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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기 아들을 기다리는 아비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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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해오락 작성일 2019-11-22 05:00 댓글 0건 조회 56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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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가 렘브란트가 (Rembrandt)가 노년에 그린 집으로 “돌아온 탕자”이야기로 헨리 나우웬(Henri J. M. Nouwen) 신부는 책 한권을 썼다.

서울에서 목회 할 때 이 책을 즐겨 읽고 내가 고향으로 귀향(歸鄕) 할 수 있는 마음에 근력을 얻는 기회가 되었다. 인간은 노년에는 참자아를 발견하게 되고 젊은 날을 후회하며 본향 갈 채비를 준비하는 존재다.

렘브란트의 젊은 날의 자화상은 손이 창녀의 허리를 감싸는 불타는 색욕의 세월을 보냈지만, 노년에는 끝없이 마을 어귀 산등성에서 둘째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다.

시력이 흐려 저서 지내다가 돌아온 탕자아들을 부둥켜 안고 그와 입맞춤을 하는 아비의 마음을 그렸다.

둘째 아들은 아버지 없는 먼 나라에 가서 자신의 정욕을 따라 허랑방탕하게 살았다. 가지고 간 재물이 다 바닥이 나고 굶주림에 시달린 아들의 실패는 당연한 귀결인지도 모르겠다. “고난은 인생의 최고의 스승 이라”는 말이 있듯이 그의 고난은 그의 인생이 바뀌는 변화의 시작이었다. 거기서 자신의 실존을 보았으며 자신의 실패를 인정하고 삶의 방향전환이 이루어진다.

인간은 끊임없이 변화와 성장을 갈망하며 살아가는 동물이다. 그러므로 날로 새로울 뿐이다. 그리고 이렇게 고백한다.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 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 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그러나 아버지의 생각은 아들과 달랐다. 아버지가 기다린 것은 품꾼이 아니고, 아들이었다. 아버지에게는 아들이 있을 뿐이다.

돌아온 아들에게 아버지는 제일 좋은 옷을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새신을 신겼다. 가장 좋은 옷을 입힌 것은, 그가 이미 용납되었고, 새사람이 됨을 알리고, 가락지를 손에 끼운 것은 “너는 여전히 나의아들이다” 라는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파괴 될 수 없는 신성한 약속의 상징이다. 발에 새신을 신긴 것은 아들의 신분이 완전히 회복됨을 선포하는 것이다. 그리고 아버지는 송아지를 잡아 찬치를 배설 한다. “우리가 먹고 즐기자 이는 내 아들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 아버지는 기뻤다. 돌아온 아들보다 더 행복 했다.

참사랑은 강요하지 않는다. 허용하고 존중하고 기다린다. 실패까지도 존중하며 스스로 변화되기를 기다린다. 아무리 나의 생각이 옳고 상대방의 생각이 틀렸다고 해도 강제로 끌어 들이지 않는다. 그 대신 오래 참고 기다린다. 포기하지 않고 기다린다. 강압은 하나님의 방식이 아니다. 하나님의 방식은 사랑과 존중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보시고 우리와의 관계를 맺으시는 관점은 우리의 행위(行爲)에 있지 않고 존재(存在)에 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얼마나 대단한 일을 많이 했는가? 라는 행위에 비중을 두지 안는다

그분은 우리의 자신 속에 하나님의 형상(形象)이 내재되어 있음 자체를 존중 하신다. 치유의 근원적인 경험은 행위에 있지 않고 존재의 수용에 있다. 요구와 강요에 있지 않고 사랑과 용납과 존중에 있다. 이것이 인간을 변화 시키는 근원적인 핵심 요소다. 젊은 날의 우리는 나의 분깃을 찾아 내 마음대로 살고 싶은 정욕적인 둘째아들의 삶이었다면 인생노년에는 아들을 마을 어귀에서 기다리는 아버지의 마음으로 살아가야 되지 않겠나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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