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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기 김용택 시인의 '그 여자네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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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남철 작성일 2019-09-01 09:13 댓글 4건 조회 69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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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를 인용할 때마다 김윤기 선배님한테 송구스러운 점이 있습니다. 선배님의 시가 교과서 수록 작품에 비해 부족함이 없고 시운을 얻지 못했을 뿐, 평가는 진행 중이라 생각합니다. 선배님의 시에 대해 공부한한 것이 없어 잘 알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그 여자네 집'    - 김용택 -

가을이면 은행나무 은행잎이 노랗게 물드는 집

해가 저무는 날 먼데서도 내 눈에 가장 먼저 뜨이는 집

생각하면 그리웁고

바라보면 정다웠던 집

어디 갔다가 늦게 집에 가는 밤이면

불빛이, 따뜻한 불빛이 검은 산속에 깜박깜박 살아 있는 집

그 불빛 아래 앉아 수를 놓으며 앉아 있을

그 여자의 까만 머릿결과 어깨를 생각만 해도

손길이 따뜻해져 오는 집

 

살구꽃이 피는 집

봄이면 살구꽃이 하얗게 피었다가

꽃잎이 하얗게 담 너머까지 날리는 집

살구꽃 떨어지는 살구나무 아래로

물을 길어오는 그 여자 물동이 속에

꽃잎이 떨어지면 꽃잎이 일으킨 물결처럼 가닿고 싶은 집 

 

샛노란 은행잎이 지고 나면

그 여자

아버지와 그 여자

큰오빠가

지붕에 올라가

하루 종일 노랗게 지붕을 이는 집

노란 초가집

 

어쩌다가 열린 대문 사이로 그 여자네 집 마당이 보이고

그 여자가 마당을 왔다갔다하며

무슨 일이 있는지 무슨 말인가 잘 알아들을 수 없는 말 소리와

옷자락이 대문 틈으로 언뜻언뜻 보이면

그 마당에 들어가서 나도 그 일에 참견하고 싶었던 집

 

마당에 햇살이 노란 집

저녁 연기가 곧게 올라가는 집

뒤안에 감이 붉게 익는 집

참새떼가 지저귀는 집

 

보리타작, 콩다작 도리깨가 지붕 위로 보이는 집

눈 오는 집

아침 눈이 하얗게 처마끝을 지나

마당에 내리고

그 여자가 몸을 웅숭그리고

아직 쓸지 않은 마당을 지나

뒤안으로 김치를 내러 가다가 "하따, 눈이 참말로 이쁘게도 온다이이"하며

눈이 가득 내리는 하늘을 바라보다가

싱그러운 이마와 검은 속눈썹에 걸린 눈을 털며

김칫독을 열 때

하얀 눈송이들이 하얗게 하얗게 내리는 집

내가 함박눈이 되어 내리고 싶은 집

밤을 새워, 몇밤을 새워 눈이 내리고

아무도 오가는 이 없는 늦은 밤

그 여자의 방에서만 따뜻한 불빛이 새어나오면

발자국을 숨기며 그 여자네 집 마당을 지나 그 여자의 방 앞

뜰방에 서서 그 여자의 눈 맞은 신을 보며

머리에, 어깨에 쌓인 눈을 털고

가만가만 내리는 눈송이들도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가만 가만히 그 여자를 부르고 싶은 집

네집

 

어느 날인가

그 어느날인가 못밥을 머리에 이고 가다가 나와 딱 마주쳤을 때

"어머나" 깜짝 놀라며 뚝 멈추어 서서 두 눈을 똥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보며 반가움을 하나도 감추지 않고

환하게, 들판에 고봉으로 담아놓은 쌀밥같이,

화아안하게 하얀 이를 다 드러내며 웃던 그

여자 함박꽃 같던 그

여자

 

그 여자가 꽃 같은 열아홉살까지 살던 집

우리 동네 바로 윗동네 가운데 고샅 첫집

내가 밖에서 집으로 갈 때

차에서 내리면 제일 먼저 눈길이 가는 집

그 집 앞을 다 지나도록 그 여자 모습이 보이지 않으면

저절로 발걸음이 느려지는 그 여자네 집

지금은 아, 지금은 이 세상에 없는 집

내 마음속에 지어진 집

눈감으면 살구꽃이 바람에 하얗게 날리는 집

눈 내리고, 아, 눈이, 살구나무 실가지 사이로

목화송이 같은 눈이 사흘이나

내리던 집

그 여자네 집

언제나 그 어느 때나 내 마음이 먼저

있던 집

여자네

생각하면, 생각하면 생.  각.  을 . 하. 면..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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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욱빈님의 댓글

임욱빈 작성일

김 교장님!
약속을 이행하고자 하는데......통화가 안되니.......
'자유게시판' 6월경에 소생이 올린 것 있어요.
그 중 하나 미리 선택해 주면 선택한 것을.......선택하지 않으면 임의로 선택하여
갈려고 합니다.  추석 날 365일에서 만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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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철님의 댓글

김남철 작성일

지산 작가님, 아직은 필요하지 안사옵니다.
아들집에 하나 만들어 주려 했는데, 별로 달가와  하지 않는 듯해요. 
이번은 일단 정중히 사양하고요.... 쩝ㅎ

수년 후 상황이 달라졌을 때, 그때 한 점 부탁할게요. 미안허요.

추석 전날 회동?
다들 이런저런 사연을 안고 있어.... 확실한 멤버가 보이지 않아요.
더 두고 관망해 보기로 함이 좋을 듯하옵니다.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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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포님의 댓글

에이포 작성일

목화송이 같은 눈이 사흘이나 내리던 집
그 여자네 집.
그 여자네 집을 생각해보는 참 좋은 시간을 안겨줘서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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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오락님의 댓글

해오락 작성일

오늘에야 김용택 시인의 시를 읽어 보았네요 서정적인 냄새가 뭉클 합니다.
동요, 오가며 그집 앞을 지나노라면 ..... 하는 노래가 생각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