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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기 장강크루즈여행기3-2장강삼협 화보; 棧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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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RGO 작성일 2016-11-14 18:45 댓글 1건 조회 979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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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강크루즈여행기3-2장강삼협 화보; 棧道

[사진 설명] ; 잔도(棧道)


잔도(棧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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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촨성(巴蜀)땅은 예로부터 길이 험하여 가도(假道)나 잔도(棧道)를 만든 지역이 아니면 왕래가 거의 불가능한 오지중의 오지(奧地)였다.

이곳은 지금의 섬서성과 사천성을 잇는 중심지역으로북쪽으로는
진령(秦岭) 산맥을, 남쪽으로는 파산(巴山)을 경계로이루어 진다.


기원전 206년 항우(項羽)는 이런 지역에 유방(劉邦)을 봉하였으니 당시로서는 죽을 때까지 그곳에 들어가서 나오지 말라는 뜻이였을 것이다.


유방은 파촉(巴蜀)으로 군사들과 함께 아슬아슬하게 걸린 잔도(棧道)를 따라 겨우 들어가며, 일부러 항우를 속이기 위해 잔도를 소각한다. 나갈 뜻이 없고 그 안에서 살 것을 선언한 셈이었다.


하지만 한중에 들어간 유방은 외부와 단절 되어 있으므로, 착실히 세력을 모으고 장량(張良)의 추천을 받아서 보내어진 한신을 대장군으로 삼고 결국 항우가 분봉한 장한을 비롯한 진의 옛 장수들이 지키던 삼진(三秦, 옛 진나라 땅을 셋으로 나누어 장한, 사마흔, 동예에게 분봉하였었다.)을 장악하였다.

유방이 한중에서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장량이 진창으로 통하여 나올수 있는 샛길(棧道)을 가르쳐 주었기 때문이었다.

옛날 고잔도(棧道)를 소각한 것은 항우의 눈을 속이는 전략이었던 것이다.

 

이렇듯 파촉(巴蜀)은 분지로서 천부지고(天府之庫)라 하여 비옥(肥沃)한 땅이었으나, 외부와 단절된 지역이었기에 항우의 눈을 속이고 유방은 세력을 길렀고, 은인자중한 끝에 세력을 길러 중원으로 진출하여 항우를 쓰러뜨리고 최초의 평민출신 황제로 즉위하게 된다.


유방이 결국 패권을 잡게 되는 초한전
(楚漢戰)은 이렇게 시작되는 것이다.


험로(險路)가 오히려 군사력을 키우는 기회가 된 것은 유방(劉邦)의 후손인 유비(劉備)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촉나라는 전혀 다른 운명을 맞는다.

제갈량까지 죽은 뒤 위나라 장군 등애가 3만명을 이끌고 음평도라는 험로를 넘어 침공해왔다. “등애는 사람이 살지 않는 땅 700여리를 행군했다. 산은 높고 골짜기는 깊어서 군량을 옮기는 일조차 버거웠다. 등애는 천을 몸에 둘둘 만 채 굴러서 산골짜기를 타고 내려갔다.”[위서魏書·등애전鄧艾傳] 


아무도 갈수 없던 길로 불시에 침공한 등애 군에게 촉나라는 항복하고 말았던것이다.

험한 길은 오르는 사람에게는 힘이 들지만 그만한 보상이 따른다는 것을 교훈으로 알려준 것이다.


다른 사례지만, 군대를 이끌고 알프스산맥(해발3000미터)를 넘은 최초의 장군인 카르타고의 한니발(
Hannibal)도 그랬다.

로마인 누구도 예상 하지 못한 길로 이탈리아에 들어선 한니발
군에게 로마는 멸망의 위기에까지 몰렸었던 것이다.


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이 옛날 한나라, 촉나라로 갈수 있었던 유일한 길, 오지중의 오지에 있는 잔도(棧道)가 오늘날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인기있는 관광지로 변신해 있는것이다. 
그것은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험로(險路)이기 때문에 더 많이 찾아 보는 곳으로 변모 되어 있는 것이다.


우리네 인생이라는 것도 알고보면 외롭게 걸어가야 하는 험로 투성이인데 말이다. ‘절벽 위에서 극한체험을 하면 인생의 깊이를 더 깊게 느끼게 되는가 보다’라고 짐작해 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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