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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기 아이러니한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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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불량마눌 작성일 2006-04-26 15:42 댓글 0건 조회 73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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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살다보면 정말 아이러니한 일들이 일어나곤 하는데
직접 겪은 일도 사실 믿어야 할지 참 당혹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점집도 아니고 도장 값만 받고 간단한 사주를 봐 주는 그런 사람들이
동네 아주머니들의 입심을 빌려 많이 돌아다니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저 또한 저희 집안 일이 풀리지 않아
누군가의 귀 뜸에 솔깃하여 찾은 곳이 그곳이었는데 이분 하시는 말씀이
올해 부모님 모두 돌아가실 운이라는 생뚱맞은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저희 집 일을 말씀해 주셔야 될 분이
오늘도 건강하게 밭일을 하시며 즐겁게 사시는 친정 부모님께 이런 망발을...
“말도 안돼요! 어째서 건강하신 두 분이 갑자기 돌아가시냐?”하며
그 분의 말을 무시하고 나왔습니다.
정말 기분이 무척 상한 마음으로.....

그 일이 있은 후 며칠이 지나
친정어머님의 다급한 전화를 받았습니다.

“야~ 네 아버지가 갑자기 이상하시다 며칠 잠도 못 주무시더니
넋을 잃고 말씀도 안하시는 것이... 어쩌면 좋으냐?“라는
어머님의 전화에 정신이 멍해 졌습니다.

믿기지 않은 말씀을 전해 듣고 급히 친정집에 도착해보니
말씀도 없으시고
당신 발끝에 보이는 군살을 손으로 뜯어 내시며 침까지 흘리고 계시는
친정아버지의 변화된 모습을 뵐 수 있었습니다.

1년 365 일이면 없는 날짜를 만들어 370일을 드실 정도로
평소에 약주를 무척 좋아 하셨습니다.

젊어서 경찰직에 몸담고 계시다 술을 좋아하는 친구를 만나
당신의 직업을 건축업으로 바꾸시고 난 뒤 더욱 술과 가까이 하셨습니다.

젊어서부터 드신 약주를 70세가 되시도록 끊지 못하셨으니...
"알코올성 침해이신 것 같다"라는 의사의 판정에
저는 그자리에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입원 수속을 끝낸 후 2인실의 병실에서 환자복을 갈아 입혀 드리는데
옆자리의 장기입원 환자의 보호자가 촐랑거리며 내뱉는 말이
“지금 그 자리에 계시던 분이 방금 상태가 좋지 않아 중환자실로 갔어요.”

‘에~이~구 상대가 들어서 기분 나쁜 소리는 좀 가려서 할일이지...
어째 묻지도 않은 말을 저렇게 생각 없이 지껄이나...’

속상한 마음을 누르며 병실이 없어 그대로 주저앉은 저는 친정아버님께
“아버지! 병실이라는 곳이 다 그렇지요. 아파서 들어오는 곳이 병원인데...
괜찮아요. 마음 놓고 한숨 푹 주무세요.”
아무리 자리에 누우실 것을 권유하였으나
끝내 아버지는 자리에 눕지 않으시고 자리를 피하셨습니다.

정신이 없으신 그 속에서도 촐랑거리는 여자의 말을 귀담아 들으신 듯...

고개를 끄덕이시며 졸고 계시는
아버지의 휠체어를 밀고 다니며 같이 밤을 새웠습니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
시간이 흐를수록 아버지의 증상이 점점 심해 지셨습니다.

볼일을 보시고 그냥 바지를 치키시고
말씀도 없으시며 눈의 초점을 잃으신 채
침 흘리시며 당신 발뒤꿈치의 군살만 계속 뜯고 계시는 모습에
친정어머님은 “같이 갑시다. 딸자식 힘들게 하지 말고 같이 갑시다.”하시며
어머니는 정신없으신 아버지를 붙들고 목 놓아 우셨습니다.

다음날 상의 끝에 6인실이라도 좋으니 병실 좀 옮겨 달라고 하여
병실을 옮기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생뚱맞은 소리에 기분이 상하여 도장 값만 주고 나온 그분한테서
도장이 다 되었다는 연락이 온 것입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병원으로 도장을 갖고 오십사 하는 부탁을 드렸더니
몇 시간 뒤 병원에 도착을 하셨습니다.

“사실 이런 저런 일이 있어 병원에 입원하셨는데 어쩌면 좋을까요?”
그분이 하셨던 말씀이 이상하게 맞아 떨어지는 것 같은 마음에
사정 말씀을 드렸더니 두 분의 사주를 그 자리에서 다시 봐 주시더라고요.

“내일 새벽 3시에 제가 산기도 들어갑니다. 장담은 할 수 없지만
제가 기도하며 켜 놓은 초가 타 들어 가면 장수 하실 것이고요.
만약 그렇지 않다면 저도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습니다.
꼭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그 시간에 맞추어 온 식구가 같이 기도 해 주세요.”
라는 말씀을 남기시고 자리를 떠나셨습니다.

저희들은 잠이 들면 깨어나지 못할까봐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다
그분이 말씀하신 새벽 3시 정각에 간절한 기도를 올렸습니다.

아침 8시쯤 그분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네 다행입니다. 기도하는데 초가 타들어 가더라고요.
앞으로 몇 년간은 아무 탈 없이 장수 하실 겁니다.”
그분이 하시는 말씀이 의사의 처방보다 명쾌한 답으로 제 귀에 전해 들어 왔습니다.

아침 식사를 하고 친정어머님의 식사를 챙겨 병실을 찾았습니다.
순간 놀라운 장면이 제 앞에 들어 왔습니다.

“야~ 임마! 네가 의사면 의사지. 너는 어미 에비도 없냐?
나이도 어린 것이 어른한테 반말을 지껄이며 퇴원을 안 시켜 준다고?”하시며
멀쩡하신 모습으로 의사한테 퇴원시켜 줄 것을 종용하고 계시더라고요.
참으로 믿기지 않는 현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일단 회복 되셨다는 기쁨만이라도 전후를 가릴 수 없는 축복이었습니다.
더욱 믿기지 않은 일은 70세이신 연세에 그것도 퇴원 다음날
3일간 건축 일을 하셔서 돈벌어 오셨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믿으시겠습니까?

지금은 어떻게 사시냐고 묻고 싶으시지요?

“아버지! 앞으로 술과 담배를 끊지 못하시면 얼마 사시지 못한데요.
이제 아버지께서 알아서 하실 문제이니까 결단 내리세요.”
이 한마디에 술과 담배 모두 끊으시고 건강하신 모습으로
78세의 연세에 또 다른 삶을 누리고 계십니다.

지금 이글을 쓰고 있는 이 시각에도 친정아버지의 건강하신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응~ 나야~ 지금 밭에 갔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야~”

두 분이 나란히 자전거를 타고 점심 드시러 돌아오시는 모습을 상상하며
이글을 마칠까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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