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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기 참 사랑의 실뿌리는 신뢰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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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이동 작성일 2015-08-16 15:54 댓글 0건 조회 87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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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삶 속에서 누구를 만나서 어떻게 관계를 유지하는 가하는 일은 매우 중요한 입니다.

이와 같은 관계에 있어서 신뢰라고 하는 것은 핵심이 되는 키워드가 될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께로부터 아바 아버지라 칭하라고 하는 명령을 받은 즉 하나님 은혜 가운데 거하는 신앙인입니다.

이 은혜는 우리가 어떠한 대가도 지불하지 않고 받은 축복인 것입니다.

여기에는 우리가 하나님께서 부터 받은 믿음의 신뢰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누구도 하나님께로부터 아들이라는 특권을 받을 수 없습니다.

신뢰는 믿음의 실뿌리입니다.

나무는 실뿌리가 충실하여야 본 뿌리가 든든하지 실뿌리가 든든하지 못한 나무가 어떻게 본 뿌리가 충실할 수 있습니다.

믿음의 실뿌리인 신뢰가 있고, 실뿌리를 연결하는 믿음의 본 뿌리에 연결 되어 꽃을 피우고 결실을 맺어 주는 것이 사랑입니다.

사랑은 하루아침에 피었다가 지는 이슬 같은 것이 아니라, 변하지 않고 퇴색 될 수 없는 것이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게신 것이 바로 이러한 신뢰의 근거로 연결 된 믿음에서 사랑의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서 천국에 이루도록 허락하신 것이 성도의 가는 길인 것입니다.

성도란 세상의 모든 짐을 예수님 십자가 밑에 네려 놓고, 공수래공수거로 가는 길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늘 말하고 있는 것과 같이 코끼리 다리 만 만진 소경은 코끼리 다리가 기둥 같다고 말 할 것이고, 전후좌우를 살펴서 추구하는 내용이 무엇인지 좀 더 깊이 있게 살핀 후에 결과를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 까 싶습니다.

시대의 흐름이 급속도로 변모하는 가운데 수많은 직업이 사라지고 있는 현실 앞에서 내가 하는 일이 언제까지 지속 될 수 있을 까 고민하지 않는 다면 세상은 이미 저 멀리 떠나간 버스와 같은 형국이 될 것입니다.

좋은 벗은 언제나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지만 듣는 귀가 없으면 좋은 소식도 마이동풍에 지나지 않겠지요.

같은 믿음의 선상에 있어도, 불교에서 말하는 해탈의 경지를 넘어 섰느냐 하는 것과 같이 기독교 신앙인에게 있어서도, 죽음의 경지를 넘어 선 믿음과 그렇지 못한 믿음의 선은 분명히 다른 생각과 판단을 하게 되겠지요?

사랑이란 이렇게 아름다운 것이로되 그 아름다운 옷은 누가 입는 가에 따라서 어떤 이에게는 공주의 옷이 될 수 있고, 또 어떤 이에게는 광대와 같은 형상이 될 수 있겠지요.

아름다운 옷도 제격이 있는 것과 같이 사랑도 받을 만한 사랑이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랑도 있는 것이로되, 세상의 삶에 속한 신앙인들이 고뇌의 시간을 어떻게 넘겼느냐 하는 것에 따라서 믿음의 분량의 저울추를 움직이게 하는 것이다.

참 사랑 그것은 우리 모두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은혜입니다.

2015.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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