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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기 겸 손(謙 遜) -- 3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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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 호락 작성일 2009-11-01 17:19 댓글 0건 조회 1,09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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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겸손(謙遜) --  39-1 <안자편외>
 
 겸손은 자기완성(自己完成)의 기본이면서 또한
가장 갖추기 어려운 심성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우리 자신은 말할 것도 없고, 주위를 보아도 진정 겸손(謙遜)의
덕(德)을 갖췄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흔치 않으며,
오히려 별것 아닌 직위나 신분임에도 대단한 권력을 가진 것처럼
으스대는 모습을 보게 되는 경우가 많다


겸손과 관련한  안자지어(晏子之御)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역사적으로 볼때, 세계적인 명재상(名宰相)을 꼽으라고 한다면 단연
중국 춘추전국시대에 활약 했던 재상 안영과 관중을 꼽을 수있다.

이 두 사람의 활동 시기는 약간 달랐지만,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인 재상 자리에 있으면서,
아래로는 백성의 삶을 편안하게 하고 위로는 군주를 잘 모시면서
좋은 정치를 펼쳤던 훌륭한 인물들이었다. 

우리가 잘 아는 관중은 포숙과의 우정을 통해 관포지교(管鮑之交)라는
유명한 고사성어를 낳은 춘추시대 제나라 재상이고,

안영 역시 춘추시대 제나라 경공 때의 재상으로 ‘안자지어(晏子之御)’라는
고사성어를 남겨 후세에 널리 귀감(龜鑑)이 되어 온 인물이다. 

안자지어(晏子之御)는 ‘안영(안자)의 마부’라는 뜻이다.

이와 같은 글자 그대로의 뜻 말고 그 속에 숨어 있는 본래의 뜻은
‘변변치 못한 지위를 가지고 있으면서 괜히 우쭐대거나 기량이 작은 소인배’를 지칭하는 말로 전해 내려오고 있다. 

안영은 후에 ‘안자’라는 경칭을 받을 정도로 인품과 재능이
뛰어났으면서도 매우 겸손했고, 특히 일반 백성들에게는
한없이 자신을 낮추며 받들었던 훌륭한 인품의 소유자였다.

안영은 군웅이 할거하던 춘추전국시대에 제나라를 천하의
강국으로 만들만큼 치세능력이 있었던 출중한 인물이었다.

그가 행했던 말과 행동이 공자(孔子)에게도 영향을 미칠 정도였다니,
안영이 어느 정도의 인물이 었는지 짐작이 가고도 남음이 있다.
그래서 그는 안자(晏子)라는 경칭을 얻게 되었다. 

그러면 ‘안자지어’라는 말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이제부터 그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다.

어느 날 재상 안영이 외출할 일이 있어 자신의 마차를 타게 되었다.
이때 네 마리의 말이 끄는 마차(馬車)를 부리는 어자(御者),
즉, 마부는 백성들이 존경하는 명 재상에 대한 경외(敬畏)의 눈빛을
보내며 길바닥에 엎드린 모습을 내려다 보며 마치 자신이 재상이라
도 된 듯 오만방자(傲慢放恣)한 태도를 보였다.

마부는 목을 뻣뻣이 세우고 득의만면(得意滿面)한 표정으로
말채찍을 휘어잡고 마차를 몰았다. 그 날 재상 안영의 마차가
자기 집 앞을 지나간다는 소식을 들은 마부의 아내는
자신의 남편이 모는 마차행렬을 문틈으로 살며시 엿보았다.

모든 백성의 존경과 우러름을 한 몸에 받는 재상 안영은
다소곳이 마차에 앉아 있었다. 마부의 부인은 그의 그런
모습을 보며 역시 존경할 만한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마차를 모는 자신의 남편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마부에 불과한 남편의 목은  빳빳하게 기부스가 되어
얼굴에는 온갖 거드름이 덕지덕지 배어있고,
구경꾼들을 깔보는 듯 안하무인의 자세가 아니겠는가.
이 모습을 지켜 본 마부의 아내는 남편의 모습이 역겹고 싫었다.

그 날 저녁 마부가 집에 돌아오자 그의 아내는 느닷없이
이혼을 요구했다. 그 연유를 알 까닭이 없는 마부는
아닌 밤중에 홍두깨를 맞은 듯 어안이 벙벙했다.
이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그의 아내가 입을 열었다.

“안자(晏子)께서는 나라의 재상이시고 명성도 높은 존경받는 인물이지만,
한없이 겸허한 모습이었다. 그런데 당신은 그 분의 마부에 불과한데도
마치 재상이라도 된 냥 목에는 기부스나하고, 거드름을 피우고 있으니
그 꼴이 너무 역겹고 보기 민망했다.
그러니 그런 당신과는 더 이상 살고 싶은 생각이 없다.”

아내로부터 이렇게 무안을 당한 마부는 그 뒤부터 사람이 확 달라져
아주 겸손하고 배려 깊은 사람으로 변해 갔다고 한다.

안영은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의 마부가 매우 달라진 것을 느꼈다.
그래서 그 까닭을 물었다. 마부는 자초지종(自初至終)을 이야기했고,
그 말을 들은 안영은 마부를 가상히 여겨 대부(大夫)라는 벼슬자리에
추천을 해 주었다고 한다. 

이 일이 있고 난 후, 중국 사람들은 어리석은 사람을 가리켜 안자지어(晏子之御)라고 말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것이 고사성어가 되어 오늘날까지 전해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사자성어인 안자지어(晏子之御)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하나는 권력을 등에 업고 호가호위(狐假虎威)하며 백성들에게
오만방자하게 구는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존경받는 재상 안영의 훌륭한 인품을 가리키는 말이다.

안영은 자신이 소유한 권력이 백성으로부터 나왔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으며, 그래서 백성들에게 자신을 낮추며 겸손했다.

어찌됐던 이 안자지어는 세상의 모든 권력은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라,
다름 아닌 백성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에 그 권력(權力)은 개인의 영달이나
욕심을 위해 사용되어서는 안 되고, 오로지 백성을 위해서만 사용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주고 있다.


 또하나, 논어에 보면

공자의 제자인 회자(會子)는 그의 친구 안회(顔回)의 예를 들며
“진정 겸손(謙遜)한 자는 유능하면서도 무능한 자에게도 물어보며
다문다식(多聞多識)하되 견식 낮은 자의 의견을 들어 받아들인다.  
있되 없음과 같고 충만하되 빈 듯하며,
남이 덤벼와도 조용히 이해시킬 뿐 쉽게 대항하지 않는다”라고 했다.

또 그(회자)가 죽을 때에 문병 온 사람들에게 이르기를
“새가 죽을 때는 그 울음소리가 슬프고 사람이 죽을 때는 그 말이 착하다.”

군자가 지켜야 할 도덕적인 법칙이 셋 있으니,

“기거동작(起居動作)을 공손히 해 사납고 거만함을 경원해야 하며,
얼굴 표정을 단정히 해 성실성을 잃지 않아야 한다.
말씨를 가다듬어 부드럽고 온유하게 표현하며,
결코 야비하고 도리에 어긋나는 말을 피하라”고 했다.

또한 주나라 강태공은

“勿以貴己而賤人(물이귀기이천인)하고
 勿以自大以蔑小(물이자대이멸소)하며
 勿以恃勇而輕敵(물이시용이경적)하라”
내 몸이 귀하다고 남을 천하게 여기지 말고,
자신이 크다고 남의 작은 것을 업신여기지 말며,
용맹을 믿고 적을 가벼이 여기지 말라고 했다.

무릇 많은 선인들이 겸손의 미덕을 강조했으며
또한 겸손이야말로 자신을 만드는 데 가장 필요한
기본적인 소양 중의 하나가 아닌가 여겨진다.

남의 충고가 맞다 해도 고맙게 받아들이기보다는
오히려 불쾌히 여기며 보복을 벼르기까지 한다.

하지만 곡식은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며,
가득찬 수레는 조용히 굴러간다.
자신의 생각이 여문 사람일수록 겸허하고 소박하다.

타인에게 시기와 적의를 보이기보다는 조용한 감사와
겸손한 모습으로 자신을 내미는 사람, 이런 사람이라면
굳이 큰 일을 하지 않았더라도 가위 위인이라 부를 만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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