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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기 “결국 죽은 사람은 말이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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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불량마눌 작성일 2006-06-30 12:35 댓글 0건 조회 88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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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2년 전
바로 옆집에 사는 아들 녀석의 친구 어머님이 유방암에 걸리셨습니다.
보험 들어 놓은 지 3개월 만에 말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미 장기 복용하는 약 때문에 보험도 들 수 없었기에
또한 아무런 혜택도 받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 점을 보면 보험이 효력을 발휘할 때도 있는 가 봅니다.

옆집아주머니는 수술 후 참 다행이라는 표현을 하셨습니다.
“왜냐?”하고 물으니
“보험 혜택을 받았기 때문에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천만다행이라 하시며 무척 좋아 하셨습니다.
당신 자신의 아픔보다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수술도 못 해볼 뻔했기 때문입니다.

가족들이 생활하는 겉 모습을 봤을 때 너무 자상하신 모습이
저는 옆집아이의 친 어머니인 줄로만 알고 있었는데
이야기를 들어 보니
중국에서 이곳으로 시집을 와 옆집아이의 어머니가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그 때 옆집 아이의 아버지는
목사님이 되시겠다며 돈도 벌지 않으시고 열심히 공부만하고 계셨었습니다.

저만 만나시면
“ㅇㅇ 어머님! 제가 열심히 기도드리고 있습니다.”
“힘내십시오.”
하시며 예의 바른 인사를 하시곤 하셨습니다.
“아 ~ 네.”
감사하는 마음에 짤막한 대답과
정중한 인사를 드리며 이웃의 사랑을 나누곤 하였습니다.

옆집 아주머니께 제가 해 드릴 수 있었던 것은
속이 울렁거리지 않는 음식을 해서 나누어 먹는 일 밖에
별다른 도움을 드리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그 분은 제가 찾아온 것만으로도 무척 기뻐하시며 고마워 하셨습니다.

중국에서 시집 와 친구도 별로 없었고 아파서 누워 있으니
찾아 주는 사람이 더욱 없다고 하시며
제가 가지고 방문한 음식보다 사람을 더욱 그리워 하셨던 분이셨습니다.

그러던 옆집 아주머니의 병이 불행하게도 작년에 다시 재발이 되셨습니다.

유방암이 다시 재발되어 재수술을 하셨고
재수술하신지 얼마 안 되어서 또 전이가 되는 불행이 겹쳐 버렸습니다.
뼈 사이에 전이가 되어 엉덩이 쪽에서부터 다리까지 모두 절개하여
전이된 암 세포를 깎아 내는 대 수술을 거치셨습니다.

다시 재발을 막기 위해 항암 치료를 병행했는데
부작용으로 얼굴이 많이 부어올라 있었습니다.

이 병에 대하여 잘 모르시는 분들은 이런 모습을 보시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얼굴에 살이 오른 것을 뵈니 참 좋아지신 것 같습니다.”
라고요.
하지만 그것이 부작용이라는 것을 저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항암제의 부작용은 사람의 체중을 보통 10Kg이상을 늘게 하니까요.
의사선생님께서는 유방암환자들에게 유산소 운동이 중요하다고 늘 강조하신답니다.
체중 변화에 따른 많은 부작용들이 또 뒤따르기 때문이지요.

옆집아주머니의 고통스러운 모습은 한 눈에 봐도 알 것 같았습니다.
연일 이어졌던 항암 치료에 머리카락은 다 빠져 있었고
독한 약 때문에 심한 구토로 입안도 다 헐어 있었으며
옆이 터진 바지를 입고 계셨는데 그 사이로 드러난 깊은 상처를 엿보았기 때문입니다.
암세포가 뼈 속 사이까지 전이 되어 일일이 긁어내는 대수술을 받으신 후
걷기에도 힘드셨던 옆집 아주머니는 목발을 사용하셔야만 했습니다.

동변상련의 마음 때문에 제가 바라보는 그 분에 대한 연민의 정이 남달랐습니다.
매일 그 분의 말벗이 되어 드리고 음식도 나누어 먹자고 갖고 방문하였지만
헐어 있는 입안 때문에 나중에 먹겠노라며 밀어 놓으시고는 하셨습니다.

“당신 옆집에 자꾸 가지 마라.”
남편이 저에게 한 마디 하였습니다.

재발되어 고생하고 계시는 옆집아주머니의 모습을 보며
행여 마음이 동요되어 제 자신의 투병생활에 지장이 있을까 봐 걱정이 되었었나봅니다.
그래도 돌봐주는 이웃이 없는데 어쩌겠습니까?
제 자신도 그 분을 볼 때마다 마음이 두근거리곤 하였지만
저보다 그 분 사정이 더 딱했으니까요.

어느 날
식구들 출근길에 손을 흔들며 배웅을 하던 저는
옆집에 문이 조금 열려 있기에 ‘뭐 하시는가’ 하고 엿 보았습니다.
불편한 다리를 쭉 뻗고 식구들 아침 식사 준비를 하시고 계셨습니다.

그 모습을 목격하고
한숨이 섞여 나온 저는 저의 집 문을 닫고 들어 와 한참을 생각했습니다.

“여자라는 것이 무엇인지.......”
“엄마라는 위치가 무엇인지........”

그런데 이게 무슨 날벼락입니까?

잠시 후에
옆집 아주머니는 자신의 짐을 싸 갖고 나와 바깥에 서 있는 것이
제가 보기에도 영원히 떠나려고 하는 모습 같았습니다.
그 옆에는 낯선 남자 아이 한명이 옆집아주머니 곁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옆집아이만한 남자아이였습니다.

옆집 아주머니는 중국에서 살았을 때
전 남편사이에서 낳았었다며 자신의 아들을 저에게 소개 시켜주었습니다.

중국에서 살았던 전 남편과의 생활은 악몽과도 같은 시간이었었다고 합니다.
술만 취하면 구타를 하는 바람에 어린 아들을 두고
도망치 듯 나와 똑 같은 나이의 옆집 아이를 친자식처럼 키우며
살아 왔던 세월이 벌써 9년이 지나갔노라고 이야기를 털어놓으셨습니다.

현재 함께 살던 남편은 자신이 아이가 있었다는 것도 알았었고
모든 것을 합의하에 9년을 함께 살아 왔었는데
“막상 이렇게 병이 드니까 결국 자신이 더욱 쓸모가 없었나봅니다.” 하고
눈물을 흘리시며 지나간 자신의 생활 속 환경을 잠시 이야기하셨습니다.

‘참! 여자 팔자는 뒤움박 팔자라고 했는데........’
‘무던히도 참고 살았던 세월이 왜 이 분을 버리실까?’
무심한 하늘의 심판에 야속한 마음이 들었고
이내 옆집아주머니에 대한 연민의 눈물이 흘렀습니다.

울면서 이야기를 하시던 옆집 아주머니는 제 손을 꼭 잡고 말씀하셨습니다.
“ㅇㅇ 엄마! 그 동안 베풀어 주신 정이 참 따뜻했습니다.”
“내가 가서도 잊지 않을게요.”
“ㅇㅇ 엄마도 약 잘 챙겨 드시고 잘 있으시오.”
연변의 사투리가 섞여 있었던 마지막 말씀과 함께
옆집 아주머니는 영영 떠나 가셨습니다.

옆집 아주머니가 떠나가신 그 이후
저를 위해서 기도를 하겠다고 말씀하시던 옆집 아이의 아버지를 뵐 때마다
저도 모르게 미운 감정을 표현하곤 하였습니다.

부부 사이의 일은 정말 아무도 모릅니다.
하지만 제 생각은 이러했기 때문입니다.

‘옆집 아주머니의 사연을 다 알고 함께 살고자 했으면
이미 함께 살아왔던 생활이 9년이나 흘렀는데
이제 부부이기 이전에 사람의 기본적인 연민이 털끝만큼이라도 남아있다면
과연 병든 사람을 냉정하게 내칠 수 있겠느냐?’
저만의 생각이었습니다.

그렇게 가슴 아픈 사연을 안고 떠나버린
옆집 아주머니의 소식을 그 이후 들을 수도 없이 무심한 세월만이 흘러갔습니다.

재경 강릉 농 공고에 작년 체육대회 때 첫 발을 들여 놓고
생활했던 시간과 거의 같은 세월이 흘러 간 것이 벌써 일년이 넘었습니다.

작년 휠체어에 몸을 맡기시고 전 남편의 아들의 힘을 빌리며
“내가 너를 버리고 나만 살겠다고 도망치 듯 이곳으로 왔었기에 죄 받아서 그런가보다.”
아들의 얼굴을 쓰다듬고 우시면서 떠난 모습이 아직도 제 기억에 생생한데 말입니다.

며칠 전
우연히 옆집 아주머니의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힘든 투병 생활을 끝내시고
마침내 고통이 없는 먼 하늘나라로 떠나셨다고 말입니다.

제가 뵙기에도 비록 희망이 없어 보이는 유방암의 재발이었지만
어느 하늘 아래에선가 굳건하게 살아 계실 줄 믿었었고
당신이 이 세상에 여자로 태어나 한 많은 세월을 살아 온 만큼
‘어디에 계시든 꼭 살아 계시라고’ 그렇게 마음속으로 기도 하며 살아 왔건만
그 분의 허무한 소식을 들은 제 자신은 충격이 너무도 컸습니다.

환경도 분명 저와는 달랐고 유방암의 재발도 달랐지만
그래도 저에게는 그 분에 대한 한 가지 바람이 있었습니다.
‘같은 병을 앓고 있는 환자들의 희망을 위해서라도 기적이 일어 났으면........’
하는 희망적인 바람 말입니다.

그 분의 소식에 안타까운 마음의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습니다.

이러하듯 힘든 투병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고통 없는 나라를
선택하신 분들은 우리들 마음속에서 쉽게 잊혀집니다.

어떻게 견디며 살아왔는지
어떤 고통을 받고 견디어 왔는지도 모른 채
살아남은 사람들의 모습만 보고
현실은 냉정하게도 이렇게 판단하며 지나가고 있습니다.

“유방암은 조기에 발견하면 살 수 있다던데.......” 하며 말입니다.

오늘도 겸허한 마음으로 현실을 조용히 받아들여 봅니다.

냉정한 우리네 삶이 산자와 죽은 자가 그 시점에서부터 엇갈리기 시작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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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죽은 사람은 말이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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