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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기 베트남은 한국과 어떤 관계일까?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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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RGO 작성일 2019-02-24 22:03 댓글 0건 조회 99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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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베트남 마지막 왕조의 후에성 앞 국기게양대 께이 다이(Ky Dai)

           베트남 국기 황 홍성기가 펄럭이는 이 게양대는 전체 높이가 39m
           베트남에서 가장 높은 국기게양대이다
.


베트남은 한국과 어떤 관계일까? 1    

  

나는 베트남(월남)을 잘 모른다.

 

아는 것이라면 월남에서 돌아온 (새까만) 김상사라는 노래 제목 정도에

월남이 따뜻한 남쪽 더운 나라이고, 그곳 사람들은 아주 억세서 식민지 시대 프랑스를
자력으로 이겼으며
, 월남전 때 우리 젊은이들이 미국을 도와 참전하였으나
막강 전투력을 가진 미국을 물리쳤다고 하는 정도다
.

요즘에는 우리나라 삼성, 엘지 등 유수한 기업들이 많이 진출 해 있다는 정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

그런데 몇 번 월남을 여행하고 온 이후부터는 그들 역사의 역동성은 소설 삼국지
칠종칠금
(七縱七擒)처럼 잠시도 늦춰지지 않는 흥미진진한 마음을 갖게 되었다.

역사적으로 보면 베트남의 역사도 우리나라처럼 끊임없는 생존투쟁의 역사였다.

 

베트남(월남)은 우리들에게 멀고도 가까운 나라로 인식되고 있다.

우리에게 늘 스트레스받게 하고 있는 가깝고도 먼 나라와는 차원이 다르다.

 

베트남 주석은 어떤 자리에서 한국을 가리켜 진정한 친구이자 사돈의 나라라고 했다.”고 한다.

한국으로 시집온 베트남 여성이 7만여 명에 이르는 것을 염두에 둔 덕담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어른과 집안을 존중하는 문화에 부지런한 베트남 여성들이 한국 내 최대 다문화 가정을 이루고 있다. 근로자를 합하면 14만여 명의 베트남 사람들이 한국에 체류 중이다.

 

국내 축구계에서는 크게 두각을 나타내지 않고 있던 박항서 감독이 작년 베트남에서 큰 일을 저질렀다. 박항서 감독은 축구에 내셔널리즘을 불어넣어 주었다.

과거 베트남이 생존과 전쟁에서 살아남는 것이 유일한 목표였다면, 지금은 박항서 감독의 마술 같은 용인술로 인해 축제와 축구를 즐길 줄 아는 청년 국가로 탈바꿈시켜가고 있다.

 

베트남은 열광했고 한 번 이길 때마다 또 다른 베트남이 탄생했다.

지난 세기 울분과 광기의 역사는 사라졌다.

가난과 수탈의 기억을 훌훌 털고 축구를 통해 미래 비전을 패스하며 통합과 성장의 골을 넣었다. 그리고 우리 대한민국의 국위선양은 물론 베트남과의 교역량도 크게 증가할 것으로 예측된다.

 

그런 베트남에서 우리 안보와 직결된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제2차 북미 정상회담 소식을 TV, 신문 등 모든 언론 매체에서 실시간
톱 뉴스로 장식하고 있어 모든 이슈를 블랙홀처럼 빨아 드리고 있다
.

그렇다면 2차 북미 정상회담 개최지로 선정된 베트남은 우리 대한민국과는 어떤 관계일까?

 

‘Vietnam'Viet()Nam()의 합성어다.

우리는 1975월남이 패망한 뒤, 더 이상 월남이라는 국명은 사용하지 않고
베트남이라고 통일해 부르고 있다.

베트남의 어원은 1802년에 들어선 응우옌() 왕조가 국호로 정한 越南의 베트남어 발음을
프랑스인들이
‘Vietnam'으로 표기한 것을 한국식으로 읽은 것이다.

 

지리적으로 볼 때 베트남은 남북으로 대략 1,800에 달하는 긴 바나나 형태의 국가로 일 직선으로는 1,700km 정도 길이가 되고, 해안선은 3,200km 정도 되는 제법 긴 국가다.

한국과 베트남은 중국과 국경선을 마주하고 있다.

한국(북한)과 중국의 국경은 1,300km, 베트남과 중국의 국경은 1,400km이다.

따라서 한국과 베트남은 역사와 문화적으로 중국의 영향을 많이 받아 왔다.

베트남에서는 지금도 국경을 맞대고 있는 중국과는 천년이 넘는 애증(愛憎)
영토분쟁으로 일촉 즉발이다
.

 

종족 구성은 킨(Kinh)족이 전체의 85%이다.
그리고 나머지 대다수를 따이족, 크메르족, 타이족, 므엉족, 눙족, 호아족 등이 차지한다.  

전체 면적은 약 33으로 남북한 전체면적인 221.5배이고, 남한 면적의 3배가 넘는다. 2018년 기준 베트남 인구는 96백만 명이 넘는다.
대한민국은 남북한 전체 77백만 명(이중 남한 인구는 약 52백만 명)이다.

 

나관중의 삼국지를 읽어본 사람이라면
삼국지 제8,” 87회 남만정벌에서 90회 칠종칠금까지의 이야기가 생각날 것이다.

 

제갈량(諸葛亮)의 참모 마속은 남만(南蠻;베트남)을 완전히 복속시키려면 무력으로 제압해선 안되고 그들의 마음, 즉 덕()으로 다스려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즉,

용병지도공심위상, 공성위하, 심전위상, 병전위하


用兵之道攻心为上, 攻城为下, 心战为上, 兵战为下

무릇 용병의 법도에 있어 마음을 공격하는 것이 상책이고, 성을 공격하는 것은 하책이다.
마음으로 싸우는 것이 상책이고, 병사들로 싸우는 것은 하책이다

그래서일까, 촉한의 제갈량과 남만(지금의 베트남) 왕 맹획과의 싸움에서 유래된
칠종칠금(七縱七擒)’이라는 고사성어 이야기가 나온다.

제갈량은 전쟁에서 포획한 남만왕 맹획을 당장 죽일 수도 있지만
일곱 번이나 사로잡았다가 놓아 줄만큼 덕을 베풀었다는 것이다
.

베트남은 서기 939년 독립하기 앞서 1천여 년 동안 중국의 지배를 받기도 했다.

당나라는 하노이에 안남(安南) 도호부를 설치해 윈난(雲南)과 남중국해를 연결하는 교역로로 활용했다. 우리가 예전에 월남(越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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