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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기 청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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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이동 작성일 2015-06-24 20:55 댓글 0건 조회 92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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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히브리서11장1절 기독교 신앙의 기분 자세는 믿음과 사랑의 실천이다,

우리가 생활하는데 있어서 경제는 삶을 유지하고 지탱하는 근간이 되는 생활수단으로 아주 중요한 필수적인 조건인 필요불가결한 문제이고 재원이다. 돈은 일만 악의 근원이 될 수도 있고, 생명을 살리는 중요한 자산이다, 이러한 돈의 진정한 가치는 돈을 어떻게 쓰고, 또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서 돈의 가치 기준이 현저히 다른 가치 판명을 받게 된다.

세상에 살면서 돈을 싫어 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돈을 어떻게 쓸 것인가 하는 가치 기준에서 볼 때 손등과 손바닥의 차이가 된다. 특히 기독교인의 바른 신앙생활에 있어서, 돈을 어떻게 쓰고 있는지 하는 것에 따라서 믿음의 척도라고 할 수 있는 신앙생활의 중량을 측정할 수 있다.

기독교 신앙인의 생활 형태는 모두가 동일한 하나님의 청지기이다. 이러한 청지기의 신분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으면 믿음이 있는 신앙적으로 청지기로의 바른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고, 그렇지 않고 믿음 따로 생활 따로 하고 있다면 그 사람은 신앙인의 생활이 아니고, 믿음의 관망자인 것이다.

기독교에서는 모든 수입에서 십 분에 일은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 즉 십일조이다. 십일조의 개념에 대하여 사람에 따라서 그 생각과 기준이 다르겠지만, 나는 십일조를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 우리가 일해서 얻은 모든 수입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으로 온전한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루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말라기서 3장10절

기독교인의 모든 재산은 하나님께서 주인이 되신다. (예) 나를 잘 알고 게시는 분이 어느 날 나에게 “이동이 자네 십일조를 하고 있나?” 라고하시기에 “예 하고 있습니다.” “그럼 십일조를 왜 하느냐?” 라고 하시기에 “저는 십일조에 대한 생각이 이렇습니다. 저의 모든 수입은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신 복이므로 10개 모두가 하나님 것인데, 그중에 하나님께서 아홉 개는 제 마음대로 쓰고 하나만 남겨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아홉 개나 쓸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저에게 허락하신 것입니다. 얼마나 감사해야 하는지 이 축복에 대하여 변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많은 기독교인 중에서 십일조를 하지 않는 분들이 많이 게십니다. 그분들이 십일조를 하지 않는 이유는 자신이 일해서 얻은 모든 수입은 자신의 것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깊이 있게 해석을 하면, 우리가 일해서 얻어지는 모든 수입도 하나님께서 주신 복인 것입니다. 십일조를 온전히 하나님께 드리는 신앙인과 하지 않는 신앙인의 차이는 여기에서 확연히 구분이 됩니다.

나는 하나님께로부터 아홉 개를 쓸 수 있는 권한을 위임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이 아홉 개를 어떻게 쓸 것인가, 대하여 또 하나의 명제가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청지기의 신분입니다. 우리는 남을 돕거나 선한 일을 하고 나면 모든 사람이 선한 일에 대하여 칭찬과 과찬의 말씀을 하십니다. 그러면 우리 모두는 그 선한 일에 쓰인 돈(물질)이 제 것인 양 의기 양양해 지지요, 그러나 그게 안입니다. 신앙인의 모든 소유는 하나님 것입니다. 우리가 선한 일로 받은 칭찬과 감사의 인사는 하나님께 돌 릴 수 있는 믿음이 되어야 합니다.

불교에서는 해탈을 한 스님을 최고 믿음의 권위로 인정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기독교에서는 믿음을 인정받을 수 있는 척도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여야 합니까? 그것이 바로 불교의 해탈한 스님 보다 더 성숙 된 고차원의 청지기입니다. 기독교인의 삶은 그 자체가 신앙생활입니다. 이것이 성도라고 하는 믿는 사람들이 살아가야 하는 참되고 성숙 된 믿음이 행보입니다.

기독교인으로 청지기의 신분을 망각하고 세상 것에 연연한다고 하면 이는 참으로 믿음을 찾을 수 없는 신앙인인 것입니다. 참 청지기가 되기 위한 심사숙고한 삶은 어느 하나도 살 어름 판을 걷는 것과 같이 아닌 한 것이 없는 언행에 조심하고, 행동에 조심하고, 얼굴에 웃음을 잃지 말아야 하는 것이 청지기입니다.

나 또한 이렇지 못하지만 그 멀고 먼 고행의 길을 택하였고, 이 길에 들어섰으므로 매 순간마다 마다하지 않고, 청지기가 되려고 온 정성을 다하고 몰두를 하여 이 고행의 길에 감사하면서 가고자 이 한편의 글을 쓰고 있습니다.

2015. 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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