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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기 내가 좋아하는 애송시 "청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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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돈길 작성일 2016-10-29 11:10 댓글 0건 조회 52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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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10.29

필자는 시란 무엇인가? 모른다. 시를 써 본적도 없다. 주위에 알고 있는 시인도 없다. 시인은 가난하더라 는 고정관념이다. 무작정 필자의 마음에 와 닿는 시가 있으면 한 두번 읽고 이런 시가 있구나 하는 정도이지 그 이상은 아니었다.

그래도 필자가 애송시 중의 하나가 김영랑 시 “모란이 피기까지”이었다. 김영랑은 민족 시인으로서 일제의 악랄한 억압속에서도 언젠가는 좋은날이 올것이라는 ‘찬란한 슬픔의 봄’은 기다리며 살자는 것이다. 그리고 5월이라는 내용에 대해 적절히 활용한 적이 있다. 그것은 학생들에게 강의 할 때 5월이면 춘곤증(春困症)으로 집중력을 높이는 시로 이용하여 학생들도 좋아하고 필자 역시 하나의 시로 인해 승수효과도 얻을 수 있었다.

오래전 어느 날 전철을 타려고 대기중에 벽에 걸린 시에 ‘청춘’이란 시를 읽고 용기와 희망과 꿈을 주는 시로 너무나 감동했다. 독일의 사무엘 울만의 시는 어째든 지금도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애송시가 되었다. 이 시는 일본에서 더욱 유명하게 된 청춘의 시는 2차대전 후 일본 맥아더 장군의 집무실 벽에 걸린 청춘이란 시를 마스시타 고노스케 회장이 보고 집무실에 액자를 걸어 놓고 외우면서 철학으로 삼았다고 한다. 이 시가 일본 전역으로 전파되어 오늘날 일본이 부흥할 수 있었던 것은 사무엘 울만의 청춘이란 이야기도 전해오고 있다.

- 사무엘 울만-

“청춘이란 두려움을 물리치는 용기,

안이함을 뿌리치는 모험심

그 탁월한 정신력을 뜻하나니

때로는 20세의 청년보다도

70세 노인이 더 청춘일 수 있다.

이상을 잃어버릴 때 비로소 늙어 가나니

세월은 피부에 주름살을 늘려 가지만

열정을 가진 사람의 마음을 늙게 하지는 못한다.

당신은 지금 청춘의 삶을 살고 계신가요“

청춘이란 인생의 어떤 기간이 아니고 그 마음가짐이다/… 사람은 나이를 먹어서 늙어지는 것이 아니고 이상을 잃음으로써 늙어 간다/ 연령은 피부를 주름지게 할지 모르나 정열의 포기는 영혼을 주름지게 한다`...

이 시는 앞으로 필자의 사회생활하는데 큰 지표가 되겠다 싶어 외웠던것이 동기가 되어 이제는 김소월의 ‘고향의 봄’을 비롯하여 외우는것이 어느덧 20수가 넘는다. 그리고 외워야할 시를 모아 놓은것이 30수 이상이 된다. 앞으로 50수는 외울 계획이다. 시는 꼭 외워야하는 것은 대해 각자 취향에 따라 차이가 있다. 얼마전 원로 고은 시인께서는 80권의 시집을 내고도 자기가 쓴 시를 외우는 것이 고작 짤막한 한두 편을 빼고는 외우는 게 없다 고 했다. 김동길 교수는 영시를 포함하여 200∼300수는 외운다고 한다.

여하튼 마음에 드는 시를 선택해서 외우고 나면 뭔가 용기를 얻고, 지난 세월을 반추하기도 하고, 삶의 지표를 주기도 한다.

언제나 혼자 낭송을 해도 즐기는 시는 윤동주의 ‘서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

보들레르의 ‘이방인’ 그대는 누구를 가장 사랑하는가?....그렇다면 그대는 무엇을 사랑하는가? 불가사의한 이방인이여?...난 구름을 사랑한다. ....저기 저 지나가는 구름을 ....저 신묘한 구름을!

푸시킨의 시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참고 견디노라면 반드시...’

김소월의 ‘초혼’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중에 헤어진 이름이여!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부자(夫子)간의 시인도 보기가 좋아 보였다. 중국 “삼국연의”의 주인공 조조와 그의 아들 조비의 시들도 좋고 한국에서는 박목월 시인과 아들 박동규 전 서울대 교수의 모습도 보기가 좋다. 즉 아버지의 세계를 아들이 이어 간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가 특히 박동규 교수는 얼마전 아버지의 시를 평가하는데 마음이 얼마나 착잡했을까 이다.

시는 시대와 국경을 초월해서도 좋다. 조조의 시는 1700년의 시이고 김영랑의 시는 82년, 윤동주의 시는 75년이 되었으니 말이다.

특히 고전에 관심을 가지다 보니 시를 쉽게 외우게 되어 즐겁다. 즉 이방원은 정몽주에게 들여주는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하여가(何如歌), 정몽주가 이방원에게 답신하는 ‘이몸이 죽고 죽어 일백번 고쳐 죽어...’ 단심가 丹心歌), 정몽주의 팔순 노모가 정몽주를 문 밖까지 따라나와 ‘까마귀 우는 곳에 백로야 가지마라’ 백로가(白鷺歌)를 불렀다.

필자의 어린시절을 보냈던 강릉 성남동 205번지를 오늘에 이르러 찿아가 보면 고려말의 충신 야은(冶隱) 길재의 시 山川(산천)은 依舊(의구)되 人傑(인걸)은 간 듸 업다(산천은 그대로 인데 어린 시절 같이 놀던 친구는 아무도 없구나) 망국(亡國)의 한과 인생무상이다. 설파한 시로써 가을을 맞아 쓸쓸한 느낌을 준다.

어째든 사무엘 울만은 78세에 청춘이란 시를 썼다고 한다. 필자도 아무리 나이가 들어가도 언제나 청춘의 마음을 가지고 남은 인생 즐겁고 아름답게 마무리하고 싶다.

                                                         37기 최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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