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별마당

기별게시판

47기 엄마의 반지

페이지 정보

작성자 불량마눌 작성일 2006-11-07 19:41 댓글 0건 조회 1,037회

본문

“오늘은 어디에도 가지 말고 집에 있어라.”
잠시 다녀오시겠다며 집에 꼼짝하지 말고 있으라는
엄마의 당부 말씀을 전 까마득히 잊고 있었습니다.

머리맡에 놓아두었던 자리끼마저 꽁꽁 얼어붙은 방안에
혼자 우두커니 앉아 있자니 춥기도 하였고 심심하기도 하였습니다.

하여 당부의 말씀도 까마득히 잊은 체
주머니에 손을 넣고 어슬렁거리며 동네 한 바퀴를 돌았습니다.

동네 다리 밑에는 벌써 많은 사람들이 나와
썰매를 끌고 다니고 있었고
부자 집에서 태어 난 친구들은 귀한 스케이트를 타고 있었습니다.

다리위에서 내려다보던 저는 먼발치에서 친한 친구의 모습을 발견하였습니다.
자세히 보니 그 친구의 발엔 분명 그 귀한 스케이트가 신겨져 있었습니다.
넘어질 듯 넘어질 듯 신기하게 얼음판을 제치고 다니는 친구의 모습이
제 호기심을 발동하게 하였습니다.

저는 얼른 다리 밑으로 내려가 친구에게 다가갔습니다.

“야! 재미있냐?”
“나 좀 한 번 타보자.”
친구는 제 말에 콧방귀도 뀌지 않았습니다.

“내가 딱지하고 구슬 줄게. 딱 한 번만 타보자.”
녀석은 딱지와 구슬을 준다는 제 말에 순순히 스케이트를 벗어 주었습니다.

마냥 신이 나서 스케이트를 신는 저에게
“딱 한 번만이야. 알았지?”
하며 녀석은 한 번만 이라며 손가락을 꼽아 보였습니다.

“알았어. 알았다니까.”
녀석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스케이트부터 신고 일어 선 저는
일어나자마자 보기 좋게 엉덩방아를 찧었습니다.

‘하하하하 호호호호’
웃어 대는 녀석의 모습이 제 시야에서 점점 멀어지는 것을 보니
전 운동 신경이 발달한 천재임을 스스로가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쭐한 마음에 앞으로만 열심히 가던 저는 그만 난관에 부딪히고 말았습니다.
“어~ 어~ 비켜, 비키라니까.”
제 자신이 남에게 달려가면서 연실 남에게 비키라고 소리를 질러댔습니다.
결국 정지하는 방법을 터득하지 못하여
앞에 서있던 사람과 그만 정면충돌을 하고 말았습니다.

별이 반짝이는 것을 느끼며 얼음판위에 대자로 누워 버린 전
다시 일어나 보려고 안간힘을 써 보았습니다.
일어서려면 다리 사이가 점점 벌어져 가랑이가 찢어질 것 같은 아픔에
무릎을 꿇어 버리고는 하였지만 오기가 발동하여
자꾸 연습을 하다보니
“친구 녀석이 한 번만” 이라는 부탁의 말도 잊고 말았습니다.

멀리서 빨리 오라는 친구의 손짓에 저는 친구의 시야를 벗어나려고
온갖 잔꾀를 부렸습니다.

다리 사이에 중간 중간 살얼음이 얼은 것도 모른 저는
다리 밑 사이로 친구의 눈을 피해 들어갔습니다.
순간
짧은 비명과 함께 살얼음이 깨진 한길이나 넘는 물속으로 빠지고 말았습니다.

얼음장 밑에서 흐르는 물 사이로 빠져 버린 저는
허우적대며 살길을 찾았으나 얼음위로 간신히 올라오려고 하면
야속하게도 얼음장은 그대로 꺼져 버렸습니다.
몇 번이고 반복을 하다 다행히도 얼음 위로 올라 올 수가 있었습니다.

부들대며 떨리는 몸을 잔뜩 움츠린 체
얼음위로 올라와보니 제 주위에는 구경꾼들이 꽤나 몰려 있었습니다.



“큰일 날 뻔 했네.”
“얼음장 밑에 흐르는 물인데 용케도 올라왔네.”
“그대로 떠내려 갈 수도 있었는데.........”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삶의 끈 하나 던져주지 못했었던
저를 삥 둘러 싼 구경꾼들의 한결 같은 목소리였습니다.

“물어내. 내 스케이트.”
녀석은 친구가 살아 나온 소중함도 모르는지 연실 스케이트를
물어내라고 저에게 종용하였습니다.

집에 가면 녀석의 엄마에게 혼난다고 하기에
전 친구의 스케이트를 갖고 젖은 몸을 떨며 집으로 들어 왔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보니
“오늘은 집에 꼭 있어라.”
당부하셨던 엄마의 모습은 다행히 보이지 않았습니다.

바깥에서 추위에 떨며 필사적으로 삶의 전쟁을 치루고 온 탓에
전 이미 몸과 마음이 지쳐 있었습니다.
젖은 옷을 갈아입고 스케이트도 내 팽개쳐둔 체
따뜻한 아랫목을 파고들었습니다.
연실 재채기를 해대며 머리 속에 화가 난 엄마의 모습을 떠올리다
그만 따뜻한 온기 속으로 빨려 들어가 버렸습니다.

갑자기 바깥에서 시끌벅적 떠드는 소리에 깜짝 놀라 눈을 떠 보니
언제 돌아오셨는지 엄마는 친구의 어머니에게 죄송하다는 말씀만 하고 서 계셨습니다.

“아니 죄송하다면 다에요?”
“이제 사준지 얼마 안 되었는데 어떻게 하실 겁니까?
다구치 듯 따져 묻는 친구의 어머니께
엄마는 죄송하다는 말씀과 함께 친구에게 새것으로 스케이트를 사줄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엄마가 무슨 돈이 있다고.......’
그렇게 나가지 말라고 당부하셨던 엄마의 마음을 그제야 깨닫게 된 저는
그저 죄송한 마음에 고개를 떨어뜨린 체 울고 있었습니다.

분명 엄마한테 흠씬 맞을 것이라 생각했었는데
제 생각과 달리 엄마는 제게 다가오셔서 다정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다친데 없니?”
“그만하기를 다행이다.”라고 말입니다.

밤새 한숨지으시는 엄마의 모습이 가물거리다가 잠이 든 사이
악몽 같았던 날이 지나가고 다음 날이 밝았습니다.

잠에서 깨어보니
옆에서 한숨지으시며 고민하시던 엄마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저는 후다닥 옷을 갈아입고 동네를 뛰어 다니며 엄마를 찾아 다녔습니다.
그래도 엄마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침 시간이 훌쩍 지나버린 뒤
새것으로 보이는 스케이트를 들고 엄마는 집으로 돌아 오셨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친구의 집으로 빨리 가자하셨습니다.

엄마의 숨은 노력으로 친구 녀석 어머니께 약속은 이행하였지만
스케이트를 장만할 돈을 어디에서 구하셨는지가 전 무척 궁금했습니다.
하지만 여쭤보기도 민망하였기에 그냥 잊혀지듯
제 실수는 시간 속에 그대로 묻혀져 버렸습니다.

그리고 얼마가 흘렀던가요.
엄마가 결혼반지를 받지도 못하고 결혼하신 후
저희 남매를 키우시면서 어렵사리 금반지를 장만하셔서 무척 흐뭇해하셨는데
언제인가 부터
엄마의 손가락에는 그 귀한 반지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 말라는 것은 하지 말아야했고 가지 말라는 곳은 가지 말았어야 했었는데.......’
너무 늦은 후회였지만 엄마의 거룩하신 희생정신 덕분으로 전
그 날 이후 한 번만이라도 타보고 싶어 했던 스케이트를 원 없이 타보았답니다.
결국 초등학교 빙상 선수로 활약할 때까지 말입니다.

며칠 전
제 아들 녀석이 장가가겠다고 데려온 아가씨의 집안과 상견례를 하다가
결혼반지에 대하여 의논하던 중
갑자기 소중했던 엄마의 반지가 생각이 나서 몇 자 적어 보았습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