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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기 우리 웃고 삽시다 .(김삿갓(김병연)의 해학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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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청송재 작성일 2017-01-24 12:15 댓글 0건 조회 86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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情事 1
  爾年十九齡 乃早知瑟琴(이년 십구령 내조지슬금):너의나이 열아홉에 일찍이도 거문고를 탈줄 알았고
  速速拍高低 勿難譜知音(속속박고저 물난 보지음):박자와 고저 장단을 빨리도 알아서 어려운 악보와 음을 깨첬구나
 (이년 씹구멍에 내 좆이 슬금 쑥쑥박고 저으니 물난보지 움푹 파였다.)
情事 2
  夫嚥其上 婦嚥其下 (부연기상 부연기하):지아비는 그위를 빨고 게집은 그 아래를 빠네
  上下不同 其味即同 (상하부동 기미즉동):위와 아래가 같지않지만 그 맛은 한가지 일세
  夫嚥其甘 婦嚥其酸(부연기감 부연 기산):지아비는 그 단곳을 빨고 게집은 그 신곳을 빠네
  甘酸不同 其味卽同 (감산부동 기미즉동):달고 신것이 같지않지만 그맛은 한가지일세
情事 3
 爲爲不嬮 更爲爲 (위위불염경위위):해도해도 싫지않아 다시하고 또하고
 不爲不爲 更爲爲 (불위불위경위위):안 한다 안 한다 하면서도 다시하고 또하고...
情事 4
  (이시는 영월 김삿갓 공원내 김삿갓이 공부하던 방에 걸려있는 시임)
 自知면 晩知고 補知면 早知라
 스스로 알려고 하면 늣게 알아지고,도움을 받아 알려고 하면 빨리 알아진다.

金笠(김삿갓)은 조부를 조롱하는 시로 장원급제하다

우리는 흔히 김삿갓을 방랑시인, 그리고 풍자와 해학이 넘치는 시를 남긴 기행의 시인쯤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김삿갓의 참모습일까?
김삿갓(1807~1863)의 본명은 병연(炳淵)이요, 삿갓을 쓰고 다녔기에 흔히 김삿갓 또는 김립(金笠)이라고 부른다.
그의 조상은 19세기에 들어와 권력을 온통 휘어잡은 안동 김씨와 한 집안이었다. 그 때문에 그의 할아버지도 이런
저런 벼슬을 할 수가 있었다.
그의 할아버지는 익순(益淳)이요, 그의 아버지는 안근(安根)이다. 그는 세 아들 중 둘째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날 때 그의 집안은 부러울 것이 없었다. 벼슬이 높았던 그의 할아버지는 그가 다섯 살 때 평안도 선천부사로 나가 있었다. 그런데 1811년 평안도 일대에서 홍경래가 주도한 농민전쟁이 일어났다. 이때 농민군들은 가산 · 박천 · 선천을 차례로 함락시켰는데, 가산군수 정시는 항복하지 않고 거역하다가 칼을 맞아 죽었고, 선천부사 김익순은 재빨리 몸을 피했다. 그 뒤 김익순은 농민군에게 항복해 직함을 받기도 하고, 또 농민군의 참모 김창시를 잡았을 때 그 목을 1천 냥에 사서 조정에 바쳐 공을 위장하려는 어줍잖은 짓거리를 하기도 했다. 이로 인해 김익순은 모반대역죄로 참형을 당했다. 정시는 만고의 충신이 되었고, 반대로 김익순은 비열한 인물로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다.
그의 집안은 폐가가 될 수밖에 없었다. 역적의 자손이니 그 자식과 손자들은 법에 따라 죽음을 당하거나 종이 될
운명에 놓여 있었다. 그러나 죄는 당사자 김익순에게만 묻고 아들 손자들은 종이 되는 신세를 면했는데, 여기에는 안동 김씨들의 비호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김삿갓의 어머니는 아들을 보호하는 데 남다른 신경을 써야 했다. 나이든 큰아들 병하(炳河)와 작은아들 병연은
종을 딸려 황해도 곡산으로 가서 숨어 살게 했다. 그리고 그녀는 막내아들을 데리고 광주(廣州) 땅 촌구석에서 살다가 이어 강원도 영월로 옮겨가 살았다는 말도 있다.
그녀의 고향은 충청도 결성(지금의 홍성군 결성면)이었지만 창피해서 친정으로 갈 수도 없었을 것이다.
김삿갓 형제는 세상이 좀 잠잠해지자, 어머니 곁으로 와 살았던 것 같다. 그녀의 어머니는 집안 내력을 철저히 숨기고 살면서 남달리 영민한 작은아들 병연을 글방에 다니게 했다.
철없는 어린 병연은 열심히 공부했고, 스무 살이 되자 과거를 보아 출세하려고 마음먹었다.
그는 고을에서 보는 향시에 나갔다(어느 지방인지는 확인할 수 없다). 시제는 다음과 같았다.“가산군수 정시의 충절을 논하고 선천부사 김익순의 죄가 하늘에 닿는 것을 탄식한다.”
             論鄭嘉山忠節死, 嘆金益淳罪通于天   

김삿갓은 가슴을 펴고 시를 써내려갔다. 그중 마지막 한 구절만 보면 이렇다.
      " 임금을 잃은 이 날 또 어버이를 잃었으니 한 번만의 죽음은 가볍고 만 번 죽어 마땅하리
       춘추필법을 네 아느냐 모르느냐  이 일을 우리 역사에 길이 전하리"   

김삿갓은 마음껏 붓을 놀렸다. 그는 장원급제를 했고 이 사실을 어머니에게 자랑했다. 그러나 어머니는 할아버지의 옛 일을 더 감출 수가 없었다. 이 말을 들은 김삿갓의 심정을 여기에서 적당히 표현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그의 어머니는 아들의 마음을 가라앉히려 했는지 스물두 살 때 장가를 보냈고 이어 손자도 보았다.
그러나 그는 마음을 잡지 못했다. 연민을 거듭한 끝에 그는 아무도 몰래 가족과 이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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