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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기 하느님! 거기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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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푸른세상 작성일 2008-08-29 18:15 댓글 0건 조회 796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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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 거기 계세요?

머리를 감고 거울 앞에 섰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오늘 따라 유난히 초라해 보였다.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털어 내고 다시 머리를 쓸어 올려 보며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을 유심히 들여다보아도
달라진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이참에 미용실이나 한 번 다녀올까?,
마음속으로 되새기다 큰 맘 먹고 미용실 문을 두드렸다.

“안녕하세요? 이게 얼마만이에요?”
반갑게 맞아 주는 미용실 원장의 따뜻한 인사말에
한동안 뜸했음을 실감하게 되었다.

“어떻게 머리 하시려고?”
“일단 커트 좀 해줘요.”
여자들 파마 한 번 하려고해도 부담되는 주머니 사정에
마음대로 들이대지 못하는 심정이 바로 여자들의 마음일 것이다.
1년에 한 번이나 찾아올까?
(내가 너무 심했나? ㅎㅎ 하여간 행사 빼고 그런 편이다.)

긴 머리를 왜 그리 고집하는지
만질 때마다 빠지는 머리카락을 싹둑 자르지도 못하고
벌벌 떠는 내 모습이 때론 우습기도 하다.

이 미용실 문을 노크한지도 어느덧 18년이란 세월을 맞게 된다.
오로지 외길 밖에 모르는 내 성격 때문이겠지........

미용실 원장 이미 내 마음을 읽었는지
“언니! 얼마나 자를까요?” 하며 내 눈치를 본다.
“ 그냥 팍 쳐 버려요.”
나도 모르게 많이 잘라 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바닥에 떨어지는 내 머리카락의 길이가 얼마 되는 것 같지 않았다.
“더 자르지.”
새삼스러운 내 말에 원장도 걱정이 되나보다.
“언니! 무슨 일 있어요?”
여자가 머리를 자를 때는 다 마음의 변화가 있을 때란다.
남자들은 모르겠지만.......ㅎㅎ

“아니야. 그냥 잘라줘.”
그렇게 짧은 머리를 원했지만 아직 긴 머리가 어울린다며
10cm 정도만 자른단다.

이번엔 머리를 잘라 놓으니 더욱 초라해 보였다.
“파마 해야되나봐? 더 초라해 보이네.”했더니
“언니! 가을이니까 웨이브 좀 넣어야 생기 있어 보일 것 같은데.”
“그래 그럼 내친 김에 파마까지 하자.”
말 떨어지기가 무섭게 남자 미용사들이 달려들었다.
그러고 보니 원장 빼고 전부 남자 미용사들이었다.

갑자기 마음이 변하려고 했다.
왜?
미용비가 더 비쌀 것 같아서라는 생각 때문에........ㅋㅋ

“요즘엔 얼마나 하나?”
은근히 원장 마음을 떠 봤다.
“싸게 해도 6만원은 줘야지요.”
그래 일년에 한 번인데 그 정도는 투자해야지.
마음속으로 결정했는데
“언니! 우리 점심 먹고 합시다.” 하며 내 손을 잡고 식당으로 향했다.

“언니! 뭐 드실래요?”
“그냥 동생이 먹고 싶은 것 시켜.”
“알았어요. 그럼.”
주위를 둘러보니 전부 아줌마 부대들이었다.
불경기 속에서도 아줌마 부대는 변함이 없다.
나도 아줌마인데…….ㅎㅎ
아니 난 할머니지. 우하 하하하하

부대찌게 2인분 시켜 놓고 원장이 내게 물어 왔다.
“언니! 하나님이 계신다고 믿어요?”
생뚱맞은 질문에
“그건 본인이 생각하기 나름이지.”하며 얼떨결에 답변했다.
“그런데 왜 갑자기 하나님?”
“동생 교회 다녀?”
원장 말에 되묻는 내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는지 자기 말만 하였다.

식탁 가까이 다가앉더니
“언니! 나 아무래도 혼자 못살 것 같아요.”
그래 그러고 보니 이 원장도 이혼하고 혼자였다.

우리 아들이 초등학교 5학년 때만해도
원장 부부는 같은 직업을 갖은 잉꼬 부부였다.

내 기억으로는
일 마친 저녁엔 늘 둘만의 데이트를 하는 모습을 종종 보았었기 때문에
난 금슬 좋은 부부로만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 나이 더 먹기 전에 결혼해야지. 남자는 있어?”
“아니 없어요.”
힘없이 대답하는 원장의 얼굴을 자세히 보니 내가 지나온 세월이 그에게도 묻어 나왔다.

“그런데 나이 어린 남자가 더 나아요?”
“아니면 나이 좀 있고 능력이 있는 남자가 더 나아요?”
허~~어 참 우스꽝스러운 질문이로세.
하면서도
‘오죽 답답하면 오래 만에 만난 나에게 자신의 사정을 늘어놓을까?,
하는 가여운 마음까지 들었다.

“내 생각엔 동생이 잘 생긴 신랑에 젊음까지 갖추었는데에도 실패를 겪었으니
이번엔 나이 지긋하고 능력 있는 사람의 사랑으로 이 기회에 이 일을 그만 두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여자가 능력이 있으면 남자들은 딴 생각을 하더라고.”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보편적으로 여자들이 더 벌면 남자들의 자존심을 건드리게 되는 건지 밖으로 돌더라고.”
원장은 내 말에 절대 공감을 했다.

“맞아요. 맞아요.” 하며 잘 들어 주는 편이라 본의 아니게 인생 상담자가 되어 버렸다.

옆에서 우리 목소리보다 더 큰 아줌마 부대의 목소리에 간혹 눈살을
찌푸리면서도 원장은 자기의 생활을 나에게 잘 전달했다.

미용실로 돌아 온 원장은 손님을 맞으면서도
하느님의 원망으로 가득하였다.

“1년 내내 밤으로 울며 매달리고 기도했는데 하느님은 나를 사랑하지 않나 봐요.”
“응답이 없어요.”
“교회 다니기가 재미없어요.”

알 것 다 알고 산전수전 겪은 사십대의 여인의 볼 메인 소리를 하느님은
듣고 계실까?

“하느님! 거기 계세요.”
“하느님을 그토록 애타게 찾고 있는 여인네의 소원을 들어 주세요.”

“요즘 불경기라 하느님도 바쁘실 것이라.”는
원장의 마지막 말이 나의 귓전을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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