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별마당

기별게시판

43기 질질 울다가 웃다가 또 웃고 하면서 관람한 영화!!

페이지 정보

작성자 박관국 작성일 2015-02-09 19:47 댓글 0건 조회 1,084회

본문

                   

 

    

 

slider_unit.gif

질금 거리다. 또 웃다가 질금 거리고 웃고 하던 국제시장 영화를 본다.
아! 진짜로 전부터 너무 너무 보고 싶었던 영화 국제시장

주변에서 본 사람들 후기도 너무 좋고 내가 또 저런 슬프고 감동적인 영화를 좋아하는 편이라서 정말 보고 싶었거든, 왠지 더 늦으면 안 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어 지난번 내무부 장관과 함께 유년 시절 추억에도 아득한 우리네 삶과 갖이 전개되는 그 영화 귀경을 보러 나선다.

아마도 쉬리를 본 이후로 한 17년 정도 됬나.....

​시내 홈프러스 6층에서 젊은 아들이 좋아 하는 옛날 뻥뛰기 와 비슷한 걸 한 몇바구니 사고, 음료수를 몇병 사서
7층 영화관으로 간다. 언나들 처럼......
  
오후 2시 직전, 정말 재미있게 볼 수 있는 국제시장 영화 절찬 상영이라는 내용 써 붙어있네..... 

아! 이건 꼭 보고 가라는 천상의 계시로구나 하고 생각이 들었다.
어느덧 오후 2시 정각이 되자 영화가 시작된다.
 
이 영화의 전반적인  스토리는 요약해 보자면, 황정민씨가 어렸을 적부터 살아온 이야기들을 추억하며 하나하나 있었던 일들을 그려내는 내용이였다.


6.25 ​전쟁이 고조 되면서 함경남도 흥남 부두에 이북 피난민들이 끝도없이 모여들고 작은 배와 조그만한 호위함이 진을 치고 있는데 미국 군 장성 참모가 피난민들을 태우고 부산으로 가자고 고하니 총 사령관이 절대 안되고 시간이 없다고 고집을 쓴다.

 

얼마큼 시간이 지체 될때까지 중공군이 온다는 연락에 따라 당초대로 시행 하라고 하나 장성 참모가 사령관을 붙들고 계속 애원하자

상부에 명령이 떨어 졌는지 무기를 모두 버리고 피난민들을 모두 승선 시키라고 명령이 하달되자 물밀듯이 몰려들고 오르고 난리다

뛰다가 없어져 밟히고 가족을 일어 버리고 울면서 오르다 손 놓치고 부딧쳐 바다에 떨어지고 엉키고 전 난리다. 정말 서글프다.

이래서 수많은 이산 가족이 생겨 낳겠지..... 훗날에 알았지만 그당시 모든 군함을 이용한 피난민이 9만~10만 이라고 하지 아마, 흑흑 

잠시후 붕 기적을 울리며, 군함 LST가 부산으로 향해 떠난다.

그리고 6.25때 가족과 헤어진 이야기부터, 동생 등록금 마련 위해 독일까지 간 이야기, 베트남 참전 이야기 등등..!
 
아! 정말 영화 시작하자 마자 다들 울고 중간에 웃고 중간에 울고 마지막에 울고 ~그랬었지.....
  
처음에  동생과 헤어지는 부분에서 너무 마음 아팟지요.
 
그리고  가족들을 위해 모든 걸 포기하고 희생하는 황정민씨 모습을 보니  슬퍼서 울고 (우리들 아바지례 생각이 너무너무 많이 났어요. 저희들 아바지도 약간은 비슷한 케이스가 아니였을까 생각이 듭니다.)
 
영화에서는 황정민씨가 동생들 학자금과 결혼자금 마련 하려고  고생을 많이 합니다. 
막바지에 헤어진 동생 찾는거 보면서 울고 중간 중간에 오달수씨 나와서 코믹 연기할 때 웃고~ ~
 
마지막에 황정민씨가 아버지 생각하면서 울때 감정이 업돼서 울고 .... 
영화보는 내내 아버지, 어머니, 가족들 생각이 계속계속 났습니다.
 
연기는 김윤진씨랑,황정민씨 사투리가 좀 어색하단 생각은 들었지만 전체적으로 다들 좋았습니다.
 
김윤진씨  머리 쥐 뜯고 싸우는거 정말 실감 나게 잘해가지구 ..!  
너무나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해준 영화 국제시장  ​​평범한 아버지의 가장 위대한 이야기?

내생각엔 국제시장에 나온 황정민 역할은 절대 평범한 아버지가 아니였습니다.

1950년 한국전쟁때 아버지와 동생 덕분이와 헤어지게 되는 덕수(황정민)

덕수가 한 많은 함흥 흥남 부두에서 LST 군함 그물에 오르다 그만 동생 덕분이의 손을 놓치면서 덕분이를 잃어버리게 되고 덕분이를 찾으러가는 아버지와 그때 헤어지면서 어머니와 남동생1명 여동생1명 덕수 이렇게 넷만 부산 국제시장에 고모가게 꽃분이네에 얹혀 살게 되면서 영화의 주 줄거리가 시작된다.

​어렸을적 아버지랑 헤어질때 아버지가 하신말씀 내가 없으면 장남인 덕수 니가 가장이다.
라고 하든 말씀 때문도 있지만 어머니와 동생 2명을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감이 더 컸던 덕수(황정민)

​하고싶은 것도 많았고 공부도 더 하고 싶었지만 남동생이 공부를 너무 잘해서 서울대를 합격한다.
등록금과 돈이 필요했던 덕수(황정민) 그래서 결국 어릴적부터 친한친구 달구(오달수)와 함께 독일 광부로 지원하게되어
3년간 광부일을 하러 독일로 떠난다.

광부일을 하는 장면에서 정말 마음이 너무너무 아팠다오~
한 가정의 장남으로서 아버지를 대신해 가족들을 지키기 위해 자기 꿈을 포기하고 자기 몸을 희생하며 타지에서 그렇게 힘들게 산다는게 정말 쉬운일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여기서 우리들은 부끄러웠다.  너무 편하게 살았구나 싶었네....)

독일에서 광부일을 하면서 힘들일도 많았고, 죽을고비도 넘기면서 일도 했지만 거기서 너무 사랑스러운 지금의 아내 영자(김윤진)을 만나게됨!!​

영자(김윤진) 역시 한가정의 장녀로서 독일 병원에서 시체닦는 일과 모진일을 맡아서 했음.

독일에서 서로 의지하며 잘 지내다가 덕수(황정민)이 먼저 비자가 끝나서 한국에 내려오게 되는데..
​ 
근데 영자(김윤진)이 임신을 해서 한국으로 내려와 둘은 결혼을 하게됨!!
딴딴따다.

국제시장 영화 줄거리 자체가 처음 장면부터 황정민의 할아버지 모습이 나옴 그러면서 과거와 현재를 왓다갓다 하면서 영화를 보여주는데, 솔직히 결말은 정해져 있었지만 그 과정을 풀어서 보여주는데 굉장히 몰입하면서 봤다. 너무 실감났다.

(ㅎㅎㅎ ^^중간 중간 너무 맘 아프고 존경스러워서 눈물도 났고 웃긴 부분도 굉장히 많았었다.)
​​
​그 후 고모가 돌아가시면서 꽃분이네 가게를 고모부가 팔려고 함
그래서 덕수(황정민)이 꽃분이네 가게를 사기 위해 또 다시 월남전에 참여하는 일을 하게됨...
거기에 여동생의 결혼자금도 부족했고 여러 가지로 또 돈이 필요한 상황이 생긴다.
그렇게 또 덕수(황정민)은 자기꿈을 포기하고 베트남으로 일을 하러 떠남

그때 그 시점에 다리도 다치게 된다.

​그후 꽃분이네 가게를 덕수(황정민)이 인수 하게 되고 가족 찾는 프로그램에서 막순이를 찾게된다.
막순이는 한국전쟁때 미군에게 구조 당해 부산 고아원에 맡겨저 미국으로 입양 됬었다고 한다.
아버지는 끝까지 만나지 못했지만..
동생을 자기 때문에 잃어버렸따는 죄책감에 시달렸었는데, 그래도 덕분이를 다행이 찾게된다.
(여기서도 많이 울었습니다.)

아, 다 쓸라니까 넘 길어요.

< 결말을 내린다.>

암튼 국제시장 결말은 황정민이 굉장히 까달스럽고 성격 포악한 할아버지로 나오게 되는데 그 이유를 알것 같앗다.

첨엔 왜서가 할아버지가 성격이 저러지 했는데 ....
살아온 환경과 그 어렸을적 고단함이 나이가 들어서 그렇게 성격으로 나온듯 이해가됬다.
본인의 꿈 희망 삶을 포기하며 가족을 위해 희생했던 그 억울함과 서러움이
나이가 들어서 그렇게 표출되는 걸 보여주고 싶었던 듯 하다.

그 세대들이 얼마나 힘들게 살았고 얼마나 간절하게 살았을지 아버지와 장남의 위대함을 보여준 영화인듯 하다.


우리 친구들은 다들 한번씩 보았는지.....?
너무나 슬프고 위대한....그시절 그때 아바지 오마니 생각에 눈시울이  뚜걱해 지는 영화, 정말 감동있게 보았다.
1950년 6.25일 새벽 남침이 시작되고 3년여 세월이 흐르며, 수많은 피난민과 고난에 행군을 따라 춥고 배 고프고 지치며 어려움을 헤치며 살아온 악착 같은 부모님 그 시절이 머리에 떠 오른다.

나 또한 50년도에는 태여 났지 못했지만, 52년도 (2년후) 따따할때 이 세상에 눈을 뜨고 인민군 인해 전술로 전국이 왈칵 뒤집어 지고 난리 통에 오마니 할마이가 중류층 살림 살이를 꾸린 덕분에.....

남들은 기껏해야 개나리 봇짐 지고 강릉 성덕 앞 고개 아님 길게는 삼척 울진 까지 피난 갔다 왔다는데, 우린 기억엔 없지만 주문진 항구에서 눈을 버이 드고 업혀서 LST 군함 타고 부산 까지 갔다가 인천 상육 작전이 이루어져 이북아들 쫏개 갈때 다시 올라 왔다나....(업혀서 눔뜨고 귀경은 잘 했는데, 기억이 없겠지 뭐....ㅎ^^)

아무튼 고생을 했어도 남다르다 이말이지.....
그때 버려진 애들도 많타는데, 어떨땐 몹습 생각을 해본 때도 있었지.... 하두 울어서, 훌렁 내 버렸으면 어찌됬을까? ㅎㅎ^^

우리 친구들 중에 1953년 7월 이전에 태어난 아들은 쬐금 전쟁 맛을 봤으니(봐도 기억엔 없지만).....
요런 아들은 내가 친구로 써 주지만 휴전 이후 그 뒤로 태어난 아들은 친구로 안 써준다 요말이요.
왜냐고 묻는다고.....

우린 전쟁 세대고 너 들은 전후 세대니깐,  ㅎㅎㅎ^^
그 것은 엄청난 차이가 나거든.... 
기듬해 봄과 초 여름 전에 났으면 좀 써 줄까나? ㅎㅎㅎ^^

아무튼 그후로 부터 휴전이 되고 미국 성조기가 달린 밀갈기 우유갈기 강냉이죽을 배급 받아 먹고 잔뼈가 굵으며 성장 했으니
.....쯧쯧....
그 굳어서 마른 우유 갈기 갈가 먹다 쾍쾍거리고 강냉이 죽 배급 탈때 순서를 안 기다리다가  사꾸(긴 국자)로 머리통을 얻어 맞으며 뛰 놀던 그 시절이 참으로 그립다.

아바지래 태배린 곳이 피양남도 라서 아마 네이 들과는 좀 남달야라, 이북 피안도 말좀 해 보기요.
꼬롬 아바지 오마니 할마이, 야래 날 닮아씨요. 고져  덩거장(정거장) 당마당(장마당) 메이야  간나세끼레 지둘레보라우  아새끼레  아무나하는게아이야  알간 이 보라우 기거이 어디메가노 등등

한만은 대동강아 노래가 마렵구나....ㅎㅎ^^~~

어쨋든 다들 안아프고 지금껏 잘 살아 왔으니 또 남은 30년을 모두 잘 살아 봅시다.
고져 업혀서 전쟁 귀경도 잘하구 서리 영화도 잘 봤쑤다 ㅎㅎㅎ^^ -이상 끝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