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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기 대망(大望)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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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전성우 작성일 2012-02-18 22:57 댓글 0건 조회 92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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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체적인 위협은 아직 아무데도 보이지않는데, 패닉에 빠진 사케다에게는 모든 정황이 두렵기만 합니다.
위태로운 오카자키성에서 꼼짝하지않고 버텨내는 것은 호랑이 앞에서 우두커니 버티는것처럼 무섭기만 합니다.

상황을 바라보는 시각은 사람이 처한 입장에 따라서 천지간만큼이나 차이가 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위기에서 허둥대지 않고 상대방의 시각으로 상황을 바라보는 냉정함이 행운을 얻는 열쇠라는 생각이 듭니다.

노부나가가 사람을 발탁할 때는 먼저 기량을 보고 마지막으로 그 사람의 운을 보았다고 합니다.
능력이 출중해도 운때가 따르지 않으면 변수로 가득찬 난세에서 기량을 발휘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아까운 천재들이 어처구니없는 불운으로 반딧불처럼 스러져가는 것이 인생입니다.
몸과 마음을 갈고 닦으면 자신의 그릇은 키울수 있습니다만, 운은 어떻게 키우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천지가 무너져도 허둥대지않고 침착함을 유지하는 것이 자신의 운과 복을 늘리는 첩경이라고 합니다.
이에야스는 평생을 통해서 상대방의 입장과 시각으로 국면을 내려다보는 훈련을 게을리하지 않았답니다.

천둥벌거숭이인 이에야스가 동이 트기 시작하는 다이쥬지에서 고난에 가득찬 그 때까지 그의 일생중에서
난생 처음으로 행운을 만납니다. 가슴이 먹먹해진 주종은 묵묵히 서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한참이나 지난 후에 노신 사카이가 얼굴을 찡그리면서 이에야스에게 말합니다.
주군, 사케다란 놈이 버린 성을 줏으러 가보십시다.
행운이란 놈을 난생 처음 마주친 이에야스, 아직도 입이 떨어지지 않아서 고개짓으로 대답을 대신합니다.

기량이 심상치않은 이에야스에게 드디어 운이 열리기 시작합니다.
버린 성을 줏은것이니 이마가와를 배신한 것도 아닙니다. 처자식은 아직 안전합니다.

그러나 오다와 이마가와 두 세력의 접점이 된 미카와에서 조만간 어느 쪽에 붙을것인지 결단해야만 합니다.
기울어가는 이마가와냐? 떠오르는 오다냐?

가신들은 당연히 떠오르는 오다를 선호합니다. 시국은 오다의 편이기 때문입니다.
처자식은 아직도 이마가와 슨푸에 있습니다. 천애고아인 자신의 인생에서 처음 얻은 가족입니다.

괴로운 결단은 나중 일이고
당장의 이에야스 주종에게는 가슴 벅찬 십사년만의 귀향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축하합니다. 젊은 이에야스

이에야스가 오카자키성에 입성해서 맨 처음 한 일은 허물어진 성벽과 건물들을 수리하는 일이었습니다.
성주대리는 셋방살이같은 마음가짐이어서였는지 관리가 엉망이었다고 합니다.
더불어서 십수년 동안 궁핍했던 역대 가신들이 다시 성내로 들어와서 봉록을 돌려받고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잠깐 일본역사에 대해서 조금 짚어보겠습니다.
미나모토노 요리토모가 숙적 헤이께를 격파하고 가마쿠라에 막부를 세운 이래 명치유신까지 700년간 봉건시대가 있었습니다.
700년간의 일본 봉건제도가 어떤 시스템으로 돌아 갔는지를 이해하면 일본역사서나 소설을 읽을 때 매우 도움이 됩니다.

일본사람이면 누구나 알고있다는 츄신구라(忠臣藏)...
츄신구라는 억울하게 참소당해 할복한 주군의 복수를 위해 47인의 충신들이 오래동안 기회를 엿보다가 마침내 복수했는데,
비록 원수지만 막부의 중신을 참살한 것은 참형감인 것을 충성심을 인정받아 명예형인 할복형으로 감형받았다는 내용입니다.

일본 봉건시대에는 이런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읽으면 일본사람에 대한 열등감같은게 살짝 생깁니다.
저렇게 충성심이 높으니 일본이 선진국이 된거야.. 일본놈은 밉지만 그 놈들 단결심만큼은 부럽네..
일본이 잘 나가던 80년대, 열등감으로 씁쓸했던 적이 있었습니다만, 그럴 필요없었던거 같습니다.
 
일본사람에게는 특별히 충성심 유전자나 의리 유전자같은게 따로 있는걸까요?
아니면 일본의 풍토나 환경에 일본인을 의리있게 만들어주는 특별한 뭔가가 있는걸까요?

저는 유전자나 풍토의 차이가 아니라 일본의 사회시스템이 충성을 특별히 강제해왔기 때문이라는 의견입니다.
저한테는 북조선인민들이 어버이수령을 경애하는게 가식이 아닌 진심이라는 것이 오랫동안 신기했었습니다.
그런데 북한의 사회시스템 속에서 오래 생활하다 보면 보통 사람도 저절로 수령을 경애하게 된다고하더군요.

마찬가지로 크고 작은 츄신구라가 일본 역사에 수없이 발생한 것은 일본의 유구한 봉건제도 때문이었습니다.
미나모토 요리토모가 가마쿠라막부를 개창한 후로 일본은 수백명의 다이묘들이 연합한 합중국이었습니다.
각각의 다이묘는 스위스의 칸톤이나 미국의 스테이트와 비슷하게 사법권 군사권에 외교권까지 갖춘 독립국입니다.

막부의 장군이 이 다이묘들에 대한 지휘권을 천황에게서 이양받아 일본을 지휘하는 겁니다.
다이묘간의 분쟁이 벌어지거나 외국의 침략이 발생하거나하면 장군이 처분이나 명령을 내리는 시스템.

만약 어떤 다이묘가 장군의 처분을 받아 가이에키(改易 영지를 몰수당하는 것)를 당하면 무슨일이 벌어질까요?
영주인 다이묘는 대개 할복처분을 받게됩니다. 영주는 거의 여왕벌같은 존재여서 영지를 몰수당하면 살 길이 없습니다.
다이묘가 할복 혹은 운좋게 머리를 깍고 절간으로 들어가면 그 영지에는 다른 영주가 명을 받아 들어오게 됩니다.

새로운 영주는 조선의 사또처럼 달랑 혼자 부임해 오는 것이 아니라, 가신 일체를 거느리고 들어옵니다.
영지에서 녹봉을 받던 기존의 천석짜리 백석짜리 오십석 삼십석짜리 무사들이 모두 봉록을 잃게됩니다.

봉록만 잃게 되는 것이 아니라 성내의 거택까지 빼줘야 합니다.
요즘식으로 말하자면 기업의 오너가 바뀌는데 생산직만 빼고 관리직은 모두 짤리는겁니다.
직장만 짤리는게 아니고 사택도 빼줘야하는 합니다. 한 순간에 알거지가 되는 셈입니다.

요즘에는 퇴직금으로 식당이라도 열어서 호구지책을 열지만, 한번 무사는 죽어도 무사입니다.
수중에 남은 몇푼이 떨어지면 그때부터 굶어야합니다. 아내는 날품을 팔고 아이들은 반거지가 됩니다. 하루 한끼 먹습니다.

요즘의 명퇴 은퇴하고는 비교할수 없는 문자 그대로 인생막장이 가이에키입니다.
가이에키를 당하지않으려면 최대한 충성을 바쳐야합니다. 내 한 목숨 바치는건 가이에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한 목숨 바쳐 충성을 다 하면 나는 죽더라도 처자식은 이어집니다.
전쟁에서 지면 무조건 가이에키입니다. 사무라이가 용감하지 않을래야 않을수가 없는 시스템입니다.

십사년 전, 미카와의 가신들이 느닷없이 어이없는 가이에키를 당했습니다.
주군 히로타다가 비명에 죽고 유일한 혈육인 이에야스가 오다에게 인질이었을 때 요시모토가 성주대리를 보냈습니다.

성주대리 사케다는 자신의 가신들을 모조리 이끌고 미카와 오카자키성으로 들어왔습니다.
미카와의 가신들은 모든 봉록을 내어놓고 성내의 거택도 물러나서 들로 산으로 스며들었습니다.
이에야스가 슨푸에 인질인 동안 미카와의 이름있던 가신들까지 신생아 옷조차 마련해줄 여유가 없었답니다.

딸이 태어난지 6년 동안 발가벗겨 키우다가 7살때 비로소 겉옷을 지어주었다는 가신들의 궁핍은 현대인의 상상을 초월합니다.
가난뿐이 아닙니다. 성주대리 사케다의 가신들 중에 상급무사는 차치하더라도 잡병들조차 마치 점령군처럼 거만합니다.
후에 십만석 오만석의 영주가 되는 미카와의 이름있는 무사들이 모두 사케다의 잡병들에게 거지취급을 당합니다.

아직 이에야스가 살아있다는 것이 가신들의 유일한 희망입니다.
이에야스가 성년이 되어서 다시 복귀하면 지금의 처절한 궁핍과 치욕이 모두 옛 이야기가 될 수 있습니다.

이 시절의 미카와무사들은 사케다의 가신들에게 수수께끼같은 존재였다고 합니다.
미카와 영내에서는 새색시처럼 고분고분한 미카와무사들이 전쟁터에만 나서면 호랑이처럼 사나워지기 때문입니다.

미카와 무사들이 사케다의 잡병들에게조차 고분고분했던 것은 이에야스의 안위 때문이었습니다.
만약 미카와 무사들과 사케다의 가신들 사이에 싸움이 벌어지면 경우에 따라서는 이에야스가 할복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

이에야스가 할복하거나 암살당하면 촛불은 꺼집니다.
신분이란게 추락하는것은 순식간이지만, 올라가기는 하늘에 별따기입니다.
이에야스가 죽으면 미카와무사들은 뿔뿔이 흩어져 하늘에 별따기를 시작하거나 앞으로도 쭈욱 거지로 살아야합니다.

이에야스 주종이 감격에 겨워 오카자키성의 문지방에 눈물을 쏟은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퇴락한 성내의 건물과 헐거워진 성문 군데군데 무너져가는 성벽의 수리와 함께 영지도 순식간에 안정되었습니다.

이에야스가 뜻밖의 행운에 아직도 감격하는 동안 주장 요시모토가 전사한 이마가와 슨푸성은 초상집입니다.
성내의 모든 부인들은 남편의 생사에 목을 메고 소식을 들으려 성내의 이곳 저곳을 기웃거립니다.

요시모토의 아들인 우지사네는 전형적인 오렌지족이었다고 합니다.
어느 것 하나 부족한 것이 없는 풍족함 속에서 원하는 것은 기어코 손에 넣고야말았던 향락소년 우지사네..

화려한 교토풍으로 용모를 가꾸고 성내의 처녀들을 집적거리다 싫증나면 금새 잊어버리는 화도남입니다.
귀찮은건 질색이고 아무것도 고민해본적이 없는 화려한 재벌2세 이마가와 우지사네에게 귀찮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소설에서는 우지사네가 전사한 아버지를 원망했다고 적혀있습니다만, 실제로 그랬을까는 의문입니다.
아마도 아버지의 복수전을 시도조차 않고 그저 수비만 하다가 그 수비마저 실패한 한심한 아들에 대한 비난일 수 있습니다.

우지사네는 반독립한 이에야스에게 사자를 보내 힐문합니다.
왜 허락도 없이 오카자키성을 점령했느냐는 힐문과 다시 성을 양도하라는 명령에 이에야스가 자초지종을 설명합니다.

성주대리 사케다가 연락도 없이 성을 버렸고 오다군은 언제 들이닥칠지 모를 정도로 사태가 급박했다.
아직도 오다는 국경에 집결해있고 오카자키성은 한시도 비울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다. 성의 양도는 현재로선 불가하니 양해바람..

우지사네, 정확하게는 우지사네의 측근들은 이에야스를 강제로 퇴거시킬수 없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이제 독립한 이에야스를 결정적으로 오다측으로 전향시키지않는 방법은 느슨한 동맹을 용인하고
슨푸에 억류되어 있는 이에야스의 처자식과 미카와중신들로부터 받은 인질들을 소중히 잡아두는 것이 현책입니다.

1년 동안 오다는 이에야스를 기다려줍니다.
성급하기로 유명한 노부나가가 1년동안이나 참아주었다는 것은 노부나가의 가신들도 깜짝 놀란 일이었다고 합니다.

그동안 노부나가의 사자도 여러번 오카자키를 찾았습니다.
이에야스의 대답은 한결같습니다. 처자식이 인질로 잡혀있으니 노부나가공도 이해하시리라.. 전해주시오..

노부나가는 이해합니다. 보면 볼수록 이에야스는 적으로 돌리기에는 아깝고 무서운 대장입니다.
영지를 안정시키고 가신들을 휘어잡는 이에야스의 기량을 첩자들의 보고를 통해 속속들이 듣고 있는 노부나가입니다.

은근하지만 끈질기게 오다의 사신이 방문합니다.
와서 특별히 압박하는 것은 없지만, 방문 자체가 무거운 압력입니다.
사신의 요구는 단 하나, 이에야스의 오와리 방문입니다.

더 이상 노부나가를 기다리게 하면 위험하다는 판단이 내려졌습니다.
모든 일은 시기가 중요한 법, 결단을 내린 이에야스가 다시 찾아온 사신에게 말합니다.

노부나가공을 더 이상 기다리게 하는 것은 무사의 도리를 모르는 무참한 일..
그 옛날 오와리에서 노부나가공과 같이 어울리던 시절이 그리우니 날을 잡아 공을 만나고 싶소...

이에야스와 노부나가의 만남은 매우 극적이었다고 합니다.
눈부신 승자 노부나가와 달리, 패자였던 이에야스는 초라한 입장입니다.
노부나가에게 진 요시모토의 수하였던 이에야스, 노부나가와 격이 다릅니다.

노부나가의 거성인 기요스를 방문한 이에야스 일행은 살짝 거만했다고 합니다.
승자를 방문하는 미카와 무사들의 열등감이 사나운 인상으로 표출된 셈입니다.

오와리 백성들은 두 번 놀랍니다.
약해빠진 미카와 영주 따위가 노부나가 성하에서 거만하게 구는 것과
영접나온 노부나가의 부장들이 지나치게 공손해서 마치 승자와 패자가 바뀐것같아서 두 번 놀랐다고 합니다.

사나운 노부나가가 삼일 밤낮으로 상냥하게 이에야스를 접대하는 것에 노부나가의 부하들도 깜짝 놀랍니다.
72시간 동안의 이에야스 방문, 사무적인 이야기는 양국의 국경을 야하기강으로 정한 단 한 마디뿐이었다고 합니다.

노부나가의 그릇은 천하를 담을만하고 이에야스의 보자기는 그 노부나가조차 부드럽게 감싸안습니다.
드디어 노부나가와 동맹하고 이마가와와 결별한 이에야스, 슨푸의 처자식은 어떻게 될것인지가 난제입니다.
난세의 법으로 모반은 그냥 참형도 아닌 톱질형이나 십자가형입니다. 이에야스 괴롭습니다.
 
오다편에 붙은 이에야스의 처자식이 풍전등화입니다.
벌써 십여명의 인질들이 본보기로 처형당했는데, 부인 쓰루히메와 장남 다께찌요는 아직 살아있습니다.

이에야스는 미카와와 이마가와의 국경지역 성채를 공격해서 우지사네의 중요한 친척을 생포합니다.
서로간에 사자가 오고 간 후 인질교환이 이루어집니다. 이제 이에야스의 자주독립이 완성되었습니다.

요시모토가 죽고 아들 우지사네가 계승한 이마가와 가문은 이미 여기저기서 조금씩 무너지고 있습니다.
우지사네의 지도력을 의심하는 가신들은 사기가 땅에 떨어지고 신종하던 토착영주들도 이반하기 시작합니다.
부자는 망해도 3년은 간다고 우지사네가 완전히 망해서 영지를 다 털어먹는데는 아직도 몇년의 세월이 남아있습니다.

이에야스는 노부나가와의 동맹으로 순식간에 탄탄한 지역구 강자가 됩니다.
노부나가의 영지인 서쪽을 제외하고 동쪽 방면으로 착착 세력을 확장해 나갑니다.

이에야스가 세력을 확장해가는 동쪽은 이마가와라는 커다란 먹이를 사이에 두고 다케다 신겐과 마주하고 있습니다.
풍림화산의 다케다 신겐은 전투력으로는 일본 최강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에스기 겐신과의 가와나까지마 전투는 두 대장의 기량이 일본 정상급임을 확실하게 보여줍니다.
이마가와가 완전히 해체된 나중에, 이에야스는 결국 다케다 신겐과 부딪쳐 일생 최대의 박살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에야스 서쪽의 노부나가는 서쪽으로 서쪽으로 끈질기게 도전해 나가고 있습니다.
동쪽을 동맹 이에야스에게 맡긴 노부나가가 나아가는 서쪽은 미노라는 철벽이 있었습니다.

오케하자마의 승리로 영지와 군세 모두 두배 가량 성장한 노부나가가 마누라의 친정인 미노를 공격하게 된 것은
장인 사이토 도산이 아들인 요시다츠에게 참살당했기 때문입니다. 요시다츠는 노부나가의 부인인 노히메의 이복오빠입니다.

사이토 도산의 장남 사이토 요시다츠에게는 복잡한 사연이 있습니다.
요시다츠의 어머니는 원래 미노의 주인이었던 도키 요리나리의 애첩중의 하나였는데 사이토가 하사받았습니다.
하사받을 당시 이 애첩은 이미 임신중이었는데 사이토 도산에게 온 후 일곱달만에 요시다츠가 태어납니다.

.대범한 사이토 도산은 아는  듯 모르는듯 요시다츠를 장남으로 인정해서 후계자로 세웁니다.
그런데 권력을 물려주고 은거한 사이토 도산과 승계자인 아들 요시다츠가 서로 충돌합니다.

덩치가 크고 살짝 곰보였다는 아들 요시다츠는 아버지를 도모하기 전에 동생들부터 참살합니다.
죽을 병으로 몸져 누웠다고 소문을 낸 요시다츠는 순진한 동생들을 성내로 부릅니다. 순진하면 죽습니다.
자기가 죽으면 후사를 정해야하니 문병을 오라는 말에 아무 의심없이 문병 온 두 동생은 자다가 목이 잘립니다.

부자가 충돌한 것은 요시다츠의 측근들이 요시다츠가 원래 도키씨의 핏줄이란걸 속삭인 탓입니다.
요시다츠는 이제 아버지가 아니게 된 사이토 도산과의 전쟁도 아무 거리낌이 없습니다.

사이토는 장남에게만 엄하고 다른 두 아들과 딸에게는 매우 다정했다고 합니다.
사이토로서는 후계자를 강하게 키우려던 의도였는데 출생의 비밀을 전해들은 장남은 오해가 증폭됩니다.

사이토가 물러나 은거하던 작은 성채를 요시다츠의 군세가 포위합니다.
늙었지만 아직도 왕성한 사이토는 성내의 가신을 모두 모아서 포위망을 뚫습니다만 결국 따라잡힙니다.
오와리를 향하던 사이토가 작은 야산에서 아들 요시다츠의 군세와 치열한 전투를 벌이지만 역부족..

전사한 사이토 도산의 시체는 그대로 강물에 버려졌다고 합니다.
하루 아침에 아버지와 두 동생을 잃은 노히메는 노부나가에게 매달려 읍소합니다.

노부나가는 기필코 원수를 갚아줄테니 조금만 기다리라고 노히메를 달랩니다.
그런데 노히메가 아직 충격으로 몸져 누워있는 동안에 노부나가가 한꺼번에 4명의 측실을 들입니다.

가신의 딸중에서 건강하고 통통한 처녀 네 명을 하루 이틀 상간으로 성내로 불러들입니다.
노히메는 남편의 참혹한 처사에 절망하지만 노부나가의 의도를 알고 있는 이상 원망할 수도 없습니다.

노부나가가 갑자기 축첩을 한 것은 이제 원수가 된 미노의 요시다츠를 안심시키기 위한 행동입니다.
노히메를 박대함으로써 요시다츠의 경계심을 풀어준 노부나가는 측실의 몸에서 줄줄이 아들을 얻게 됩니다.

요시다츠는 맹장이었다고 합니다. 지략도 풍부하고 가신들도 심복해서 요시다츠 생전의 미노는 철벽이었습니다.
노부나가가 미노를 장악하는 것은 요시다츠 사후였는데, 오케하자마 이후 7년이란 세월이 필요했습니다.
이무렵 노부나가 휘하의 한 부장으로 성장한 히데요시의 활약이 미노공략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합니다.

미노는 오늘날의 나고야 일대로 풍요로운 들판과 왕도인 교토로의 동쪽 관문이라는 지리적 요충입니다.
교토의 동쪽 관문인 미노를 손에 넣은 노부나가는 그야말로 날개달린 호랑이가 되었습니다.

당장 경제력이 세배로 늘어났습니다. 오와리는 30만석 남짓인데 미노는 70만석에 가깝습니다.
100만석의 대 영주로 급부상한 노부나가는 전국 최대 다이묘의 대열에 오릅니다.
이제 일본 전국에서 노부나가와 세력이 비슷한 대영주는 손가락으로 꼽히게 됩니다.

일본최고 부자영주인 모리, 땅부자 호죠, 우에스기 겐신과 다께다 신겐 정도가 손에 꼽힙니다.
그중에서 가장 강력한 것은 급부상한 노부나가입니다. 때를 만난 잉어처럼 싱싱한 노부나가...

모리는 시조 모토나리가 서부 일본 최대의 영지를 개척하였지만, 장군자리를 욕심내지 말라는 유언을 남깁니다.
이만하면 됐으니까 가늘게 먹으라는 유언인데, 먹지않으면 먹히는 난세에 가늘게 먹는다고 길게 먹는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벌써부터 소극적인 모리집안의 운명은 얼마나 버티느냐지, 더 이상의 성장은 태생적으로 불가능합니다.

그 점에서 호오죠집안도 마찬가지입니다. 간토 8주 일본 전체의 6분의 1일라는 어마어마한 영지를 가지고 있지만
적극적으로 교토까지 진출해서 천하인이 되겠다는 야심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모리네처럼 이미 가진 것이 너무 많습니다.

다케다 신겐과 우에스기 겐신은 전국시대 전투의 치열함이 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 가와나카지마의 싸움으로
알 수 있듯이 그 기량에서는 전국시대를 통틀어서 가장 우수한 대장들입니다. 둘 다 충분히 천하인을 노릴 기량이 있습니다.

우에스기 다께다 두 사람의 불행은 그 둘이 동시대에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서로 이웃입니다. 둘 다 서로를 견제하느라고 영지를 비울 수가 없습니다.

천하를 도모할 수 있는 자는 천하의 무수한 영주들 중에서 노부나가 한 사람으로 좁혀졌습니다.
동쪽이 안전해진 지금 노부나가는 서쪽 북쪽 남쪽으로 그 세력을 착 착 키워나가고 있습니다.

 다음은 노부나가의 미노 공략을 간추려 보겠습니다.
미노공략에서 또 하나의 영웅 히데요시가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합니다.
히데요시는 고정관념이 없는 것이 특징입니다. 천의무봉 히데요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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