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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기 풍경이 있는 Essay 27 - '기차표 검정고무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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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우리가 신었던 신발은 검정고무신이었습니다.
등굣길, 제무시(GMC) 뒷 꽁무니에 매달렸다가 훌러덩 벗겨져 찾으러 갔었지만 빈손으로 돌아온 날, 지각하는 바람에 선생님에게 종아리 얻어맞고, 맨발로 들어선 집에서는 어머이에게 빗자루고 엉덩이를 쒼~나게 얻어맞았었지요.
아카시아꽃 시나브로 흩날리고 라일락향기 그윽하던 교정의 오뉴월 땡볕아래 한 시간이 넘도록 이어지던 교장선생님의 훈시가 지겨워 고개 떨구면 어질 어질 코끝이 보이던 땀 배인 기차표 검정고무신. 이제는 그 교장선생님의 이름도 어사무사하기만 합니다.
쏟아질 듯 밤하늘을 수놓던 은하수 그 강물아래서도, 다알리아 꽃잎 핏빛보다 붉던 날에도, 선택의 여지가 없이 우리가 신어야 했던 신발은 기차표 검정고무신이었습니다.
들판을 넘어 청밀밭 이랑사이를 따라 넘실거리던 푸른 바람과 종달새, 송사리며 꺽지며 쉬리를 잡던 맑은 시냇가, 느티나무 숲 위를 흐르던 흰 구름, 검정고무신으로 모래사장위에서 기차놀이를 하던 천진하기만 하던 악동들은 하나 둘 자취를 감추어갑니다. 아~ 치열하고 고단했던 육십년 우리들 삶의 여정 시작점, 그때 신었던 신발이 기차표 검정고무신이었습니다.
그 기차표 검정고무신 신고 그대와 미루나무 가없이 늘어섰던 신작로를 따라 한없이 걷고 싶지만 그대도 검정 고무신도 그 길도 사라지고 없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줄도 모르던 참 눈치 없던 소녀는 오래전 외손주를 봐서 할머니가 되었고, 너무 개구저서 언제 철드나 싶던 친구 역시 할배가 된지 한참 세월이 지났습니다.
출장길에 고속도로휴게소 한 켠에 볼거리로 만들어놓은 설치물 뜨락에서 기차표 검정고무신을 발견하고, 잠시 유년의 뜰에 서서 상념에 젖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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