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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기 [re]유민초님 보시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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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바우친구 작성일 2006-08-14 13:03 댓글 0건 조회 1,20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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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민초님 보시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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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소시민의 한사람으로서 같은 민족인 탈북자 문제를 거론하며, 남들이 모두 꺼리는 일을
음지에서 묵묵히 해낸 자네가 참으로 훌륭하구먼.
떡이 나오고 밥이 나오는 일도 아닌데도 그렇게 정성을 다하는 것은 신앙 때문이것지...?
아무튼 그 용기에 아낌없는 찬사와 박수를 보내는 바이네.
특히 내일이 8. 15 광복절이라서 괜시리 가슴이 울렁여서 필을 잡아 보았소이다.
우리 민족은 해방이 되었건만, 그 기쁨도 잠시, 남과 북이 분단되는 아픔을 겪게 되었소.
일본 아그들이 식민통치수단으로 그어 놓은 남북한의 그 경계선이 빌미가 되어서
해방 당시 일본을 격퇴시키기 위해 북한으로 들어온 소련 아그들이 김일성을 내세으며
북한땅에 발을 들여 놓았고, 우리 남쪽은 미군이 들어와서 점령하에 지냈지요.
우리 모든 조선사람들은 해방이 되었으니 마땅히 남북이 하나가 될 줄만 알았었는데...
흑~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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쏘련 로스케 아들은 오랜 옛날부터 부동항(얼지 않는 항구)을 얻고자 남진정책을 써 왔잖소!
황금의 찬스인 이 시기를 놓치지 않고 북한 땅에 지들의 꼭두가시인 김일성(김성주)을 내세워
허울좋은 괴로 정권을 내세워 놓고는 맘대로 조정하면서 낄낄 거리면 죽치게 되었지요.
당시 일본을 쳐부수는데 일조를 한 쏘련군 출신의 김일성과 김두봉 등등을 잘 이용했어요.
일본이 그어 놓은 선에 철조망을 쳐놓고는 북한 괴로 정권을 세웠던 거이지요.
그리고 그 시기 신탁통치 절대 반대를 외치다가 울며 겨자먹기로 남한은 남한대로 정부수립을 하게 된 거야요.
당시 북한은 "토지개혁이다. 또 화폐개혁이다" 뭐다 하면서 북한 주민들을 괴롭히고 있었소.
정권을 잡은 넘들이 당연히 하는 일들이 있잖소!
그 이름은 노동자의 천국, 계급없는 사회 건설, 프로레타리아의 시대 개막 등을 선전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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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다행히도
북녘땅 강원도 통천에 살전 정주영 회장께서는 이미 일제시대 코흘리게 소년일 때에
아버지께서 소팔아 놓은 쩐을 장롱에서 꼬불쳐서 그냥 남한으로 토셔왔지요.
소년 정주영은 처음에는 싸전에 종업원으로 있으면서 억척같이 장사를 잘하여 쥔으로부터
신용을 얻었고, 이어 자전거 포를 비롯한 구르마 등을 고치는 일에 종사하며 기술을 배웠어요.
그러다가 어느날 자기는 Zolra게 일하는데 비하여 관공서에서 공사를 발주하는 사람들이
쉽게 더 쩐을 보는 것을 보고는 “그래 바로 이거다!” 하며 건설이라는 것에 눈을 떳어요.
그러다가 6. 25 전쟁이 터지면서 그동안의 축척된 노하우를 통하여 서서히 자립하게 되었고.
결정적으로는 5.16 혁명이 일어나면서 박정희 대통령을 만난 것이 결정적으로 재게의 거부가 된
동기였답니다요.
그러나 항상 소년시절의 고향을 생각했지만, 젊은 시절 그럴 경황이 없이 오직 사업에 몰두하였어요.
허나, 사람이 나이가 들면 고향을 찾게 되는 건 당연하지요.
박대통령의 통치하에서 정주영씨는 많은 것을 곁에서 지켜 보았습니다.
새마을사업, 경부고속도로 개통 등 등 현장을 참여하면서 꿈을 키웠습니다.
대통령의 막강한 파워를 엄청 부러워 하면서...
그런데 박대통령이 시해 당하고, 전두환 정권이 들어서면서 고초를 겪기 시작했습니다.
노태우도 대통령이 되는 걸 보고는 속으로 얼매나 속상했겠습니까?
산전수전 다 겪은 노장으로서 재롱이나 부릴 아그들이 정권을 창출하는 걸 보면서
국민당을 수립하여 직접 대통령에 출마했던 것이지요.
이층형의 경부고속도로 만들어 제2의 경제기적을 만들어 내겠다는 공약을 내세우면서...
허나 눈물을 흘려야만 했습니다.
김영삼 대통령 그리고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서서히 현대가는 몰락으로 치달았습니다.
정경유착의 대표적 기업으로 시시콜콜한 작은 일에도 제약을 받게 된 것입니다.
너무나 억울하고 속상해서 정씨 가문에 어떻게든 대통령을 만들고 싶어서 아들을 키웠습니다.
그런데 모든 것이 여의치 않았습니다.
그런데, 나이들면서 자꾸 고향이 생각나고 또 뭔가 대국민적인 사업으로 기사회생하여야 했습니다.
정말 새로운 변신을 통해 몰락해가는 현대가를 일으켜 세워야 했습니다.
반드시 멋진 이슈를 만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하여, 정권을 잡은 전두환 정권에서 처음으로 만든 “이산가족찾기 운동”을 보면서
그는 훗날을 꿈꾸었습니다.
대통령 선거에 쓴 고배를 마시고 그는 북한 통천땅에 살고있는 일가친척을 만났습니다.
선물도 엄청 싸들고 갔지요.
북한에서는 대환영이었습니다.
남조선에서 가장 출세한 大기업가가 錦衣還鄕하는 모습은 북한 인민에게 큰 자극이 될 것이기에...
엄청난 환대를 받았고, 김일성은 맨발로 뛰어나와 그를 겨앉아 주었습니다.
감격한 정회장은 그때부터 연속으로 몇 차례나 더 북한을 방문하였지요.
폼나는 현대자동차 승용차와 버스도 막 기증했습니다.
이어 수백 마리 서산 농장에서 키운 소때를 몰고 연속적으로...
검버섯이 낀 얼굴에 검정 벙거지 신사모에 지팽이에 의지하면서 연일 신문지상에
화재를 불러 일으켰습니다.
남북화해무드가 조성 되는 듯 하였습니다.
그 당시 우리의 호프 유심초는 서산 농장에서 논에 피뽑고 또 소에 먹이을 주고 있었드랬지요.

이렇게 정회장은 냉전체제를 종식 시키는 일에 일조하고 있었기에 당연히 노벨평화상 감이었습니다.
또한 물꼬를 튼 그 시각부터 현대家는 남북교류의 핵심에 서게 되었지요.
금강산 관광을 비롯한 큼직 큼직한 오더를 따왔습니다.

그런데 정작 정회장은 꿈을 관철시키지 못하고 고인이 되셨습니다.
결국은 북한을 개방 시킨 공로는 크지만, 넘들을 너무 키워준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흑~흑~흑~
그 많은 소떼들이 북한 주민들의 배를 채워 주었는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허나 오늘날 북한을 탈출하는 사람이 많아 진 것은 그의 큰 공로인지도 모릅니다.
“남조선이 발전된 것을 북한 주민에게 알려주었으니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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