅찬 가창을 골라 쓴 롤랑 조페 감독과 음악 디렉터 마이크 올드필드의 뛰어난 감각은 아주 효과적인 선택이요 활용이다.


지난해 아카데미상(제56회)때 화제가 되었던 작품 <위험한 해>에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네 개의 마지막 노래 중 「9월」로 심리묘사에 성공했던 것처럼 <킬링 필즈>서의 「투란도트」는 클래식 보컬을 사용하여 성공한 두드러진 예라고 하겠다.


<킬링필즈>가 그리는 것은 실록, 곧 사실이다. 1980년 1월 20일자 『뉴욕타임즈』매거진에 발표되자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그해 퓰리처상을 받은 『뉴욕타임즈』기자 시드니 H 샌버그의 르포르타주 『디스 프란의 생과 사』는 1984년 영화화되어 1985년 아카데미영화상에서 남우조연상(디스 프란 역의 하인 S. 뇨르)과 촬영상(크리스 멘지스)및 편집상(짐 클라크)을 받고 그밖에 다수의 영화상을 수상한 수작이다. 그러나 캄보디아 피난민들은 "우리들 고생의 2. 3할밖에 그려지지 않았다"고 말한다. 영화의 이해를 돕기 위해 사실(史實)을 쓰면 이렇다.


크메르 루즈, 곧 폴 포트 정권이 시도한 것은 캄보디아 전국민의 무명화이다. 프놈펜 공략(1975년 4월 17일)에 이은 국민 대다수의 강제이주와 호적폐지의 결과, 사람들은 혈연, 지연의 띠를 잃고 전국 약 6천의 사하코(인민공사)에 갇혔다. 사하코는 일종의 강제노동수용소다. 집단급식(하루 두 공기의 죽)으로 연명하며 하루 10~20시간의 노동을 강요당하며 결혼은 강제, 부모와 자식은 별거, 사하코간의 왕래는 금지, 노래.춤.장발.색깔 있는 옷도 금지, 연애도 금지, 친구와의 잡담도 금지....라는 것이 크메르 공산군의 공통사항이었다. 근대적인 의료시설도 약품도 없다. 구미 여러 나라서 폴 포트 정권의 대명사처럼 일컬어진 자기 국민의 대학살은 이러한 초관리 시스템의 산물이다.


굶주림, 중노동, 질병에 의한 간접적 학살과 적색 크메르(폴 포트파 공산당)에 의한 무차별 처형을 합친, '부자연스런 사자(死者)'의 총 수는 현 프놈펜 정권의 생존자 호별조사 결과 약 331만7,000명으로 밝혀지고 있다. 여러가지 서방측 통계로도 120만~350만 명에 이르는데, <킬링 필즈>의 디스 프란도 하마터면 그 숫자 속에 끼일뻔한 사람이다.


일본에 있는 캄보디아 난민들은 <킬링 필즈>에 대한 일본 시민들의 영화평에 불만을 느끼고 있다고 『아사히 신문』은 쓰고 있다. "그것은 폴 포트 정권시대의 '지옥의 평화'에 의한 대량살륙을 전란의 희생으로 잘못 알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착각.오해는 요컨대 무지에 의한 것이리라." 이 기사는 일본인의 무지가 당시 폴 포트 정권의 패트론이었던 중공 문화혁명파의 눈치보기로 비롯된 것이라고 덧붙이고 있다.


7월 하순 현재 <킬링 필즈>의 우리나라 흥행성적은 그 관객 동원에 있어서 우리 영화계의 모든 기록을 바꾸고 있는 중이지만 여기서의 푸치니와 존 레논은 영원히 기억될 명곡이라고 하겠다.



- 정영일 -


(『객석』, 1985년 8월)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