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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기 나의 十八技 수련기(1) - 총요(總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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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소요거사 작성일 2007-07-06 13:48 댓글 0건 조회 188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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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 520년 양무제(梁武帝) 원년(元年)-
도도히 흐르는 양자강 황톳물이 때마침 불어오는 대륙풍을 맞아 세차게 일렁였다.
물결은 점점 파도를 일으켜서 한치 앞도 바라볼수없는 물보라가 붉은 안개덩이 마냥 강상
을 뒤덮는다.
홀연 까만 점하나가 안개를 뚫고 거센 바람도 아랑곳 않은채 강심(江深)을 향하여 쏜살같이
달려왔다. 칠척장신에 벽안의 노승 한사람이 남루한 승포자락을 휘날리며 우뚝 서 있다.
발밑에는 손바닥만한 갈대잎 하나뿐-
이것이 그 유명한 '갈대를 타고 장강을 건넜다'는 달마(達磨)의 「일위도강(一葦渡江) 」
전설이다.

localization_04.jpg.

천축(天竺:인도)의 승 달마대사가 양무제를 만나 설법 하였으나 서로 도의 개념이 달라 헤어
진후 북쪽의 위(魏)나라를 여행하다가 하남성 숭산 소림사(少林寺)에 안착한 것은 그로부터
석달 뒤였다.
숭산 소림사는 495년 발타선사(跋陀禪師)를 위하여 효문제의 명에 따라 건립된 불교의 전당
으로 널리 알려진 사원이였다.
소림사에 안착한 달마는 수행에 지쳐 체력적으로 무기력해진 승려들에게 18행동강령을 기초
한 18나한수(十八羅漢手)를 전수한뒤 면벽좌선 한지 9년만에 역근경(易筋經)세수경(洗
髓經)
두편을 창안했다.
달마대사가 입적한후 면벽하고 있던 돌굴벽속에서 2조 혜가(蕙可)가 역근경과 세수경을 발
견 하였으나 모두 천축문자로 되어 있어 이해하기 어렵던 중 그중 일부를 번역하여 권법(拳
法)의 기초로 삼으니 이것이 소림권(少林拳)의 근원이 되었다.

원대(元代:1206~1368)의 각원(覺元)은 소림사의 홍은선사의 무명(武名)을 흠모하여 소림사
에 입산, 권법과 검술을 수행했다.
각원은 달마대사의 18나한수를 연구하여 72수로 늘려 수련한후 보다 나은 무술을 연구 하기
위하여 명사를 찾아 각지를 유람하던중 산서성에 있는 무술의 달인 백옥봉(白玉峰)을 만난다.
두사람은 함께 소림사로 돌아와 달마대사의 18나한수와 각원의 72수를 연구하여 170여수의
권법초식(拳法招式)과 용(龍),호(虎),,표(豹),사(蛇),학(鶴) 오권(五拳)을 창시하여 후세에
소림권법의 원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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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宋)말(末) 무술의 일대종사(一代宗師)라는 장삼봉(張三峯)은 소림권
의 조예가 깊은 권법가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
그는 소림권의 맹렬한 공격법을 지양하면서 도인들의 수양철학을 가미하
여 자기 방어에 중점을 둔 내적(內的)인 형(形)을 만들었다.
일설에는 장삼봉이 명상에 잠겨 있을때 바로 옆에서 뱀과 학이 싸우고 있
었는데 자세히 관찰하니 학은 뱀의 공격을 부드러운 날개짓으로 방어하
고 뱀은 학의 공격을 유연한 몸짓으로 피하는것을 보고 몸의 움직임이
유연한 사람일수록 딱딱한 사람을 이길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러한 뱀과 학의 공격과 방어술을 연구하여 유연한 권법을 창시하니, 이후 강맹한 소림권
외가권(外家拳)이라 하고 장삼봉의 부드러운 권법을 내가권(內家拳)이라 하여 중국무술
의 쌍벽을 이룬다.

18기는 권법(拳法)과 18반(十八班) 병기술(兵器術)로 구분된다.
공부(功夫)를 수련하는 방법에 따라 초식에 의한 동작(動作)으로 수련하는것을 외공(外功)
이라 하고 기공(氣功),호흡(呼吸),토납(吐納),조식(調息)등의 연공방법을 내공(內功)이라
이른다. 외공은 수련정도에 따라 다르겠으나 비교적 빠른 시일내에 무공을 이루수 있지만
내공은 연공시일도 오래걸리고 그만한 위헙도 따르므로 수련상 모든 조건이 가추어 져야만
성취가 가능하다.
원래 양자강을 중심으로 남쪽에는 평야가 많고 수로를 이용하다 보니 자연 손이 발달되어
권법도 수기(手技)에 치중하는 경향이 있어 이를 남권(南拳)이라 해서 홍가문(洪家門),
유가문(劉家門),채가문(蔡家門)등이 있으며, 북쪽에는 지형적으로 산악이 많고 육로를 사용
하므로 발과 다리가 발달되어 족기(足技)를 이용하는 퇴법(腿法)이 주가 되니 이를 북퇴
(北腿)라 하며 형의문(形意門),팔괘문(八卦門),태극문(太極門)등이 있다.(國術拳法總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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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림권법 수련도)

우리 강릉 명주 지방엔 예로부터 중앙에서 수련하던 많은 권법사(拳法士)들이 피접(避接)
하여 칩거하던 고장이였다. 그래선지 일찍부터 타지방보다 18기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물론 초기에는 정식 수련관이 있을리 없었고 대부분이 산중이나 외진 공터에서 은밀히 행해
졌는데 그러다 보니 그 내용도 가르치는 사범의 입맛대로 변형되어 원래의 권법과 판이한것
으로 변질되었다.
사실 필자가 그때 배운 18기란 것도 초식의 이름이나 권로(拳路)의 전후 조화가 서로 상응
성을 띄지않아 권법 그 자체가 갖고있는 품격(品格)을 찾기 어려웠다.
나중 간파한 것이지만 그곳에 전파된 권법은 당랑권(螳螂拳)이 주된듯 한데 내가배운 권형
(拳形) 어디에서도 당랑권의 일기가성(一技可成) ,단수근타(短手近打)등의 독특한 품격을
느낄수 있는 가르침이 들어있지 않았다.
이제는 정식자격을 가춘 사범들이 도장을 열어 지도하는 관계로 예전과는 달라졌겠지만
그당시는 18기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었으므로 이 무술을 배우면 장(掌)하나로 바윗돌을
쪼개며 열길 소나무 꼭대기로 비호같이 몸을 날린다는 등 신비성이 난무하던 시절이였으
니 이해는 갈법하다.

18기는 단순한 무술이기 보다 종교적 의식과 철학적 논리,예술적 가치를 지닌 독특한 하나
의 장르를 형성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외유내강(外有內强) 유능극강(柔能剋强)의 오묘한 변화와 깊은 흐름에는 타 무도
(武道)의 추종을 불허한다.
수련자 누구나 노력에 따라 이 원리를 깨달을수 있으며 심오(深悟)한 무공(武功)을 이룰수
있을 것이다.

젊은 한시절 이 18기 무예(武藝)에 미쳐 40여년을 도장에 드나들며 각 문파의 권법을 수련하고
무술서적을 탐독했다. 비록 그 성취는 미약하나 지나놓고 보니 어느덧 내 인생의 살아 숨쉬는
동반자가 되어 있었다.
붉은 도복을 입고 선인들이 심혈을 기울려 창안한 권법형을 시연(試演)하며 땀흘렸던 그
기억들을 다시 정리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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