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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기 대망(大望)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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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전성우 작성일 2012-03-01 00:53 댓글 0건 조회 96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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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부나가와 쇼오군의 밀월은 곧 끝이 납니다. 원인제공자는 일단은 노부나가입니다.
머리깎고 스님을 하다가 형 요시테루가 암살당한 덕분에 우여곡절 쇼오군이 된 요시아키는 아직도 젊습니다.
 
천재일우 천하인이 되었는데, 실상은 허울뿐이었습니다, 젊은 쇼오군은 예전의 권위와 위엄을 되찾으려 노력합니다.노부나가는 얌전한 새색시같은 쇼오군을 원합니다. 호강은 시켜줄테니 꼭두각시 노릇을 해주기를 원하는바입니다.
 
노부나가는 막내동생같기도하고 아들내미같기도 한 쇼오군의 경거망동을 제한하기 위해서
쇼오군 행동수칙 9개조를 만들어서 쇼오군에게 서명을 시킵니다. 조금 있다가 7개조를 더 추가합니다.
 
일본판 마그나카르타에 두번이나 서명을 강요당한 쇼오군은 노부나가에게 반감을 가지게 됩니다.당장은 참을 수 밖에 없지만, 쇼오군이 심중에 품은 굴욕감은 이후 노부나가를 피바다에서 헤엄치게 만듭니다.
 
쇼오군 행동수칙(殿中御掟)의 내용은 찾아보지 않았지만, 나중에 이에야스가 만든 천황 행동수칙으로 미루어 매우 굴욕적이었을거 같습니다. 에도막부의 규정에 의하면 천황과 친왕은 바다를 보면 안 되었다고 합니다.
 
나중 에도막부 말기 명치유신 직전에 친왕중에 하나가 관군의 명목상 대장이 되어 에도로 진군했을 때,행로에 바다에 면한 길이 있었는데, 친왕이 생애 처음으로 바다를 보고 입을 크게 벌려 감탄하였다고 합니다.
 
에도막부 260여년간 역대 천황과 그 피붙이중에서 바다를 처음으로 본 사람이 그 사람이었다고 하니천황이란게 교토의 찌그러진 궁전에 갇혀살던 수인이었던 셈입니다. 알고보면 불쌍한게 천황이었습니다.
 
심중에 칼을 품은 젊은 쇼오군이 칼을 뽑게 된 계기는 북쪽의 패자 아사쿠라였습니다.
교토의 동쪽 관문인 미노에 웅거한 노부나가가 교토의 서쪽 셋슈를 장악하고 또 남쪽인 이세를 장악했습니다.
 
교토의 동서남북을 모두 장악하면 일단 천하를 장악한 것이 됩니다.
네 방면중에서 아직 북쪽이 미완입니다. 노부나가는 쇼오군의 어몀으로 북쪽의 아사쿠라에게 상경을 명령합니다.
 
당주가 직접 상경해서 새 쇼오군의 면전에 엎드려 순종하라는 명령을 아사쿠라가 무시합니다.
아사쿠라가 순종하지 않으면 쇼오군을 소유한 노부나가의 천하도 아직 완성되지 않습니다.
 
몇번의 어명에도 따르지 않았으므로 아사쿠라는 역적이 되었습니다. 노부나가는 역적토벌을 떠납니다.그런데 노부나가와 아사쿠라 사이에는 아사이가문이라는 비수가 비스듬히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노부나가가 아사쿠라를 공략하러 들어갔을 때, 아사이 군세가 배반하면 퇴로를 차단당하게 됩니다.노부나가는 아사이의 젊은 당주 나가마사와의 동맹을 거듭 거듭 확인하고 아사쿠라를 향해 출전합니다.
 
쇼오군의 명을 받아 역적 아사쿠라를 치러가는 노부나가의 군세는 3만여, 물밀듯한 대군입니다.이에야스의 군세까지 더한 대군은 아사쿠라의 최전선 테즈츠야마성을 하루만에 함락 성병 1400명을 살해합니다.
 
역적인 아사쿠라의 명운은 풍전등화, 노부나가의 시퍼런 칼날이 아사쿠라 당주 요시카게의 목 위에 떨어지기 직전입니다.이 때 노부나가의 욱일승천을 무너뜨리는 느닷없는 변수가 등장합니다. 철석같이 맹약했던 아사이가 배반한 것입니다.
 
원래 아사이집안은 아사쿠라집안과 오랜 혈맹이었습니다. 동해의 대영주인 아사쿠라가 아사이와 오래 화친한 것은 아사이의 영토가 전략적으로 아사쿠라의 관문과 같은 위치였기 때문입니다. 일본 중부의 세력이 아사쿠라를 공격하기 위해서는 아사이와 화친하든 정복하든지 해서 후환을 없이 한 후에야 공략이 가능했다고 합니다.
 
아사쿠라의 전초기지같은 치명적인 위치를 차지한 덕분에 아사이는 대국 아사쿠라의 후원을 받아 지역패자가 되었습니다.규모는 천하를 노릴만큼 크지않지만 강적들과 숱한 전루를 치러낸 아사이의 정병들이 노부나가의 퇴로를 차단했습니다.
 
아사이가 노부나가를 배반한 것은 젊은 당주 나가마사의 뜻이 아니엇다고 합니다.
아들에게 당주를 물려주고 명예회장으로 물러앉았던 아버지가 아사쿠라의 간청과 오랜 의리에 배반을 결정한 것입니다.
 
효자 아들 아사이 나가마사는 아버지의 뜻을 따릅니다. 그 아버지는 노부나가를 뱀을 보는것처럼 싫어했다고 합니다.아들인 나가마사는 심정적으로 노부나가의 편이었지만, 아버지의 명을 거역할만큼의 기량은 아니었던 것입니다.
 
아사이에 의해 퇴로가 차단되었다는 것은 자동적으로 보급로도 끊겼다는 의미입니다.
군대는 보급입니다. 군량, 군수물자, 병력의 보충이 이루어지지않으면 전쟁을 수행할 수 없게 됩니다.전쟁은 고사하고 후방이 차단되었다는 소식만으로도 군의 사기는 땅에 떨어져 더 이상의 전투조차 불가능해집니다.
 
노부나가가 아사이 나가마사를 믿었던 것은 절세미인이었다는 여동생 오이치가 시집가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합니다.오이치의 남편인 나가마사가 설마 매형을 배반하랴 믿었던 노부나가는 오케하자마 이래 최대의 난국에 봉착합니다.
 
앞에는 아직 쌩쌩한 아사쿠라의 군세가 기치를 나란히 하고 결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뒤에는 험준한 산길을 차단한 아사이의 군세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잠깐만이라도 망설이면 독안의 든 쥐가 됩니다.
 
아사이의 군세가 아직 완전히 천라지망을 펼치기 전에 재빨리 후퇴하는 것만이 노부나가에게 남겨진 유일한 길입니다.전광석화, 노부나가는 즉시 삼십육계를 결정합니다. 저번에도 말씀드렸지만 후퇴는 어렵습니다. 자칫하면 전멸입니다.
 
틀립없이 추격해 올 아사쿠라군세를 맞아 싸워 본대의 후퇴를 도울 희생양이 필요합니다. 이른바 후군입니다.모두들 눈치를 보는데 후군에 자원하는 한 장수가 있습니다. 십중팔구 전멸인 후군을 자원하는 바보는 과연 누구일까요?

교토의 동서남북을 온전히 틀어막을수 있는 절호의 챤스를 놓친 노부나가는 이를 갑니다.
만약 이 때 노부나가가 무사히 아사쿠라를 토벌할 수 있었다면, 전국시대도 좀 더 일찍 끝났을지 모릅니다.
 
나중에 혼노지에서 아케치 미쓰히데의 반란을 맞았을 때, 노부나가가 시동 란마루에게 공격자가 누군지 물어보았는데,란마루가 역적은 아케치라고 대답하자, 노부나가는 '아케치라면 방법이 없구나, 죽을 준비를 하자.'고 말했답니다.
 
이처럼 형세판단의 달인이었던 노부나가는 아자이의 배반을 듣자마자 삼십육계를 선택합니다.이 시점에서는 아자이의 퇴로차단이 완벽해지기 전에 초를 다퉈서 탈출하는 것이 유일한 길이라고 판단한 것입니다.
 
심지어 노부나가는 대오를 갖춘 질서정연한 후퇴조차 포기합니다.
후군으로 자원한 히데요시를 사지에 남기고 노부나가는 소수의 수하를 거느리고 뿔뿔이 필사의 탈출을 시작합니다.
 
이 때 히데요시와 함께 이에야스도 후군을 자원했으나 동맹자를 사지에 남기는 것은 무사의 도리가 아닙니다.마지막까지 최후방을 지킨 것은 히데요시와 그 수하 천여명이었다고 합니다.
 
노부나가가 아슬아슬한 상황을 교묘히 피해내고 천신만고 교토로 귀환했을 때, 따르는 자 겨우 십여명...이 때 만약 아자이 나가마사가 독한 맘을 먹었다면 노부나가는 객지에서 고혼이 되었을거라고 합니다.
 
노부나가에게 다행이었던 것은 철석같은 맹약을 깨뜨린 것이 부끄러운 젊은 나가마사의 양심이매형인 노부나가를 꼭 죽이자는 독심을 품지 못 한 것이었습니다. 나가마사는 일부러 꾸물거렸다고 합니다.
 
누구나 꼭 죽을것이라고 생각했던 후군 히데요시가 기적적으로 생환합니다.
천우신조로 살아 돌아온 히데요시를 마중한 노부나가군은 마치 귀신을 보는것처럼 놀랐다고 합니다.
 
주군인 노부나가가 도주한지 꼬박 하루를 버티면서 시간을 번 히데요시가 같이 죽기로 결심한 수하들에게 말했답니다.지금부터 칼도 창도 방패도 버리고 무거운 갑옷도 버리고 교토까지 달린다. 부디 살아서 만나자..뒤를 따르는 아사쿠라군도 악착같이 쫒았지만, 도망치는 히데요시무리는 그야말로 필사적,이틀이나 걸린 대탈주를 히데요시들은 뜬 눈으로 계속 뛰었다고 합니다. 멈추면 그냥 죽는 지옥의 달리기였습니다.
 
아자이의 배반이 가져온 파장은 엄청났습니다.
일단 목숨을 건진 것 이외에는 노부나가를 둘러싼 모든 정세가 돌변ㅗ합니다.
가장 커다란 파장은 불패장군 노부나가도 실상은 별거아니었다는 사실이 알려진 것이었습니다.무서워 참던 쇼오군 요시아키가 노부나가를 만만히 보게되었습니다. 노부나가와 쇼오군의 불화가 표면화되기 시작합니다.
 
실력이 전혀 없는 쇼오군이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것은 어명을 내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모욕적인 쇼오군행동수칙으로 치욕을 준 노부나가를 거꾸러뜨리기 위해서 쇼오군은 각처에 밀서를 띄웁니다.
 
아사쿠라, 아자이, 다케다, 모리, 미요시 3인방에 엔랴쿠사, 이시야마혼간사 등의 불교세력까지 쇼오군에게 호응합니다.모두들 떠오르는 노부나가를 견제하고싶던 차였습니다. 욱일승천하는 노부나가는 모두에게 위협이었던 때문이었습니다.
 
노부나가의 3배가 넘는 일대 세력이 쇼오군의 어명까지 지니고 노부나가를 동서남북에서 포위하는 사태가 벌어집니다.아자이가 노부나가를 배반한것이 음력 4월이었는데, 포위망이 형성된 것은 5월 다시 싸움이 붙은 것은 6월입니다.
 
이 모든 위태로운 국면이 아자이 한 사람의 배반으로부터 일어난 것입니다. 아자이를 씹어먹고싶은 노부나가입니다.6월, 아사쿠라 국경에서 가까운 아네가와강에서 노부나가 이에야스 연합군은 아자이 아사쿠라 연합군과 격돌합니다.
 
싸움은 기호지세, 엎치락 뒤치락하던 전투가 아사쿠라의 맹장 이소노의 저돌적인 공격으로 노부나가가 불리해지던 순간 적정을 예의 주시하고 있던 이에야스의 매서운 측면반격으로 위기를 넘깁니다. 이소노는 끝까지 돌격하다가 전사합니다.
 
아네가와강의 승전으로 기세를 회복한 노부나가는 두달 후인 8월, 셋슈에서 거병한 미요시 3인방을 토벌하려 출동하지만 노부나가의 근거지에서 원거리인 이 싸움은 노부나가에게 불리한 싸움이었습니다. 미요시에게 원병이 속속 도착합니다.
 
교토의 서부 셋슈에 못 박힌 노부나가에게 급보가 떨어집니다. 노부나가가 없는 틈을 타서
아자이 아사쿠라 엔략쿠지 등의 3만 군세가 교토 북쪽의 오다 전방기지 오미 사카모토성을 공격해왔다는 급보입니다.
 
아자이 등의 맹렬한 공격에 사카모토성은 풍전등화, 노부나가의 배다른 동생 노부하루와 중신 모리 요시나리가 전사합니다.황급히 오미로 돌아온 노부나가에 놀란 아자이 아사쿠라는 히에이산에 진지를 구축하고 대치합니다.
 
노부나가가 셋슈에 얼마간 붙잡힐거라 기대했던 아자이 아사쿠라들이 체면불구 급반전한 노부나가에게 경악한 나머지 국면은 소강상태, 한동안 아자이와 팽팽하게 대치하던 노부나가에게 또다시 급보가 날아듭니다.
 
막강한 불교세력 이시야마 혼간사의 종정 렌뇨가 교토 남쪽인 이세지방의 이시야마 문도들에게 노부나가 공략을 명합니다.총법사 렌뇨의 명을 받은 문도들은 노부나가의 본국인 오와리 일대를 공격하여 노부나가의 본거지가 위기에 빠집니다.
 
오와리에서 노부나가의 또 다른 동생 노부오키와 중신 사카이가 전사합니다. 동생들의 숫자가 점점 감소하는 노부나가..아자이들과 대치하는 상황에서 후방을 강습당한 노부나가는 멸문의 두려움을 느낍니다. 사태는 위중합니다...
 
어떻게든 궁지를 빠져나갈 방법을 찾던 노부나가는 이제는 협조를 바랄수 없게 된 쇼오군 대신 천황을 사용합니다.천황에게 압력을 넣어서 서로 화친하라는 칙명을 받아낸 노부나가는 아자이들에게 한 차례 격렬한 공격을 퍼부은 후 칙명을 보이고 화친을 맺는데 성공합니다. 이 때 노부나가는 아사쿠라에게 매우 저자세였다고 합니다.
 
명문 아사쿠라에게 천하를 양보할테니 부디 화친해주십사고 애걸한 노부나가는 한동안 자중합니다.그러나 벌써 다음해에는 다시 맹수본능을 일으켜 복수전을 벌입니다. 상대는 아자이 아사쿠라가 아닌 만만한 엔략쿠지..작년의 위기 때 아자이 아사쿠라와 한 패로 어울렸던 엔략쿠지는 일본 굴지의 불교사원 세력이었습니다.이 사원이 노부나가의 집중공격을 받은 이유는 그 지리적 위치와 작년의 원한 때문이었습니다.
 
아자이 아사쿠라가 공격해오는 길목에 위치한 이 사원은 근방의 수만 문도를 거느린 전투집단으로전국시대의 불교사원은 하나의 봉건영지였다고 합니다. 승려는 가사를 걸친 사무라이, 수만의 문도는 잡병이었습니다.
 
노부나가에게 적대적인 이 사원세력을 방치하는 것은 목에 걸린 생선가시를 방치하는 것과 같습니다.엔랴쿠지를 포위한 노부나가는 여러 차례 히에이산을 비우고 퇴거하라는 사자를 보냅니다. 대법사는 일언지하 거절합니다.
 
마침내 결심한 노부나가는 엔랴쿠지가 위치한 히에이산 전체를 모조리 태워버릴것을 명령합니다.부처를 태워버리라는 명령에 어지간한 노부나가의 부하들도 망설입니다. 아케치 미쓰히데가 특히 반대했다고 합니다.
 
목을 걸고 상주하는 부하들에게 노부나가는 부처의 불벌은 내가 감당할테니 그대들은 명을 따르라고 호령합니다.아케치 등의 명분은 천하의 공분을 살거라는 것이고 노부나가의 명분은 적들은 승려가 아니라 가사를 걸친 도적이라는 것입니다.
 
노부나가의 엄명에 히에이산은 화공을 받아 삼일 밤낮을 불타올랐다고 합니다.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마저 차근 차근 태워 올라오는 노부나가에게 대법사의 사자가 줄을 잇습니다.
 
명령대로 퇴거할테니 화공을 멈추고 퇴로를 열어달라는 간청을 노부나가는 사자의 목을 베어버리는 것으로 답합니다.총 여섯차례의 사자가 내려왔는데 모두 참살되었다고 하니, 그후로 노부나가가 불교와 원수가 된것도 당연합니다.
 
총 2만여 문도가 대법사에서 어린아이까지 거의 대부분 타죽거나 칼을 맞아 죽었답니다.
이후로 엔랴쿠지의 남은 문도들에게 노부나가는 마왕으로 불리게 됩니다. 노부나가의 복수전 무섭습니다..엔랴쿠지싸움은 대세를 가르는 큰 전투는 아니었지만, 노부나가는 다시 영지를 안정시키고 숨을 돌리게 되었습니다.당장의 화급을 면한 노부나가지만, 위기는 아직 진행중입니다. 사방에 쇼오군의 밀서를 받은 무장들 천지이기 때문입니다.

엔략쿠지를 불태운 노부나가는 아케치의 예상대로 천하의 공적이 되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전국시대 일본종교의 대세는 불교였습니다.
문맹인 민초들 절대다수가 불당과 부처를 신봉했고 지식인 무장중에서도 독실한 신자가 많았습니다.언제 죽어도 이상하지않은 난세에서 사후에 다음세상이 있다는 믿음은 한 줄기 희망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름있는 무장들중에서는 생전에 법명을 받은 사람들이 수두룩합니다.
다께다 신겐의 속명은 하루노부였는데 그가 장년에 들어 받은 법명이 신겐(信玄)입니다.
 
정치력이 뛰어났던 신겐이니만큼, 출가하여 법명을 받은 것이 민중의 지지를 위한 책략일수 있습니다만,그의 일대기를 읽어보면 실제로 불가의 가르침에 심취해있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합니다.
 
이 신겐이야말로 전국시대 가장 뛰어난 무장중의 무장이었습니다.
노부나가가 가장 두려워했던 두 호랑이는 우에스기 겐신과 다께다 신겐입니다. 다만 우에스기는 멀리 있는 호랑이...노부나가가 마지막까지 회피하려 했던 장수가 가까운 호랑이 다께다 신겐입니다. 신겐생전에 노부나가는 공손했다고합니다.
 
이 다케다 신겐이 움직입니다.
노부나가의 멸망을 바라는 쇼오군의 밀지가 신겐에게 도착했기 때문입니다. 명분은 무섭습니다.물론 명분이 다는 아닙니다. 마침 밀지가 도착한 타이밍이 좋았습니다.
 
다케다 신겐은 우에스기 겐신과 항상 싸웠지만, 적은 우에스기만이 아니었습니다.
우에스기가 서쪽의 강적이라면 호오죠는 동쪽의 강적이었습니다.
우에스기 다께다 호오죠 이 셋은 이합집산을 거듭하면서 물고 물리는 관계였는데,
쇼오군의 밀지가 도착하기 얼마 전까지 다께다는 우에스기와도 싸우고 호오죠하고 싸우는 불리한 입장이었습니다.
 
그런데 호오죠에 정권교체가 일어납니다. 당주가 사망하면서 그 아들이 새로운 당주가 된 것입니다.이 때 믿기 힘든 일이 벌어집니다.
사망한 당주가 다께다와 화친하라는 유언을 남기고 죽은 것입니다.
 
유훈통치는 언제나 정권교체기의 새 영주에게 든든한 보호막이 되어줍니다.
정통성을 부여하기 때문입니다.다께다는 호오죠라는 든든한 동맹을 얻고 우에스기는 다께다와 호오죠 양가의 동맹에 위축됩니다.
 
우에스기와 호오죠는 절대로 양립할 수 없는 앙숙이었다고 합니다.
우에스기가 호오죠의 영지가 자리한 간또오의 명목상 총독 자리를 양도받았기 때문입니다.
 
우에스기가 강력해지면 호오죠는 존립기반이 흔들리게 됩니다.
실제로 우에스기는 해마다 호오죠가 위치한 간또오 지방을 공략했습니다.
실속은 없었다고 합니다.
 
이제 다께다 신겐은 배후의 걱정을 덜었습니다. 약간의 수비병만 남기고 상경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 것입니다.타이밍좋게 쇼오군의 노부나가 토벌 명령도 내려왔습니다.
신겐의 나이 51세 사나이로서 절정기입니다.
 
신겐은 3만군세를 동원해 상경을 개시합니다.
노부나가가 그토록 회피하려던 최악의 상황이 벌어진 것입니다.
노부나가는 완벽히 포위당합니다. 일본 중부를 완전히 둘러싸는 사상 초유의 거대한 포위망입니다.
 
교토 인근을 차지한 노부나가를 둘러싼 포위망을 차례대로 꼽아보면 동쪽은 원한에 사무친 미요시3당이 이를 갈고 있고,남쪽은 이시야마 혼간지의 문도들이 궐기해 있습니다.
 
북쪽의 강적 아자이 아사쿠라가 노부나가와 누가 멸망할지를 놓고 생사결로 대치하고 있습니다.착실한 동맹 이에야스가 막고 있던 동쪽이 이제 위험해졌습니다.
그냥 위험한 정도가 아니라 핵공격입니다.
 
당시 일본의 군사들 중에서 가장 강한 군사를 꼽으라면 한결같이 다께다 신겐의 군사를 꼽았답니다.군사의 강약을 논하는 조건으로 여러가지가 있겠습니다만, 지휘관의 지휘능력을 제외하고 말한다면 요점은 병사 개개인의 훈련의 정도와 전투경험, 장비의 우열과 충성심 사기같은 멘탈의 강약 정도입니다.
 
이 모든 것을 다 종합해서, 다께다의 병사들은 자타공인 당대 최강이었다고 합니다.
다께다의 근거지인 가히 시나노 지방은 오늘날 일본알프스로 불리는 산악지대 중의 산악지대입니다.건각이라는건 바로 이 산골군사들에게 딱 맞는 표현입니다.
이 우직한 군사들이 강적인 우에스기와 호오죠들과 끊임없이 싸우면서 단련되어진 것입니다.
 
우직하고 강인한 병사들이 희대의 명장 신겐에게 조련된지 30년, 신겐은 우수한 무장인 동시에 우수한 통치자였습니다.험악한 산골에 경작지를 늘리기 위해서 무수한 다락논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쌀은 인구가 되고 병력이 되는 시절이었습니다.
 
산골짜기에 다락논을 만들기 위해서는 개간비용이 많이 듭니다.
우수한 경영자 다께다는 금광 은광을 개발합니다.
전국시대 최대의 광산에서 산출된 금은은 신겐의 비용이 됩니다.
 
쌀은 병사를 늘리고 금은은 군비까지 늘립니다.
다께다가 당대 최강의 기마군단을 거느리게 된 것은 3박자 4박자가 모두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기마군단이 다수를 차지하는 신겐의 군세 3만이 무쇠로 만든 파도처럼 이에야스를 덮쳐옵니다.이 군세 3만중에 2천은 얼마전까지 이마가와의 땅을 노리고 서로 치고받던 호오죠의 군세였다니 후방도 만만세...같은 3만이라도 지휘자가 누구냐에 따라서 강약이 달라집니다.
풍림화산 다께다 신겐은 그간 쌓아 온 경험과 지혜가 일생 최고조에 달한 노련한 호랑이입니다.
 
이제 겨우 전국구로 벼락출세한 노부나가의 군사는 수는 많아도 단련이 부족한 신병이 대부분이고이들을 지휘하는 중간장교들도 지휘경험이 태부족입니다.
대장도 벼락출세 장교도 벼락출세 잡병은 오합지졸...
 
질이 떨어지는 노부나가가 이기는 방법은 양으로 밀어붙이는 것입니다.
그런데 양에서도 부족해졌습니다.대 노부나가 포위망이 완성되어서 동서남북 모든 방면에 군세를 나눠야하기 때문입니다.
 
아자이 아사쿠라와 비교할 수 없는 강적 노련한 다께다가 동쪽의 제방 이에야스를 덮쳐오는데
노부나가가 파견한 원병은 겨우 3천명, 이에야스의 군세 8천과 합해도 총군세는 1만 남짓..
 
다께다 신겐의 위력은 이에야스의 영토에 진입한지 단 하루만에 여섯개의 성채를 함락시켜 그 강대함을 입증합니다.다께다 본대의 강함과는 별도로 신겐의  소규모 별동대가 노부나가의 본거지인 오와리에서 성 하나를 떨어뜨립니다.
 
이와무라댁은 노부나가의 아버지 노부히데가 생전에 가장 사랑했었다는 나이어린 애첩이었는데17살의 나이로 40대의 노부히데와 이와무라성에서 살림을 살았었습니다.
결과는 노부히데의 복상사...
 
이와무라댁의 배 위에서 이상을 감지한 노부히데는 어린 애첩에게 '내가 죽거든 노부나가에게 의지하라'는 말을 남깁니다.이 말을 듣기 전까지 댄디보이 노부유키(노부나가의 동생)를 심정적으로 지지하던 이와무라댁은 노부나가를 편듭니다.
 
노부히데의 마지막 순간에 노부나가가 아닌 노부유키에게 가문상속의 유언을 내렸다는 증언을 하라고 요구하는 노부나가 반대파의 압력을 이와무라댁은 거부합니다. 자신을 아껴주던 노부히데의 유언을 기억했기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이 덕분에 이와무라댁은 이와무라성을 상속하는데, 당연히 청상과부로 살고 있었습니다.
이 이와무라댁을 신겐의 별동대장 아키야마가 미남계로 공략합니다.
성문을 열면 다께다의 장수와 재혼시켜주기로 하였답니다.
 
뭐 이와무라댁이 사내가 그리워서 성문을 연 것은 아니었답니다.
성내의 중신들이 형세를 보고 다께다에게 붙은것이었습니다.

노부나가는 한참 아자이 아사쿠라와 피튀기는 싸움을 벌이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이 쪽은 마음 내키는데로 철수할 수 있는 물렁한 상대가 아닙니다.
한번 물러서면 본국까지 추격해 올게 분명합니다.
 
부하장수가 막아내고 있는 서쪽도 남쪽도 고전 중인데, 동쪽에서 대호 다케다가 큰 입을 벌리고 이미 도약했습니다.아자이들한테 붙잡힌 노부나가의 형세는 풍전등화, 예상할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펼쳐지고 있습니다.
 
원군을 요청한 이에야스에게 노부나가가 보낸 원군은 겨우 3천,
중신들중에는 노부나가는 성의가 없으니 관계를 재고해보자는 말까지 나옵니다.
쓰나미같은 다케다에게 일단 타협하자는 의견까지 나오는 와중에 이에야스는 갈 길을 찾지 못합니다.
 
이제 국면은 가히의 호랑이 다께다의 상경을 저지하느냐 못 하느냐로 압축되었습니다.
객관적으로 평가하자면 다께다를 도저히 이길수 없습니다.
이에야스는 무슨 배짱으로 호랑이에게 대항할까요?
 
때는 바야흐로 노부나가 액년의 해, 사면초가 사방이 모두 적인데, 쇼오군까지 적대하니 명분조차 잃었습니다.10년 가까운 대운을 마감하고 대운 이후에 반드시 찾아온다는 2년의 액년중의 절정을 맞이한 노부나가, 위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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