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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기 사천자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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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불량마눌 작성일 2006-06-24 21:41 댓글 0건 조회 1,05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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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영등포 경비교도대대에 근무하는
조카 녀석의 면회를 다녀왔습니다.

세상에 남겨진 혈육은 오빠와 저 단 둘인데
저희 남매 둘이서 세상에 남긴 자식 역시
공평하게 한 집에 아들 한명씩,
다 내세워 보아야 단 둘입니다.

저의 아들 녀석이 군에 있을 때 면회를 가려고 하면
“뭘 그리 면회를 자주 가느냐?”
“다 큰 녀석 군에 가서 고생도 해 봐야 나와서 사람 노릇하지.”하며
항상 못 마땅한 어투와 행동을 보이곤 했었던 저의 오빠였습니다.

자기 자식 군에 보내 놓고 두 내외가 중국에 거주하고 있다는 핑계로
친정 부모님께 자기 자식 좀 찾아 봐 달라고 부탁하며
경비를 부쳐 오곤 한답니다.
저에게 부탁 하는 것도 한 두 번이지요.

저의 아들 녀석에게는 단 한 사람의 외삼촌이건만
무정하게도 삼촌의 입장으로서
저의 아들 녀석에게 면회 한 번 안 갔었던 사람 이였거든요.

그러다보니 저한테 부탁하기 미안하여
연로하신 부모님께
친손자 면회를 다녀오실 것을 매번 부탁드리기도 하지만
친할머니 친할아버지 입장이신데
말 안 해도 당연 보고 싶으신 마음 간절하시기에
두 분이 길을 나서 보십니다.

그러나
두 분이 면회 가시기에는 엄두가 나지 않으셨던 가 봅니다.
하여 오늘은
항상 피곤해서 쩔쩔 매고 있는 딸자식을 앞장세우셨답니다.
사실은 조카 면회뿐만 아니라
집안에서 일어나는
대 소사의 모든 일들까지 제가 나서지 않으면 안 될 정도이니까요.

하여 저의 아들은 알게 모르게 불만이 많은 것 같습니다.
“하여간 외손자와 친손자가 그렇게 달라요.”
“삼촌은 엄마한테 그런 부탁이 나온대요?”
비아냥 거리며 불쑥 내 뱉는 말에
“그게 아니란다.” 하며 녀석의 서운한 마음을 풀어 주려고
갖은 설명을 다 해 보지만
녀석의 마음속에는 무엇엔가 단단히 맺혀 있는지
입을 삐죽이며 혼자 계속 중얼거린답니다.

어제 축구 열기 때문에 잠도 못 잤음에도 불구하고
일찍부터 준비하여
부모님을 모시고 무사히 조카 녀석의 면회를 마치고 돌아 왔습니다.

돌아오는 전철안의 사람들의 모습은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모두가 졸고 있었습니다.
저 역시 전철에서 사정없이 조는 바람에
고개가 뒤로 젖혀 질 정도였으니까요.
그래도 오늘 만큼은 창피스러움이 덜 하더라고요.

모두가 피곤한데 집으로 돌아가 저녁 할일도 걱정이 되더군요.
하여 부모님 핑계를 대고
퇴근하고 돌아오는 아들 녀석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모시고 면회 다녀오는 길이란다.”
“너는 지금 어디쯤이니?” 하고
다정스런 어투로 말입니다.

“네! 지금 집 근처에 다 들어 왔어요.”
참 반가운 대답이었습니다.
부모님 저녁 사 드리고 얼른 모셔다 드려야 하니
마음이 바쁘던 차이기에 녀석의 귀가가 더욱 반가웠습니다.

날도 더워 입맛도 없으실 텐데 무엇을 사드릴까 고민을 하다
의정부에서 제일 잘 하는 중화 요리 집에 모셨습니다.
저의 아버지께서 유독 면 종류를 좋아하시기에 말입니다.

“어서 오십시오.”
다음은 중국어로 중얼중얼 서로에게 사인을 보내더군요.
이렇게요.
“$#&%$##$%#&.” ㅋㅋ

메뉴판을 갖다 주며 주인이 기다리고 있는데
저희는 서로 무얼 먹겠느냐며 물어 보다
저의 친정아버님께서 먼저 자장면을 드시겠다고 하시더군요.

제일 어르신이 자장면을 드시겠다는데
아랫것들이 더 이상 고를 것이 무엇이 있었겠습니까?

‘하긴 이 집이 자장면을 제일 잘 하는데.......’
속으로 생각하며 메뉴판을 접는데 저의 친정아버지께서
“ㅇㅇ이에게 맛있는 것 고르라고 해라.”
하시며 저희 아들녀석에게 메뉴판을 주셨습니다.

‘그래 이왕이면 자장면 중에서도 제일 맛있는 것을 사 드려야지.’
진심 어린 선택을 하고자 했습니다.

아들 녀석하고 머리를 맞대고
“너 뭐 먹을래?”
“빨리 골라 봐.”
하고 주문을 종용했습니다.
녀석은 메뉴판을 손가락으로 쭉 짚어 보더니
“사천자장 한번 먹어 볼까요?” 하더군요.
이름은 들어 봤지만 한 번도 먹어 본 적이 없는 저는
녀석에게 다른 테이블의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하도록
작은 목소리로 물어 보았습니다.

“사천자장 맛이 어떤데?”
하고 물었더니
“약간 얼큰한 걸로 알고 있어요.”
라고 대답하더군요.

‘그래? 그럼 이걸 선택 하는 거야.’
마음속으로 결정을 한 다음 고개를 드는 순간
주인과 눈이 마주쳤습니다.

자신 있는 표정으로
“아저씨! 얼마나 매운가요?” 하고
주인에게 물었습니다.
“약간 매콤합니다.”
대답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사천자장 셋에 일반자장 하나요.” 하고
큰 소리로 주문했습니다.

잠시 후
큰 그릇에 벌건 소스와 면발 세 그릇
다음 일반 자장면 한 그릇이 제 앞에 놓여졌습니다.
순간 모두
시꺼먼 일반 자장면을 한번 바라보다가
다시 벌건 자장 소스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각자의 면발에 소스를 부었습니다.
그것도 사이좋게
“할아버지 더 넣으세요.”
“아니 너나 더 넣어라.”
저도 거들었습니다.
“소스가 적으면 맛이 없어요. 아버지!” 하며 말입니다.

'벌겋게 보이는 것이 색 다른 맛일 것이다 ' 라고
생각하며 군침도 흘려 보면서.......ㅋㅋ

잘 비빈다음 한 젓가락을 입에 넣으신 우리 어머니
한 마디씩 하기 시작 하시는데
“에이그 야~ 이걸 자장면이라고 먹느냐?”
“차라리 집에 가서 국수를 삶아 김치 국물에 비벼 먹지.”
하시며 투덜거리시기에
제가 얼른 녀석의 자장면을 한 젓가락 먹어 보았습니다.

아니 이런........
스파게티 맛도 아니고 그렇다고 짬뽕 맛도 아니고
정말 우리 입맛에는 영 아닌 것 같았습니다.

사천자장면 값은 5800원이었고 일반 자장면이 3000원이라
저는 돈 생각해서 싼 것을 시킨다고 시켰던 것이
오히려
제 자신만 맛있는 것을 먹고 있는 꼴이 되어 죄송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친정어머니께서는 계속 못 마땅해 하셨습니다.
“야~ 차라리 집에 가서 국수 삶아 김치 국물에........”
하시기에
“그만 하세요. 저는 정말 좋은 음식을 대접한다는 것이 그만........” 하며
더 이상 말을 잇지 못 하시게 막았습니다.
옆 테이블에 있는 사람들에게 X 팔려서 말입니다. ㅋㅋ
아니 세상에
이 나이 되도록 사천자장면이 무엇인지 모르고 살았단 말입니까?
아들 녀석도 똑같이 먹어 보지도 못하고 아는 척 해가지구설랑........

억지로 자장면을 먹다 말고
테이블 밑으로 삼 만원을 꺼내 주며 녀석에게 소곤거렸습니다.
“할머니 계산하시기 전에 먼저 계산 하여라.”
“할머니 가격까지 아시면 체하실라.”
녀석과 저는 눈을 껌뻑이며 사인을 주고받았습니다.

알았다고 하며 다시 자장면을 먹는데
저의 친정어머님 하셨던 말씀이 무슨 말씀이신 줄 아십니까?

“야~ 계산은 내가 한다.”
“괜히 까불지 말고 가만히 있어.”
거기 까지는 좋았습니다.

그 다음 말씀이 먹던 면발을 다 튀어 나오게 하고 말았습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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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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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자장은 그러니까 사천 원이냐?”

푸 하하하 ...........

소화가 안 될 것 같았던 자장면이
제 뱃속에서 벌써 소화가 다 되었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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