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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기 봉녀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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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검정고무신 작성일 2006-02-24 16:24 댓글 0건 조회 849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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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슬픔


“예쁘다”.

어린 시절부터 그랬다. 사람들은 봉녀를 보기만 하면, 이 말을 해줬다.

시골에서 자란 봉녀는, 또레 남자들과 잘 어울렸다.

철이 들면서, 사내란 건 모두가 늑대란 걸 알았다.

그러다가 사내들이 하잔대로 해줬다.

“동네 챙피해 못살겠다.”

결국 아빠한테 들켜, 모진 매를 맞았다. 봉녀는 작은 도시로 전학을 했다.



고등학생이 되자 젊은 교사가 좋았다. 꼬시기로 결심했다.

교사는 아주 쉽게 빨려들었다.

“황홀한 요정이야. 넌”

“날 취하게 하지 말아요, 선생니임,”

“너 이 비밀, 죽을 때까지 지켜! 말하면 끝장이야. 알았어?”

"에게 선생님은 겁쟁이!"

봉녀는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졸업을 하자 서울로 진출했다.



남들이 대학을 간다니까 봉녀도 가고 싶었다. 그러나 학자금이 없었다.

봉녀는 차를 날랐다. 호텔이나 여관엘 멋모르고 출입했다.

“남자들은 웃기는 동물이야, 팍팍 돈을 줘…”

돈이 생기자 엄마에게 몽땅 보냈다. 그냥 그러고 싶었을 뿐이었다.

봉녀는 그러다 청량리 588번지로 빠졌다.

수캐들이 자꾸만 찾아왔다.



돈을 대준다는 뚱딴지를 만나, 초급대학엘 등록했다.

책을 들고 대학의 교실에 들어가자, 남학생들의 시선이 무례하게 집중되는 걸 알았다.

정숙한 미모의 여대생 !

봉녀는 이때부터, 엘린이라는 별명을 썼다. 본명이 너무 고전가락이라는 게 그 이유였다.

“나 때문에 밤잠 설치는 학생들이 측은해 보였어요”.


                       
봉녀는 재벌의 종자를 찾아냈다.

버르장머리 없는 종자를 첨으로 내편에서 얼르며 친해지려 했다. 소위 전략공세를 감행했다.

그놈도 쉽게 빨려들었다.

말 없는 사기----!

그걸로 족했다. 실로 정열과 낭만의 광활한 평원에서 청춘의 계절을 구가했다.



정이란 뭔가? 사 랑도 줬다. 드라마같은 로맨스도 아기자기하게 즐겼다.

비행기를 타고 외국여행도 신나게 했다.

최고급 호텔엘 묵으며, 돈의 종자로부터 황금언약을 받아냈다.

큰 절엘 찾아가 법당에서 말했다.

“엘린을 위해서라면 목숨도 바치겠어, 신불앞에서 하는 사나이의 맹세야.

엘린도 맹세할 수 있어?”

“맹세해요, 나도!”



은행권의 종자가 해준 결혼신청이었다. 이 순간만은 진실해지고 싶었다.

봉녀는 588번지의 그 치욕의 역사를 고백하고 싶었다.

그러나 ...

봉녀는 진지하고 심각하게 고민을 했다.

그러다가, 백성을 기망하고 재산을 챙겨 호사하며, 시민의 양심을 우롱하는

정치가들의 모범을 생각의 상자에 집어넣었다.

그들처럼 나만 잘 살면 그만이잖아? 

침묵이 금이란 걸 기억해냈다. 이제 상류사회로 뛰어든다는 생각을 하니,

세상이 황홀하기만 했다.



그런데 벼락이 콧등에서 터졌다.

벗꽃이 활짝 피어나는 호숫가까지 드라이브를 한 다음, 돈의 종자는 눈에 이슬을

담고, 슬픈 얘기를 들려주었다.

‘어느 창녀의 일기’였다..

그것은, 아주 정확한 사실이었고, 바로 봉녀의 실화였다.

모래위의 누각은, 한꺼번에 와르르 무너져 버렸다.
 

그 때쯤 아빠가 돌아가셨다. 봉녀는 며칠을 울었다.

“진짜 진짜 효도 한 번 해보고 싶었는데…”

봉녀는, 멀리 남도의 해변가로 도망을 가서, 가난하나 아주 성실한 남자를 만났다.



“엘린을 내게 보내주신 건, 부처님의 뜻입니다. 천생배필로 만나게 한 겁니다.”

집요한 결혼신청이었다.

과거를 고백하긴 싫었다. 그러나 정숙하고 고결한 여자라는, 아름다운 오해를

하도록 남편될 사람을 기만하기가 싫었다. 그래

“ 아내가 될 자격이 없어요. 난 과거가 많아요. 종점까지 과거를 묻지 말아요.

이것이 나의 유일한 결혼조건이예요,”



봉녀는 열심히 주부의 역할을 했다. 많은 세월이 지나,

결국, 남편을 출세시켜 회사의 중역이 되게 하고, 봉녀는 엄청난 부자가 되었다.

몇차례 부동산을 사고 판 것이, 횡재란 걸 왕창 가져다 주었다.

봉녀는 공주 셋을 낳아, 교육을 잘 시켰다.

그러다 공주 하나가, 재벌가로 시집을 갔다.



속된 말로, 노다지를 캤다.

그런데 봉녀의 가슴엔, 검은 구름이 점점 더 몰려왔다.       
                       
“엄마완 아무 상관이 없어요, 엄마의 과거완 아무 관련이 없단 말이에요.”



봉녀는 참회와 눈물의 기도를 드렸다. 

봉녀는 사원엘 갔다가 ‘인과응보’와 ‘석복’에 관한 법설을 들었다.

인과응보라는 말이 너무나 무서워, 깊은 밤의 악몽이 거듭되었다.

쾌락과 고통이 언제나 동행한다는 걸, 봉녀는 절정의 시간에, 분명히 깨달았다.



종교전쟁이, 사실상 오늘의 세계대전인데, 이 얼마나 아름다운 한국혼인가?       

가장 부럽고 존경하는 사람들

봉녀는 이제 제일 존경하고 부러운 계층이 누구란 걸 알았다.

산업현장에서, 시장에서, 밭에서, 그리고 부엌에서,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종신

노역의 힘겨운 배역을 맡아, 땀과 눈물로, 인내와 희생으로, 봉사와 정성으로

열심히 살아가는 이땅의 무수한 천사들, 바로 사랑스런 주부들이라는,

아름답고 고결한 사실을 말이다.

       

“나도 그렇게 살아왔다면 난 진정으로 행복했을 걸…엉엉엉…!!!”

봉녀는 지금도 골방에 들어가 이따금 통곡의 참회를 한다.

봉녀는 법당과 골방의 참회가 삼공주의 복을 지켜주는 유일한 처방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난 좋아할 일이 없어요. 두렵기만 해요, 엎드려 용서를 빕니다. 부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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