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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기 당신 나 믿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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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불량마눌 작성일 2006-10-26 16:58 댓글 0건 조회 85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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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당신은 젊었을 때 무척 미남이었습니다.

지금도 젊다면 젊은 나이지만
그래도 당신과 내가 큰소리치며 서로가 잘났다고 떠들어댈 때의 시절을 더듬어 봅니다.

“내가 그 때에는 어려서 뭘 몰랐었지.”
항상 당신 자신이 어렸었기에 내 가슴을 아프게 했었노라하며 또한
일찍 결혼해서라는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았을 때가
더욱 그리워지는 것은 무슨 이유에서일까요?

지난 졸업 30주년 행사 때 찍은 사진 속의 당신 얼굴은
그 옛날 내가 첫 눈에 반했던 꽃 미남의 얼굴이 아니었습니다.
몇 번이고 사진 속 당신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옆 자리에 함께하였던 친구들의 얼굴과 비교를 해 보았지만
사진 속에 비춰진 당신의 모습은 무척이나 수척해져있음을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병치레하는 나를 돌보느라 이미 당신의 얼굴이 못쓰게 되었건만
당신은 지난 날 당신이 내게 못해주었던 몫까지
이제라도 다해주겠노라고 하며
열심히 생활 전선에서 몸과 마음을 아끼지 않으며 생활하고 있습니다.

하루를 마치는 시간이 새벽 두시에 귀가하여
잔뜩 꼬부라진 자세로
하루가 곤하였는지 헛소리까지 하며
결국 세 시간 간신히 눈을 붙이고는
다시 일어나 생활 전선으로 향하고 있는 당신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난
행여 당신이 쓰러질까봐 항상 가슴이 조마조마합니다.

이젠 젊은 날의 당신이 아니라는 것을 실감하게 되며
피곤에 지친 당신 모습은 무척이나 창백해 보이니까요.

기껏해야 세 시간 눈을 붙이고 강행해야만 하는 이유는
오직 당신이 저지른 시행착오를 막을 수 있다는 사명감 때문이지만
그런 당신을 지켜보고 있는 당신의 아내는
같은 말을 반복하며 이제 좀 쉬어가며 일하라고 애원해 봅니다.

그러나
이런 아내의 절박한 절규가
당신 귀엔 잘 들어오지 않을 겁니다.

당신은 바깥의 가장이기도 하지만
우리 집안의 가장이니까요.

양쪽 어깨에 짊어진 그 무게가 오죽하겠습니까!

그러니까 당신 스스로도 쉬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는 심정
이 못난 아내는 잘 알고 있답니다.

하지만
이 말만은 당신이 꼭 귀 담아 들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당신이 쓰러지면
내일 당신은 내곁을 영원히 지켜줄 수가 없습니다.

영원히 내곁을 지켜준다는 당신의 그 약속이
나를 지켜주고 싶어도
결국 당신이 쓰러지고 난 후엔 내게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결과를 뻔히 알면서도
당신 눈치만 보며 적극적으로 말리지 못하는 내 자신이
한심스럽고 그저 야속하기만 합니다.

“당신은 집에 있어.”
그 어려운 여건속에서도 비록 내가 할줄 아는 일은 없지만
당신은 이런 무능한 단 한사람이라도 절실히 더 필요할 것인데
“당신마저 쓰러지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하며
당신은 오늘도 당신을 따라나서는 나를 밀어 넣곤 현관문을 굳게 닫아 버렸습니다.

당신의 무거운 서류 가방을 들고 서있는 나는
지하 주차장에서 당신의 차량이 나오기까지 기다렸다가
가방을 전해주며 잘 다녀오라고 손을 흔들어주는 것이 고작이었습니다.

하여 출근하는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나는
떠나버린 당신 뒷 모습의 여운을 지울길 없어
과연 이 나이 먹도록 무엇을 했는가를 자책해보기도 합니다.

그리고
조금만 피곤해도 이미 다른 병이 찾아오는 내 자신을 원망도 해봅니다.

부부가 어려울 때는 비록 작은 도움이라도 되어야 진정한 부부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당신이 지쳐 쓰러질 것을 뻔히 알면서도
난 그저 지켜보고 있어야만한다는 그 심정 당신은 알고 있나요?

당신을 보내 놓고
‘과연 당신에게 무엇을 어떻게 해주어야 삶의 고뇌에서 해방이 될 수 있을까?’
수십 번 방법을 모색해봐도 결국 내 자신에게서 뚜렷한 결과를 얻지는 못했습니다.

지난 날
젊은 혈기를 앞세워 서로가 잘났다고 박박 우겨대며
서로의 기세를 꺾어보려고 부부끼리 싸움이 잦았던 것도 엊그제 같은데
이젠 당신이 가엽고 측은하다는 연민의 정으로 밀려옵니다.

이런 마음이 자꾸 내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은
내 자신이 벌써 황혼의 문턱에 들어섰음일까요?
아니면 이제야 철이 드는 것일까요?

당신을 보고 있으면 가슴이 아려 오는 것이 해결책도 없으면서
그저 마음만 아파옵니다.

여보!
이제 올해도 달력이 두장 남짓 남았습니다.
꼭 이맘때면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하는 말이 있지요?
“어~이~구 이 눔의 해가 빨리 바뀌어야지.”
“도대체 왜 이렇게 일이 안 풀리는 거야?”
서로에게 답이 없는 질문을 던지고 하는 사이에도 세월은 어김없이 흘러만 갑니다.

“내년 되면 나아지겠지.”
“기다려 봐요. 얼른 이 해나 빨리 지나가라고 해요.”
풀릴 듯 하면서도 풀리지 않은 것이 고달픈 인생인데
고달픈 인생의 묘약은 바로 세월뿐일 것 같아서 자꾸 세월만가라고 재촉해 봅니다.

산등성이를 넘으면 마치 반가운 누이가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 착각을
우리는 해마다 잊지 않고 시행에 옮기며 살고 있지요.

가느다란 희망으로
동해 먼 바다위에서 떠오르는 찬란한 해돋이를 맞으며
새해 아침에 작은 소망을 빌어 보았지만
한해를 마무리하는 이 계절이 찾아오면 어김없이
세월한테 사기를 맞은 듯한 느낌에 한숨이 함께 밀려옵니다.
아마도 남들이 말하는 이것이 인생인가 봅니다.

분명 고비에 고비를 맞으며 숨 막히는 하루하루의 전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은 비단 우리 일만이 아닐 진데
당신과 나는 서로 아파하는 모습을 바라봐줄 수가 없어
인생이란 두 글자에 간혹 두 손을 들고 싶어 하기도 하지요.
하지만 손드는 일도 아무나 할 수 없다는 것 당신도 잘 알잖아요.

울고 싶을 때에는 속이 후련하도록 울어도 보고
웃고 싶지 않을 때에도 억지웃음이라도 웃어 보면서
기약 없는 내일에 희망을 맡겨 봐야지요.

차라리 이렇게 힘들게 살줄 알았으면
젊었을 때 당신의 젊은 혈기를 발산하게 그냥 놔둘 것을.......
젊음도 한 때인 것을 왜 억지로 막았을까?
하는 후회스러움에 당신이 더욱 측은하게 여겨집니다.

여보!
세월 앞에 우리가 또 속고 있을지라도
두 눈 찡긋 감고 올 한해만 더 속아줍시다.
내년 2007년 새로운 해에는 행운의 숫자도 들어 있으니
심호흡 크게 한 번하고 우리 한 번 더 희망을 가져 봅시다.

지금쯤 당신이 무거운 가구를 어깨에 매고 배송을 위하여 차량에 실어주며
나이와 한판 전쟁을 치루고 있을 생활 현장의 모습들이
내 머리 속에 필름처럼 지나갑니다.
‘잠도 못 잤는데 무슨 힘으로.......’
안타까운 마음이야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만은
내가 당신에게 해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이렇게 컴퓨터 앞에 앉아 당신에게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달해 봅니다.

비록 지금은 시간이 없어 이 글을 볼 수 없겠지만
이제 이 한 고비를 넘기면 당신은 삶의 고뇌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내가 당신에게 호언장담합니다.

엊저녁 당신의 귀한 아들 녀석이
공짜로 사주를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을 깔아 놓았는데
당신 말년에 돈을 주체할 수 없이 많이 번다고 합디다. ㅎㅎ
오래 만에 주책없이 웃어 보네요.
그러니 한 번 믿어 보세요.

“당신 나 믿지요?”
당신 사주를 믿으라는 것이 아니라 당신 아내를 믿으라는 겁니다.
당신의 아내도 구르는 재주가 있으니 한 번 믿어 보세요.
당신 뒤에는 항상 내가 있잖아요.

오늘도 새벽에 귀가할 당신의 모습이 눈에 비추는 듯하여 코끝이 찡해오지만
오늘도 난 당신의 안녕과 건강을 위하여 기도하며 기다리렵니다.

여보!
힘내세요.

비록 부족한 점이 많은 당신의 아내이지만
건강한 모습으로 당신 곁에 영원히 함께 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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